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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150)

3화

얼마 전부터 두 꼬마는 아침마다 연무장을 돌며 체력을 기른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차라리 집에서 편하게 요양이나 했으면 싶었지만 다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윈터를 가여워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하, 하지만 이러다가는…….”

아가씨가 곧 죽을 것 같은데요.

차마 입 안에 있는 말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메이딜리언이 우물쭈물했다.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윈터가 금세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걱정하지 마, 메이. 사람은 이 정도로 쉽게 죽지 않는단다. 넌 나중에 크면 아주 튼튼하고 훌륭한 미남이 되어 있을 거야.”

설마 메이딜리언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대상이 자신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런…… 가요?”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어하는 꼴을 보아하니 메이딜리언 또한 딱히 윈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하, 한 바퀴만…… 더 돌, 까요?”

“좋아. 아주 좋은 자세야!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내기……, 아!”

보기 드문 메이딜리언의 제안에 신이 난 윈터가 앞서 달리다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 아가씨!”

다행히 메이딜리언이 휘청이는 윈터를 잡아준 덕분에 불상사는 면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짜증 나.”

머리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못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를 악문 윈터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기민하게 그녀를 살피던 메이딜리언이 그늘진 나무 아래로 조심스레 윈터를 이끌며 작게 말했다.

“대, 대신에…… 제가, 아가씨 것까지 하, 할게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윈터가 금세 다시 미소 지었다.

“네가 내 몫까지 뛰겠다고?”

까르르 웃으며 묻는 말에 괜스레 부끄러워진 메이딜리언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윈터는 가만히 제 심장에 손을 올려보았다.

뛰는 것 자체가 벅차기라도 한 것처럼 조급하게 박동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이 세계의 사람들 중 일부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개화’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력 각성이다.

이때 각성한 마력의 성질과 레벨에 따라 마법사의 등급을 설정한다.

윈터로 말하자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마력으로 대마법사의 자질을 지녔다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의 심장은 그만한 마력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이제 막 각성한 마력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심해 쓰러지지 않았는가. 성년이 되어 완전한 개화를 마친다면 그녀의 심장은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릴 것이었다.

그것이 윈터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유였다.

마력 각성은 이차 성징 시기와도 비슷하게 맞물렸는데, 주위에 마력을 각성하는 아이가 있으면 더 가속화되기도 한다.

개화하며 일어나는 마력 각성의 파장은 윈터처럼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마력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블라미디르 공작이 사촌 알버트에게 근신령을 내려 지방으로 쫓아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딸 근처에서 마력 안정화가 되지 않은 이들은 모두 치워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단 한 명, 공작이 염두에 두지 못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메이딜리언이었다.

이 세계에서 윈터 다음으로 거대한 마력을 각성할 남자.

아마 윈터 덕분에 메이딜리언 또한 예정보다 일찍 마력을 각성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전부 알렸다가는 당장 공작에 의해 생이별을 할 수 있으니 윈터는 우선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아가씨.”

윈터는 나무 아래 앉아 열심히 달리는 메이딜리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녹색 눈의 하녀 하나가 다가왔다.

“안녕, 나일라.”

나일라는 어릴 적부터 윈터를 돌봐온 하녀였다. 부업으로는 암살자로 활동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공작가의 비밀 호위대 대장까지 맡고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 여기선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 넘어가겠다.

“휴가는 어땠어?”

공작이 내린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나일라는 휴가를 명목으로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주 가끔 상처를 달고 올 때도 있는데 다행히 이번엔 별달리 아픈 곳은 없어 보였다.

“아주 즐거웠답니다.”

“흐응, 그렇구나.”

“아가씨는 제가 없는 사이에 새 친구를 사귀셨더군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윈터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일라는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 서늘하면서도 안온한 배려에 윈터는 기분 좋게 웃었다.

“맞아. 좋겠지?”

“네, 그러게요. 마구간지기의 아들이라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부셨어요?”

“그냥.”

자기 몫까지 뛰겠다더니, 메이딜리언은 정말 성실하게 달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햇빛을 담뿍 받아 빛났다. 눈동자는 때늦게 핀 작약처럼 붉었다.

그동안 잘 먹이고 잘 입힌 덕분에 혈색이 한층 더 좋아졌다. 얼룩덜룩 몸을 수놓았던 멍들도 대부분 옅어졌다.

가슴을 활짝 펴고 자유롭게 달리는 메이딜리언을 보며 윈터가 웃었다.

“내가 잘 키워보려고, 저 애를.”

* * *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집무실.

창밖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블라디미르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리고 집사가 들어왔다. 메이딜리언은 집사의 뒤로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따라 걸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겁쟁이 꼬마라서, 공작은 작게 혀를 찼다.

그 미약한 소리에도 메이딜리언의 어깨가 흠칫 튀었다.

“자네는 이만 나가보게.”

“예, 알겠습니다.”

공작의 말에 집사가 부복하고는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졸지에 공작과 단둘이 남게 된 메이딜리언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잘게 몸을 떨었다.

검은 머리카락. 금빛 눈동자. 푸른 달 아래 홀로 외로운 늑대처럼 공작에게서는 야성이 느껴졌다.

윈터 아가씨도 똑같은 머리카락에 똑같은 눈동자지만 온통 보드라운 천사 같은데. 도무지 아가씨의 엄마처럼은 안 보인다고 메이딜리언은 생각했다.

“이름이 뭐냐.”

메이딜리언의 생각은 까맣게 모른 채, 공작이 낮게 물었다.

“메, 메이딜리언입니다.”

“메이딜리언이라……. 고작 마구간지기 아들의 이름으로는 과분하군.”

비죽 웃은 공작의 말에 메이딜리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이딜리언이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지만, 워낙 어릴 때 헤어진 터라 어머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기억도 없었다.

애초에 메이딜리언은 제 이름에 별다른 애착이 없었다.

“내 딸이 너를 꽤 아낀다던데.”

그런데 공작이 윈터를 언급하자 메이딜리언의 눈빛이 달라졌다.

집무실에 온 뒤로 줄곧 포식자 앞에 숨죽인 소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더니, 묘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시선을 맞췄다.

그걸 알아차린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아이는 아프다. 알고 있느냐?”

메이딜리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윗사람에게 그리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도 공작은 목소리를 내어 제대로 대답하는 강단 있는 인간을 더 선호했다.

그런데 이런 피죽도 제대로 못 얻어먹은 듯 비리비리한 놈을 대체 윈터가 왜 싸고도는지.

공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온통 못마땅한 것뿐인 메이딜리언을 쫓아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공작이 살기를 뿜어냈다.

“만약 오래 살지도 못하는 내 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너 또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기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메이딜리언을 보며 공작이 코웃음을 쳤다.

“앞으로 내 너를 지켜보겠다. 그만 나가보아라.”

메이딜리언은 후들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공작의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뒤 공작이 집사를 불러 말했다.

“꼴이 비루먹은 노새나 다름없더군. 이래서야 내 딸 옆에 두기 영 볼품없지 않겠는가.”

“신경 쓰겠습니다, 각하.”

충직한 집사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그 뒤로도 윈터는 줄곧 어디든지 메이딜리언을 대동하고 다녔다.

공작가의 귀한 아가씨와 함께하다 보니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보는 것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덕분에 또래 아이보다도 한참 작고 말랐던 메이딜리언은 쑥쑥 자랐고 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게다가 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아가씨.”

“응?”

“왜 식사 안 하시고 제 얼굴만 보세요?”

종일 붙어서 말을 시키고 책도 읽고 하다 보니 메이의 어휘력이 쑥쑥 늘었다. 이제 심하게 당황하는 게 아니면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그 변화에 공작가의 사용인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반들반들 잘 관리된 머리카락과 깨끗한 피부, 그리고 깔끔한 손과 손톱까지.

멍들고 꼬질꼬질했던 꼬마는 어느새 반짝이는 은발과 장미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인형 같은 남자아이로 탈바꿈했다.

“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거든.”

윈터가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갑작스레 꽂힌 돌직구에 메이딜리언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며 깔깔 웃은 윈터가 곧 웃음기를 갈무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메이.”

“네?”

“뭐 가지고 싶은 건 없니?”

그 말에 슬그머니 메이딜리언이 스푼을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없어요. 저, 전혀 없어요.”

누가 봐도 크게 당황한 모습에 윈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가지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을 못 하는 건가?

“그러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아, 아니에요! 저는 피, 필요한 거 없어요.”

“흐응, 그래? 뭐, 알겠어.”

싱긋 웃은 윈터가 살벌한 얼굴로 고기를 썰었다. 필요한 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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