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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는데 첫사랑이 수상하다-130화 (130/189)

130화. 마지막 후회 (8)

쾅!

크레벨의 기사들이 건물의 외벽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며 폭음이 났다.

그걸로 부족할 걸 알았던 양, 크레벨의 기사들은 주저 않고 다시금 폭탄을 설치했다. 높은 쪽에 달린 쪽창에 폭탄 여러 개를 설치하는 것이 보였다.

심지에 불을 붙인 그들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우웅.

클로에의 손가방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평소에 미라벨이 대신 들고 다니는 것을, 그녀가 메리앤에 경매에서 낙찰받은 물품까지 챙긴 터라 손가방만은 제가 든 차였다.

‘맞다, 라구 경!’

클로에는 허겁지겁 손가방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영애님, 출발하셨나요? 언제쯤 닿으실까요? 마법을 얼마나 지속해야 할지 가늠하고 싶어서요.]

다소 지친 기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잊고 있었네.’

클로에는 허겁지겁 버튼을 누르고 통신구에 입을 바싹 갖다 대었다.

“경, 가고 있네. 지금 마차 타러 가는 중이니 15분 안에…… 꺅!”

쾅!

라구에게 연락하는 데 정신이 빠져 있던 클로에가 비명을 질렀다. 덩달아 통신구를 놓쳐,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기 위해 주변을 살필 때였다.

‘……로이?’

기사들의 폭파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데메트리안은 귀를 의심했다. 너무도 잘 아는 목소리가 내려앉았으니까.

폭음에 섞인 비명. 일순간 그는 제가 기어코 돌아 버려 환청을 듣는 건가 생각했지만.

“저기 사람이 있는데요?”

이 근방은 대부분 상점이라 이 시간에 행인이 없을 텐데……?

파이겐의 말소리에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데메트리안은, 즉시 그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로이!”

늘 풀고 다니던 머리칼을 서민들처럼 하나로 땋아 내렸지만,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서민풍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데메트리안은 체격과 허둥대는 모양새에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데, 데미?”

클로에는 제가 가면을 쓰고 있던 것도 잊고 데메트리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한편으로는 마침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데 네가 왜 있어?”

“분리 독립파가 환각제를 유통하려나 봐!”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데메트리안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 같은 가면을 쓴 미라벨이 저 멀리 서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위다! 조심해!”

펑! 퍼펑! 펑!

건물을 둘러싼 거리에 폭탄들이 떨어졌다. 분리 독립파가 테러 때 쓰려고 만든 것과 같은 크기의 초소형 마정석 폭탄이었다.

데메트리안은 망설임 없이 주저앉은 클로에를 감싸 안았다. 건물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라 사정 범위 바깥이었지만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괜찮아?”

연막탄이었는지 건물 주변이 뿌옜다. 건물 바로 앞에서 금속의 반사광이 번쩍대는 것이, 크레벨의 기사들이 떨어지는 연막탄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클로에의 정수리 위에서 데메트리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왜 이런 데 있어?”

“분리 독립파를 봤어.”

“이 건물로 들어갔다고?”

“그들을 쫓아 온 게 아냐?”

“인신매매범이야.”

데메트리안과 클로에는 다급하게 저들의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 말에는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었지만, 이즈음의 일을 기억하는 클로에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크레벨령에서부터 일어난 인신매매 범죄를 이때쯤에 데미가 쫓았었지.’

그것이 제도 내 무연고자 대량 실종 미스터리로 끝나고 만 탓에 황실 지지율이 얼마간 떨어졌더랬다. 제도의 총괄인 아버지 궁정백이 고단했던 것도 두말할 것 없었고.

클로에와 데메트리안은 각자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기 누아제트 영애가 있으니까, 빨리 데리고 도망치라고 해야겠지.’

‘분리 독립파가 인신매매까지 벌였다니……. 수연통을 증거품으로 챙기라고 말해 두고 빨리 떠야겠지.’

그렇게 두 사람이 동일한 판단을 내렸을 때였다.

“데미, 있지.”

“로이.”

으아아아아아! 한 무리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소리가 난 편을 쳐다보았다. 크레벨의 기사들이 쏟아지는 연막탄을 쳐내느라 애먹는 사이, 어느새 1층에 내려와 있던 인신매매단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클로에와 데메트리안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펑! 퍼펑!

갑작스레 달려든 폭음과 함께 사위가 뿌예지더니, 두 사람의 앞뒤로도 검은 두건들이 인영이 나타났다. 건물 위에서 이편의 형세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야……!’

골목 끝의 미라벨은 클로에가 있는 편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검은 두건의 뒷모습을 보며 초조해졌다. 클로에 쪽은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제가 실력을 발휘하자면 손이 비어야 하는데, 손을 비우자니 메리앤이 위험해진다.

‘안쪽 골목에 잠시 내려 두고 재빨리 해치울까?’

그러다가 전투가 길어지기라도 한다면? 이미 이쪽이 발각되었다면 공녀님을 노리는 이도 있을 텐데?

미라벨은 안절부절못하고 발만 동동거렸다.

클로에는 클로에대로 퇴로를 파악할 수 없어 초조해진 차였다. 클로에는 제 팔과 허벅지를 더듬어 단도들이 제대로 자리한 걸 확인했다.

‘……저번에도 한 사람 몫은 했다고 유모가 칭찬했으니까.’

그 단도들의 존재가, 이렇게 사람을 무모하게도 만들었다.

“데메트리안 크레벨.”

클로에의 손이 저도 모르게 데메트리안의 옷깃을 쥐었다. 그녀를 반쯤 감싸 안은 채 검을 뽑아 들고 있던 데메트리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미아를 라구 경에게 돌려다 놔야 해. 그 방에 친위대 기사들이 있거든. 라비가 다녀오자면 30분 걸릴 거야.”

데메트리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뒤에 업혀 있던 게 캔달우드의 공녀였나.

챙, 채챙, 챙!

그가 고민하는 와중에 건물 앞에서는 기사단과 인신매매단이 분전하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앞뒤로 선 검은 두건들이 조금씩 간격을 좁혔다.

데메트리안은 초조해졌다. 둘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클로에를 지키자면…….

그의 잇새에서 빠드득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30분이면 돼.”

“로이.”

“그동안만 나 지켜.”

데메트리안은 순식간에 머리를 굴려 몇 가지 상황을 가정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연무 속에서 그녀와 메리앤 모두를 확실히 안전하게 도망치게 할 방법이 없었다.

데메트리안은 자해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부대로.”

한숨과도 같은 말에는 굳은 다짐이 서렸다.

클로에는 작게 심호흡하고는, 재빨리 소매를 스쳐 허공에 손을 그었다.

“으억!”

쐐액 날아간 단도가 미라벨을 등지고 칼을 겨누고 있던 자의 허벅다리에 꽂혔다. 미라벨이 놀란 소리를 냈다.

“로이! 그러지 말고……”

클로에는 사내가 비틀거리는 사이, 재빨리 손가방에 통신구를 넣어 던졌다. 강도가 높아진 남작부인의 수업 덕에 이번에도 미라벨의 손에 명중이었다.

“라구 경에게 15분 안에 간다고 했어!”

“안 돼, 로이!”

“크레벨 소공작이 책임지기로 했어!”

“……로이!”

미라벨이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가면에 가려 보이지 그 낯을 볼 수는 없었지만, 연기에 가려서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도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 단호한 기색이 배어 있는 것을 미라벨은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허벅지에 박힌 단도에 비틀대던 사내가 미라벨 쪽에 시선을 던졌다. 저까지 크레벨의 기사단과 한 편인 걸 들켜 버렸고 제 등에는…….

“이런, 씨이×…….”

클로에의 단도에 당한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클로에 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발만 동동거리던 미라벨은 끝끝내,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고민하는 시간도 아껴야 한다.

“공자님! 제대로 지켜야 해요!”

미라벨은 메리앤을 한 번 더 추어올리고, 재빨리 저들이 나왔던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발걸음 소리 들킬까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클로에에게 걸음 맞추지 않아도 되니 내딛는 걸음이 쾌속이었다. 축 늘어졌어도 최고의 신부감으로 관리받아 온 메리앤의 무게 정돈 버겁지 않았다.

“히야앗!”

절뚝거리며 쇄도해 오는 검격을, 데메트리안은 클로에를 감싸 안은 채 반 바퀴 돌아 가뿐히 막았다. 클로에의 정면으로는 반대편의 사내가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데메트리안이 재빨리 그편을 확인했지만, 클로에의 손짓이 더 빨랐다.

‘제도에서 마주하실 이들이 전신 갑주는 아니라도 가죽 갑옷은 다들 받쳐 입고 있을 테니, 아가씨께서 노릴 곳은 허벅지, 그리고 목이에요.’

“으억!”

쐑, 클로에의 손이 한번 허공을 날자, 단검이 그의 턱 밑에 가서 박혔다. 급소는 피했으나 놀란 사내는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아…….’

내색하지 못했지만 클로에는 속절없이 떨렸다. 지금껏 사람을 상대로 단도를 날려 봤어야 다리가 다였는데, 목에 가서 박히다니.

남작부인의 수업 때 허수아비를 놓고 백번 연습했지만 이건 너무도 다른 일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편을 확인한 데메트리안은 지체 않고 절뚝이던 사내의 팔을 그었다. 데메트리안은 전투 불능이 된 사내의 칼을 발로 차 멀리 날리고, 단도를 재빨리 빼내 닦은 뒤 클로에에게 돌려줬다.

데메트리안은 클로에에게 목을 맞은 사내 역시 검을 못 쥐게 만든 뒤 그에게 박혔던 단도도 회수해 왔다.

‘여기에 허리띠에 두 개, 다리에 세 개 더.’

도합 일곱 번의 기회가 있다.

클로에가 그리 셈하며 치맛자락을 세로로 부욱 찢었다. 치마 아래 하얀 타이즈 위로 단도들이 수납된 검대가 드러났다.

그걸 본 데메트리안이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뭐, 뭐 하는 거야?”

“이따 꺼내기 쉬우려면.”

“너는, 무슨…….”

긴박한 상황도 잊고 데메트리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타이즈 처음 보나? 하긴, 여자 형제가 없으니.

그가 당황한 이유를 짐작도 못하는 클로에가 여상하게 제 무기들을 갈무리할 때였다.

“이야아!”

기세 좋게 또 다른 검은 두건 사내가 연기를 헤치고 달려들었다. 클로에가 놀랄 새도 없이, 데메트리안이 언제 얼굴 빨개졌었냐는 듯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는 대번에 그를 제압했다.

그때였다.

쾅! 쾅! 콰쾅!

멈췄나 싶었던 폭탄 세례가 다시 시작되었다. 6층짜리 건물의 상층부 창문 여기저기서 검은 두건들이 폭탄을 던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연막탄이 아니라, 진짜 폭탄이었다.

콰앙!

“꺄악!”

그들이 등지고 있던 건물의 외벽이 부서져 내렸다. 아까의 무차별 폭격과 달리 조준 폭격인 모양이었다.

“로이! 움직이자!”

데메트리안이 손을 뻗자 클로에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클로에의 어깨를 감싸 안은 그는 재빨리 뛰어 기사들 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을 방패막 삼을 수 있으니 안전하리란 판단이었다.

검은 두건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는 기사들 뒤로 들어가 맞은편 건물의 외벽에 바싹 붙었다.

‘그땐 다 빼돌린 뒤니 도망치고 말았지만, 아직 납치한 이들이 이 건물에 있으니 죽자고 덤비는 모양이군.’

역시 클로에를 보냈어야 했나. 작은 후회가 일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생각보다 인원이 많은데.’

크레벨의 기사들이 여덟, 파이겐까지 아홉. 증인 확보를 위해 생포하라 한 덕인지 기사들은 연기 속에서 고전하는 모양새였다.

이미 이렇게 된바, 얼른 상황을 마무리하는 편이 나았다.

그때, 클로에가 그의 팔 밑에서 재빠르게 속삭였다.

“원래는 놓쳤었지?”

“그땐 사흘 뒤였어. 그저께 여기 들어왔다고 연락을 받아서 온 거야.”

클로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음의 데메트리안은 늘 무슨 일인가로 바빴기에, 휴가철이 올 때까지 만나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구휼 기금 건이건, 이 인신매매범 추적 건이건 간에 그를 바쁘게 했던 일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었고…….

“경시청에 지원 요청해야 하는 거 아냐? 수가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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