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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Spotlight: Chosen Undead (1/71)



〈 1화 〉Spotlight: Chosen Undead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화로의 여신은 여느 때와 같이 친우의 파밀리아 홈 구석진 곳에서 빗소리를 배경음 삼아서 책이나 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 친우의 파밀리아 홈을 나선 이유는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의 놀란 눈을 뒤로 한지도 벌써 30분 째. 목적도 없이 방에서 나왔을 뿐인 여신 헤스티아가 빗소리에도 결국 질려버려, 그만 돌아갈까 생각하던 그 순간이었다.


“.......어라?”


비가 내리는 도시의 거리는 쓸쓸했고, 그나마 남은 인기척마저 빗소리에 지워져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헤스티아가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을 무심코 바라본 것은 우연에 불과했다.

찰박찰박, 헤스티아의 발소리가 물을 튀겼다. 새까만 뒷골목을 자신 있게 나아간 어린 여신의 눈앞에, 물웅덩이에 쓰러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강철의 갑옷으로 전신을 덮은 인간의 모습이.

이 비오는 날에 싸움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헤스티아는 쓰러진 사람에게도 우산의 한 자리를 양보하며 그, 혹은 그녀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보통이라면 가볍게 무시했을 그녀가 어째서 처음 보는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몰랐다. 호기심,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에 이끌려, 헤스티아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벽에 기대어두고, 낯선 사람의 투구를 벗기려 들었다.

투구도 벗길 줄 모르는 여신의 도전이 이어지고 이어져, 마침내 투구의 바이저 정도는 들어 올릴  있게 된 한 순간, 의식을 잃고 있었던 이방인의 손이 갑작스럽게 헤스티아에게 뻗어왔고, 곧바로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꺅?!”

헤스티아의 비명소리가 조금 더 늦게 뒷골목에 메아리쳤다. 등을 적셔오는 물웅덩이가 차가웠고, 자신의 목을 눌러오는 강철의 장갑이 차가웠다.

“......”

“이것, 좀, 놔, 줘.......”

헤스티아가 이런 비오는 날에 편안한 친우의 집에서 뛰쳐나온 것도 모자라 괜히 수상한 사람을 건든 과거의 자신에게 대해 불평을 하며 이방인의 손을 떨쳐내려 하고 있을 때, 이방인은 그저 자신의 아래에 깔린 어린 신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번개가 쳤다. 바이저 아래로 암자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아래에 깔린 헤스티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헤스티아를 구속하던 강철의 손아귀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암자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변해, 헤스티아를 향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소녀가 헤스티아를 일으켜 세워,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차가운 빗물, 차게 식은 강철이 헤스티아의 연약한 몸에겐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헤스티아는 군말 없이 이름 모를 이방인의 횡포를 모두 받아주었다.

그저,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이유 모를 친숙감에, 헤스티아도 소녀를 조용히 끌어안을 뿐이었다.


“네가, 이곳의 화방녀였던거야.”


소녀가 중얼거림이, 그제야 똑바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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