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위해 이웃나라의 젊은 왕과 혼인하여 잘 살고 있던 클로에는 어느날, 돌연히 5년 전으로 돌아왔다. 죽음에 이른 것도 아니고, 지난 삶을 후회할 정도로 괴롭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돌아온 첫날, 새벽같이 저를 찾아온 첫사랑 데메트리안. ‘이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으리라고는….’ 소식 한번 나누지 못했던 그를 만나 반갑고 설렜던 것도 잠시. “지금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네 말이면 뭐든 들어주고 싶은데…” 그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그녀에 대한 열기 같은 건 감출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다정하게 말했고, 늘 감격한 듯 안색을 살폈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픈 사람처럼 굴었고… 그러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답지 않게. 설마 그도… 같은 일을 겪은 걸까? 하지만 데메트리안에게는 가문 간의 혼약으로 엮인 정혼자가 있고, 클로에는 2년 뒤 제국을 위해 이웃나라와의 정략혼에 쓰일 유일한 패였다. ‘그래 봤자… 어차피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데.’ 하지만 그의 다정한 눈빛을 보면, 그 온화한 입매를 보면,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면, 클로에는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그들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같은… “나, 비밀이 하나 있어. 나는… 그 왕자와 결혼했었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