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마지막 후회 (6)
「짐꾼 모집
키 6루벳 이상. 비만자나 저체중자 사절. 흡연자만.
숙식 제공. 15골드. 선금 지급 가능.」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제가 고향에서 고티유까지 오는 상행과 계약한 금액이 한 달 여정에 2골드였으니 말이다.
‘길어 봐야 석 달은 안 걸리겠지.’
계약 조건이 좋은 만큼 의심해 볼 법도 했지만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선금을 5골드쯤 받아서 상행 출발할 때까지 도박장에서 한바탕하고, 잃으면 잃는 대로 나머지 10골드를 받아 귀향하면 그도 나쁘지 않은 계산이었다.
“다음!”
그의 상념을 깨듯 상단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외쳤다. 릭은 저와 같이 서 있던 두 사내와 그쪽으로 향했다. 상단의 유니폼인 듯한 검은 두건을 쓴 직원들이 지원자가 도착할 때마다 체격 조건에 부합하는지 눈대중으로 거른 뒤 셋씩 묶어 놓은 차였다.
“안으로.”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두건을 쓴 문 앞의 직원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것이 조금 불쾌하게도 느껴졌지만, 벽보에 붙어 있던 수당을 생각하며 그들은 고분고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릭 옆으로는 주먹깨나 썼을 듯이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 하나, 머리가 거의 다 벗겨진 중년인 하나가 함께했다.
‘저 아저씨보단 내가 나을 테고, 이 사내는…… 왜 짐꾼에 지원하는 거지?’
뭐, 나름의 사연이 있을 터였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 외양으로 짐작하건대 꽤나 사정이 군색하거나 연고 하나 없어 보일 만한 이들이었으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였고.
방 안에는 기다란 소파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나무 의자가 하나, 면접관인 듯한 상단 직원 다섯은 맞은편 벽 쪽에 아무렇게나 기대서 있었다.
다갈색 머리의 여성 하나를 제하면 모두가 바깥의 직원들처럼 검은 두건을 쓴 채였다.
탁. 둔중한 마찰음이 나며 문이 닫혔다.
“어서 오시게들.”
“편히 앉으시게.”
릭과 사내들은 의아한 마음에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지금껏 일용직 일을 하면서 면접을 본 적도 없거니와, 혹여 그렇더라도 고용주들은 늘 앉아 계시는 것 아니었는가.
그들이 당황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자니, 면접관 중 한가운데의 가장 키 큰 사내가 고개를 까닥여 자리를 권했다. 그가 우두머리인 듯했다.
“어서.”
릭과 사내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지만, 순순히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이들이 주겠다는 높은 금액의 수당이 상전이었다.
‘소파가 뭐 이렇게 푹신해? 침대도 아니고…….’
그것이 허리를 곧추세우기 힘들 정도여서, 면접자의 자세에는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반쯤 누운 상태로 면접관들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그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셔츠 밑으로 드러난 몸매가 탄탄해 보이는 것이, 필시 무예를 수련한 자였다.
“긴장되지들?”
“예, 예에…….”
“뭐, 그렇죠.”
다짜고짜 묻는 말에, 사내들은 떨떠름한 낯으로 수긍했다.
저들이 상상한 것과는 뭔가 달랐다. 면접이라 봐야 나이 묻고 힘 잘 쓰는지 확인하고 다른 데서 비슷한 일을 해 본 적 있는지 묻고 그 정도였는데…….
제대로 된 곳 맞나?
사내들이 눈동자를 굴릴 때였다.
“여송연, 들어들 봤나?”
그 말에 릭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고티유에 체류하는 동안 그 유행이 시작됐는데, 그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언감생심이었던 것이었다.
처음엔 귀족 나리들 중심으로 유행했다지만 이제는 평민도 돈만 좀 쓰면 누구나 해 보는 것이었는데.
다른 두 사내 또한 릭과 비슷한 사정이었던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에, 들어 보기야…….”
“네, 들어 봤습죠.”
“어떻게 생긴 건지 보긴 했는데.”
뒤에 서 있던 직원 하나가 나무 함 하나를 우두머리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투박하게 만들어진 여송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가 태우던 것을 잘랐는지, 꽁지가 깨끗하게 잘려 있었다.
“우리 상단에서 유통하는 걸세. 자네들이 운반할 것들이지. 긴장도 풀 겸, 한 대씩들 해 보지 않겠나?”
우두머리는 그 함에서 여송연을 하나씩 사내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느 지방인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말씨였는데, 와중에 쓰는 단어가 고급스러운 것이 이런 데서 굴러먹을 평민 같지는 않았다.
귀족은 아니어도, 대대로 내려온 대상인 가문쯤은 되는 걸까…….
“평민들에게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지.”
사내들은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여송연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안이 뿌연 것이, 먼지가 아니라 담배 연기였나 보네.’
도박으로 돈을 죄 잃어 다른 이들이 태우던 담배를 간신히 얻어 피운 것도 벌써 몇 주였다.
‘이래서 모집 공고에 흡연자라는 조항이 있었구먼.’
릭을 비롯한 세 사내 모두 벌써 이 일에 고용되기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다.
사내들이 하나씩 입에 물자, 딱, 딱, 딱, 손가락이 마찰하는 소리가 나더니 여송연 끄트머리에 불이 붙었다.
마, 마법……? 사내들이 흠칫 놀랐다.
그 반응에 생긋 웃어 보이는 건 저 뒤편의 갈색 머리 여성이었다. 그녀가 마법사일까. 그녀의 고혹적인 미소에 다들 얼이 빠져 버렸다.
“잘 듣고 답하게.”
우두머리가 소파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상체를 숙인 그의 눈높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내들과 맞닿았다.
“……어때, 여송연 맛이 좀 각별한가?”
우두머리 사내가 상체를 기울여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급 문물을 처음으로 접한 사내들이 폐부 깊은 곳에까지 연기를 넣으려는 듯 볼이 오목해질 정도로 빨아들였다.
이것이 면접의 일부라고 생각한 릭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싸구려 연초랑은 확실히 다릅니다요.”
“연기가 깔끔한 느낌이랄까……?”
“뒷맛이 개운하구먼요.”
그리 생각한 게 그뿐만은 아니어서 다들 앞다투어 이런저런 말을 주워섬겼다. 기실 그들은 이렇다 할 다른 점을 찾지 못했지만, 이 일을 따내고 싶은 나머지 듣기 좋은 소리를 대충 지껄인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중년의 사내가 고심하듯 연기를 한 번 더 빨아들였을 때였다.
“윽끅.”
그의 동공이 커지는가 싶더니,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갑작스레 풀썩 늘어졌다. 마치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
릭과 다른 사내는 깜짝 놀라 그편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여송연이 그 옷자락 위로 떨어지려던 찰나. 여송연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법사의 솜씨인 듯했다.
“아, 아니…….”
“자네들은?”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가 지그시 바라보며 물으니, 더 이상 중년인 쪽에 눈을 둘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그 무언의 강요에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금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을 때.
“으음, 제가 생각하기에는……”
툭. 무언가를 말하려던 릭의 옆자리 사내 또한 축 늘어지고 말았다.
릭은 놀란 얼굴로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릭의 양옆에서 일어난 일이란 모르는 사람처럼 지그시 릭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 저, 저는……”
이 상황이 두려웠을까.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하더니 숨이 좀 막히는 듯도……
“흡, 끅…….”
이내 시야가 껌껌해졌다.
풀썩. 릭의 손 또한 축 늘어지고 말았다.
“……들리는가?”
우두머리가 몸을 일으켜, 사내들의 눈앞에 손을 휘저어 보았다. 모두 동공이 풀린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정신을 놓고 소파에 파묻히게 된 세 사내.
우두머리가 고개를 까딱이자, 상단 직원들이 사내들을 하나씩 옮겨 밖으로 나갔다. 그 방의 뒤편에 난 쪽문을 통해서였다.
뒤이어 마법사가 그들을 따라 나갔다. 우두머리는 사내들이 물었던 여송연의 불탄 끄트머리를 잘라내 나무함에 다시 넣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직원들과 마법사가 돌아왔다.
그 이후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키가 엇비슷한 면접자 셋이 방으로 들어왔고, 소파에 앉으면 여송연을 하나씩 받게 되었고, 그것을 얼마간 태우고 나면 다들 기절해 버렸으며, 직원들과 마법사가 그들을 뒷문으로 실어 날랐다.
그 일이 얼마쯤 반복되었을 때.
“이들이 마지막입니다.”
“그래.”
밖에서 관리하던 이가 사내 둘을 들여보내며 그리 말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여송연을 핀 뒤 기절하여 바깥으로 이송되었다.
한참 뒤, 마법사가 방으로 들어오며 발랄한 목소리를 냈다.
“다 마쳤어.”
“확실히 했겠지?”
낮게 읊조리는 우두머리의 말에, 마법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이 분야에는 일인자인걸.”
아무도 쓰지 않는 마법이니까. 스스로도 재밌는 농담을 했다는 듯 키득대던 그녀는, 우두머리의 뒤에서 그의 허리를 슬며시 감싸며 은근하게 말했다.
“하루는 못 깨어날 거야. 깨어나더라도 여기서의 일은 하나도 기억 못할 거고. 경의 주군께 내 말이나 잘해 줘.”
“그래. 내일 저녁에 여기서 보지.”
“그래, 풀벌레 경.”
“…….”
불쾌하다는 듯한 우두머리의 표정에, 마법사는 미소를 지으며 두건 쓴 그의 머리를 헤집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신형이 사라진 공간에는 검은 두건을 쓴 이들만 남았다.
“……후우.”
우두머리는 한숨과 함께 제 머리통을 긁어내리듯이 쓸었다. 그 손끝에 걸린 두건이 머리칼에서 벗겨져 나왔다.
“총 몇이지?”
“스물둘입니다.”
“그러면……”
“총 일흔여섯입니다.”
“얼추 맞군. 가 보지.”
우두머리가 방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계단참의 창을 통해 스며들어오는 달빛에 그의 연두빛 머리칼이 어스름히 빛났다.
그들이 향한 곳은 건물의 2층이었다. 공간이 하나로 트인 그곳에는 사람 지나갈 통로만 남기고 양옆으로 짐승 우리가 빼곡했다.
오늘 ‘면접’을 보러 온 이들이 우리 하나에 셋씩 들어차 있었다. 릭 또한 함께 면접을 본 사내 둘과 한 우리에 늘어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래층에 있던 직원들이 간수처럼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우두머리는 통로를 따라 우리를 하나하나 흔들며 잠금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했다.
“……좋아.”
그가 제 수하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렸을 때였다.
“풀어 줘!”
위층에서 어렴풋한 외침이 들려왔다. 창살을 흔들어 대는지 덜컹대는 소리도 계단참을 통해 울렸다.
“……처리해.”
“네, 경.”
짜증 섞인 우두머리의 말소리에 그를 따르고 있던 검은 두건 중 셋이 재빨리 계단참으로 빠져나갔다. 얼마 뒤 그편으로부터 비명이 울렸다.
“마법사더러 한 번 더 보라고 할 걸 그랬나요?”
“……마력이 부족하다는걸. 훈증기 꺼지지 않게 잘 살피고.”
“예. 물려 놓을 수연통도 지금 가져오는 중입니다.”
“좋아.”
그는 제 주군의 명에 따라 제국인을 납치해 들였다.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자행하기 위해 제도와 맞닿아 있는 크레벨령과 몬타령, 레이카령 등지에서 다섯, 열씩 납치하던 것을 제도에 이르러 그 양을 대폭 늘렸다.
단순한 인신매매로 보이게 하기 위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노예들을 사들였다가 어딘가에 되팔기도 했다.
노예들이야 반항할 기미도 없으니 대충 가둬 놓으면 그만이었는데, 하여간 제국인들이 문제였다.
“며칠 안 남았으니까, 그동안 잘 지키세.”
“예, 경.”
그리 말한 우두머리가 제 손에 쥐여 있던 두건을 다시 머리에 쓰려 할 때였다.
쾅!
커다란 굉음이 나며 건물이 뒤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