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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는데 첫사랑이 수상하다-78화 (78/189)

78화. 모르는 만큼 수상하게 보인다 (13)

“어머, 이게 담비 털로 만든 거라고요?”

라크루아 모녀의 예약 방문을 받은 안드레아 의상실. 제도 총괄 가문의 모녀를 접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던 원장과 수석 디자이너는 클로에가 내놓은 머리 장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빛깔이 다 이래요?”

“모피 같은데, 신기하네.”

앤지네에서 확인했던 견본에, 자수정이 있던 자리에 마법을 부여한 앰버를 단 것이었다. 마력식을 새긴 소켓에 끼운 채로 달아야 했던 만큼 이를 가리기 위해서 그 주변에 자잘하게 달았던 금속 장식이 훨씬 더 화려해져 있었다. 그 위로는 은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담비의 털까지.

생전 처음 보는 모양새의 액세서리에 수십 년 경력의 디자이너들이 놀란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앤지네 솜씨가 좋은 걸 알고야 있었는데, 이런 실험작을 만들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60대의 원장이 클로에를 향해 부드럽게 시선을 던졌다.

평생을 안드레아에서 일했고, 어린 클로에가 드레스를 지으러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에는 라크루아의 모녀를 담당하는 수석 디자이너였던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십여 년간 클로에의 안목과 취향이 자라나는 여정을 곁에서 지켜본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애님께서 이걸 쓰시겠다고요?”

“음……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앤지네와 같이 이걸 개발했어.”

“영애님께서요?”

클로에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웃어 보였다.

원장의 이마에 그녀의 놀람을 표현하는 주름이 잡혔다. 안드레아의 명성 때문에 고티유 사교계의 영애들은 어떻게든 안드레아의 드레스를 한 벌이라도 입어 보기를 원했으며, 그 덕에 원장은 클로에 또래의 영애들을 자주 봤지만…… 그중에서 클로에는 단연코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섯 공작가에 그 또래의 영애가 없는 덕에 클로에는 준황녀인 캔달우드의 공녀 메리앤 다음 가는 신붓감으로 꼽혔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았지만…… 그 관심을 북돋는답시고 제 외양을 특별하게 가꾸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식의 인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양, 제 강점은 화려한 꾸밈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양.

그래서 클로에의 선택은 늘 안전한 것들이었다. 지금 이 시기의 유행에 맞춰, 굳이 남들의 눈에 띌 것 없는 디자인.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다이애나 앨포드, 사교계에서 가장 큰손으로 꼽히는 룩소르 후작가의 엘레니아 같은 영애들은 조금이라도 유행을 선도하기 위해 과감하거나 취향을 잔뜩 넣은 선택을 했지만, 라크루아의 아가씨에게는 그런 호승심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늘 안전한 선택을 해 주니 판매하는 입장에서 까다롭지 않아 고맙기는 했지만……

‘저 또래에는 그때만의 즐거움이 있는데 말야.’

그것이 바르고 다정하여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그녀의 성품이기야 했겠으나, 아이 때부터 봐 온 인연으로 늘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는데.

“영애님께서도 이제 사교계의 꽃 자리를 노리시는 건가요? 앨포드 후작 영애가 긴장해야겠는데요.”

“으응, 그런 것까진 아니고. 이 모피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너무 신비롭더라고. 스칸다르산 담비 털이래.”

“어머, 정말요? 지금껏 스칸다르산이라고 해 봐야 자수 제품이 다인 줄 알았는데……”

역시 스칸다르가 폐쇄적인 나라인 게 도움이 되었다. 모든 걸 제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셈이 되니 말이다. 수십 년 경력의 원장과 수석 디자이너의 눈에 초롱초롱한 호기심이 감도는 것에, 클로에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앤지네가 발견했다는 것보다는 내 이름을 보태는 게 입소문에 더 효과적일 테고, 또 안드레아에서 좋게 봐 주면 앞으로도 다른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이젠 숨기면 안 되지. 어머니께 공개도 했고.’

“이 앰버는…… 혹시?”

“응, 내 수호 사도가 베람이어서.”

클로에가 또박또박 힘주어 울리는 목소리에, 원장과 수석 디자이너는 클로에가 원하는 바를 알았다. 그녀들의 태도가 자못 달라진 기색에, 이를 지켜보던 궁정백부인이 속으로 웃음지었다.

“머리 장식에 포인트를 주셨으니, 드레스는 장식이 조금 간소한 것으로 가야겠네요.”

“응, 슬슬 레이스 소매 장식 유행도 갈 때가 된 것 같고 말야.”

안드레아의 두 디자이너들이 다시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패션에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을 시즌을 준비하는 고티유의 일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소매 프릴을 없앤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제로 클로에가 아는 미래에는 몇 년 안에 끝자락에 프릴도 레이스도 달지 않는 퍼프 소매가 유행할 예정이니까. 거기까지 말한 클로에는, 고개를 돌려 문간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라이언에게 손짓해 보였다.

“그렇지, 라이언?”

“네? 네, 네.”

라이언은 아주 황송한 낯을 지어 보였다. 클로에의 지령으로 가끔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기야 했었지만, 2층에 자리한 개별 응접실에 와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는 그가 안드레아의 직원이 되지 않는 이상 평생 없을 일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거리 앙헬라타 대로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의상실. 안드레아의 모든 것을 감복한 낯으로 눈에 담고 있던 라이언은, 클로에의 부름에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제 주인님께서 주시는 기회임을 기꺼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이번에 앤지네랑 일하면서 알게 된 소년이야. 아티장 지구 플로리안 거리에 있는 정장집 아들인데 여성복에 관심이 많다고 추천받았어. 라이언, 네 아이디어 읊어 봐.”

“네!”

라이언은 그리고 이 기회를 절대 날려버리지 않겠다는 양 눈을 반짝였다. 클로에의 아이디어에 대해 듣기야 했지만 딱히 와닿는 것은 아니었던 원장과 수석 디자이너는 혼란스러운 낯으로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플로리안 거리의 정장집이 정말 오랜 전통의 가게이긴 했지만……

“머리 장식에 부피감이 있으니 드레스는 상대적으로 부피감이 약한 것으로 가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크리놀린 대신 패티코트를 넣어서 덜 부풀리거나, 엉덩이만 강조하는 버슬을 써도 좋고요. 아예 보형물을 넣지 않고 머메이드 형식으로 흐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프릴처럼 본체에 천을 덧대는 것으로 드레스의 포인트를 만들 게 아니라 아예 천 자체를 광택이나 질감이 도드라지는 거로 써서 고급스러운 바탕을 까는 거죠. 아무래도 머리 장식이 비율상 과감한 면이 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라이언은, 말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모양새인지 그동안 제가 흘끔대고 있던 안드레아의 드레스 견본들 쪽으로 다가가서 숫제 하나하나 다 짚으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여기, 이 드레스처럼 커다란 자수를 치맛자락에 넣는 것도 좋겠고요, 여름 드레스니까 청량감을 주기 위해 여기에 다신 것처럼 비즈를 달아도 예쁘겠고요. 그리고……”

클로에 본인이 직접 앤지네와 새로운 양식의 디자인을 개발했다는 것부터도 신기했는데, 소년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아이디어에 안드레아의 두 디자이너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가씨, 정말 사교계의 꽃 자리를 넘보시는 거예요?”

“꽃은 무슨. 그냥 마음에 드는 머리 장식을 하고 가고 싶을 뿐이야.”

그게 꼭 예뻐야 할 필요도 없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원장의 물음에, 클로에는 진실이 적당히 담긴 말로 둘러대었다. 그런 클로에의 뇌리에 언젠가 들었던 루시엔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사교계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이 꽃만이던가요? 꽃이란 말도 우습지만.’

라이언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구상을 시작한 수석 디자이너는 조금 즐거운 낯이 되어 클로에를 불렀다. 웬 길쭉한 사내아이가 갑작스레 의견을 내기 시작하는 것에 떨떠름했던 것도 잠시, 그가 하는 말에 나름의 일리가 있어 영감이 샘솟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영애님, 그러면 여기 쓰인 이 천은 어떠세요? 이번에 남대륙에서 들여온 실크인데요.”

“아, 색감이 청량하네.”

“주인님 머리 색하고도 잘 어울리겠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이런 비즈 장식이 새로 들어왔어요.”

세 사람이 한데 모여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안드레아의 원장이 넌지시 궁정백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시겠어요?”

원장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대번에 알아차린 궁정백부인은 삐뚜름한 미소를 입에 걸어 보였다.

“……어미 마음에는 더 욕심 부렸으면 좋겠는데 말일세.”

“부인 마음에 차려면 아마 영애님께서 세 번은 다시 태어나셔야 할 거예요. 저 평민 아이도 눈썰미가 좋네요. 영애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건지.”

“우리 로이가 의욕을 안 내서 그렇지, 한다면 제대로 하는 애 아니겠나. 그 고지식함 어디 안 가지.”

원장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바르고 곱게만 자라온 아가씨가 뭔가 의욕을 내는 것은, 할머니뻘의 그녀 눈에도 흐뭇해 보였던 것이다.

안드레아에서의 일정을 마친 라이언이 클로에와 미라벨을 안내한 곳은 마법사 길드로부터 더 안쪽에 위치한 5층짜리 벽돌 건물이었다. 안드레아의 예약 시간이 끝나갈 때쯤에야 미라벨이 어슬렁어슬렁 왔고, 군말 없이 수석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드레스를 가봉하고 나서였다. 미라벨이 타고 온 마차는 궁정백부인을 싣고 돌아갔기에, 세 사람은 거기까지 15분쯤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클로에는 앙헬라타 대로에서 고작 한 블록 들어간 곳인데도 분위기가 눈에 띄게 칙칙해지는 것에 놀랐다. 일전에 마법사 길드에 찾아갔을 때에는 그곳만 그러려니 했던 것인데 말이다.

“저기 3층이에요.”

라이언이 가리킨 건물은 그 근방의 다른 건물들과 별다를 것 없이 허름했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건물이 언뜻 보기에도 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물들이 나름의 용도로 쓰이며 북적이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기이했다.

“마법사님한테 건물 하나를 살 재력이 있었나……?”

그래서 그런 말이 미라벨의 입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말소리며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등등…… 다양한 생활 소음이 묻어나오는 그 일대에서 그 건물만 유일하게 적막하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었다.

미라벨의 합리적인 의문에, 라이언은 대꾸할 수 있는 바가 없어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일단 들어가세요. 라구 경께서 와 계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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