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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41화 (41/44)



〈 41화 〉41화

제안은 받아들이기는 해야 한다.

리엘라의 생각대로, 복지부와 연관 지어 특별전형을 만들어둘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모색해야겠다.

‘인사권한도 전부 넘겨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주도권을 가져올 방법을 찾아야 해.’

웃고 있는 알테온의 앞에서 빠르게 계산을 끝마쳤다.

이대로 인사권한 전부를, 블레앙 후작을 선임교수로 추대하는 것에 목소리를 높인다면 뒷일은 뻔하다.

말만 이사장이지 알테온의 충신 노릇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의 파벌에 들어가서 훗날 황위가 교체될 때 한자리를 해먹겠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겠지만 내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차라리 황비와 몰래 거래해서 인사권한을 나누게 시킬까. 그것도 나쁘진 않을  같은데.’

마침 황비가 먼저 만남을 요구했다.

그녀를  설득해서 인사권한을 발목 잡으면 조금이라도 지분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크리스는 멍청하다.

황비가 더 잘 아는 사실일거다. 내가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 실권은 나한테 맡길 가능성이 크다.

향후 방침의  갈래일 뿐이다. 우선은 여지를 먼저 남겨둬야겠어.

“형님. 인사권한 전부를 넘기기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동생은 크리스나, 대공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테온이 저렇게 착각을 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장작에 불을  지펴도 될  같다.

“아무래도, 블레앙 후작을 선임교수로 내정하려하면 반발이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 리가 있어...”

대외적으로 1황자를 지지하는 후작을 나도 밀어준다면, 남들이 보기에 아카데미는 아예 1황자의 수중에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대립각을 조금 세워두어야 하나... 마르시안을 선임교수로 내정하는 것에 양보를 할 수는 없네. 다만,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들을 동생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줄 방법을 찾아야겠어.”
“훌륭하신 선택입니다.”

알테온을 쳐다보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확실히 알테온은 아카데미의 효율성을 깨닫고 있는 눈치다.

‘알카드와 나. 둘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까. 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같기는 한데....’

아쉽게도 이걸 물어볼 기회는 지금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알테온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당장은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네. 동생은 안건의 발의를 언제쯤이 적기라고 생각하나?”
“한 달입니다.”

의회에 안건이 발의되면 일주일간 심의기간을 거친다.  기간에 다른 귀족들이 아카데미의 방향성, 효율성들을 점검할 시간이 생긴다.

내가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추측한다면, 아카데미를 이용해 지구인을 끌어들이고 권력을 만들려는 속셈이 탄로 난다.

속일 수는 없다. 안건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한다면 귀족들이 간섭할 명분이 생긴다.

 달은, 황제파벌의 귀족들 의견을 통합시키는 기간이다. 동시에 로아나를 기다리는 의미도 있다.

‘알카드와 문제 때문에 시간을  끌 수는 없어. 제발 한  안에만 돌아와 줬으면 좋겠는데....’

“알겠네. 한 달 안에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의 의견을 통합시켜보겠네.”
“저도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게.”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블레앙 후작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 제가 백작을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도울 일? 동생은 마르시안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나?”

아니, 전혀.
8성 기사가 도와준다는 건 매우 부담스럽다. 게다가 빚을 지면 갚아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하. 말씀은 고맙지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가. 언제든 편하게 얘기하게. 앞으로 자주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으니.”
“그러죠...”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블레앙 후작에게,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블레앙 후작이 간간히 술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해왔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에둘러 거절했다.

이한석과 꾸민 일도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한석은 알카드의 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남은  불법노예를 가장해 지하투기장에 투입시키는 일 뿐이다.

이건 이현성을 이용했다.

나는 이현성에게 바일런 상단을 인수해서 새롭게 맡겼다. 이후, 이한석이 접근해서 카엘로스 백작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살살 꼬드겼다.

정말 고맙게도, 이현성은 그 사탕발린 말에 넘어갔다.

스스로 불법노예를 공급할 수 있게끔 만들어 두었다. 맡긴 상단도 무궁화의 일원들이  있으니 중간 과정에서 바꿔치기도 용이하다.

일은 아주 야무지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요?”

목을 간질거리는 차가운 감촉에 몸을 흠칫 떨었다.  반응에 리엘라가 살포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야!”

리엘라의 볼을 꼬집었다. 목을 간질인 복수다. 리엘라가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봤지만 화난 척을 하고 있는 거라서 귀여울 뿐이다.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는 말했다.

“알카드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 이제 슬슬 진행시켜도 될  같아서.”
“그랬군요.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죠.”

리엘라는 고개를 홱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집중했다. 연기인 걸 알아도 풀어주는 게 남편의 도리겠지.

리엘라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내 리엘라는 나른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어머니에게 알카드의 얘기를 꺼내세요. 그러면 신뢰를 더 두텁게 만들  있을 거예요.”
“당연하지. 안 그래도  생각도 하고 있었어.”
“이제 제법 노련한 정치가가 되가는 게 보이네요?”
“다 좋은 스승을 둔 덕분이지.”

리엘라의 도움이 가장 크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크리스는 멍청해도 어머니는 멍청하지 않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알테온이 황태자로 내정되었겠죠.”
“나도 알테온에게 신임을  받는 거 같은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확실히 알테온의 생각은 조금... 놀라웠죠. 아무리 그래도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겠다니, 너무 노골적이에요. 거기에 블레앙 후작을 아카데미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저도 예상하지 못 했어요.”

리엘라는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그간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기쁘네요.”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아서 그러긴 했는데, 운이 좋았지.”

알테온과 만났을 때 대범하게 선을 높인 걸 말하는 거였다.
 발언 이후로 알테온이 나를 더 신임하기로 생각한  같다고 리엘라는 추측했다.

“그래도 블레앙 후작을 견제할 사람이 필요해. 로아나가 그걸 해줬으면 참 좋겠는데, 아직 복귀한다는 소식이 없으니 답답해.”
“어쩔 수 없죠. 애초에 그녀가 아카데미의 일에 끼어들 상황을 가정하지 말아요. 그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는 건 좋지 않아요. 다른 가능성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너무 운에 맡기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리엘라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어머니와 일이 잘 해결되면, 거기서 방법이 나올 지도 모르겠네. 차라리 이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두는  좋겠어.”
“맞아요.”

리엘라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리엘라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두드렸다. 나 역시 그녀의 머리에 볼을 기대었다.

황비가 머무는 궁에 도착했다.
직접 본 그녀의 궁은 생각보다 소탈했다. 리엘라에게 들은 바가 있어도, 마음 한구석으론 사치를 부리진 않을까 했었는데.

작금의 황비를 정확히 표현하면 2황비다. 그렇다고 첩이라는  아니다. 순서의 차이일 뿐이지, 황제의 정실부인이다.

오히려 죽은 1황비보다 배경이  빵빵한 여자다. 2황비의 친정은 제국에 셋 뿐인 공작가문이니까.

‘생각해보니 그 양반들도 흔한 편지 하나 보내지 않았네.’

뭐, 이해는 한다.
반대로 생각해도 나 역시 그럴 거 같다. 황비가 있는 곳과 가까워지자, 리엘라가 내 팔을 매만지며 말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든 너무 동요하지 말아요.”
“걱정하지 마.”

무시?
이미 많이 당해봐서 별로 타격도 안 간다.
나는 리엘라의 손등을 꽉 잡으며 생각했다.

‘황제 그 양반보다는  피곤하겠지.’

시종은 큰 문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췄다. 그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열렸다.

경계를 서는 근위기사단이 여럿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식당으로 향했다.

이윽고, 음식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했다. 식당의 문을 여니 바쁘게 음식을 나르는 시녀들이 보였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시종이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아서 황비를 기다렸다.
리엘라가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좀 늦네요.”
“조금 있으면 오시겠지.”

사실 나도 안다.
황비는 일부러 늦게 오는 거였다.

이정도 대접이야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이게 뭐 대수라고. 오히려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해야 할 말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당신... 정말 많이 발전했네요.”

리엘라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보았다.
그렇게 배웠는데 발전이 없으면 문제가 있는 편 아닐까.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30분이 지났다고 체감될 때 황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나는 소란스럽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비는 고개만 까닥이고 마련된 상석에 앉았다. 내게는 시선한번 안주고 리엘라에게 살갑게 말했다.

“저번에 준 선물은 고맙구나. 참,  할아버지는 언제쯤 만날 생각이니?”
“아직은 생각이 없네요.”
“자꾸 내게 성화를 부리더구나. 조만간 연락을 해주기라도 하렴.”
“생각  볼게요.”

리엘라가 예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프리시아 공작이 리엘라에게 자주 연락을 해왔었나 보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을  해준 이유가 있겠지.

나는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비를 조용히 살폈다. 리엘라와 닮은 예쁜 얼굴이었다. 황비의 시선이 나를 잠깐 훑었다.

“이름이... 뭐였지?”
“이지훈입니다.”

안색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황비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리엘라와 대화에 집중했다.

‘주도권은 오히려 나한테 있다. 뭐 어쩔 건데. 막말로 내가 알테온한테 붙어먹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건 저 양반이야.’

정말로 그럴 생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저쪽에서 기선제압을 하겠다면 가만히 당해줄 이유는 없지. 내 머릿속을 열어볼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황비가 모르는 게 있다면 리엘라가 사실 내 편이라는 거다.

‘수틀려서 알테온에게 붙어먹고 크리스를 먼저 쳐도, 리엘라는 내 의견을 따라줄 거야.’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는 거니까. 그럼에도 리엘라가 같이 길을 걸을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미소를 띠며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비의 눈썹에 살짝 꿈틀거리는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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