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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43/150)

43화

분명 자신이 아스터를 맡고, 메이딜리언과 칸나를 밀어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상황은 원작과 비슷하게 두 청춘남녀의 풋풋한 만남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메이.”

“네, 아가씨.”

“너도 얼른 가서 같이 어울려.”

“전 아가씨랑 어울리고 싶은데요.”

불쑥 들어오는 말에 윈터가 움찔했다.

이놈의 최애가 자기 맘은 모르고 아무 데나 플러그를 꽂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 사이 칸나와 아스터는 착실하게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전 제 손이 부끄러운걸요.”

“아니, 왜요?”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안일하게 살아온 증거 같아서요.”

아마 황도를 구경하는 동안 아스터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적나라하게 받았던 것 같다.

황도에 익숙하기는커녕 과일이나 사소한 장식품의 시세도 제대로 모르는 걸 보며 눈치라곤 쥐뿔도 없는 칸나조차 고개를 갸웃하곤 했었다.

“그럴 리가요! 이건 아스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증거인걸요!”

시무룩한 표정의 아스터를 보던 칸나가 활짝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네?”

“당신이 조금이라도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아끼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손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그, 그런가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이 손으로 당신을 아껴준 사람들한테 그대로 베풀어주면 되니까요!”

마치 햇살 같은 따스한 말과 목소리에 아스터가 홀린 듯 칸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저렇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말에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윈터와 메이딜리언은 짜게 식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윈터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옆에 서 있는 메이딜리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칸나처럼 다른 사람하고도 두루두루 잘 어울려 봐.”

“흐음, 아가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뭐, 노력은 해 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윈터가 흐뭇하게 웃는 사이 칸나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풀어놓고 있었다.

“저도 처음엔 아스터가 어디서 몰래 탈출한 귀한 도련님 같다고 생각했다니까요! 하핫! 그만큼 아스터를 아끼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겠죠?”

“…….”

소 뒷걸음질로 쥐를 잡은 격이었다.

생각보다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어 본 칸나 덕분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삭막해졌다.

정곡을 찔린 아스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하고 있었다.

저렇게 눈에 띄게 당황해서야 긍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 저기 인형극 한다!”

“앗, 어디요?”

그런 그를 구한 것은 어김없이 윈터였다.

재빨리 주변을 살핀 윈터는 칸나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단순한 칸나는 당연히 그 외침에 낚여 아스터의 손을 놓고 와다다 뛰어갔다.

“휴우.”

간신히 위기를 넘긴 아스터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멀찍이서 관전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메이딜리언이었다.

아스터를 유심히 살피던 메이딜리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칸나! 같이 가…… 어?”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는 칸나를 따라가던 윈터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처음의 어색함은 어디 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메이딜리언과 아스터가 보였다.

비록 아직은 서로가 형제라는 건 모르고 있었지만.

메이딜리언이 뭐라고 말하자 아스터의 얼굴이 환해졌다.

윈터 또한 그 보기 좋은 모습을 감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 메이딜리언과의 대화를 마친 아스터가 윈터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어, 영애.”

“응?”

“제가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그 말에 윈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형극이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방방 뛰기 시작하는 칸나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스터가 그리 황도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어디 갈 데가 있어?”

“네. 인형극을 보고 계시면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황도를 제대로 구경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면서 대체 뭐지.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또 마냥 의심하기엔 아스터의 표정이 밝았다.

그러나 제 감을 믿는 윈터는 재차 물었다.

“같이 가줄까?”

“하하, 아뇨. 저 혼자도 충분히 갈 수 있답니다.”

비록 입은 웃고 있지만 황급히 손을 내젓는 아스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윈터가 동행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상대가 굳이 바라지도 않는데 부득불 따라붙을 생각까지는 없었던 윈터는 금세 포기했다.

“그래, 얼른 다녀와.”

“네, 그럴게요.”

혼잡한 인파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아스터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윈터가 곧 과하게 흥분하는 칸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스터도 성인인데, 황도에서 설마 길을 잃거나 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그것은 아주 크나큰 오산이었다.

“메이.”

“네, 아가씨.”

“어쩌지.”

“뭐가요?”

윈터가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누가 봐도 무척이나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아스터가 안 와.”

“흐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늦는 거 아닐까요?”

“아냐. 아무리 늦어도, 인형극이 다 끝나가는데도 안 오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

대체 어딜 가는 거냐고 집요하게 캐물어 보기라도 해야 했던 걸까?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스터를 어떻게 찾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와아!”

“진짜 재밌었다!”

“또 해줘요! 앵콜! 앵콜!”

마침 인형극이 끝났다.

박수 치며 환호하고 있는 칸나를 톡톡 두드린 윈터가 말했다.

“칸나, 아스터가 너무 늦어. 아무래도 불안해.”

“어? 아직도 안 왔어요?”

“응, 우리가 찾아보자.”

“네! 그래요!”

* * *

한편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아스터는 바쁘게 발을 놀렸다.

조금 전 딜런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가 작게 미소 지었다.

‘아가씨한테 꽃을 선물해 주고 싶은데, 도와줄래요?’

그의 아가씨라면 윈터를 말하는 것이겠지.

안 그래도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던 아스터였다.

그는 자신이 윈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윈터의 주의를 끌어주는 동안 그는 윈터를 위한 꽃을 사 오기로 했다.

칸나라는 아이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인형극에 열광하는 척을 하던데.

과연 그럴 정도로 윈터를 아끼는 거겠지.

역시나 윈터의 인품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아스터가 열심히 꽃을 파는 곳이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한 번 들은 건 잘 까먹지 않는 아스터였다.

그는 메이딜리언이 일러준 대로 사람들을 피해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어, 어라?”

끝내 방향을 잃기라도 한 건지, 처음 기대했던 꽃집과는 사뭇 다른 험악한 분위기의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때였다.

“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지나가실까. 응?”

“겁대가리를 상실하신 분이구먼?”

“귀족 나리, 여기론 지나다니면 안 된다고 안 배웠어?”

축제라고 마냥 즐거운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신경 줄이 느슨해진 틈을 타 악질적인 범죄들도 벌어지곤 했다.

특히나 이런 식으로 황도에 처음 온 뜨내기들의 금품을 갈취하는 불량배들이 많이 설치곤 했다.

“나, 나는 그러니까…….”

“긴말할 것 없고. 일단 가진 것부터 다 내놔 봐.”

뺨에 길쭉한 흉터가 난 남자가 씨익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스터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아스터를 보며 불량배들이 낄낄 웃었다.

그들은 익숙한 듯 아스터를 구석으로 몰며 거리를 좁혔다.

안타까운 사실은 아스터가 현재 탈탈 털어도 먼지 말곤 나올 게 없는 빈털터리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윈터에게 꽃을 사다 주겠다는 일념으로 일행들과 멀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꽃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물정에 어두웠다.

“난 가진 게 어, 없어요…….”

“어허. 왜 쓸데없는 반항을 부리고 그러실까.”

“지, 진짜…… 진짜인데.”

“쓰읍.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오늘 그 예쁜 얼굴에 내 거랑 똑같은 그림 하나 그려준다?”

“이야, 볼만하겠는데?”

툭툭 뺨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건성으로 잡아당기며 괴한들이 아스터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스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들은 금세 그가 정말 빈털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어, 얘 진짜 거진데요, 형님.”

“아이고, 너무 실망스럽다. 그렇지?”

“처, 처음부터 없다고 해, 했는데……,”

잔뜩 주눅 들어 꼬박꼬박 맞는 말만 하는 아스터는 어딘지 모르게 가학심을 자극했다.

괴한들은 어렵지 않게 그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럼 우리가 선물 하나 주고 가야겠네.”

“이야,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형님.”

어둠 속에서 칼날이 번뜩였다.

딱히 지시한 것도 아닌데 남자들이 아스터의 양팔을 잡아 고정시켰다.

“자, 가만히 있으라고, 형씨. 제대로 예쁘게 그림 한 번 그려줄 테니까.”

“시, 싫어. 싫어……!”

제 눈가를 향해 다가오는 칼을 보고 기겁한 아스터가 버둥거렸다.

그때였다.

“아스터!”

골목 입구에 나타난 것은 윈터였다.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흉기에 겁박당하고 있는 아스터의 상황을 발견한 윈터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두 번 경고하지 않는다. 당장 그 손 놔.”

물론 괴한들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칼을 들고 있던 남자는 윈터를 보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저런 검은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꼬마랑 엮였다가 끝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싫은데? 마침 구경꾼도 생겼으니 딱 좋네.”

그때 그 꼬마와 이 예쁘장한 형씨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남자에게 그런 논리적인 사고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저 아가씨를 원망하라고. 알겠지?”

이내 남자의 칼날이 아스터의 목을 노리고 그대로 쇄도했다.

“안 돼, 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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