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5화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3시간.”
김준석이 주변을 살펴보곤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걸으면서도 흙길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말발굽 자국, 사람의 것이 확실한 발자국들도 보이고. 오우거로 추측되는 발자국은 다행히 없다.
‘어제 기병들의 흔적. 말발굽 자국이 쭉 나있다는 건 이놈들도 근처에 있었다는 건데...’
나는 김준석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제 기병 새끼들, 우리 죽이려 대기하다가 오우거랑 만났을까?”
“만났으면 그냥 수도로 튀었을걸. 내 생각엔 걔들 다 몰려들어도 오우거한테 안될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동감한다.
용병으로 치면 최소 A급은 돼야 오우거랑 비빈다고 들었는데. 그런 실력자라면 말에서 내려가지고 다 썰어버렸겠지.
게다가 오우거를 직접 본 입장에서, A급 용병 한명이 감당할 수 있을지 좀 회의적이다.
“다들 몸 상태는 어때? 뛸만해?”
“아니. 뒤질 거 같아.”
“저도요....”
이 이상 더 욕심내는 건 힘들어 보였다.
“그럼 페이스를 늦추고 천천히 걷자. 얼마 안 남았어도 혹시 모르니 체력을 아끼는 편도 괜찮은 거 같아.”
둘을 다독이며 묵묵히 뛰고 걷기를 한 시간째.
숨을 들이마시는 코에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몇 번 예민하게 숨을 들이마시니 확신했다.
김준석과 이지혜도 코를 킁킁 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은 뒤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웨에엑. 시발 일로 와바.”
“아.....”
힘으로 짓뭉개져있는 시체가 숲에 대충 버려져 있었다.
“이거 오우거 짓거리다. 우리보다 더 빨리 갔던 놈들도 있었나봐. 오우거로 생각되는 발자국은 없었는데.”
“숲으로 다녔겠지.”
“그래도 이 시체 방금 죽은 건 아니야. 못해도 4시간은 됐겠는데.”
“넌 근처에 있다고 보냐?”
김준석의 물음에 고민을 했다.
오우거가 한 짓은 확실하다.
놈이 죽은 시체 말고도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 가정하면, 멀지않은 곳에서 서성이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을 이어가다가 끔찍한 가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야.. 오우거가 멍청한 몬스터는 아닌 거 알지?”
“그건 갑자기 왜?”
“내가 아까 기병얘기 했었잖아. 우리 죽이려 대기하다가 오우거랑 만나지 않았을까 라고.”
“시발... 하지 마.”
“어쩌면 이 새끼가 오히려 수도 근처에서 대기타고 있을 거 같다.”
“지금이라도 루트란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요?”
이지혜는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수도는 이제 정말 코앞이다.
오우거의 지능이라면 수도 근처까지 가면 더는 쫒지 않을 것이다.
토벌당하지 않으려 숲 속으로 숨어들 가능성이 있다.
나는 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루트란으로 다시 가려면 또 시간이 걸려. 기껏 돌아가는데 혹시나 오우거가 눈치 채고 쫒으면 답이 없어.”
“하지만 오우거가 막고 있을 수도 있다면서요!!”
“어쩌면 다른 용병도 우리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잖아. 오우거랑 원수진 것도 아니고 그 새끼가 우리만 찾아다니겠어?”
계획을 둘에게 설명했다. 거창하게 계획이랄 거도 없다.
수도 근처까지 접근해서, 주변 정보를 잘 파악하고 다른 용병을 사냥하러 간 틈을 노려서 돌파한다.
만약 아주 운이 없게도 오우거를 바로 만나게 되면 흩어져서 알아서 살기로.
“거의 다 왔어. 이제 수도까지 뛰면 20분도 안 걸릴 거다.”
“여기서 잠깐 멈추자. 좆 빠지게 뛰기 전에 마지막으로 상황을 파악하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피 냄새는 나지 않았고 근처를 샅샅이 뒤져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여기는 오우거가 안다닌 거 같은데?”
“그럼 지금 뛰어야 하나?”
“곧 수도잖아요. 어쩌면 황실이 오우거를 토벌해주지 않았을까요?”
제국에는 말도 안 되게 강한 초인이 몇 있다. 그들이 나서면 한칼에 썰어버리겠지만 근래에 오우거의 소문은 들은 적 없다.
“그런 존나 희망찬 일이 생길 리가 없어. 그냥 눈치보고 좆 빠지게 뛸 순간만 정하면 돼. 일단 주변은 잠잠한 거 같으니 천천히 움직이자. 오우거는 예민하니까,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조금씩 전진하다가 틈을 보고 뛰자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수도가 머지않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숲의 끝이 보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가 눈에 보였다.
쿵 쿵.
“아... 시발 이제 다 왔는데..”
김준석이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방금 사냥을 했는지 커다란 손에 피가 흘러내린다. 여기까지나마 올 수 있었던 건 손에 묻은 피 덕분일 터.
거리는 약 200미터 정도.
공포에 질려 정신 못 차리는 이지혜의 뺨을 한 대 쳤다. 초점이 돌아오는 걸 확인하고 둘에게 말했다.
“야, 뛰자. 지금 당장!”
둘이 먼저 뛰는 걸 확인하고 나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좆 빠지게 뛰고 있는데도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헤이스트.’
바람이 몸을 한번 감싸더니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는 걸 느꼈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고 뒤를 확인했다.
“씨이이발- 피해!!”
나는 즉시 달리던 방향을 꺾었고, 둘은 아무렇게나 몸을 던졌다.
콰아앙.
돌을 던졌는데 맞은 나무가 꺾여버렸다.
이건 정말 너무한 수준이다. 우리가 피할 거라고 생각도 못한 듯 오우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빠져있지 말고 뛰라고 병신들아!”
넘어진 둘을 거칠게 일으켰다. 빨라진 몸은 둘보다 여유가 있었다.
이 새끼들 방금 죽을 뻔 했다는 걸 알아서 혼이 나가있다.
짜악-
“이제 더 도와주는 거 나도 무리야. 살고 싶으면 뛰어, 너희가 멈춰서도 난 먼저 갈 테니까.”
정신 차리란 의미로 뺨을 한 대씩 더 때리고 등을 떠밀어줬다. 충분히 도와줬다. 이젠 정말로 각자 살아야했다.
뒤를 보니 오우거는 다시 뭘 던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육상선수가 출발하는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눈이 마주치자 오우거는 웃었다. 입가가 쭉 찢어져서 헤벌쭉한 비웃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처음부터 아무리 뛰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걸.
“아 좆 됐다...”
한번 두 번 세 번.
순수한 육체의 근력으로 이뤄낸 비상식적인 도약.
불합리한 종족의 차이가 그걸 가능하게 했고, 순식간에 오우거와 마주보게 되었다.
‘실드로 막을 수 있을까?’
뒷걸음질을 치면서 생각했다. 남은 패는 실드 3번. 그 마저도 오우거의 힘이 실드보다 강하면 의미가 없다.
절망적이지만 내가 느낀 오우거의 힘은 실드로 절대 못 견딘다.
그워어어어.
양 손을 허리에 얹고 우리를 내려 보던 오우거는 딱밤을 때리려는 손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잡은 물고기라 생각해서 만만히 보는 눈치였다.
단 100미터도 남지 않았다. 이 고비만 견디면 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꺾일 순 없다.
‘다행히 만만하게 보고 있어. 헤이스트의 효과는 남아 있으니, 지금이라도 둘을 미끼로 희생시켜야 하나.’
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는 길을 선택했다. 마법의 효과 때문에 도망치는 속도는 내가 더 빠를 테니까.
그런 속내를 숨기며 말했다.
“운에 맡기자. 나는 왼쪽으로 돌아서 뛸 테니까, 너희들도 다른 방향으로 뛰어.”
“미안하다.”
“어?”
발이 안 움직였다.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을 안 한다.
시선을 내리니 양 발을 나무줄기가 단단하게 속박하고 있었다.
“너 이 씨발 새끼!”
반사적으로 김준석의 목을 낚아채 졸랐다. 그의 찡그린 얼굴도 잠시, 팔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져 손아귀의 힘이 빠졌다.
이지혜가 독기어린 눈으로 단검을 쥔 손을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우거한테는 안 걸릴 거 같아서...”
“너... 시발!”
“미안하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지혜야 빨리 가자. 저거 지속시간 있어.”
싸구려 아티팩트 마법이어도 나한테는 치명적이다. 마나만 다룰 수 있으면 이깟 속박 따위 1초도 안돼서 풀어버릴 텐데.
이대로는 안 된다. 두 놈이 나를 미끼로 던졌듯, 나도 저들을 미끼로 이용해야했다. 비상용 단검을 뽑았다.
이걸로 속박을 풀려 애써봐야 마주한 오우거에게 벗어나지 못한다.
대신 단검을 김준석을 향해 혼신을 다해 던졌다. 체중이 더 무거운 사람을 노리는 게 합리적이었다.
단검은 빠르게 날아가 김준석의 허벅지에 깊이 박혔다.
“크으으윽!”
“오빠!”
김준석이 픽 쓰러졌다.
이지혜가 그를 다급히 일으켜 세웠지만, 그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했다.
둘의 발걸음이 확연히 느려졌다.
‘제발, 저 새끼들은 둘이잖아. 합리적으로 사냥해야지 시발 오우거 새끼야! 하다못해 속박이 풀릴 시간까지만 저 놈들을 사냥하라고!’
오우거는 머리를 긁적이곤 나와 배신자 새끼들, 숲 밖의 대로를 번갈아 쳐다봤다.
발이 묶여있는 나. 느리지만 숲을 벗어나고 있는 둘.
고개를 끄덕인 오우거는 나를 돌아봤다.
로또에 모든 운을 쏟은 건지, 가장 간절했던 순간에서 신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존나 시발 믿을 새끼 한명 없네.”
5년간 개고생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도리는 하면서 살았는데, 씁쓸한 마음이 맴돌았다. 김준석이 뒤통수 친 방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술에다가 돈을 쓰던 놈이 아티팩트를 들고 있었다니. 하긴 사람이 어떻게 모든 일을 예측하나, 그럼 신이지 시발.
나무줄기가 힘을 다해 바스러졌다. 팔뚝에 박힌 단검을 빼서 오우거를 향해 겨눴다.
말이 안 통하는 몬스터. 살려 달라고 빌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크르르르르.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즐기면서 살걸.”
내 몸의 절반만한 손바닥이 다가왔다. 온 힘을 다해 단검을 휘둘렀다. 카앙.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어이가 없네.”
손아귀가 저려오고 단검의 날이 상했다. 오우거의 중지가 내 이마를 조준했다.
저거라면 머리가 단숨에 터져 고통 없이 죽을 거 같은데. 아니야, 아직 살고 싶다. 인생 2막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이대로 죽긴 싫다.
몸을 뒤로 날렸다.
퍼억.
손가락은 흉기처럼 휘둘러졌다. 곧장 실드는 으깨졌고 몸은 풍압에 화살처럼 날아갔다.
이게 진정 손가락이 만들어낸 바람인가. 곧 부딪힐 충격에 몸이 다치기 전에 실드를 사용했다.
쿠당탕탕.
땅을 몇 미터나 굴러서 헛구역질이 났고 위액이 질질 새어나왔다. 두 번째 실드는 깨지지 않았다.
이정도 충격은 손가락만도 못했다는 현실이었다.
오우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괴물이 곧 허공을 향해 딱밤을 휙휙 때리더니 이번엔 주먹을 쥐었다.
‘와... 시발 저건 무조건 즉사다. 도망칠 방법이 정말로.... 정말로 없는 건가...?’
단검에 찔렸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오우거를 보면서도 머리는 팽팽하게 돌아갔다.
헤이스트의 효과는 사라져서 피하는 건 불가능. 실드로 막는 방법은 즉사.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 시발 주인공은 이럴 때 개 쩌는 능력이라도 각성하던데. 솔직히 로또 1등정도 당첨됐으면 주인공 아닌가?”
정정한다, 적어도 주인공이 될 뻔 했다고.
단검을 역수로 쥐고 마지막 발악을 준비했다.
이런 순간에도 마나를 각성하는 기연은 없었지만 패기마저 사라진 건 아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장난감 취급은 받기 싫었다.
“그래 시바아알! 죽여 봐 이 개새끼야!”
내가 먼저 움직였다.
생채기조차 못내는 걸 알아도, 온 힘을 다해 오우거를 찌르려 마음먹었다.
단검은 오우거의 종아리를 찔렀다. 흠집도 못 냈다.
과하게 준 힘은 피부를 뚫지 못하자 독이 돼 손을 미끄러지게 했고, 피투성이가 된 손은 애꿎은 날만 원망스레 쥐고 있었다.
아이를 밀어내는 듯 가벼운 발길질, 나는 재빨리 실드를 사용했다.
퍼억.
마지막 실드가 깨지고 몸은 붕 떠서 내동댕이쳐졌다. 주먹을 망치처럼 내리치려 하는 오우거가 보였다.
“아.... 로또 존나 아깝네. 1등 당첨되고도 이게 뭔 개죽음이냐.”
짧은 후회를 마지막으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죽으면 길었던 여행이 사실은 하룻밤의 꿈이었다고, 언제나처럼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용기 있는 자구나. 걱정하지 마라. 여기서 죽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