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저, 아가씨. 메이딜…… 그게 누구예요?”
난데없는 지시에 커튼을 정리하던 하녀가 순진한 눈을 슴벅이며 물었다.
컨디션이 저조한 윈터는 금세 짜증이 올라왔다.
이 사람들이 진짜. 여태 내 소중한 최애도 모르고 뭐 한 거야?
“메이! 몰라? 3번 마사를 관리하는 마구간지기의 아들 말이야.”
당연히 몰랐다. 이 거대한 공작성에서 사람들 시선을 피해 숨어다니는 꼬맹이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다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3번 마사라면, 으음…….”
하녀, 신디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옆에 있던 다른 하녀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슬쩍 물었다.
“그 말종한테 아들이 있었어?”
“글쎄. 아, 혹시 그 더러운 꼬맹이를 말씀하시는 건가?”
“……꼬맹이?”
“그래. 가끔 3번 마사를 청소하던 비쩍 마른 애 말이야.”
“아아!”
그제야 신디가 생각난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걔를 왜…….”
거기까지 말한 하녀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윈터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가 쓰러지기 전에 알버트 도련님 말고 다른 꼬마도 있지 않았나? 그게 설마 그 마구간지기 아들인가……?’
하녀들이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촌인 알버트는 이번 일로 근신령을 받았으나 옆에서 싸움에 휘말린 꼬맹이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아니시지. 집요하기로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분이 아니던가.
하녀들은 윈터가 그 안쓰러운 마구간지기의 아들을 더 가엽고 불행하게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언제까지 거기서 꾸물거리고 있을 거야?”
속닥거리는 하녀들을 보며 윈터가 바락 외쳤다.
“네! 그, 금방 다녀올게요!”
화들짝 놀란 신디가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공작성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메이딜리언을 어렵사리 찾아낸 그녀는, 곧 이게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가씨에게 데려가기엔 마구간지기의 아들이 너무 더럽고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어후, 이대로 데려갔다간 없던 병도 옮겠어.”
결국 하녀들은 영문도 모르고 벌벌 떠는 메이딜리언을 데려다가 박박 씻기고 멀끔한 옷까지 입혀서 간신히 사람 꼴로 만들어 놨다.
신디는 메이딜리언을 씻기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잿빛인 줄 알았던 머리가 은발인 것부터 충격이었는데, 애가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해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오늘 시체 치우는 거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신디가 아이에게 몇 가지 주의를 시켰다.
“가면 공손하게 인사부터 드리렴. 아가씨는 지금 많이 아프셔서 아주 예민하시니까 함부로 심기 거스르는 일 없도록 하고. 알겠니?”
물론 윈터는 아프지 않을 때도 꾸준히 예민했다.
“예, 예에…….”
“그리고 또 아가씨께서는, 으음.”
뭔가를 더 말하려던 신디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아이를 씻기느라 시간을 많이 소요했는데 여기서 더 늦어졌다가는 아가씨의 얼마 없는 인내심이 뚝 끊어질 것 같았다.
“……아니, 아니다.”
어차피 이 꼬마가 인사 외에 아가씨와 더 얘기를 나눌 일도 없을 것이다.
제 발로 그 방에서 나올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한숨을 푹 내쉰 신디가 메이딜리언을 앞세워 윈터의 방 앞까지 도착했다.
“아가씨, 꼬마를 데려왔습니다.”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 윈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디와 메이딜리언의 어깨가 동시에 흠칫 떨렸다.
곧 지옥의 입구처럼 문이 열렸다.
“부,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안녕.”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느슨하게 앉아 있던 윈터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금빛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메이는 여기 앉고 나머지는 다 나가.”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린 윈터가 하녀들을 모두 물렸다. 곧 매타작이 벌어질 거라 생각한 하녀들은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드디어 두 사람만이 남았다.
방해꾼들이 모두 사라지자 윈터는 여유롭게 메이를 살폈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은 조금 길고 덥수룩하긴 했지만 촉촉했다.
잘 빗어서 넘긴 덕분에 반들반들 잘생긴 이마가 드러났다. 유일한 오점이라면 그 위에 있는 시퍼런 피멍 정도랄까.
잔뜩 주눅이 들어 시선을 못 마주치는 메이딜리언을 보며 윈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씻기고 입혀서 말끔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아도 메이딜리언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옷으로도 채 가려지지 않는 무수한 상처들이 이 작은 몸에 가득했다.
이 시기의 메이네임택·픽스딜리언은 말이 어눌했다.
곳곳에 보이는 얼룩덜룩 누렇고 퍼런 멍들은 비단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폭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처 아물지 못한 생채기와 흉터들을 응시하던 윈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너 이마는 괜찮…….”
“자, 잘못했어요!”
윈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메이딜리언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머리를 감싼 마른 손등이 덜덜 떨렸다.
윈터는 순간적으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제, 제가 잘못…… 잘못했어요. 아, 아가씨 가…시는 길에…… 막 있어서……. 어…….”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시기의 메이딜리언은 말이 어눌했다. 마음이 급해지면 심하게 더듬기도 했다.
누구도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은 탓이었다.
평생 들은 말이라고는 욕설이 대부분이었으니 이 환경에서 멀쩡히 말할 수 있다면 그게 기적이었겠지.
“메이.”
“죄, 송해요. 죄송……해요. 제, 제가 감히 아, 아가씨, 나…… 때문에 아픈, 아프다, 고…….”
아무래도 메이딜리언은 윈터가 아픈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빌미를 잡고 본인을 괴롭히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단 메이딜리언 뿐만 아니라 아마 공작성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런 예상이 쉽게 들 만큼 이곳은 폭력과 악의로 가득했다.
메이딜리언은 이미 충분히 불행했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떠는 몸과 일그러지는 눈동자는 너무 처절하고 숨이 막혀서 차라리 시선을 돌려 못 본 척하고 싶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윈터에게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메이딜리언의 삶에서 폭력과 강압을 지우고, 오롯이 잘 닦인 길만을 걷게 해줄 힘.
뻗었던 손을 뒤로 물리고, 윈터는 메이딜리언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메이.”
“자, 잘못, 했…… 잘못했어요……. 죄송, 해요. 제, 제발……”
“메이.”
그리고 메이딜리언이 진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정신없이 용서를 빌던 메이딜리언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향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시선에 메이딜리언의 입가가 헤 풀어졌다.
놀라서 동그랗게 뜬 붉은 눈을 보며 윈터는 더 깊게 미소 지었다.
지금의 메이딜리언은 너무 작고 연약해서, 꼭 어린 눈 토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윈터는 다시 한번 아주 조심스럽게 메이딜리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머리 위로 올라오는 손은 너무 무서워했기 때문에, 메이딜리언이 충분히 주시할 수 있을 만큼 손의 움직임이 느렸다.
“메이.”
그리고 윈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네.”
멍하니 윈터의 하얀 손을 바라보고 있던 메이딜리언이 뒤늦게 대답했다.
“우리, 친구 할래?”
마침내 방긋 웃는 얼굴로 윈터가 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메이딜리언의 표정은 다시 공포로 가득 찼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온 귀족들도 결국은 친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제 기분에 따라 때리고 짓밟고 했으니까.
“아, 알겠…… 알겠어요. 가, 감사합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만 주억거리는 메이딜리언을 보며 윈터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작은 머리통에 들어 있을 끔찍한 생각들은 전부 털어버리고, 우선 친구가 어떤 것인지부터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흐뭇하게 웃던 윈터의 표정이 갑자기 서늘하게 굳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이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윽.”
“아, 아가씨?”
머리가 핑 돌며 귀에서 삐―이명이 울렸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온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발끝부터 불에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졌다.
비틀거리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윈터를 엉겁결에 받아낸 메이딜리언이 기겁했다.
고통에 이를 악문 윈터는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침대에 나와서 얼마나 있었다고. 날뛰는 마력에 심장이 견디지 못했다.
“아, 아가씨! 아가씨……!”
당황한 메이딜리언이 윈터를 일으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팔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약했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체력부터 길러야겠다고,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윈터는 생각했다.
* * *
아가씨가 이상해졌다.
최근 블라디미르 공작가의 사용인들 사이에서 도는 말이었다.
얼마 전에 갑작스러운 마력 폭주를 일으키며 시한부를 선고받더니, 최근에는 마구간지기 아들이랑 어울린다나.
종잡을 수 없는 열 살짜리의 행동에 공작가의 사용인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저러다가 또 무슨 큰일 나는 거 아니겠지?”
“흐음, 그렇다기엔 딱히 사고라고 할 만한 게 없지 않았어?”
“그건 또 그렇지…….”
사고는커녕 요즘 윈터는 전에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얌전한 어린아이가 되었다.
하루 세 번 건강식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었으며 체력을 보강해준다는 쓰디쓴 약도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게다가 책도 읽고, 운동도 했다.
그 모든 걸 마구간지기의 아들과 한다는 게 작은 특이사항이긴 했지만.
더없이 훌륭한 어린이의 모습에 사용인들은 기쁘면서도 불안했다.
저 작은 악마가 저럴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헉, 헉……. 아, 아가씨, 전 더는 모, 못 뛰어요…….”
메이딜리언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요즘 들어 온종일 윈터와 붙어 있으면서 이리저리 대화한 덕분인지 쓰는 어휘도 부쩍 늘었고, 어눌하던 발음이나 말을 더듬던 습관 같은 것이 좀 나아진 편이었다.
“무슨 소리야, 메이. 근 손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
옆에서 같이 뛰던 윈터가 메이딜리언을 다그쳤다. 그러는 본인의 얼굴도 창백한 데다 다리까지 후들거리고 있었다. 입술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