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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는데 첫사랑이 수상하다-131화 (131/189)

131화. 마지막 후회 (9)

“이 건을 내가 맡은 것부터가 경시청에서 싫어할 일이고.”

황제의 나팔은 앞으로를 생각해 최대한 아껴 둬야 했다. 폭음을 들었을 테니 경비대가 영문도 모르고 출동하는 중이겠지만…….

“기사단 정예로만 데려왔으니까.”

데메트리안이 기사들을 지켜보는 눈빛을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선두에서는 파이겐이 세 사내를 동시에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의 말에 수긍했지만서도, 클로에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보탬이 돼야 하는데.’

클로에 스스로도, 제가 여기에 남은 것이 무리한 일임을 알았다. 메리앤을 안전하게 도피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미라벨이 징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안전하게 버텨야 했다.

‘폭탄을 던지는 속도가 뜸해졌어.’

올려다보니, 꼭대기 층의 창문 몇 군데만이 열린 채 이따금 폭탄이 한두 개씩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다섯 명인가.’

그나마도 크레벨의 기사들이 깔끔하게 걷어낸지라 그들 주변의 골목만이 탄흔에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일전에 분리 독립파가 썼던 것과 같은 초소형 폭탄이어서 다행이었다.

“건물로 진입하자.”

“뭐라고?”

데메트리안이 놀란 소리를 냈다.

“6층에서 다섯 명이 남은 뒤로는 줄지 않아. 저들은 절대 내려오지 않을 테니까 선수 쳐야 해.”

데메트리안이 흘끗 위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다섯 개의 창문만이 열린 채 이따금 폭탄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크레벨의 기사들은…… 아무리 최정예들이라지만, 죽이면 안 되는 적들이 연기 속에서 끊임없이 덤벼 오니 지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발목을 잡는 게 목표였던 양 검은 두건들은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었다.

파이겐 또한 그들이 이 벽에 붙어섰을 때부터 줄곧 동일한 이들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생포하라고 한 거지?”

“증언이 필요하니까.”

구휼 기금 절도 또한 그들의 소행이며, 그 배후에는 스칸다르의 왕자가 있다는 증언.

그 말을 생략한 채, 데메트리안은 기사들에게 외쳤다.

“돌입하겠다!”

그 소리에 기사들이 검은 두건들을 밀어붙여 건물 입구까지 길을 텄다.

데메트리안은 클로에의 어깨를 감싼 채로 입구로 달렸다. 파이겐은 데메트리안의 품에 안긴 여인의 머리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가씨세요……?”

“그렇게 됐어.”

“그, 누아제트 영애는요?”

“보호할 분이 있어서 잠깐 보냈어. 곧 다시 올 거야.”

파이겐은 적잖이 심란해졌다.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때까지 아가씨를 잘 지켜야겠구먼.

“진을 뺀 다음에 위에서 덮치려는 계획인 것 같아. 실력자가 있겠지. 위를 바로 치는 게 낫겠어.”

“기사들이 힘들어하는데…….”

“죽여도 괜찮다고 전해. 저쪽에 있는 자들이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데메트리안이 처음 클로에와 처리한 이들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파이겐은 제 근처에 있는 기사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재빨리 말을 전하고는 데메트리안에게로 붙었다.

하아앗! 크레벨의 기사들이 기세를 높이는 소리를 뒤로한 채 세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킁킁, 잠시 냄새를 맡은 클로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담배 냄새야.”

“물담배?”

“스칸다르의 여송연을 특정한 약초랑 배합하면 환각제가 돼. 물담배로 피우면 중독되기도 하고.”

“……조심해야겠군.”

데메트리안이 제 소맷자락으로 코를 잠시 누르며 중얼거렸다.

어찌 알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가면 썼으니까 괜찮겠지. 직접 맡는 것도 아니고.’

킁킁, 점차 냄새가 익숙해지는 것을 느끼며 클로에는 소맷자락에서 단도를 빼 들고 주변을 기민하게 살폈다. 1층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세 사람은 곧바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데메트리안이 오른쪽에서 클로에의 어깨를 안고, 왼편은 파이겐이 바싹 붙은 채였다. 좁은 계단을 따라 셋이 한 걸음으로 2층에 다다랐을 때.

“……맙소사.”

계단참에서 문이 열린 안쪽을 바라보니…… 방 안 가득 짐승 우리가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구겨져 들어가 있었다. 훈증기에서 나는 수증기로 방 안이 잔뜩 뿌옜다.

“담뱃잎에 그 약초를 함께 넣고 말아 피우면 쇼크가 일어난댔어.”

“……가관이군.”

데메트리안은 제가 별도로 좇고 있던 스칸다르산 여송연과 최근 보고된 여송연 부작용의 관계를 곱씹었다.

다른 층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사람을 가둬 둔 우리로 가득 찬 가운데 별다른 인적이 없었다. 다만 5층에서는 간헐적으로 신음이 들렸다.

“으으…… 꺼내줘…….”

“흐으어…….”

정신이 들어 발광했다가 얻어맞은 뒤 환각제에 취해 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서, 데메트리안과 파이겐은 클로에의 정수리 너머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위층에 이 무리의 앞잡이들이 있다.

천천히, 발소리를 최대한 죽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클로에도 그들에게 맞춰 걸음을 옮겼다. 건물 밖에서 크레벨의 기사들이 검은 두건들과 싸우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 계단의 끝에서 계단을 옮겨 타기 위해 몸을 돌릴 무렵.

쾅!

6층에서 날아든 폭탄 하나가 재빨리 휘두른 파이겐의 검을 맞고 벽면에서 터졌다. 6층 실내로 이어지는 벽에 쩌저적 실금이 갔다.

검은 두건을 쓴 사내 두 사람이 계단의 위를 막아선 채 폭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리들, 번번이 곤란하게들 구십니다요.”

‘저자들은……!’

클로에가 물담배 바에서 알아보고는 따라온 분리 독립파 일원들이었다.

캉, 캉!

앞을 막아선 파이겐이 그의 대검을 휘둘러 폭탄을 맞받아치며 한 계단 한 계단 전진했다. 계단 옆의 벽면과 바로 아래의 계단, 그리고 사내들 주변이 불규칙적인 폭탄의 습격을 받기 시작했다. 초소형 폭탄이어도 같은 곳에 여러 번 충격이 가니 위협적이었다.

데메트리안은 클로에를 감싸 안고서 파이겐이 계단을 다 오르기를 기다렸다.

“이익……!”

다급해진 분리 독립파들이 한손에 두세 개씩 폭탄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파이겐의 검에 잘못 맞은 폭탄 하나가 클로에의 눈앞에 달려들었다.

“꺅!”

“으억!”

클로에의 눈앞에서 반사광이 번쩍하더니, 분리 독립파 하나가 계단참 아래로 고꾸라졌다. 데메트리안이 걷어낸 폭탄에 정통으로 맞은 거였다.

“윽.”

클로에는 그편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움츠렸다. 데메트리안의 팔뚝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파이겐이 손을 까딱였다. 혼자 남은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클로에와 데메트리안이 곧바로 뒤따를 무렵.

“꺄악.”

후두둑……. 클로에의 발이 미끄러졌을까, 조금 전 밟았던 계단 귀퉁이가 파스스 무너져 내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데메트리안의 프록코트 자락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괜찮아?”

“으, 응.”

데메트리안은 걱정스런 낯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기사 하나에게 맡겨 둘걸 그랬나……. 제 손으로 보호해야 안심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그대로 문을 막아선 파이겐의 뒤에 섰다. 클로에의 시야는 데메트리안의 품과 파이겐의 등짝으로 가득 찼다.

파이겐의 어깨 너머로 방 안을 살핀 데메트리안은 그의 귓가에 읊조렸다.

“옆에서 세 번째. 제일 키 큰 이. 저자가 우두머리야.”

파이겐이 작게 어깨를 끄덕였다.

그때도 파이겐이 호각지세로 싸우다가 상처를 입혔으니, 이번에도 무리 없을 거였다. 데메트리안은 나머지 네 사내를 살폈다.

‘아까 폭탄 던지던 자는 분리 독립파고. 나머지는 어디의 정예 기사라도 되나.’

쥐고 있는 검이 멀리서 봐도 퍽 좋은 것인 데다, 검을 쥔 자세 또한 꽤나 정제돼 있었다.

‘확실히 제국식은 아닌데.’

스칸다르식 검술 초식이 어찌 되는지 몰라 단언할 수 없지만, 분리 독립파와 함께인 만큼 스칸다르의 기사일 확률이 높았다.

‘다들 머리칼을 숨기느라 두건을 쓴 거고.’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 때, 파이겐이 기합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에게 대번에 달려들었다.

“흐아앗!”

그걸 본 나머지 네 사내가 데메트리안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을 한 번에 제압하는 건 무리라도, 파이겐이 우두머리를 제압할 때까지 버티는 정도는 가능했다.

‘로이도 제 몸 지킬 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그녀에게 어떤 활약을 바란다는 것이 민망했지만, 그건 한편으로 클로에를 믿을 수 있어서였다.

데메트리안은 곧바로 그녀를 제 등과 벽 사이에 밀어 넣고는 네 사내를 향해 검을 들었다. 클로에도 재빨리 소맷자락에 넣어 두었던 단도를 빼 들었다.

채챙!

스칸다르의 기사로 추정되는 검은 두건들의 칼을 받아내기 위해 데메트리안이 걸음을 내뻗자, 클로에의 시야가 트였다.

넓은 방 안. 파이겐이 제일 안쪽에 있는 기사와 매섭게 검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을 방어하는 데메트리안.

클로에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데메트리안이 왼쪽으로 걸음을 내디뎠을 때, 클로에는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윽!”

오른쪽에 있던 기사의 무릎 위쪽에 단도가 박혔다. 그녀에게 전투력이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그가 비틀대며 눈을 부라렸다.

그때, 분리 독립파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클로에는 직감적으로 몸을 피했다.

쾅!

폭탄이 그녀가 등지고 있던 뒤편의 벽에서 터졌다. 회벽의 파편이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그 반대편이 아까 계단과 맞닿은 곳인지 실금이 무시무시하게 났다.

“로이!”

“괜찮아!”

나서지 말란 소리였는데. 데메트리안은 이를 악물며 기사 하나를 세게 떠밀었다. 파이겐은 여전히 그 우두머리와 호각지세로 싸우고 있었다. 하나씩 빨리 처리해야…….

“어딜 감히!”

클로에의 단도에 허벅지를 맞은 기사가 허벅지에서 신경질적으로 단도를 뽑아 내팽개쳤다. 그가 클로에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무렵.

‘아가씨의 호신술은 원래 원거리에 특화된 걸 기억하셔야 해요!’

클로에는 갑작스레 달려든 스승의 목소리를 돌이키며, 재빨리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확보한 뒤 그에게 다시금 단도를 날렸다.

“흥!”

기사가 제 얼굴 쪽으로 날아든 단도를 가뿐히 쳐내고, 클로에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을 때.

“크헉!”

급히 몸을 돌린 데메트리안이 그의 등을 내리그었다.

털썩. 기사가 쓰러지며 벽에 처박혔다. 그의 손에서 검이 굴러떨어졌다.

‘이제 다섯 개.’

소매에 있던 것을 다 썼다. 혁대에 달린 단도를 빼 들자. 분리 독립파가 재빨리 팔을 휘둘렀다.

쾅!

다시금 폭탄이 터졌다. 클로에는 벽에 처박힌 기사를 뛰어넘어 폭탄을 피한 뒤 그에게 단도를 날렸다.

탁, 탁.

클로에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분리 독립파는 가뿐히 뒤로 물러서 그것을 피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폭탄을 던졌다.

콰쾅!

클로에는 펄쩍 뛰어서 피했지만, 쓰러져 있던 기사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몸 위로 벽의 잔해가 떨어져 내렸다.

‘분명 숨이 붙어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새 데메트리안은 두 기사 중 하나를 베고서 다른 하나를 해치우는 중이었다.

‘데미가 거의 다 하겠지만…….’

클로에는 제 허벅지의 검대를 손으로 훑었다. 단도 반을 잃었다.

‘신중해야 해.’

그때, 다시금 분리 독립파가 그녀 쪽으로 폭탄을 던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클로에는 재빨리 단도를 날리고 도망쳤다. 그가 피하는 바람에 목을 향해 날린 것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쾅! 콰쾅!

“로이!”

오기가 생긴 분리 독립파는 연신 폭탄을 던졌지만, 클로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해 데메트리안의 뒤로 숨어들었다.

폭탄이 모두 뒤편의 벽에 처박혔다. 후두둑, 금이 간 벽면에서 회벽 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떨어지지 말고 있어.”

이제 둘뿐이니 여유로웠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데메트리안의 팔 아래로 파이겐을 보았다.

용호상박하고 있는 그 상대가 이편에 시선을 던진 순간 클로에는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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