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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7/150)

7화

제 두꺼운 결계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아이셀이 윈터의 물음에 와락 인상을 썼다.

“어떻게냐니. 그것도 몰라?”

“전 개화를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어요.”

“끄응. 난 처음부터 알았는데.”

마법 무지렁이는 한 번도 가르쳐본 적 없는 천재가 난처한 듯 이마를 짚었다.

뭐 이딴 게 있나 싶어 어이가 없던 윈터가 물었다.

“마법사님은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나의 의지로. 원해서 만들었지.”

마치 ‘컵에 물을 따랐다’, 같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황당한 말이었다.

애초에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질 거였으면 지금 여태 이러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윈터는 아이셀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대현자의 제자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마법사니까.

“일단 해볼게요.”

한숨처럼 대답한 윈터가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아이셀이 했던 것처럼 왼손을 뻗었다.

‘의지, 의지로.’

윈터의 머릿속에 아이셀이 만들어낸 반구 모양이 떠오른다.

곧 그 단단한 결계에 폭탄이 떨어져서 쾅, 하고 거대한 구멍이 나는 상상을 했다.

생각만으로도 통쾌해져서 윈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기이한 감각이 윈터의 손끝을 간질였다.

천천히 눈을 뜨자 아지랑이와 같은 금빛 마력이 윈터의 손에 천천히 어리고 있었다.

“……맙소사.”

“봐라. 하면 되지 않느냐.”

놀란 윈터를 보며 아이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옆에서 모호한 말 한마디 던진 거 말고는 한 것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저 밴댕이 소갈딱지가 삐칠지 몰라 윈터는 말을 아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결계를 부수고 싶다고 생각한 윈터를 칭찬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손끝에 맺히는 금빛 마력들이 점점 우글우글 커지고 있었다.

줄곧 의기양양한 얼굴이던 아이셀이 뒤늦게 그것을 발견하고는 윈터의 손목을 잡았다.

“어, 너 잠깐…….”

그러나 그 순간 윈터의 손에서 뭉친 마력이 그대로 쏘아졌다.

이내 콰앙! 하는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 * *

“으음…….”

윈터가 작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분명 아이셀과 함께 마력 측정 같은 걸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침대 위였다.

시간도 꽤 지난 것인지 창밖이 어둑했다.

“쯧, 깼냐?”

흐릿한 시야를 뚫고 누군가 퉁명스레 물었다. 침대맡에 앉아 있던 아이셀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에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마법사님이 왜 여기에…….”

“네 마력이 폭발해서 응접실이 날아갔다.”

“……예?”

윈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응접실이 날아갔다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응접실 근처에 있었을지 모를 메이딜리언이었다.

알게 모르게 메이딜리언이 자신의 주위를 맴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 죽은 사람은…….”

“없어. 다친 사람도 없고.”

“아하.”

다행히 그녀의 최애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던 윈터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물었다.

“그런데 마법사님 결계가 막아주는 거 아니었나요?”

“…….”

“어떻게 응접실이 날아갔지?”

“…….”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아이셀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커흐흠.”

시선을 피한 채 헛기침만 하는 아이셀을 가만히 보던 윈터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제 마력은 어떤가요? 전 얼마나 살 수 있죠?”

이미 끝을 알고 있으면서, 윈터는 그렇게 물었다. 이 상황에 궁금해할 만한 게 그것 말고는 딱히 없을 테니까.

윈터의 질문에 아이셀이 자세를 달리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무거운 표정으로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우선 결과만 말하자면 너는 마나의 축복을 받았어.”

“……아, 그래요?”

“그래. 온 세계의 마나가 네 의지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렁이더구나. 그런 광경은 난생처음이었지. 그것은 마법사로서 대단한 축복이다. 하지만…….”

“…….”

“네게는 저주나 다름없지.”

축복이자 저주. 그 양면적인 대답에 윈터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이셀은 저주라고 말했지만 윈터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메이딜리언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거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윈터가 아이셀에게 되물었다.

“제 몸이 너무 약해서요?”

“그래. 금이 간 유리잔 안에 바다를 담는 것과 같다. 네 몸은 얼마 못 버틸 거야.”

“그렇군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윈터의 모습에 오히려 아이셀이 움찔했다.

공작가의 망나니다 뭐다 해서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는데, 망나니는 무슨. 꼭 애늙은이 같았다.

금빛 눈동자 안에 들어 있는 기이한 열망은 여전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의지도 없으면서, 저 녀석은 대체 뭘 바라보고 있는 거지?

괜히 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아이셀이 의무적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선 마력을 누르는 주술과 약을 처방해주겠다. 상태를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네.”

결국 주술이랑 약이네. 과정은 좀 달랐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열여덟에 죽더라도 아이셀의 힘을 빌려 조금 편하게 버텨볼까 하던 윈터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아이셀이 떠난 뒤로 마력을 다스리지 못해 시도 때도 없이 폭주가 일어나고, 쓰러지고, 피를 토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작의 윈터는 그럴 때마다 제 화를 메이딜리언에게 풀곤 했었고.

물론 이번엔 그렇지 않겠지만.

몸에 제약이 생긴다는 건 활동에도 지장이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이딜리언을 위해 움직이려면 일분일초가 촉박한데.

윈터의 마음이 괜스레 초조해졌다. 그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아이셀이 서툴게 말을 건넸다.

“너,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라. 내가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더 알아볼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물론 윈터는 아이셀의 말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곧 아이셀이 떠나고 윈터 홀로 남았다.

“……지금이라도 어머니한테 얘기해서 돈이라도 아끼시라고 할까.”

아이셀이 한 번에 처방하는 약값만 해도 일반 평민의 1년 치 생활비와 맞먹었다.

아무리 제국 절반의 황금을 지녔다고 알려진 블라디미르 공작가라고 하지만, 그만큼 천문학적인 약값이 지속적으로 나간다면 분명 부담이 될 것이었다.

복잡한 머리를 애써 헝클어뜨리며 윈터가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우울한 기분은 며칠이 지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나마 주술과 약이 꽤 도움이 되었는지 전처럼 심장이 뻐근하거나 이명이 생기는 일이 줄었다.

제 마력으로 인해 뻥 뚫린 응접실을 구경하던 윈터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섰다.

윈터의 지시에 따라 메이딜리언은 오전에 기사들의 훈련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검술 교습을 받게 되었다.

스승은 바로 유스터스 행어. 일전에 타이그의 손목을 앗아간 바로 그 기사였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윈터는 제가 기억하는 흐름과 비슷하게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원작처럼 유스터스는 메이딜리언의 스승이 되었다.

그때 윈터를 발견한 메이딜리언의 표정이 밝아졌다.

곧 그가 유스터스에게 뭔가를 말하더니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아가씨!”

검술을 배우면서 메이딜리언은 부쩍 몸이 단단해졌다.

처음엔 저보다 작더니 어느새 눈높이가 맞아가는 메이딜리언을 보며 윈터는 괜히 제가 뿌듯해졌다.

“안녕, 메이.”

“얼마 전에 또 쓰러지셨다고 하던데. 오늘은 괜찮으세요?”

“그럼. 당연하지.”

윈터가 싱긋 웃었다. 바람이 불며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슬쩍 윈터의 시선을 피한 메이딜리언이 말했다.

“자, 잠시만 여기 계세요.”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간 메이딜리언이 곧 담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몸이 안 좋은 윈터에게 찬 바람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 모양이었다.

“조금 답답하시겠지만 이렇게 하고 있으세요.”

목까지 담요로 꼼꼼하게 감싸주며 메이딜리언이 말했다. 그 모습이 기특한 듯 윈터가 낮게 웃었다.

“고마워.”

“그, 그리고…….”

“응?”

“그리고 좀 더 괜찮아지시면 저랑 또 연무장 같이 달려요.”

그 말에 윈터의 미소가 짙어졌다. 애정을 참지 못하고 윈터가 사랑스러운 메이딜리언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 아가씨!”

놀란 메이딜리언이 기겁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그러나 윈터가 다칠까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얌전히 있었다.

얼마 안 가 윈터가 메이딜리언을 풀어줬다.

“메이, 혹시 이따가 훈련 끝나고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네! 그럴게요!”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면서 메이딜리언이 덥석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두 꼬마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다 못한 유스터스가 다가왔다.

“아가씨. 애꿎은 꼬맹이는 그만 희롱하시고 보내주시죠.”

“참나. 희롱이라니.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연애 놀음이라고 해드릴까요?”

“행어 경, 그게 지금 열 살한테 할 소리야?”

“그러게요. 이상하게 요즘 아가씨는 평범한 꼬맹이처럼 안 보여서요.”

늘 의욕 없이 나른하던 유스터스의 눈동자가 일순 예리하게 빛났다.

그 시선을 슬쩍 피한 윈터가 중얼거렸다.

“……뭐래.”

“어떤 열 살이 멀쩡한 저택을 저렇게 해둔 답니까?”

시커먼 구멍이 생긴 공작저를 가리키며 유스터스가 픽 웃었다.

“누가 저렇게 될 줄 알았나.”

작게 꿍얼거리는 윈터를 보던 유스터스는 그새 흘러내린 담요를 다시 여며주고는 꼬마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흩트렸다.

“얼른 나아서 또 사고 한 번 크게 치셔야죠.”

“안 그래도 그럴 거야.”

고개를 숙인 유스터스가 작게 덧붙였다.

“맘에 안 드는 놈 손목도 미리 골라두시고요.”

그 말에 윈터도 버릇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그건 좀 끌리는데.”

“저, 기, 기사님!”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메이딜리언이 유스터스를 불렀다.

그러고는 어설프게 잡은 목검을 휘두르며 고개를 갸웃한다.

“정면 베기가 이렇게 하는 거였던 가요?”

그 말에 메이딜리언을 내려다보던 유스터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가 영 엉망인데. 그동안 배운 건 다 어떻게 된 거야? 다시 해봐.”

이윽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몇 번이고 다시 알려줘도 메이딜리언은 정면 베기 자세를 잘 잡지 못했다.

“아아, 습득력도 빠른 녀석이 오늘따라 별일이네.”

그런 메이딜리언을 보며 유스터스가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아무래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가 싶은 윈터가 시선을 돌렸다.

작은 손가방에서 잘 접은 편지지를 꺼낸 윈터가 곧 공작가의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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