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43화 (43/44)



〈 43화 〉43화

“오늘 이후로, 나는 백작이 알테온에게 더 신임을 받도록 지원할거예요.”
“전 어머님의 지원을 받아서 훗날 알테온의 뒤통수를 치면 되는 겁니까.”
“네.”

아멜리아는 화사하게 웃었다.
나도 바라던 바이기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아멜리아는 희소식을 하나 더 전해주었다.

“백작이 알카드를 내칠 때 내가 도움을 주겠어요. 그러면 알테온의 신임을 더 받을 수 있겠죠.”
“위장이군요.”
“맞아요. 놈은 의심이 많으니까요.”

내 생각에 알테온은 나를 꽤 신임하고 있다.
내가 알카드와 알력싸움을 할 때 고민을 해볼 정도는  거다.

‘아카데미의 효율성. 거기에 황비가 나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면, 나한테 더 마음이 기울수가 있겠어.’

곧바로 황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알테온은 황비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알카드와 다툴 때 보험이 하나 생겼어. 이러면 알카드는 전혀 신경  필요가 없겠네.’

무려 제국의 안주인이다. 전도유망한 공작가문의 딸이기도 하다. 자녀인 크리스를 중심으로 뭉친 귀족들의 수도 꽤 있다.

알테온이 굳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알카드를 감쌀 이유가 없다. 차라리 기회로 삼고 나를 품에 더 끌어들이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백작이 폐하께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리엘라를 쳐다보며) 흥미로워요.”
“제 생각이 아니에요.”

리엘라가 고개를 젓자, 아멜리아는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
“그렇군요.”
“알테온은 저와 대립각을 세우며 아카데미의 권력을 자연스럽게 나눌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블레앙 후작도 아카데미에 힘을 보탤 예정이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폐하는 알테온에게 힘을 보태줄 가능성이 커요. 크리스가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 같네요. 그 자리는 대공이 차지할 테니까.”

아멜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녀가 나를 진득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무언의 믿음에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황비전하의 편입니다.”
“내가 백작을 믿어도 되겠어요?”

아멜리아가 짓궂게 웃었다.
손을 잡기로 했지만 100% 신뢰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나도 그녀도 서로 확신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근거를 주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약점을 내어주는 건 너무 손해야.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데....’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에, 리엘라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할아버지와  남편의 만남을 주선해주세요.”
“음...”

아멜리아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나는 리엘라의 말에 요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내가 답을 찾아보기 전에 리엘라의 입이 열렸다.

“할아버지가 오라버니를 확실하게 지지할 수 있도록 설득해볼게요.”
“그게 정말이니?”
“네. 그래야 승산이  커지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근심도 하나 해결 되고요.”

리엘라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나는 프리시아 공작을 떠올렸다. 제국 전역의 상권을 다투는  번째로 부유한 귀족가문. 아쉽게도 대공에게 약간 밀려서 그렇다.

‘프리시아 공작이 크리스를 완전히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항의하는 뜻을 담아서 리엘라를 쳐다보았다. 리엘라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아멜리아가 리엘라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작은 몰랐던 모양이구나.”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리엘라를 누구보다 믿는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멜리아가 나를 보며 말했다.

“백작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연히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습니다. 다만, 알테온이 이를 알게 되면 의심이 짙어질까봐 걱정이네요.”

내부 사정이야 어떻던, 프리시아 공작은 2황자의 중요한 거목이다. 내가 공작과 만난 사실을 알테온이 알면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멜리아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그 정도로 힘이 없지는 않아요. 알테온의 첩자는 이미 전부 파악하고 있답니다. 백작은 조심성이 많아서 참 마음에 드네요.”
“그러면 최선을 다해 설득하겠습니다.”

아멜리아가 내 목소리에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귀찮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프리시아 공작을 설득하는 게 그 일이다.

 부분은 리엘라의 도움을 잔뜩 받아야겠다. 덕분에 할 일이 늘어난 거니까.

“따로 내가 백작을 도울 일은 없나요?”

아멜리아의 나긋한 목소리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로아나의 복귀... 황비가 그 일을 해줄 수 있나?’

아직 로아나의 소식은 국경에 머물러있다. 당연히 내게는 로아나를 부를 명분이 없다. 직접 국경에  명분 또한 마찬가지다.

아멜리아라면 이걸 해결해 줄 힘이 있을까.

나는 아멜리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다.

우선 보류하기로 하자.

“아직은 없습니다. 우선 공작각하를 설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언제든 생각나면 내게 기별을 넣으세요.”

아멜리아가 찻잔을 내려놓고 이어서 말했다.

“백작은 앞으로 알테온에게 이중첩자 노릇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세요.”
“믿고 맡겨만 주시죠.”
“앞으로 백작과 더 좋은 사이가 되길 바랄게요.”

아멜리아의 말을 끝으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로 모녀간의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간간히 맞장구를 쳤다.

 시간이 더 지났을 즈음, 아멜리아의 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결혼식 때와 달리 황비와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아멜리아는 내가 2황자에게 도움이 된 다고 판단한 걸 넘어서 쓸 만하다 여기게 됐다.

‘조금 지치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또 한고비를 넘긴 건가. 리엘라가  등을 살포시 두드렸다.

“고생했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해줬어요.”

리엘라는 말하고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속에서 기쁨이 무럭무럭 솟았지만 티내지 않고 말했다.

“프리시아 공작이 2황자를 완전히 지지하지 않았다는  처음 알아서 놀랐어.”

가볍게 얘기하듯 말해도 리엘라는 숨겨진 불만을 알아차릴 거다. 예상대로 리엘라는 난처한  웃어보였다.

“말을  한건 미안해요.”
“응? 아니야. 누가 뭐 삐졌대?”
“그럼 다행이고요.”

리엘라의 새침거리는 얼굴에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이게 아닌데. 당황스러운 찰나에, 리엘라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삐졌네요?”
“조, 조금?”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젠장.

방금은 존나 찐따 같았다. 왜 리엘라만 관여되면 마음이 약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비즈니스로 시작된 관계. 지금에서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리엘라가 점점 호감으로 느껴지니까. 반대로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섭섭한 건가.’

리엘라는 내 손을 잡아서 가슴 부근으로 은근히 이끌며 말했다.

“가슴 만질래요?”
“뭐?”
“왜 그렇게 놀라요? 하루 이틀 만진 것도 아니면서.  때도 매일 만지고 있잖아요?”
“아, 아니. 조금 당황스럽네. 하하...”
“그래요? 남편이 삐지면 풀어주는 방법이라 들었는데.”
“그거 유행 한참 지난거야.”

아마 10년은 되지 않았나 싶다. 리엘라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어머니를 직접 만나보니 어땠나요.”
“느낌 말하는 거지?”
“네.”

직접  황비는 미친 여자였다. 다른 표현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조금 미친  같았어. 어머님은 정말로 대공과 손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뭐, 나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정확히 봤네요. 가장 나중에 생각하겠지만 어머니는 대공과 손을 잡는 걸 꺼려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크리스를 황위에 올리고 싶어 하는 건가.”
“정확히는 크리스를 황위에 올리고 섭정을 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죠.”
“지독하네....”

정말이지 탐욕스럽다.

옆을 돌아보니, 리엘라는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당신도 알겠지만 어머니는 저를 더 신뢰해요. 제가 당신에게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는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야 어머니는 당신에게 하지 못할 말들을 제게  테니까요.”
“고생이 참 많네...”
“뭐가요?”
“아니야.”

리엘라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봤다.

“아까 어머니께 하려던 부탁이 뭐였어요? 뭔가 부탁하고 싶은 생각이던데요?”
“아, 그거...”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나는 리엘라에게 딱히 뭘 숨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로아나의 일을 부탁해볼까 고민했었어. 근데 얘기를 안 하는 편이 나을 거 같더라고.”
“감이에요?”
“음.. 감은 아니야. 왠지 그걸 부탁하면 방해를 하실 거 같아서. 아무래도, 로아나를 내 기사로 만들려는 일을 들키면 좀... 달갑지 않아 하실  같은데.”

초월자는 그 자체로 힘이다.

대공의 굳건한 권력의 기반은, 그를 따르는  명의 초월자에게서 나온다. 틀어쥔 군권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이다.

황제와 대공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초월자의 충성을 받는 사람이 없다.

로아나는 초월자가 될 가장 가능성 있는 기사다. 그녀가 나를 따르면, 내 권력은 더없이 전성기를 맞이할 거다.

황비는 전혀 달갑지 않게 생각하겠지.

“다행이네요. 당신의 우려는 정확해요. 어머니가 미리 아는 것과, 알기 전에 저지르는 건 차이가 크죠. 어디까지나 로아나가 당신을 따를 생각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가정이지만요.”
“어차피 블레앙 후작이 선임교수가 된다면, 그를 완벽하게 견제할 사람은 로아나밖에 없어.”
“응원은 할게요.”

리엘라는 영 가능성이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네.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감이라고 하면 터무니없다 생각하겠지.

그래도 가능성이 무척 있다고 느껴진다.

로아나가 바라는 일이 기득권이 고일대로 고여 썩어있는 제국을 바꾸는 거라면, 나는 가능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일이라도, 나를 따르면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세상을 바꿀  있는 힘을 나는 가지고 있어.’

마침  관직도 복지부 아닌가.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 내 본분은 복지라는 걸 잊지 않았다.

훗날 가장 큰 도움이 될 곳은 복지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럴게 아니라 김세희를  닦달해서  그럴듯한 기획안을 빨리 제출하라고 해야겠어.’

로아나가 내 구체적인 복지계획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제국의 마지막 초월자가 될 씨앗을 내 품에 가두고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