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 *
윈터가 처음 이상함을 느낀 것은 메이딜리언과 함께 마차에 올랐을 때였다.
이상하게 메이딜리언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 크게 박동했다.
처음엔 그저 오랜만에 만난 메이딜리언이 반갑고, 미래에 그가 황제가 될 모습을 상상하니 설레서 그런 줄 알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어? 어어. 응. 아, 아니. 네.”
하지만 기이한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지며 윈터의 속을 이상하게 헤집어 놓았다.
누군가 뱃속을 꽈악 틀어쥐고 있는 듯한 묘한 긴장감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냥 평소처럼 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직 정식 황자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황자가 되어도 아가씨랑은 이렇게 대화하는 게 편해요.”
“그, 그럼…… 그럴까?”
손이 가늘게 떨리고, 등줄기에는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급기야 식은땀까지 배어 나오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까지 하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건 떨림이 아니었다.
“아가씨.”
“으, 응?”
“보고 싶었어요.”
위험을 감지한 것은, 메이딜리언의 말을 듣고도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없을 때쯤이었다.
“아가씨는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으음, 나는, 어, 그러니까…….”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더니 점차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하얘지더니 속이 메슥거렸다.
“아가씨!”
순간 머리가 핑 돌더니, 다시 눈을 뜨자 메이딜리언이 자신을 붙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메, 메이.”
“아가씨, 갑자기 왜 그래요? 어디가 안 좋은 거예요?”
“나 몸이, 몸이 이상해…….”
간신히 입술을 달싹인 윈터가 그대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마는 식은땀에 젖어 들고, 그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를 악문 메이딜리언은 당장에 마차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세요?”
발 빠르게 달려온 것은 당연히 데보라였다.
황도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메이딜리언이 갑자기 행렬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에 다가온 그녀는 곧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윈터를 발견했다.
“세상에, 아가씨!”
“소란 피우지 마.”
메이딜리언이 낮게 속삭였다.
얼핏 보면 아픈 사람이 윈터가 아니라 그인 것처럼, 메이딜리언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윈터가 아픈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잔병치레를 겪고, 틈만 나면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녀의 생명을 좀먹어 들어가는 마력이 다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픈 윈터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메이딜리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는 늘 윈터가 아프면 어쩔 줄을 몰랐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한껏 목소리를 낮춘 데보라가 작게 물었다.
그러나 윈터는 옅게 신음만 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분명 저택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아가씨가 갑자기 쓰러지니 당황스러운 것은 데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사색이 된 메이딜리언이 빠르게 행렬 맨 앞으로 갔다.
“아디엘 경.”
맨 앞에서 행렬을 살피고 있던 황실 제4기사단장, 아디엘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2황자의 친자 검사에 억지로 차출된 것 때문에 그녀의 태도는 영 불퉁했다.
원래라면 갑자기 행렬을 멈춘 메이딜리언에게 재빨리 가서 상황을 살펴야 했지만, 그런 직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메이딜리언은 그런 걸 하나하나 따져 물을 정신조차 없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영지가 어디지?”
“흐음, 그러니까…….”
황도를 벗어난 그들은 마침 갈림길 근처에 있었다.
“왼쪽으로 가시면 셀베리아,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시면 에른스트입니다.”
아디엘의 말에 메이딜리언이 흠칫했다.
마침 에른스트 근처라니.
굳이 윈터를 의심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아픈 타이밍이 너무도 적절했다.
마치 에른스트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괜한 심술이 돋아난 메이딜리언이 셀베리아로 향하자고 하려는 찰나, 데보라가 빠르게 달려왔다.
“저어, 딜런 님.”
“뭐지?”
“아가씨가, 에른스트로 가자고 하시는데요.”
“…….”
이번에는 확실하게 메이딜리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험악한 그의 표정에 움찔한 데보라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한숨을 푹 내쉰 메이딜리언이 다시 성큼성큼 윈터가 있는 마차로 향했다.
“아가씨.”
메이딜리언이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눈을 감고 거친 숨만 색색 내쉬고 있던 윈터가 반짝 시선을 들었다.
“메이.”
얼음처럼 서늘한 손가락이 메이딜리언을 붙들었다.
“에른스트로, 에른스트로 가…….”
대체 여기가 에른스트 근처인 건 어떻게 안 것인지.
혹시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듯한 윈터를 마주한 메이딜리언은 그런 시시한 질문은 금세 잔뜩 구겨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윈터는 무척 필사적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메이딜리언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다른 이들에게 명령했다.
“……에른스트로 가자.”
* * *
‘이 정도면 당분간은 괜찮겠지.’
심장에 새겨진 봉인을 점검해주며 아이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으름장을 놓던 얼굴.
‘명심해. 아무리 그래도 봉인만 믿고 날뛰다가는 그대로 골로 갈 테니까. 게다가…….’
드물게 표정이 어두워진 아이셀이 재차 경고했다.
‘잘못 폭주했다가는 너 하나 죽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진짜 조심해.’
윈터라고 매번 아이셀의 말을 안 듣고 무리하는 건 아니었다.
메이딜리언의 친자 검사라는 아주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윈터는 찬물도 가려가며 마셨다.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컨디션을 만들고자 얼마나 노력했는데.
맹세코 무리라곤 조금도 한 적 없었다.
그런데 고작 황궁에 갔다가 메이딜리언이랑 마차를 탄 상황의 어디가 무리란 말인가.
왜 갑자기 쓰러진 건지, 윈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깨어나지 않으시는 거지?”
“그, 그것이…….”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눈보다는 귀가 먼저 트였다.
몸이 무겁고 몽롱한 상황에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메이딜리언이라는 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문제는 전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에, 맞습니다. 마력이 조금 불안정한 것 말고는 전혀…….”
“하아. 그럼 그 마력이 왜 불안정한지부터 알아내야 하는 거 아닌가?”
드물게 한숨을 내쉰 메이딜리언이 살벌하게 되물었다.
그가 내뿜는 살기에 윈터마저 손이 저릿저릿해질 정도였다.
“워, 원래도 지병이 있으셨다고…….”
“최근에는 전혀 증상이 없었다.”
“그럼,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는 노인을 보던 메이딜리언이 작게 혀를 찼다.
“에른스트 영지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의원을 불렀다더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머저리를 데려왔군.”
그의 머릿속은 지금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황궁에서 제게로 걸어오는 윈터를 볼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봤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윈터의 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명백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제 감정만 앞선 애송이처럼 들떠서는 대답을 강요하고, 잔뜩 부담만 주었지.
그게 윈터의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자꾸만 걱정되었다.
“……젠장.”
주먹을 꽉 쥔 메이딜리언이 작게 욕을 짓씹었다.
가지고 싶던 윈터의 마음 한 자락 쥐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녀를 조금씩 죽어가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지독한 무력감이 메이딜리언을 휘감았다.
윈터가 쓰러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녀가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필사적인지 알 수 없었다.
허망한 공허. 자꾸만 울렁거리는 심장은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반드시 상태를 호전시켜라.”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애먼 의원에게 향했다.
난생처음 마주한 살기에 기겁한 의원이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고작 노력 가지고는 안 돼. 결과를 기대하지.”
기대한다는 말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의원은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으음.”
낮게 신음하던 윈터가 뒤척였다.
그 작은 기척에도 메이딜리언은 재빨리 그녀에게 몸을 돌렸다.
“으으, 메이……?”
“아가씨? 정신이 들어요?”
어쩌다 보니 윈터의 곁에 있던 의원은 그 순간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굶주린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던 남자가 순식간에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확연한 태도 변화에 방 안에 있던 이들이 숨죽여 시선을 교환했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괜찮은 거예요?”
“으응, 그러니까, 어…… 우욱…….”
느리게 눈을 깜박이던 윈터가 헛구역질을 했다.
여전히 지독한 현기증이 일었다.
메이딜리언과 의원은 동시에 휘청이는 그녀를 부축했다.
“……어?”
그런데 의원이 갑자기 멈칫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인지 그가 다시 한번 윈터의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고는 메이딜리언과 윈터를 번갈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산스럽기 짝이 없는 그의 움직임에 메이딜리언이 작게 인상을 썼다.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
“예, 그런데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어 말을 고르는 의원이 답답한 듯 메이딜리언이 재촉했다.
“대체 뭔데 그러는 거지?”
“아가씨가 아픈 원인이, 아무래도 메이딜리언 님 때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