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
일주일간 진지하게 고심을 하겠지만 첫 번째는 역시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용병은 이제 그만둘 거지만 맡았던 의뢰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김준석 이지혜 두 연놈들한테 갚아줄 빚이 있다.
나는 칙칙한 로브를 뒤집어쓴 로아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알겠다.”
그녀가 인파속에 녹아드는 걸 보고 협회로 들어갔다.
아르카나의 인구가 몇 배는 더 많은 만큼 협회 시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내가 맡은 의뢰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러 왔소. 중간에 바일런 상단과 찢어져서 말이지.”
계약서와 신분증을 주고 직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이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엉뚱한 대답을 했다.
“엥. 루이스씨 어제 실종처리가 됐네요?”
“그게 뭔 개소리야.”
그는 펜으로 서류에 무언가 기입하고서 말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실종 건은 정상적으로 처리해드렸고. 이걸 읽어보세요, 바일런 상단이 제출한 보고서예요.”
직원이 주는 보고서를 살폈다.
아르카나로 가는 도중 오우거가 나타났고 고용한 용병 전부 나 몰라라 도망쳤다는 내용.
상단은 용병과 함께 대처를 하려 했으나, 계약을 위반하고 도망간 용병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으니 협회 측에 보상을 요구한다.
좆같은 개소리였다.
“시발. 이거 존나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이건 존나 개소리만 가득 찬 보고서요. 사실이라곤 오우거가 나타난 거 밖에 없구만. 애초에 우리 전력으로 오우거는 이기지도 못해. 그건 당신도 알거 아뇨? 지원한 용병 명단은 그쪽도 볼 수 있을 테니.”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우거가 나타나기 전에 습격이 있었소. 기병과 다른 용병들. 일단 그 사실이 빠졌고. 여기 상단은 용병들과 함께 대처를 하려 했다는 거. 이건 개소리요. 내 눈으로 그놈들이 먼저 몸을 내빼는 거 똑똑히 봤으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네요.”
나는 직원이 부탁한대로 내가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서류에 적어줬다. 그리고 여기에 온 목적도 빼먹지 않고 말했다.
“그럼 죄다 실종처리 된 거요? 나 말고 돌아온 다른 용병들은 없소? 명단이 있으면 나도 좀 보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없네요. 혹시 다른 실종자들도 보신건가요?”
“위험하지만 않으면 협회에서 찾아주기라도 하는 거요?”
“으음... 오우거가 관련된 사안이라 힘들겠네요.”
“그렇구만. 김준석 이지혜 이 두 명은 마지막까지 나랑 함께했소. 무사히 숲을 벗어나는 걸 확인했으니 아마 수도 내에 있을 테니 찾아보시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죠. 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선 용병 쪽 생존자도 많으면 좋을 테니까요.”
“고맙소.”
직원은 보고서를 전부 작성한 후, 조만간 협회에서 연락이 올수 있다고 말해줬다.
먼저 상단과 사실관계를 조율하겠지.
거지같은 상인 새끼들. 뒤통수치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찍어버려? 바일런 새끼들도 가만두면 안 될 놈들이다.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군.”
“돈 없고 빽 없는 평민들 일이 다 그렇죠 뭐. 그런 점은 여기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게 없네요.”
“그대의 고향이란 곳 말인가?”
“알고 있었어요?”
“어제 그대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파악했다.”
내 정보가 뭔 극비도 아닌데 아무렴 어떠나 싶다. 숨겨야할 비밀도 없고 딱히 죄짓고 산 것도 없다.
허기가 졌기에 그녀에게 말했다.
“배가고프네요. 근데 돈이 없어요. 보수도 받았어야 했는데 일이 좀 꼬여가지고, 젠장.”
“내가 내겠다.”
“나중에 갚을게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로아나는 꽤 값비싼 음식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식사량이 엄청나네요...”
“활동량이 많아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녀는 보기보다 대식가였다. 먹는 모습이 귀여운 햄스터 같아서 입가가 흐뭇해지려 한다.
로아나는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음... 그대가 계속 쳐다보니 본인이 잘못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활동량이 많다고. 계산을 그대가 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 눈치를 주면 실례일세.”
“그런 뜻은 아니고. 보기 좋게 드셔서 그랬습니다. 여러모로 로아나님은 귀족 같지 않은 분이시네요.”
“나를 귀족으로 오해하고 있었군. 난 귀족이 아니라 기사다. 단 한순간도 귀족이었던 적은 없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상관할 바는 아니긴 했다.
나는 먹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로아나에게 말했다.
“바일런 상단이라고 들어봤습니까?”
“잘 모르겠군.”
“생긴 지 얼마 안됐다 하더니 아직 이름 있는 곳은 아닌가보네요.”
“그대는 상회 쪽 일에 흥미가 있었나? 폐하의 도움이라면 큰 상단을 일구는 것도 어렵지는 않겠다만.”
“그게 아니라... 아까 협회에 갔잖아요. 바일런 상단과 관련이 있어서 갔던 거예요.”
“이해했다. 그대의 일이 꼬인 것도 상단과 관련이 있겠군.”
거기까지였다. 로아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는 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처음보다 현저히 느린 속도로 음식을 천천히 먹을 뿐이었다.
참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녀는 맡은 일인 경호만 하겠지. 그 외에 일은 관련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루쯤은 로아나님이 좋아하는 곳도 가봤으면 좋겠네요.”
“음....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가봐야 알죠.”
*
3일이 남았다.
로아나와는 많은 얘기를 나눠서 꽤 편한 사이가 됐다. 하루는 로아나가 검술을 지도해 줬는데 큰 영감을 받았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약점도 파악했고.
지금은 용병협회에서 전했다는 우편을 뜯어보고 있었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우편의 내용은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
사실관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 하니 출석해달라는 요구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협회는 은근히 상단의 편을 들고 있었다.
“시발. 그렇게 정성스레 작성해줬는데 상단 편을 들어? 이 쌍놈의 새끼들. 대체 왜지?”
오히려 협회는 보상을 안 할 빌미가 생겨서 내편을 들어줘야 정상 아닌가.
바일런 상단이 어디 개 쩌는 대상단도 아닐 텐데. 힘의 논리로만 따지면 협회가 더 강했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로아나가 머물고 있는 방을 찾아가 협회에 갈 일이 생겼다고 전했다. 그녀는 곧 준비할 테니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협회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저번처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알았어요.”
건물로 들어갔다.
협회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는지 사람이 한명 다가와 나를 안내했다.
“누구 만나러 가는 거요?”
“잔말 말고 따라와라.”
“흐미... 시벌 어지간히 높은 분이 부르나 보구먼.”
남자는 투덜거리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앞장섰다.
6층까지 갔다.
루트란 지부의 3층도 가본 적이 없는데 본부에서 6층을 가다니.
‘간부라도 만나는 모양인데.’
안내자는 이현성 이라고 적힌 문 앞에 멈췄다. 한국인이라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는 협회의 간부였다.
본부에서 일하는 간부는 다른 도시 지부장과 엇비슷한 위치로 기억한다.
똑똑.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그가 이쪽을 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며 앉으라는 행동을 했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가리킨 곳에 앉았다.
이현성이 품에서 담배를 두 개비 꺼내들고 말했다.
“담배 펴?”
“아니, 끊었수다.”
“이 새끼 이거 말투가 왜이래. 오우거를 만났다더니 PTSD 도졌나?”
뭐.... 내 알바 아니지, 이현성은 그렇게 말하고선 차라도 마시겠냐고 권했다. 나는 그마저도 거절하고 말을 기다렸다.
이현성은 한동안 담배를 피우더니 툭 말을 꺼냈다.
“이번 일 말인데. 그냥 없던 일로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보수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거요?”
“그렇게 됐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뭐... 말 안 해도 알겠지?”
이현성이 한 말은 어디서 괜한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말라는 소리였다.
시발, 피가 거꾸로 솟아서 뇌에다 헌혈하는 기분이다.
나는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말했다.
“그럼 협회가 바일런 상단한테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이 시발 놈,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내가 한가해보여?”
“후우... 아무리 그래도 나도 그렇고, 그 의뢰에 지원한 용병들도 협회의 소속 아니오. 이건 존나 너무 하잖아.”
“거기까지는 알 필요 없고. 그냥 마무리해. 다른 두 명은 고분고분하던데 이 새끼는 사람 피곤하게 하네.”
“다른 두 명? 혹시 이름이 김준석 이지혜가 맞소?”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 말은 알아들었을 거라 믿어. 서로 좋게 가자고.”
“아니. 솔직히 나는 없었던 일로 하기 싫어. 난 내가 겪은 일을 사실 그대로 적었어. 까고 말해 상단이 그딴 개떡 같은 보고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용병들이 희생했으니까 가능한 거였어. 애초에 뭔가 구린 구석을 숨긴 것도 상단 쪽이고.”
이현성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담배를 재차 피우더니 바닥에 튕겨서 버렸다.
그가 소름끼치는 눈으로 말했다.
“야.... 너는 내가 좋게 하자는 말 못 들었냐? 내가 시발 지금 너한테 부탁하는 거로 보여?”
“처음부터 협박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아가리 적당히 놀려라. 오래 살고 싶으면.”
이현성이 내뿜는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보이지 않는 칼이 목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런 게 내 위치였다. 힘이 없어서 강자를 피해 다니고, 마주치면 몸을 엎드려야 하는 3류 인생.
“그게.... 마나라는 거지?”
“왜? 꼬우면 너도 재능이 있지 그랬어. 버러지 새끼.”
“....그렇겠지. 아마.. 나는 평생을 가도... 마나는... 다루지 못 하겠지..”
“알면 알아서 처신 잘 해 병신아. 진짜 진지하게 충고해 주는 거니까.”
버틸 만 했던 살기가 찐득해져서 말을 잇기도 힘들 지경까지 됐다. 피부를 찌르던 살기가 사라지자 공기가 맑아졌다.
“이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쯧, 이 새끼 3골드라도 챙겨줘. 그래도 그 둘보다는 패기라도 있는 버러지네.”
이현성은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는 배려를 하고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
기분이 너무 좆같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여전히 이런 위치라는 게 더 좆같았다.
감정은 곧 분노로 변해갔고, 끓어오른 감성과 반대로 이성은 차갑게 식었다. 동시에 지향해야 할 곳이 어딘지 명확히 깨달았다.
답은 권력밖에 없다.
‘그래 시발! 재능이 없어서 마나 좀 못 다루면 어때. 평생 이런 취급 받으면서 살 건 아니잖아. 나한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억누르고 있던 분노를 한 번에 터뜨렸다. 거기엔 그동안 겪어온 설움도 포함돼 있었다.
“3골드 먹고 떨어지라니 진짜 기분 개좆같네, 시발! 당신이 내 입장이었으면 3골드 먹고 떨어지게 생겼어? 배려는 씨바아알-! 개념 있는 새끼들은 아무도 그딴 걸 배려라고 생각 안 해. 협회의 간부라는 새끼가 D급 용병이라고 차별 하냐? 내가 S급 용병이었어도 이따위로 했겠어?”
안내자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현성도 어안이 벙벙한지 눈을 깜빡거렸다, 금세 분노로 바뀌었지만.
“S급? 그랬으면 당연히 이러지 않았겠지. 다 네놈이 D급 버러지 새끼라는 걸 원망해라.”
“너도 곧 원망하게 될 거야. 이 시발 버러지 간부 새끼야.”
“웬만하면 깔끔하게 보내주려 했는데... 넌 고통스럽게 죽을 거다. 우선 팔부터 잘라주지.”
“할 수 있으면.... 해봐, 시발 놈아.”
이현성의 살기가 폭발했다. 순간 죽는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이현성을 보면서, 죽음이란 생각을 밀어냈다.
나는 여기서 죽지 않을 거다. 그러니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다.
철컥.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왔다.
“거기까지다. 그 이상 접근하면 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