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1화
그 섬은 고요해서, 가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소금기가 가득한 바람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멀리서 거대한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의 어른들은 그 배를 보며 저마다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가 온다죠?”
“네? 아니, 그런 집안 사람이 대체 여기까지는 왜…….”
“모르지, 뭐.”
“듣기로는 황도에서 아주 큰 죄를 지었다던데.”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어요.”
이 먼 곳에서도 훤히 보일 만큼 커다란 배에 탄 주인에 대해 떠드는 말 같았다.
기억이 없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마누트라 섬에서 키워진 리어트는 어른들의 말을 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림책에서나 봤던 거대한 배의 모습에 감탄했을 뿐이었다.
“저런 배에는 아주 고귀한 분이 타고 있겠지?”
“아아, 나도 타 보고 싶다.”
“칫, 그래 봤자 뭐 해? 어차피 저기 탄 것도 인간이겠지.”
섬에 나타난 새로운 배에 동요하는 것은 비단 어른뿐만이 아니었다.
어린애들도 옹기종기 모여 재잘댔다.
“야, 리어트.”
무리에 있던 아이들 중 가장 키가 큰 아이 하나가 리어트를 불렀다.
리어트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던 것을 그만두고 슬금슬금 빛 아래로 나왔다.
“네가 가 보는 게 어때?”
“어, 어딜?”
“저기 저 배에 말이야.”
애들이 히죽 웃었다.
“너라면 혹시 인간으로 받아 줄지도 모르잖냐?”
리어트는 인간과 수인의 혼혈이었다.
인간인 어머니가 죽고 그의 아버지는 리어트와 함께 이 섬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리어트는 여기서도 섞이지 못했다.
늘 멸시와 혐오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 한 번 가서 물어봐.”
“퉷, 더러운 잡종.”
기껏 그를 불러낸 아이들은 리어트를 향해 침을 뱉거나 툭툭 치며 괴롭혔다.
이 좁디좁은 수인족 마을에서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리어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촌장님이다! 촌장님이 돌아오셨다.”
언덕을 올라오는 촌장을 발견하고 누군가 외쳤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물었다.
“그래서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누구랍니까?”
“대체 뭐 하는 사람이래요? 여기에 우리 마을이 있다는 걸 아나요?”
“설마 여기까지 인간들이 마수를 뻗는 건 아니겠죠?”
“그런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지도 마!”
촌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사람들은 애써 분주히 말을 섞으며 불안감을 잠재웠다.
곧 촌장의 입이 열렸다.
“어린애더군.”
“예?”
“그 배에 탄 사람 말이야.”
주변을 둘러보던 촌장이 손가락으로 리어트를 가리켰다.
졸지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죄다 리어트를 향해 꽂혔다.
“딱 저만한 비실비실한 어린애였어.”
마을을 불안에 휩싸이게 했던 배는 얼마 머무르지도 않고 금방 떠났다.
그 배를 타고 왔다던 어린애에 대한 말들도 금세 사라졌다.
수인족 마을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모두 얼마 전 섬에 나타났던 배나, 황도에서 왔다던 어린애에 관한 것은 홀랑 잊어버렸다.
“함부로 바깥으로 나가지 마라.”
그러나 단 한 사람, 리어트의 아버지만은 아니었다.
“인간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남자는 리어트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공격하지 마라. 설사 네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네 잘못으로 돌아올 테니까.”
마치 리어트가 새로 나타난 인간에게 큰 해를 입힐 인물이라는 듯이 말했다.
누가 보면 남자의 자식이 리어트가 아니라 그 어린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대답해라.”
“…….”
“얼른!”
“……네. 알겠어요, 아버지.”
리어트는 어렸다.
그래서인 걸까.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인간도, 수인도 아닌 존재였다.
아버지의 말이 그를 옥죄였다.
아버지는 리어트가 마누트라 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그저 머물기를 바랐다.
그러나 리어트는 싫었다.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평생 이곳에 갇혀서 살아가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갑갑하기만 했다.
“……리어트?”
새벽 어스름할 무렵, 집을 나서는 리어트를 그의 아버지가 불렀다.
“이 시간에 어디 가느냐?”
“먹을 거라도 구해 오려고요.”
잠결에 행방을 묻던 아버지는 리어트의 변명에 두 번 캐묻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문 앞에서 잠시 멈칫했던 리어트는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하루 일과는 이토록 이르게 시작되었다.
아침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 온 섬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
애초에 아버지는 그에게 무관심했다.
리어트가 이 섬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늘 집에 틀어박혀 하염없이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고, 누구도 키워 내지 않는 잡초처럼 리어트는 섬에서 자라났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어?”
평소처럼 섬을 헤집고 다니던 리어트의 시선에 무언가가 걸렸다.
처음에 멀리서 봤을 때는 온통 새하얀 것이 토끼인가 싶었다.
리어트는 본능처럼 발소리를 죽인 채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질수록, 토끼인가 싶었던 그것이 나무 아래 웅크린 작은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 뭐야.”
흠칫 놀란 리어트가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치 상대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아이가 쓰러져 있는 나무를 빙 돌아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버지가 저런 거에 가까이 가면 안 된댔어.”
눈가에 어른거리는 잔상을 지우기 위해 리어트는 연신 중얼거렸다.
이런 섬의 깊은 곳에 저런 어린아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잘못 본 것이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이 섬에서 저런 옷을 입은 어린애를 리어트는 알지 못했다.
그건 토끼였다. 토끼치고는 좀 크긴 했지만, 그냥 나무 밑에 있던 토끼였다.
“……미치겠네.”
연신 스스로에게 되뇌며 자신을 설득하던 리어트가 와락 표정을 구겼다.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 그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왜 발이 안 떨어지냐.”
저 죽은 몸뚱이의 주인이 유령이 되어 자신을 붙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린 리어트가 결국 휙 몸을 돌렸다.
“젠장, 젠장, 멍청하긴!”
대체 누구를 향해 그렇게 욕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망치는 길은 다리가 무거워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더니, 다시 돌아서서 죽었을지도 모를 아이를 확인하러 가는 길은 어찌나 몸이 가볍던지.
리어트는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숲을 돌파하며 아까 봤던 나무를 향해 달렸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리어트가 털썩 나무 앞에 주저앉았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던 것은 정말로 작은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아무 무늬도 없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리어트는 그 아이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셔츠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이 멍으로 얼룩덜룩한 데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처럼 아주 말랐다.
피부 또한 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창백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리어트가 조심스레 아이의 얼굴을 가린 새카만 머리카락을 치웠다.
그러자 입가가 피범벅인 파리한 얼굴이 드러났다.
“……흐익!”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기겁한 리어트가 훌쩍 뒤로 물러섰다.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평소에 숨겨 두었던 꼬리가 튀어나왔다.
삐죽삐죽 털이 곤두선 꼬리를 잘 갈무리해서 넣은 리어트가 천천히 다시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 저기.”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 왔다.
늘 제집 앞마당처럼 다니던 숲이었는데 오늘따라 고요하고 으스스했다.
“이봐, 죽었어……?”
리어트가 아이의 어깨를 살짝 흔들자 툭, 하고 흰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설마 진짜 죽은 걸까.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움찔한 리어트가 덜덜 떨리는 손을 아이의 코 쪽으로 가져다 댔을 때 턱, 하고 서늘한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으, 으아아악!”
“시, 끄러워…….”
비실비실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에 리어트가 비명을 뚝 멈췄다.
고개를 들자 아이가 초점 흐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잡고 있던 리어트의 손을 놓은 아이는 제 이마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머리 울려.”
“괘, 괜찮아?”
반사적으로 리어트가 물었다.
아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여태 겁을 잔뜩 집어먹고 몸을 뒤로 젖힌 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던 리어트가 얼른 아이를 부축했다.
“여기가 어디야?”
리어트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무에 등을 기댄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긴 섬의 동쪽 숲이야. 너는 뭐야? 못 보던 얼굴인데,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난 저기 살아.”
아이의 손이 힘없이 마누트라 섬 반대쪽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돌아보던 리어트의 얼굴이 굳었다.
“저기는…….”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대현자가 세간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긴 곳이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는 그 노인은 수인족 마을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모를 외부의 침입에서 그들을 지켜 줬고, 아픈 사람들도 감쪽같이 고쳐 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책에서 나오는 마녀와 같았다.
“너, 너도 마녀야?”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리어트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픽 웃은 아이가 턱을 타고 흐르는 피를 아무렇게나 닦아 냈다.
얼룩 하나 없던 옷이 금세 엉망이 되었다.
“내 이름은 윈터야. 너는?”
“……리, 리어트.”
엉겁결에 이름을 말한 리어트는 그대로 제 혀를 깨물 뻔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지만 늘 할 수만 있다면 그대로 도려내 바다에 수장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줄곧 창백하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그 순간.
“만나서 반가워, 리어트.”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