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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150)

14화

* * *

학부모와의 만남을 마친 한타는 기분 좋게 공작가를 나섰다.

사흘이나 감옥에 구금되어 있던 일이 뭐가 대수냐는 듯 껄껄 웃는데, 아무래도 메이딜리언의 삼촌이 된 게 무척이나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한편 유스터스에게 업혀 다시 방으로 돌아온 윈터는 잔뜩 뿔이 난 상태였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메이딜리언과 격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별관에 있어서 가실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 애를 왜 그렇게 멀리 뒀냔 말이야!”

“사실 그동안 아가씨가 하도 아끼던 아이라 그 정도에서 그친 거예요. 아니었으면 벌써 내쫓겼을걸요.”

아이셀이 윈터가 사경을 헤매게 된 원인으로 메이딜리언을 지적했을 때 공작의 표정이 어찌나 살벌했던가.

그때를 떠올리며 나일라가 담담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된다는 걸 아시잖아요. 이번은 아가씨가 양보하세요.”

“나일라!”

“화내면 다시 열이 오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얼른 다시 누우세요.”

“하지만……!”

이차 성징 시기와 비슷하게 시작되는 마력 개화는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이어진다.

그 말은 이대로 두 사람이 헤어진다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왜냐하면 윈터 블라디미르는 성인이 되는 날, 마력 개화를 마친 그 순간 죽을 테니까.

“내가 어떻게 만난 메이인데!”

윈터가 바락바락 소리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난 사흘, 윈터는 수십 번도 넘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걸 옆에서 지켜봤던 공작과 사용인들은 윈터의 생떼를 받아주고 싶어도 받아줄 수 없었다.

메이딜리언과 만난다면 잠깐은 좋을 수도 있지만, 두 아이의 마력 파장은 결국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이다.

이번이야 어떻게 잘 넘겼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죽고 말테니까.

“……젠장!”

쾅쾅,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윈터가 방문을 걷어찼다.

그러나 발만 아플 뿐, 굳게 잠긴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일라의 말대로 슬슬 열이 오르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먹먹해지며 심장이 뻐근해져 오는 느낌에 윈터가 멈칫했다.

천천히 심호흡 하자 다행히 물에 잠긴 듯하던 귀는 트였다.

씩씩거리며 침대로 돌아간 윈터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줄곧 저기압인 윈터를 아이셀이 찾아왔다.

“상태는 어떠냐.”

“괜찮아요. 지금 당장 나가서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요.”

“침대에서 일어나고 나서야 그런 말을 하지 그러냐.”

이불에 파묻혀 아이셀을 빤히 보던 윈터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님.”

“왜.”

“대현자와 그 제자는 모든 원소의 마법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이 세계의 인간들은 개화한 마력을 각자의 재능에 맞게 변형하거나 또는 원소의 힘을 빌린 마법을 쓴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제니어스 제국에서 가장 흔한 것은 화염 계열 마법사였다.

그러나 대현자와 그 제자는 달랐다.

모든 원소의 마법을 능통하게 부리는 자.

타고난 마력량과는 상관없이 세계의 깨달음 한 자락을 얻은 자들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럼 이동 마법으로 저를…….”

“안 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셀이 단칼에 끊어냈다.

보나 마나 그 꼬맹이랑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이겠지.

지난 사흘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윈터를 돌봐야 했던 아이셀이었다. 이런 무리한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지.

입술을 삐죽이던 윈터가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머리까지 숨겼다.

그 깜찍한 모습을 보며 아이셀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 요망한 꼬맹이가 진짜.”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금세 모든 청을 들어주고 말았을 거였다.

물론 아이셀은 피도 눈물도 없는 마법사였다.

가볍게 혀를 찬 아이셀이 이내 주머니에서 작은 마도구 하나를 꺼내 침대 위로 던졌다.

“이거나 받아라.”

“…….”

미약한 무게감에 윈터의 금빛 눈이 이불 속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이리저리 굴러가는 커다란 눈동자를 보며 아이셀이 끌끌 혀를 찼다.

“하여간 철딱서니 없는 것.”

“이게 뭐예요……?”

“내가 개발한 통신석.”

그 말에 윈터의 눈이 커졌다.

“아직 실험 단계라서 오래 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얘기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거다.”

아이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윈터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설명하는 아이셀 또한 꽤 의외라고 생각했다.

통신석의 개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것뿐인데, 저 영악한 꼬맹이가 제 말을 다 알아듣고 있지 않은가.

윈터의 전생에 대해서 꿈에도 모르는 덕분에 생긴 작은 오해였다.

“하나는 별관에 있다.”

“와, 마법사님!”

이불에서 당장 튀어나온 윈터가 아이셀을 와락 끌어안았다.

품 안에 폭 안긴 따뜻한 체온에 아이셀은 반사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무겁다. 당장 저리 비켜라, 이 망아지야.”

“……비키라면서 왜 입은 웃고 있어요?”

“무, 뭐?”

윈터가 사악하게 웃으며 아이셀의 표정을 지적했다.

눈만 부리부리하게 뜨고 입은 웃음을 참느라 씰룩거리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은 놀리지 않고는 못 배길 만했다.

“흐응, 말로만 그렇지. 마법사님도 사실은 내가 좋구나?”

“시, 시끄럽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 통신석이나 써 봐라. 안 그래도 울보 꼬마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울보 꼬마라는 말에 윈터의 표정이 금세 낮게 가라앉았다.

“메이가 울었어요?”

그래,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제가 곧 죽을 거라는 것도 알고, 그걸 이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끝낸 영악한 꼬마가 아이셀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황도에 악명이 자자한 꼬맹이가 마치 제가 낳은 병아리라도 되는 것처럼 끼고 다니는 울보 꼬마도 수상하고.

그래서 아이셀은 평소의 저답지 않게 오지랖을 부리는 중이었다.

“마법사님, 이건 어떻게 쓰는 거예요?”

“마력을 불어넣어라. 단, 아주 신중하게.”

혹시라도 애써 가라앉혀둔 마력이 날뛸까 봐 아이셀이 경고했다.

그러나 이미 윈터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성급히 고개를 끄덕인 윈터가 통신석에 집중했다.

곧 통신석 위의 붉은 마석에 빛이 차오르며 짧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드디어 그립던 목소리가 통신석 너머에서 들려왔다.

감격스러운 마음에 윈터가 입을 틀어막았다가 황급히 외쳤다.

“메이! 나야!”

“[이제 괜찮으세요, 아가씨?]”

“응, 응! 당연하지! 하나도 안 아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윈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메이딜리언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메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는 목소리가 없어 윈터가 조심스레 메이딜리언을 불렀다.

혹시나 해서 통신석에 조금 더 강하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메이, 혹시 너 지금 울어……?”

“[아뇨, 그럴 리가요. 전 괜찮아요, 아가씨.]”

분명 아이셀은 메이딜리언이 울었다고 했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차분한 목소리였다.

윈터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메이딜리언이 말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응? 뭐가?”

“[그때, 마법사님이 하는 얘기 들었어요. 아가씨가 아픈 게 다 저 때문이라고…….]”

그 말에 윈터의 눈이 부리부리해졌다.

맞은편에 있던 아이셀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난 뒤로 왜 줄곧 메이딜리언을 보고 싶었는지, 메이딜리언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게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초조한 기분이 들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메이딜리언이라면 분명, 윈터 자신이 쓰러진 것이 제 탓이라며 자책하고 있을 테니까.

윈터는 메이딜리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안 그래도 상처뿐인 그 애에게 자신마저 트라우마로 남을 수는 없었다.

“메이. ……메이?”

“[……할 수만 있다면, 마력 같은 건 전부 없애버리고 싶어요.]”

통신석 너머에서 전해지는 어두운 기운에 윈터의 어깨가 흠칫했다.

메이딜리언을 만난 뒤로 그를 잘 먹이고 입히며 예뻐라 해줘서 간신히 밝게 만들어놨는데, 그새 다시 애가 우중충해지고 말았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메이. 이건 전혀 네 탓이 아니야.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내 말 좀 잠깐 들어 봐줘. 응?”

황급히 메이딜리언을 뜯어말린 윈터가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메이, 너는 미래에 아주 위대한 마법사가 될 거야.”

“[위대한, 마법사…….]”

“그래. 지금이랑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아주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메이딜리언의 미래를 상상하며 윈터가 미소 지었다.

“강한 마법사가 될 아이들은 개화하면서 발생하는 마력 파장도 아주 커. 내가 너랑 같이 있으면서 네 개화도 빨라진 거야. 그리고 네 개화는 다시 내게 영향을 준 거지.”

“[역시 제가 아가씨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거군요.]”

간신히 피어오르던 윈터의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대체 왜 생각이 거기로 튀는 거지? 만약 메이딜리언이 눈앞에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서라도 정신 차리라고 했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제 가슴을 퍽퍽 치며 윈터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마력에 좋고 나쁘고가 어디 있어. 그리고 네가 위대한 마법사가 될 거라는 것도, 곧 개화할 거라는 것도 난 다 알고 있었어.”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뜻밖에도 아이셀이었다.

꼬맹이들의 애절한 연애 놀음을 한가롭게 구경하던 아이셀의 눈이 커졌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내가 선택한 거야.”

세상의 마력들이 몸을 떨며 반응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붉은 통신석을 쥔 작은 아이가 선명한 금빛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메이. 우리는 꼭 만날 거야. 내가 얼른 나아서 너한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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