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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105/150)

105화

메이딜리언 또한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했다.

성큼성큼 걸어간 메이딜리언이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가 찾던 거예요.”

만타라스.

신의 상징. 신의 피로 이루어진 꽃.

신화 속에서만 보던 그 꽃이 두 사람의 눈앞에 있었다.

“말도 안 돼.”

기적처럼 나타난 만타라스를 보며 윈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메이딜리언은 불쾌한 듯 와락 표정을 구겼다.

“저것 때문이었군요.”

“응?”

“윈터가 아팠던 거요.”

“……아.”

뒤늦게 윈터도 깨달았다.

봉인도 멀쩡한데 느닷없이 폭주를 일으키던 마력.

바로 그 원인이 저 만타라스였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꽃들이 살랑거리는 풍경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러나 메이딜리언은 지독히도 혐오스럽다는 듯 인상을 썼다.

윈터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한 꽃이니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사막에서 사흘 밤낮을 헤매며 찾아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저 미약한 마력을 탐지해 땅이라도 파 보려고 했던 윈터에게는 대단한 행운처럼 느껴졌다.

“여기, 이걸 써.”

곧 그녀는 팔에 걸고 있던 팔찌를 내밀었다.

“만타라스는 시들면서 씨앗을 남기는데 그게 마력 폭주를 일으키는 원인이야.”

정확히는 마력 증폭을 해 주는 영약이었다.

그러니 이 희귀한 꽃이 신화에까지 나왔겠지.

하지만 마력이 이미 충분한 사람에게 쓰면 반대로 독이 될 것이다.

신의 피로 만들어진 축복.

크비누스는 이것으로 선황 미쉘라를 소리소문없이 죽였다.

“이리 주세요.”

윈터가 내민 팔찌를 받아든 메이딜리언이 남은 마력을 불어넣어 만타라스를 채취했다.

그때,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인기척이 점점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윈터.”

메이딜리언은 단숨에 윈터를 감쌌다.

그리고 그녀를 제 뒤로 숨겼다.

윈터는 마력 폭주를 막느라 몸 안에 있는 마력을 전부 잃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애석하지만 크게 전력에 보탬이 되기 어려웠다.

“……누구지?”

윈터가 불안한 기색을 애써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느껴지는 마력이 심상치 않았다.

다수의 훈련된 인물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누구든, 자신이 지킬 테니까.

메이딜리언이 윈터의 손을 잡은 채 말을 삼켰다.

사실 그 또한 몸 상태가 엉망이긴 마찬가지였다.

윈터가 쓰러졌던 며칠 동안 체력도 마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인가?”

“네, ……입니……. 하겠습니다!”

멀리서 웅웅 대며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귀가 쫑긋거렸다.

이내 만타라스를 채취하던 자리 위로 난 구멍 근처로 인기척이 모였다.

메이딜리언이 바짝 털을 곤두세운 짐승처럼 경계하던 그 순간이었다.

“2황자! 소공작! 거기 있나?”

동굴을 울리는 목소리에 윈터가 흠칫 놀랐다.

꽤 익숙한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황태자 전하……?”

설마 델의 목소리가 여기서 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윈터였다.

그런데 지금 델이 여기에 있다는 건, 저 위에 있는 자들이 두 사람을 구출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여기예요!”

윈터가 얼른 목소리를 틔워 소리쳤다.

메이딜리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래로 난 구멍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델은 금세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밧줄을 내릴 테니까.”

기사들 여럿이 달려들어 빠르게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람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넓히고, 두꺼운 밧줄이 아래로 내려왔다.

메이딜리언은 윈터를 부축해 그 앞으로 갔다.

“살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어 기쁘군, 소공작.”

아래를 내려다보며 델이 싱긋 웃었다.

“네, 저도요.”

윈터가 힘없이 대답했다.

잔뜩 긴장했던 몸에 안도감이 찾아오자 순식간에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왔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품에 안은 메이딜리언이 말없이 내려온 밧줄을 꽉 붙들었다.

그걸 본 기사들이 밧줄을 잡아끌어 두 사람을 끌어올렸다.

금세 쨍쨍한 햇빛과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후욱 끼쳐왔다.

“전하!”

“아가씨!”

수행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위로 올라온 윈터와 메이딜리언에게 달려가 그들을 부축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피와 먼지로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어디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한 것 같았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제일 먼저 달려온 데보라와 칸나가 윈터를 부축했다.

“그럼, 당연하지. 걱정 끼쳐서 미안해.”

윈터는 무거워진 팔로 두 사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데보라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훌쩍거렸다.

“아가씨가, 아가씨가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실제로도 죽을 뻔한 게 맞았지만 윈터는 굳이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바꿨다.

“데보라가 활약해 준 덕분에 사람들이 날 찾은 거지?”

혹시 모를 낙오를 대비해 데보라에게 주었던 마도구가 있었다.

눈물을 거칠게 닦아 낸 데보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처음엔 그걸로 찾아왔는데요.”

“처음엔, 이라고?”

“네. 그 뒤로는 아가씨의 호위대가 와서 수색을 도왔어요.”

호위대라는 말에 윈터가 잠시 멈칫했다.

“내 호위대라고?”

“네, 그, 리어트 씨 있잖아요.”

데보라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내 그녀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기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검은 옷과 복면을 갖춘 무리가 보였다.

윈터가 칼리스타에서 후원하며 개인적으로 운영했던 수인족 별동대였다.

“아가씨가 실종된 걸 감지하고 찾아왔대요. 그, 낙오돼서 마도구에 시동을 걸면 저분들한테도 알려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랬구나.”

리어트와 잠시 시선이 마주친 윈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데보라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근처 어딘가에 알버트가 쓰러져 있을 텐데, 찾았니?”

“그럼요. 그 인간은 저기 잡혀 있어요.”

윈터의 물음에 이번엔 칸나가 대답했다.

윈터뿐만 아니라 이번 칼로프 사막 행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 알버트였다.

덕분에 칸나의 말투는 더없이 불퉁했다.

그녀의 손을 따라 눈을 돌리니 기사들 사이에 결박되어 있는 리비우스와 알버트가 보였다.

그들의 발목에는 마력 제어구가 채워져 있었다.

손목과 목에도 족쇄처럼 채워진 것을 보니 다시 도망을 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다행이네.”

고개를 끄덕인 윈터가 데보라와 칸나의 부축을 받아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델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소공작, 몸 상태는 어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마셔.”

델은 들고 있던 물병을 내밀었다.

조금 전에 메이딜리언에게도 주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윈터는 간신히 목을 축였다.

“정말 사고 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군.”

“……면목 없네요.”

“됐어. 그대가 왜 그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걸.”

밉지 않게 핀잔을 줘 놓고도 윈터가 순순히 사과하자 델이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몸 상태가 이래서야 만타라스를 찾으러 갈 수 있겠어?”

“아, 그거 말인데요.”

윈터가 말하려는데 메이딜리언이 한 발 더 빨랐다.

“이미 찾았습니다.”

어느새 옷을 갖춰 입은 그가 손안에 든 팔찌를 델에게 슬쩍 보였다.

“뭐? 그게 정말인가?”

“예.”

고개를 끄덕인 메이딜리언이 윈터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전 채취했던 만타라스를 이 자리에서 보여도 되는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윈터의 마력이 다시 폭주를 일으킬까 두려웠다.

그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윈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일단 저쪽으로 가자.”

데보라와 칸나의 부축을 받아 윈터가 멀어졌다.

충분히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메이딜리언이 팔찌에 마력을 부여했다.

그러자 그의 손 위에 만타라스 한 송이가 나타났다.

“저, 저길 봐!”

“와…….”

“세상에, 정말 투명하군.”

신화 속에서만 언급되던 만타라스가 실재한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감탄했다.

델 또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운이 좋은 건지, 운명이 이끄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사막에서 실종이 된 지 단 며칠이었다.

모래 지옥에 빨려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한 것도 모자라, 그 아래에서 만타라스를 구했다니.

신의 안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음, 수색을 핑계로 소공작을 황궁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델이 혼잣말인 척 중얼거렸다.

메이딜리언은 눈만 한차례 가늘게 뜰 뿐,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었다.

델이 농담처럼 한 말이 더없이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놀러 오게.”

제가 말해 놓고도 델은 영 현실성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메이딜리언이 이번 후계자 경합에서 승리한다면 황제가 될 것이다.

황제가 섣불리 타국으로 넘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패배한다면 메이딜리언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메이딜리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쉽군.”

델은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윈터와 메이딜리언이 지지고 볶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꽤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자리를 옮긴 델이 윈터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우린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소공작.”

사용인들이 만들어 준 그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윈터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아주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걸요.”

“그건 그렇지. 내가 전에 했던 말, 잊지 않았지?”

델은 아직도 윈터의 망명을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윈터는 그저 모른 척하며 샐쭉 웃었다.

“하신 말씀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걸요.”

“생명의 은인에게 마지막까지 너무한 거 아니야?”

볼멘소리하며 툴툴대던 델이 이내 윈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길 바라지.”

그 단단한 손을 맞잡으며 윈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도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시길.”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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