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14화 (14/44)



〈 14화 〉14화

황제가 공표했다.
자신의  리엘라 아르카옌을 시집보내기로.

귀족들은 갑자기? 라는,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었다. 전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황실이 다른 귀족가문과 연결 된다면 권력이 새롭게 개편될 수 있었다. 분명 어제까진 비등한 힘이었는데 갑자기 황실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해봐라.
기분이 참 좆같은 일이다.

그래서 그 가문이 대체 어딘데?
대상을 파악해야 반대를 해도 할 것 아닌가. 사실진위는  밝혀졌다. 웬 지구인 한명과 결혼을 성사시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진실을.

“어지간하면 폐하께서 나서실 겁니다. 부군께선 부디 말을 아끼십시오.”
“알겠다.”

나는 의회에 출석요구를 받았다. 곧 의회로 들어가서 심문을 받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꼬투리만 잡힐 예정이라 심문이라 생각해도 무방했다.
앞으로  안에 놈들과 얼굴을 맞대며 살아가야 한다.

“황실의 부마이신 이지훈 백작을 들이겠습니다.”

그저께, 황제로부터 약식으로 수여받은 작위.
백작이  나는 의회로 들어섰다. 내부는 밖에서 짐작한대로 매우 넓었다.
황제에게 예를 표하고, 그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제국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귀족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이 더부룩했다.
물건을 품평하는 눈초리가 영 마음이 안 든다. 귀족들의 왼쪽 중간쯤에서 선빵이 날아왔다.

“폐하. 저자는 황실의 격에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보니 제 눈을 의심할  했습니다! 저런 자가 부마가 된다니요?”
“저런 자라니. 자작은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건가? 그리고 그는 이제 제국의 백작이다.”
“물론 신은 지혜로운 폐하의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저자는.... 백작은. 듣기로 용병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D급 용병으로 말이지요. 능력이 출중한 자가 제국의 귀족이 되는 일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귀족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정보가 느린 귀족들은 D급 용병이었다는 소리에 경악을 하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왔다.
황제는 표정을 구기고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는 지구인이다. 귀하들은 그들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알고 있지 않나. 짐이 알기론 그대도 마도공학자의 수혜를 꽤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모든 지구인이 그러지 않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폐하는.... 백작도 그런 지식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까?”
“비슷하다.”

자작을 필두로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여전히 반대의견이 많은 양상이었다. 황제파벌 귀족들이 서포트를 해줄 거라 예상했는데, 그들 역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폐하.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손을 들며 말한 사람은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황제는 이어서 말하라는 듯 턱짓했다.

“폐하께서 만드신 로또의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대들도 걷는 세금의 30%를 나눠받지 않는가. 당첨자가 나오든 말든, 그대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뭘 얘기하고 싶은 거지?”
“저는  당첨자가 이지훈 백작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헌데 폐하가 황녀님과 백작을 맺어주려 뜻을 보이니 백작이 당첨자란 확신이 드는군요.”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의 책임도 있는 거란 뜻이군. 실제로 내가 소원을 이뤄주겠단 약속을 한 이후로 귀하들의 배가 많이 아프지 않았나. 이지훈 백작이 그런 소원을 빌었으면, 걷는 세금을 올려 받으려 억지를 써 기어코 30%를 떼어가고 있는 그대들의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황제의 대답에 말을 꺼낸 중년인은 가장 상석의 귀족을 바라봤다.
그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중년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실언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중년인 귀족과 그가 눈치를 본 상석의 귀족.
둘 다 진실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왜 둘은 더 파헤치길 그만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황제도 방금 잡은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지 않는 이유도 짐작이 안 갔다. 저 둘은 꺼려하는  보이는데 빌미삼아 밀어붙이면 안 되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따가 리엘라한테 물어봐야겠다.’

엘라에몽은 뭐든지 아는 느낌이었으니까. 어렵지 않게 답을 유추할 거다.

중년인이 눈치를 보았던 다부진 체격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폐하의 뜻은  알겠습니다. 다만 백작이 너무 과한 권력을 갖는  아닐지 염려됩니다.”
“대공의 우려는 이해한다.. 허나 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황제의 말에 저 노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클레이튼 대공. 제국의 하나뿐인 대공이자 반대파의 상징적인 귀족이었다.
리엘라에게 제국의 권력서열은 황제 다음 저 노인네라 들었다.

“그럼 이지훈 백작은 부마로서만 있겠다는 뜻입니까?”
“리엘라 역시 사랑하는 나의 딸. 남편의 위신은 세워줘야겠지. 그의 능력을 펼칠 기회도 주어야하고.”
“소신의 우려를 헤아려주시리라 믿습니다.”

클레이튼 대공은 간접적으로 내게  자리를 주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방금 깨달았는데 감찰부 관련 일을 한다 했으면 턱도 없었을 거 같다.

“이지훈 백작에게는 그 뜻을 존중해 복지부의 일을 맡길까 생각하고 있다.”

클레이튼 대공은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황제의 말을 곰곰이 곱씹는 것처럼 보였다. 대공의 뒤로 여러 귀족들이 저마다 작게 떠들고 있었다.

복지부는 이제 생긴 지 채 10년도 안된 곳이다. 권력은 대체로 역사와 비례해서 힘을 점점 키워간다. 오래된 기관일수록 고이고 고여 굳건해지는 법이다.
제국의 복지는 역사가 짧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쓸모없는 기관이었다.

클레이튼 공작이 입을 열었다.

“하면 복지부를 아예 백작에게 맡긴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그건, 그동안 복지부에 힘써왔던 귀족들에겐 너무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그건... 나도 고려하고 있다. 대공이 원하는  뭐지?”
“우선 백작은 부관으로써 일의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짐은 복지부장에게 그 일을 맡겨볼 생각이다.”
“그것도 혜안이지만 일은 밑의 사람이 직접 하지 않습니까. 노신의 생각은 빌라스 자작의 부관으로 임관하는 게 낫다고 사료됩니다.”

빌라스 자작은  뭐하는 놈이지. 눈치로 볼  대공의 따까리인데 내 기억에 있는 귀족은 아니었다.
황제는 대공의 말에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래도.... 부마가 될 이지훈 백작이 자작의 밑에서 임관하기에는 시선이 좀 그렇지 않은가.”
“백성들의 복지를 신경 쓰는 부서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가장 편견이 없어야 할 귀족들이 아니겠습니까.”

대공의 혓바닥은 아주 날름거리는 게 청산유수였다. 황제가 이마를 매만지더니 말했다.

“그리하면, 대공은 부마를 인정하는 것인가?”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지훈 백작은 폐하가 고른 사위 아닙니까. 저는 폐하의 안목을 믿습니다.”
“그것  고마운 일이군...”
“결혼식 때 귀한 예물을 내놓도록 하지요.”

클레이튼 대공의 뜻이 곧 반대파의 의견이었다. 대공을 중심으로  무리에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제파벌은 처음부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방관을 선택했었고, 여전히 나를 노려볼 뿐 말이 없었다.
장내가 정리되자 황제가 빠르게 말했다.

“결혼식은 3일 뒤 바로 속행하겠다. 백작의 임관은 그 후에 하기로 하고... 피곤하군. 의회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지.”

황실의 시종장이 우려한일은 없었다.
첫 의회에서 내가 입을 열 기회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어도 진한 피로감을 느꼈다.
귀족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원인이었다. 이름 모를 귀족이 나를 불러 세우기 전에 빠르게 자리를 이탈해 궁으로 돌아왔다.

“남작 됐으면 진짜 좆 될  했네.... 바로 나가리였다. 시발 고인물 새끼들.”

옐로우몽키가  기분이었다.
내가 10성 기사는 되어야 앞에서라도 저런 눈을 숨길까 싶다. 아니다, 그래도 뒤에서는 욕할 거 같다.

궁으로 돌아오고, 시녀에게 리엘라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시녀의 뒤를 따라서 리엘라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 좋은 향기가 코로 들어와 답답한 생각을 밀어내주었다.

“고생했어요.”

리엘라가 내 겉옷을 받아주며 말했다.
나는 의회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설명해줬다. 아직 정치 식견이 부족해서 고문을 구해야 했다.

“아마 황제파벌의 귀족들이 사실을 알면 반발이 더 커질까봐 그랬을 거예요. 당장 진실을 억제해 놨는데 굳이 파헤칠 이유가 없죠. 반대로 사정을 모르는 귀족들은 30%나 올린 배분을 굳이 논쟁할 이유도 없고요.”
“음..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리엘라의 설명을 들으니 황제가  로또로 꼬투리를 잡지 않았는지 이해가 얼추 되었다.

“그런데 대공은?  사람은 로또를 꼬투리 잡으면 배분을 더 올릴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그자는 처음부터 반대할 생각이 없었을 거예요. 반발은 해도 결혼은 못하게끔 만들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당신이 당첨자라는 걸 알아도 그냥 놔둔 거예요. 결혼하는 게 이득이니까. 그깟 배분보다 저를 잃게 만드는  훨씬 이익이죠.”

황실과 귀족의 연을 더 끈끈하게 이어줄 결혼이란 무기를 나한테 쓴다는 게 그 이유였다.

“뭐, 덕분에 복지부는 가게 됐어도 빌라스 자작인지 뭔지 그놈 밑에서 임관하게 돼버렸어. 아마 대공의 사람이겠지.”

리엘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빌라스 자작은 절대 핵심적인 인사는 아니에요. 제 기억에도.... 없고요. 만약 그렇다 해도 대공의 사람이 복지부에 있다는 건 파벌 내에서도 큰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겠죠.”

리엘라가 돌려 말하긴 했다만 직설적으로 능력이 없다는 말이었다. 더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귀족.

“내 선입견이지만... 솔직히 그런 귀족일수록 성격이 좀.. 많이  좋을  같은데.”
“괜찮아요. 당신의 아내가 나잖아요? 기죽지 말아요, 나는 제국의 황녀니까. 그리고 자작이 정말 대공의 파벌이라면, 대공이 그를 처분하려 하거나, 당신을 감시하려 하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제 생각엔 아무 관계도 없는 게 유력해보이지만.”

처분은 좀.... 귀족끼리 처분도 한단 말인가? 너무 살벌했다. 감시 쪽이 더 그럴듯해보였다. 아무리 능력 없고 덜떨어진 놈이라도 보고서는   알겠지.

“감시하겠지 뭐. 굴러들어온 놈이 뭘 하나 궁금해 하지 않을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공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요. 어쩌면 아버지의 뜻을 꺾고 귀족들에게 위세를 내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차라리 이편이  합리적이에요. 이게 맞는 것 같네요.”

하긴, 처음에 황제는 복지부장 밑으로 나를 넣으려 했으니까.
빌라스 자작의 밑으로 임관하는 건 대공의 뜻이었다. 그런 부분도 귀족사회에서는 중요한 점이라고 알게 됐으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대공이 힘을 내보일수록 휘하 귀족들이 더 단단히 결속할 테니까.

“아. 결혼은 3일 뒤에 바로 하겠대.”
“그래요? 이젠 당신과 같은 방을 쓰게 되겠네요.”

그렇지.
그건 내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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