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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1화 (138/150)


 

외전2. 1화

“그래서 대체 언제 올 거예요?”

고요한 방 안에서 붉은 마석이 깜박였다.

시종을 시켜 제 침대 곁에 거울 형태의 아티팩트를 가져다 둔 메이딜리언은 느슨하게 베개에 기댄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을 비춰야 할 거울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곧 갈게.]”

거울 너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일을 다 마치지 못한 것인지, 윈터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칼로프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윈터는 황궁이 아닌 공작가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메이딜리언은 부득불 몸이 제대로 회복이 되고 있는지 한동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밀린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말한 윈터가 입술을 삐죽였다.

“왠지 제 탓인 것처럼 들리는데.”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그러게요. 제 탓으로 하죠, 뭐.”

두 사람은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늘 예민하게 날이 서 있고 불안하던 예전과는 달리 윈터도 메이딜리언도 많이 편해졌다.

서로 핀잔도 주고, 농담도 하고, 종종 시시콜콜한 일들로 싸우기도 했다.

“[정말 내가 황궁에서 너 때문에 눈치 보인 것만 생각하면, 어휴.]”

“윈터가 눈치를 왜 봐요?”

“[그거야……!]”

“그거야, 그다음에 뭐요?”

평소처럼 투덜거리던 윈터가 우뚝 말을 멈췄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몸짓이 영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렸다.

갑자기 어색하기 짝이 없어진 윈터를 보며 메이딜리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메이딜리언은 강하게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윈터는 제가 살살 웃으며 꼬여 내기만 해도 금방 흐물흐물 녹아서 다 말해 주곤 했으니까.

메이딜리언이 지난 한 달간 윈터와 몇 번이고 싸우고 부딪히며 깨달은 것이었다.

“윈터, 우리 이제 거짓말 같은 거 안 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 그랬지.]”

“그럼 말해 봐요. 뭐 때문에 황궁에서 눈치가 보였던 건지.”

“[그러니까, 그게, 어, 네, 네가 너무…….]”

거울 너머에서 윈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바로 곁에 있었다면 콱 끌어안고서 갖은 방법으로 실토하게 했을 텐데.

메이딜리언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네가 너무 나를, 애, 애지중지하니까 그렇지!]”

“아.”

끝내 실토한 윈터가 그대로 푹 책상에 고개를 박았다.

채 열을 식히지 못한 귀가 새빨갰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애써 웃음을 참아 낸 메이딜리언이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죠.”

“[으으, 당연하긴 개뿔이…….]”

“내가 한동안 미친 황제라고 소문이 나서, 어차피 다들 당신한테 설설 기어야 했어요.”

“[그래, 바로 그게 문제라고, 이 바보야!]”

윈터는 메이딜리언이 눈앞에 있었다면 그 멱살이라도 짤짤 흔들고 싶다는 듯 격분했다.

그녀가 실종되고, 새로 즉위한 황제가 광증에 걸렸다는 소문은 한동안 황궁을 소란스럽게 했다.

메이딜리언의 최측근인 에른스트 후작과 엘리슨 정도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그 미친 황제는 윈터를 찾기 위해 칼로프로 넘어가기까지 했었다.

덕분에 엘리슨은 누구보다도 윈터의 귀환을 환영했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눈물까지 글썽이는 통에 윈터는 무척이나 머쓱해졌다.

궁인들은 누구도 제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날을 세우며, 살기를 갈무리하지도 못했던 미친 황제가 순한 양이 되어 웃는 것을 보고 빠르게 권력 구도를 파악했다.

윈터만 있다면, 메이딜리언은 무척이나 관대한 지배자였다.

정확히는 윈터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아, 내가 정말이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면서 널 키웠는데…….]”

윈터는 늘 하던 것처럼 한탄을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메이딜리언은 그저 웃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윈터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

제게 다시는 어디 가지 않겠다고, 늘 함께 있겠다고 한 윈터였지만 메이딜리언에게는 아직 미약한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기저에 옅게 깔린 불신은 태생과도 같은 것이라 결코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 제가 볼품없어진다면, 윈터가 저를 더는 가여워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떠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메이딜리언에게는 윈터가 유일했지만, 윈터의 곁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 모두를 죽여 없애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윈터가 슬퍼할 테니까.

그렇다면 윈터가 그렇게 아끼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그녀를 제 곁에 묶어 놓기라도 해야 했다.

“[네가 얼마나 유능하고, 똑똑하고 착한데! 다들 그것도 모르고 말이지.]”

“그러게요.”

사실 그건 윈터 앞에서만 그런 것이었다.

윈터도 그 사실을 아예 모르지는 않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남들이 메이딜리언의 진가를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니까 그런 네 자질을 숨기지 말고 좀 뽐내고 그래. 알겠지? 응?]”

“네, 그럴게요.”

메이딜리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자 윈터의 표정이 흐물흐물 풀렸다.

제가 이렇게 웃을 때마다 윈터가 좋아한다는 걸 메이딜리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의식적으로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선대 공작은 만났어요?”

문득 짙어지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메이딜리언이 화제를 돌렸다.

웬만한 일들은 사실 윈터가 굳이 공작령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됐다.

그녀를 대신할 보좌관들이 잔뜩 있었고, 그들은 윈터가 직접 뽑아 키운 만큼 무척이나 유능했으니까.

하지만 굳이 윈터가 직접 내려간 이유는 선대 블라디미르 공작 때문이었다.

“[……아직.]”

윈터의 표정이 금세 우중충해졌다.

공작위를 양위하기 전, 선대 공작 오필리아는 윈터와 약속을 했다.

죽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보기로.

안타깝게도 윈터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한참 뒤에 윈터가 가까스로 살아서 깨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오필리아는 편지 한 통도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공작령에 직접 내려왔는데도 방 안 깊숙이 자취를 감춘 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윈터는 어머니와 화해하기 전까지는 황궁에 갈 수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지 알기에 메이딜리언은 차마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곧 문을 열어 주실 거예요.”

“[그래, 그러시길 바라야지.]”

그런데 생각 외로 화해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덕분에 메이딜리언만 신경질이 났다.

윈터는 잔뜩 풀이 죽어 있고, 그런 그녀를 당장 황도로 오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내심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고 있잖아.]”

“이런 거 말고요.”

직접 만나서 그녀를 만지고, 향기를 맡고 윈터가 실재한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윈터가 싱긋 웃었다.

“[금방 갈게.]”

그리고 덧붙였다.

“[보고 싶어.]”

숫제 달래는 듯한 말투였으나 고작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메이딜리언은 텅 빈 가슴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채워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더욱 안달이 났다.

“당신 올 때까지 안 잘래요.”

“[뭐? 나 참, 그게 무슨 어린애 같은 소리야.]”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윈터가 거울의 유리면을 쓰다듬었다.

메이딜리언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절로 가슴이 충만해지는 순간이었다.

“[잘 자, 메이.]”

“네, 윈터도요.”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 하는 인사를 나눴다.

그리움으로 가득한 밤이 지나갔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메이딜리언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자신은 황궁에 있는 제 침소에 누워 있었는데, 눈을 뜨니 전혀 낯선 곳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침대도, 호화로운 장식품도, 심지어 머리맡에 놓여 있던 거울도 없었다.

“여긴…….”

작게 중얼거리던 메이딜리언이 흠칫 놀랐다.

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조차 낯설었다.

아니, 낯설지는 않았다.

고개를 내리니 볼품없이 마른 몸과 작은 손발이 보였다.

그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보니 분명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메이!”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허름한 차림새의 남자가 들어왔다.

한쪽 발을 질질 끌고 온 그는 아침 인사처럼 메이딜리언에게 발길질을 했다.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매일 폭력에 시달리던 작은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이 멍청한 녀석이! 너 때문에 내가 무슨 망신을 당했는지 알아!”

악을 쓰며 가해지는 폭력은 한참이나 반복되었다.

메이딜리언은 익숙하게 몸을 웅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 자신은 황궁에서 윈터와 대화를 나눴었는데.

대체 왜 여기에 이러고 있단 말인가.

“일찍 일어나서 말 여물 주고, 마구간 청소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워! 어? 이 게으른 자식!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남자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그는 메이딜리언을 키운 적이 없었다.

저와 조금도 닮지 않은 어린애를 죽이지도 않고 여태 데리고 다닌 것은 익명의 후원자에게서 가끔 오는 돈을 빼돌리기 위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메이딜리언은 나중에서야 그 후원자가 에른스트 후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당분간 네 밥은 없으니 그런 줄 알아! 알겠어!”

남자는 지칠 때까지 메이딜리언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 댔다.

저자의 이름이 뭐였지.

이미 기억에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마음에 남지도 않은 악몽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고통마저 생생한 꿈에 메이딜리언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당장 나가서 마구간이나 정리해라.”

남자는 멍으로 얼룩진 작은 몸을 바깥으로 내던졌다.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바닥을 구르던 메이딜리언의 눈에 문득 빛이 돌아왔다.

이 기묘한 꿈에서도 그에게 가치 있는 것이 하나쯤은 있었다.

“……윈터.”

그래. 여기에도 윈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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