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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는데 첫사랑이 수상하다-21화 (21/189)

21화. 여전한 것과 여전하지 않은 것 (6)

「……그러니 이번 주 바람의 날에 갈게. 혹시 시간이 안 되면 알려줘.

사랑의 인사를 담아, 너의 로이가.」

대축일 주간이 끝나자, 클로에는 미뤄 뒀던 일들을 시작했다. 스무 살로 돌아온 것을 받아들인 것과 별개로, 그에 대한 연유는 계속 궁금한 일이었으니까.

제일 먼저 한 일은 황자궁에 머무르고 있는 제 친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스무 살로 돌아온 첫날 생각했던 대로 더 다양한 책들을 살피기 위해 다른 도서관들에 들러 보려는데, 아무래도 황자궁 서고에 가장 큰 기대를 걸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 보는 책에 초현실적인 얘기가 더 많지 않을까?’

책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겪은 것과 같은 류의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겠지만, 어쨌든 제가 지금까지 지식을 쌓아 온 습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인한 뒤 황궁으로 보내게 하고, 클로에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아티장 지구에서 분리 독립파를 쫓느라고 난리를 피운 이후로 처음 외출하겠다 하니, 미라벨이 잔뜩 긴장했다.

사고는 같이 쳤지만, 혼난 건 결국 미라벨 하나였으니까.

“오늘은 어디로 나가려고?”

“아티장 지구. 보석상에 좀 가보고 싶어서.”

“오늘은 위험한 데 휘말리면 안 돼.”

“일찍 들어올 거야, 걱정 마.”

같이 외출할 준비를 위해 바로 옆에 위치한 제 방으로 사라지는 미라벨의 뒷모습을 보며, 클로에는 하녀들의 손길에 제 단장을 맡겼다.

대축일 주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이유 중 다른 하나, 마르코네서 사 온 펜던트를 팔아 보기 위해서였다.

클로에는 거기에 장식된 보석이 아무래도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희뿌예져서 빛을 잃으니 알 크기만 갖고 대강 전당 잡혔던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겉면이 물리적으로 훼손된 게 아니라 그 내부의 결정이 뒤틀린 모양새였다.

‘다이아몬드가 어디에 긁힐 리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모서리 어름에서 비치는 반짝임이 아무래도 심상찮아 클로에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단순한 여흥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제가 제대로 봤다면, 이 시간 여행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만 같아서.

‘혹시 여기에 뭔가 내부적인 문제가 일어난 거라면 마력이 개입된 걸 테고……’

생각하다 보니 보석상 이전에 먼저 다른 곳에 먼저 들러야 할 것 같았다. 챙겨야 할 다른 것도 생각났고.

프란츠 광장에서 뻗어 나가는 세 대로 중 서편으로 뻗은 앙헬라타 대로는 귀족을 상대로 하는 고급 부티크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라크루아 모녀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 거리로 와서 옷을 맞추곤 했다.

하지만 오늘 클로에의 목적지는 부티크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마도구 상점이었다.

앙헬라타 대로 가장 끝에 위치한 마도구 상점 알레지오.

대륙 각지에서 수입한 마도구를 판매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마법사 길드와 협업하여 마도구를 수리하거나 마도구의 에너지원이 되는 마정석의 마력 충전을 해 주는 곳이었다.

‘나 같은 개인 고객이 가도 괜찮겠지……?“

저택에서 쓰이는 마도구는 모두 집사의 소관이라 이때껏 와본 일 없던 상점에 저 혼자 가는 클로에의 마음이 속절없이 떨렸다. 분리 독립파의 아지트를 급습하러 갔을 때 건물에 들어갈지 말지 머뭇거리던 그 마음과도 같이…… 평생 가 본 적 없는 곳에서 어리바리하게 굴 것을 상상하니 더더욱 긴장됐다.

‘마정석 충전하러 올 때 따라올 걸 그랬나…….’

아니지, 그랬다면 심부름으로나마 나온 간만의 외출에 숨통 틔우지 못하고 괴로워할 젊은 사용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라크루아 사용인들의 분위기가 아무리 자유로운 편이래도, 주인과 함께 외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뭐해, 안 들어가고?”

“으응, 들어가야지.”

사용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어서인지 풋맨이 따로 있지 않아, 미라벨이 직접 문을 열었다.

큰맘 먹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전에 본 적 없던 세계가 펼쳐졌다. 밝게 꾸며진 가게 내부는 두 군데로 나뉘어서, 한쪽에는 마정석이, 다른 한쪽에는 저택에서 사용되는 램프, 온열 기구, 주방 설비 등의 마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아르투젠에서 사용되는 마도구들은 그 내부에 설치된 마력식이 새겨진 소켓에 마정석을 끼워 작동시키는 것뿐이어서인지, 축제 장터에서 본 것처럼 마정석을 액세서리처럼 세공한 것도 없었고 판매하는 마정석도 대부분 하등품 보석을 활용해 만든 것이었다.

“어쩐 일로 오셨나요, 영애님?”

미라벨을 대동하고 클로에가 들어서자, 점원들의 낯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귀족들, 특히 귀족 영애가 직접 내점할 일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접객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석에 문제가 있어 마법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네.”

“마정석 문제가 아니시고요?”

“혹시 그럴까 싶어서 여기로 온 것이네만…….”

“그러시군요.”

미소 지어 보인 점원은 가게 뒤편의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길드에 연락해서 도와드릴 수 있는 마법사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조금 좁더라도 기다려 주세요.”

점원은 매장의 뒤편에 위치한 긴 복도의 가장 끝 방으로 두 영애를 안내했다. 끝에 위치했으니 이 복도의 방 중에서 가장 큰 방임을 짐작하게 했지만, 보통 오는 고객들이 저택의 사용인들이어서인지 방도 넓지 않았고, 탁자나 의자의 만듦새 같은 것들이 투박했다.

곧이어 다른 직원들이 차를 내왔다. 마정석을 밑바닥에 넣어 보온 기능을 부여한 덕에, 찻잔이 뜨겁지 않음에도 찻물이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마정석 찻잔은 저택에도 없는 건데.”

“바빠서 찻물 다시 데워 오라고 사람 부를 수도 없을 때 좋아.”

“오, 그렇겠네.”

미라벨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얘가 이걸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제 젖자매는 원래도 영명하셨지만, 요즘 들어 뭔가 좀 더 아는 게 많아진 듯했다.

‘부군께서 마정석 찻잔을 애용하셨었지.’

궁의 안주인이 해야 할 일까지 떠맡느라 늘 격무에 시달렸던 저의 부군은, 업무 중에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을 싫어해서 한번 우린 찻물을 계속 마실 수 있도록 마정석 다구를 사용했더랬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말벗이나 되어드릴까 차를 내어 들어갔다가, 제 귀비에게 차 심부름이나 시킬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

‘말씀이야 다정하셨지만 축객령이었는지도.’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자꾸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이 반가우면서도 곤란했다. 당장 내일 다시 셰비크의 별궁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아서.

그런 상념은, 조금 초췌해 보이는 인상의 갈색 단발을 한 남자 하나가 들어오면서 깨졌다.

“안녕하세요, 고티유 길드 소속 마법사 라구라고 합니다.”

“라크루아의 클로에네.”

“누아제트의 미라벨.”

미라벨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눈빛으로 라구를 바라보았다. 개인이 마법사를 고용하는 것이 금지된 제국 연방에서 마법사란 마탑에 있거나, 황실 마법사단 또는 마법사 길드에 소속돼 있어서 일상에서 만나 보기가 어려운 존재였다.

하물며 마법사와 말을 섞기란 클로에도 처음, 미라벨도 처음이었다.

클로에는 호기심을 잘 여며 두고서 펜던트를 탁자에 올렸다.

“얼마 전에 이 보석을 얻었는데, 빛깔이 심상찮아서 말이지. 혹시 마법의 관점에서 알아봐 줄 수 있나 궁금해서 왔네. 마정석은 아닌 것 같고.”

라구는 무례하게도 별 대꾸도 없이 한 손으로 펜던트를 집어 들더니, 얼마 살펴보지도 않고 이를 딱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마력에 오염됐네요. 단번에 거대한 양의 마력에 노출되었거나 지속적으로 마력에 노출되면 보석의 입자가 마력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이상 징후를 띠곤 하죠. 마정석 제작할 때도 성의 없게 마력을 주입하면 이렇게 돼요.”

제 앞의 영애들이 알아들었건 말건 설명을 마친 라구는, 딱히 묻지도 않고 손에 마력을 모아 펜던트 쪽으로 갖다 대었다. 그의 손에서 모인 빛무리가 펜던트 안으로 투과되더니, 그 마력의 찌꺼기인 듯한 희뿌연 것이 딸려 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우와아, 저게 다 뭐야?”

마법사도 처음 봤는데 마법은 더 신기하다며 미라벨이 탄성을 내뱉었다. 미라벨은 번번이 클로에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대강 이 정도까지입니다. 온전하게 깨끗이 정화하시려면 신성력의 도움을 받으셔야 할 거예요. 설거지할 때 그냥 물로 하는 거랑 비눗물로 하는 게 다르잖아요?”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 비유가 와닿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으며 클로에는 이럴 때 부탁할 수 있는 고향 친구 하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친구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데미의 친구지만.’

클로에는 이런 때에도 슬그머니 드는 데메트리안에 대한 생각을 떨치려, 애써 밝게 말을 덧붙였다.

“혹시 여기서 보석 감정도 하는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쓰는 마정석들이 아무래도 보석이라 하기 어려운 하등품으로 만든 것이어서요.”

“그렇군. 그리고 또 봐 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데.”

클로에가 탁자에 추가로 꺼낸 것은 장터에서 산 머리핀이었다. 미라벨에게도 언질해 두어 두 사람의 몫으로 산 것이 다 있었다.

그날, 그들이 사용한 꽂이 꽃의 마정석에 연쇄 폭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꺼내보지도 않던 것을 들고나온 것이었다.

“지난 장터에서 마도구를 파는 좌판에서 산 건데, 마음 놓고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마음 같아서는 혹시 연막탄이나 폭탄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이 마법사로부터 웬 헛소리냐는 눈빛을 받을까 봐 참았다.

분리 독립파가 테러를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이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으니까.

“뫼니엘산 마정석을 썼군요?”

“마법사님도 안목 있으시네요?”

“저야 고티유 와서 보는 게 마정석인데요. 야, 여기서는 엄지손톱만 한 보석에밖에 작업 안 해 봤는데, 역시 종주국이 다르긴 하네요.”

그리 말하는 데서 그가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진 마탑의 마법사임이 느껴졌다. 제국의 귀족 앞에서 제후국을 높여 칭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의뢰인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라구는 머리핀에 제 마력을 조금 흘려 넣어 이를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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