〈 6화 〉Spotlight: Bell Cranell
벨 크라넬은 막 오라리오에 입성한 뉴비 모험가였다.
아니, 모험가 지망생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모험가가 되기 위해선 파밀리아의 일원이 되는 것이 필수나 마찬가지였기에.
14살. 던전에서 소녀와의 만남을 꿈꾸는 소년.
하지만, 그는 사실상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꿈만 많은 꼬마를 받아들여줄 전투계열 파밀리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으으... 어쩌면 좋지..."
길드에서 기초적인 안내를 받고, 기쁜 마음에 들떠 프레이야 파밀리아의 홈으로 달려갔었던 것도 벌써 6시간 전, 석양 아래에서 벨 크라넬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입단에 도전한 파밀리아만 12개 파밀리아, 파밀리아의 주신을 만날 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문에서 파밀리아원에게 바로 쫓겨나지 않고 파밀리아의 단장을 만날 수만 있었다면 오히려 다행일 정도였다.
단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뒤 쫓겨날 뿐이었지만.
"아니야, 이럴 때가 아니지. 이렇게 쉴 시간이 있다면, 다른 파밀리아를 하나 더 찾아보는 것이..."
"어이, 이봐. 이 녀석, 이런 데서 뭐라고 씨부리고 있는데?"
"반반하잖아. 여기서 여자친구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냐?"
벨이 다시 마음을 다지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골목 입구에서 딱 봐도 껄렁껄렁해 보이는 청년 셋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벨 크라넬이 보기에도 선한 의도로 접근해오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형이 지금 무능한 서포터 때문에 던전 사냥이 영 신통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이러다간 저녁을 굶어야할 참이거든? 모험가가 밥 한 끼 굶으면 훈련할 힘이 부족하고, 훈련할 힘이 부족하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고,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으면 도시에 대한 마석 공급이 줄어들고, 마석 공급이줄어들면 도시의 수입이 줄어들고, 도시의 수입이 줄어들면 오라리오로 찾아오는 모험가가 줄어들고, 모험가가 줄어들면 몬스터가 늘어나고, 몬스터가 늘어나면 지상으로 침략해오지 않겠어?"
"키야아아, 형님. 맞는 말입니다! 이봐, 어서 우리 형님에게 저녁 한 끼 할 돈을 빌려주지 않겠어?"
"맞아, 이왕 빌려주는 김에 내 것과 이 녀석 것도 같이 빌려줘, 이 토끼녀석아."
토끼...?
벨은 지갑을 열어보았다. 눈앞의 세 명은 오늘 처음 만나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배가 고파서 적선을 원할 뿐이라면, 한끼 정도는 사줄 수 있을 터였다.
"200발리스 정도면 될까요?"
"우와,이 녀석, 바보 아냐? 정말로 빌려줄 셈인 것 같은데?!"
벨의 지갑 안에는 집을 떠나올 때 가재도구를 처분하고 남은 10000발리스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형님'은 씨익 웃었다. 딱 보기에도 뉴비,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파밀리아에 들지 못한 촌놈. 봉을 잡은 것 같았다.
"이봐, 이봐이봐이봐! 200발리스 정도로 되겠어?! 이 오라리오는 물가가 엉! 비싸서 말이야! 앙?! 한 명 당 2000, 아니, 2500발리스 정도가 아니면 배에 풀칠도 못한다고!"
"하, 하지만, 아까 제가 점심을 먹을 때는 50발리스로 충분하게-"
"하아?! 너 우리 형님을 어디 거지로 보냐?! 아아앙?!"
당황해하는 벨의 얼굴에, 불량배 셋의 얼굴이 들이밀어졌다.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는 셋의 표정을 보며, 벨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워, 원래 적선이라는 것은 이렇게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던가? 벨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나쁜 상황의 오라리오의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동정했다.
"하지만, 저도 7500발리스는 무리라구요...!"
"그 지갑 안에 10000발리스는 가득 들어가겠다!"
"이봐, 좋게 생각하자고. 우리는 세 명이고, 너는 한 명이잖아? 한 명당 2500발리스 씩 저녁을 먹으면 정확히 10000발리스. 어때, 이러면 모두 기분이 좋아지겠지?"
"으윽, 점심도 굶었더니 곧 죽을 것 같아아..."
"야, 내 동생 죽어간다. 어서 돈 내놔!"
아니, 저건 아무리 봐도 연기잖아요! 벨 크라넬이 속으로 외쳤다.
한 명이 땅바닥을 데굴데굴구르기 시작하자, 나머지 두 명이 더욱 험악하게 벨을 벽으로밀어붙였다. 안 내주면 때려서라도 가져가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때였다.
"뭐야, 거기."
해가 져가는 노을을 배경으로, 골목 끝에 암자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서있었다.
검은 후드가 달린 옷은 오랜 방랑 탓인지 상당히 낡아있었고, 그 등에 짊어진 지게에는 불을 때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장작을 가득 얹혀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모험가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아? 서포터냐? 안 그래도 잘 됐다. 이 몸이 오늘 웬 도둑년 시앙스로프 서포터에게 오늘 번 전 재산을 털려가지고말이야. 그 앙갚음을 무지 하고 싶은 참이었거든?!"
"이 악물고 똑바로 서 있어. 여자라고 안 봐준다!"
"얼굴은 때리지 말죠, 형님."
벨을 내버려두고, 세 모험가가 돌아서 암자색 소녀에게 다가간다. 방금 전까지 떼굴뗴굴 구르던 청년마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서는 것이 벨에게 있어서 뭔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아."
"그래! 너도 싸우고 싶지 않겠지! 나도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너를 일방적으로 패고 싶을 뿐이다!"
리더로 보이는 남성이 달려간다. 서포터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모험가만큼 강한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벨이 피하라고 외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소녀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어?"
바닥에 리더가 쓰러져 있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벨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쓰러진 본인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보였다.
"마지막 경고야."
"이게, 형님을!"
그것이 불량배들을 자극했는지, 서 있던 부하 두 명이 무기까지 꺼내들어서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툭, 툭. 앞선 불량배가 내지르는 나이프를 든 손을 가볍게 쳐서 검을 떨어트린 뒤, 발로 걷어차 넘어트린다. 뒤따르던 불량배가 도미노처럼 쓰러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레벨 2다! 방심하지 않는다면 너같은 건!"
부하들이 다 쓰러지자, 다시 일어선 리더가 커다란 장검을 꺼내들고서 소녀에게 휘둘렀다. 어째서 이렇게 포기를모르는 걸까. 소녀가 중얼거렸다.
소녀의 손에는 불꽃이 들려있었다. 지팡이도, 영창도 없었지만, 약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소녀의 손에 확실히 들려 있었다.
"레벨 2라면 미디움으로 구워도 별로 안 아프겠지?"
"마, 마법이라고?!"
화르륵, 불량배 리더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가볍게 리더가 든 장검과 가죽제 흉갑을 불태워버리자, 불량배 리더는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나머지 둘은, 리더가 쓰러지자마자 도망쳐버렸다. 그리 믿고 있었던 레벨 2가 단번에 당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안전해."
"아, 아, 네."
벨 크라넬은 말을이을 수 없었다. 레벨 2라고 자신을 소개한 모험가를 단번에 제압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비록 이상향으로 그리던 소녀상은 아니었지만, 벨 크라넬의 뇌리에 콱 박힐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왈, 하렘은 로망이니까.
"저,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벨은 무리한 부탁인 것을 알면서도, 소녀에게 당신이 입단한 파밀리아에 입단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이 튀어나오는 것보다도 빨리 소녀가 벨을 불렀다.
벨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물어봐도 상관 없었다.
"가슴 보호구에 그려진 그 그림, 누가 그린거야?"
"네? 아..."
벨은 고향에서 떠나올 때, 스승-이라 쓰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옆집 아저씨-에게 받은 가슴 보호구를 내려다보았다. 굉장히 근엄한 듯한 표정을 지은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제 스승님이신데요..."
"이름은?"
"그, 솔라 씨라고-"
"잠깐 따라와주지 않겠어?"
암자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벨 크라넬이 그토록 그리던 말을 먼저 해주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