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 (4/44)



〈 4화 〉4화

“전투인가?”
“잠깐 휴식하는 거겠지. 아직 한 번도 안 쉬었잖아.”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마나를 다루는 자들은 기척에도 민감하다는데. 나는 해당사항이 아니라서 그런 재주는 없다.
바일런 상단이 데려온 B급 용병으로 보이는 두 명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뭔  생겼나?”
“음... 아직까진 모르겠다.”

김준석에게 물어봤지만 이상함을 크게 못 느꼈나보다.
용병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 느낀 게 눈치다.
아직 용병이나 상단 쪽 인원들이 지친 기색이 별로 없는데 멈추는  이해가 조금 안 되는 지시다.

무리의 리더 격인 세 명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엿듣진 못해도 표정을 살피는 정도는 가능했다.

‘뭔가 일이 생긴 거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네.’


중요한 얘기를 하는 기색이긴 한데 셋 모두 무표정한 얼굴이라 이렇다 할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잠시 후.
대행자는 용병들에게 와서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지금보다 속도를  높여야겠네요. 대신 수도에 도착하면 보수를 기존보다 조금 올려서 드리도록 하죠.”

불만이 생기려다 보수 얘기가 나오니 용병들이 잠잠해졌다. 상단직원들이 다가와서 육포나 물 따위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면 지금 나눠준 걸 행군 중에 먹으라는 말을 하면서.
중간에 밥을 먹는 휴식시간은 없다는 소리였다.


‘좀 급해 보이는데. 어차피 빨리 가려 해봐야 이틀 걸릴 거 하루로 줄여지는 것도 아닌데.’

기껏해야 반나절?
그럴 거면 처음 2일 기준으로 잡고 체력을 비축해 혹시 모를 일이 생겨도 대처할 상황을 만드는 게 낫다.

 B급  명과 몇몇 C급 용병들은 몰라도, 대다수가 일반인의 범주인 D급이고. 상단 직원들도 딱히 칼밥 먹는 사람들처럼은 안보였다.


강행군이 시작되고 시간이 꽤 지났다.
나는 아직까지 버틸 만 했는데 몇 용병들은 앓는 소리를 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솔직히 이상하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지! 정지-!”

선두가 멈춰 섰고 발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선두의 C급 용병들이 우리 쪽 후미로 오더니 외쳤다.

“이 새끼들아 일하자! 칼 뽑아!”
“빨리빨리 해라 멍청하게 뒤지기 싫으면.”

나는 재빠르게 칼을 뽑고 주변을 경계했다.
몬스터인가?

고블린? 아니면 오크? 웬만하면 좆밥 고블린이 좋겠는데. 수십 미터를 넘어선 기척을 감지할 수 없으니 답답해 뒤질 거 같았다.

두두두두-


“야... 시발 이거 말 발굽소리 아니냐?”
“좆 됐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우리가 지나왔던 길목을 바라보니 20여기의 기병이 창을 들고 돌진하고 있었다.

“뭐해 병신아! 옆으로 굴러!”

내 옆에 안면이 있던 용병 한 놈을 걷어 차버리고 뒤따라 몸을 내던졌다. 기병이 달려드는데 정면에서 받아내면 그냥 죽여 달라는 거다.

콰지지직.

대처가 느린 용병들은 그대로 뭉개지고, 창에 꿰어 절명했다.

다행히 충돌은 한번 뿐.
주변이 숲이고 변변찮은 흙길이 전부인 이 장소에서 기병은 크게 힘을  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퍼엉.

기병이 한 번의 돌파를 하고나서 느닷없이 하늘에 밝은 폭죽이 터졌다.

‘시발 저거 신호탄 아냐?’

기병은 우리를 돌파해서 앞쪽으로 사라졌다. 저 폭죽이 의미하는 것은 위치를 특정했다는 뜻 같다.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왜 멍 때리고 있어 이대로 뒤지고 싶어?”

목소리를 증폭했는지 귀가 얼얼하다. 확실히 빨리 숲으로 들어가서 뭐든 해야 했다.
앞에서 가로질러간 기병이 뭘 하고 있을지 모를 테니까.

“하.. 시발, 이게 무슨 일이지?”
“일단 닥치고 뛰어.”

김준석과 이지혜는 무사했다.
숨이 찰 정도로 뛰었을 때 멈추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기서 싸운다. 지금 빨리 정비하고 전투를 준비해라.”

 상태는 괜찮다. 수통을 꺼내 물을 빠르게 마시고, 로또 용지가 든 수통을 품에 잘 챙겼다.

긴장을 유지한 채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자 곧바로 화살이 날아왔다.

파파팟.

“아아아악. 시바아알!”

저 병신 같은 놈!
화살이 쳐 날아오면 빨리 나무 뒤에라도 숨었어야지.

“다 죽여!”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고함소리가 난무하고 곳곳에서 폭발이 터진다.
B급 용병 중 한명이 마법계열이었는지, 전류가 몰아쳐 달려드는 놈들을 태워버렸다.

주변은 눈먼 칼들이 난무했다.

촤악.
이지혜의 뒤에서 칼을 휘두르려는 놈의 모가지를 따버렸다.

“상황 보면서 튈지 안 튈지  판단 해.”
“땡큐.”

그렇게 말해두고 김준석의 위치를 찾았다. 김준석도 그럭저럭 잘 싸우고 있었다.


‘처음 기병을 봤을 땐 어디 귀족 새끼랑 연관된 줄 알았는데.’

지금 싸우는 놈들은 딱 봐도 나처럼 고용된 용병들. 우리도 오합지졸이지만 저쪽도 피차일반이다.

B급 용병이 알아서 저쪽 무리의 강자들을 상대해주니 내가 할 일은 좆밥들 모가지를 따는 것.

피하고 찌르고 막고 벤다.
단순하고 야만적인 일을 반복하고 있을 때.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우리가 이기는 모양이었는데. 생각보다 전투가 질질 끌리고 있다.


‘시발? 어디 갔지  개새끼들.’


잠깐 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B급 용병이 안 보인다. 상단 대행자 역시 안 보였다.

아니 뭐지?
여기서 배신을 때린다고?

“아... 이 시발 새끼들.”

왜 그들이 몰래 빠져나갔는지 지금 깨달았다.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들리는 기분 나쁜 소리.

크르르르르.

서로 죽고 죽이던 용병들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5미터의 거구.
무자비해 보이는 꿈틀거리는 근육, 녹색 피부에 광이 나는 대갈빡까지.

그간 행군할 때 몬스터  마리 안보이나 했더니 저런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거였나.

“오....오우거다아아. 으아아아!”

소리 지른 용병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우거는 배를 긁적이더니 나뭇가지 하나를 꺾고, 도망간 용병한테 던졌다.

파아아앙.

마치 미사일이 날아가는 파공음. 나뭇가지는 용병의 몸을 뚫어버리고도 한참을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씨익.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만족스레 웃는다.

“뭐냐 저거...”

도망칠 수 있을까?
서로 죽이려 칼을 들이밀던 용병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눈치를 보고 있다. 누굴 희생시켜서 도망칠지.

여기 있는 모두가 덤벼들어도 저 누런 이빨에 뜯겨져 한 끼 식사로 전락할 신세다.

“바일런 상단 좆같은 새끼들!”

이 새끼들 분명 알고 있었을 거다.

쿵 쿵 쿵.

나는 지면을 울리는 소리에 애써 공포를 외면하며 김준석에게 말했다.

“야. 나는 수도 쪽으로 뛴다. 어차피 지금 루트란으로 돌아가는 건 더 멀어.”
“나도.”

눈짓으로 같은 방향으로 뛰기를 합의했다. 지금 상황에서 서로 도울 방법은 없다.
당장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드르륵.

누군가의 뒷걸음질에 차인 돌. 그게 신호였다. 모두 사방으로 일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살려줘-! 씨발!!”

아아아아악-

“오 시발. 돌아보지 마!”

톱니 같은 이빨에 사람이 씹히는 광경을 눈에 담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달렸다.

*

오우거를 처음 보지만 들은 정보는 꽤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오우거가 멍청하지 않은 몬스터라는 거다.

별 함정 같지 않은 함정에 당해서 뒤져나가는 몬스터들과 다르게.
주변을 이용할 줄 알고 위기에 민감해서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안다.

“허억 허억.. 야, 이제 도저히 못 뛰겠다.”

김준석은 그렇게 말하고 주저앉아 물을 벌컥 들이켰다.
나도 숨이 가빠와 뒤질 거 같았는데, 언제 오우거가 뒤따라올지 몰라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시발 그러면 같이 뒤지자고?”
“좀만 쉬었다 가자.”
“그렇게 해요. 나도 더 이상은 못 뛰겠어.”

쯧.
 옆에 앉아서 신발 끈을 정리하며 말했다.

“수도까지 얼마나 남은 지 알아?”
“한 6시간정도?”
“걸어서?”
“아니 뛰어서.”
“시발.”

근처에 오우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운이 좋았는지 우리 말고 다른 용병들부터 쫒기 시작했던  같다.

“곧 있으면 해도 질것 같은데.”

배낭은 진작 갖다 버렸다. 조금만 머뭇거려도 바로 죽는 상황에서 그딴  챙길 여유가 없었다.

“오늘내로 수도까지 가는 건 당연히 무리겠죠?”

이지혜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거, 차라리 은신할만한 곳을 찾고 내일 움직이는 게 나을  같다.”

흥분한 감정이 가라앉으니까 누적된 피로에 몸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팔자 한번 더럽게 기구하다.

수도를 급하게 가려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당장은 후회보단 닥친 상황을 타개해야한다.

이성이 돌아오고 생각해보니, 곧 어두워질 숲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무리수였다.

나는 둘을 다독이며 말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움직이자.”

주변을 탐색하면서 움푹 파인 곳이나 동굴이 있는지 찾았다.
이것도 저녁이 되면 찾는 일이 더 힘들어져서 우리는 빠릿빠릿하게 행동했다.

“여기 괜찮은 거 같은데?”
“비켜봐.”

김준석이 말한 곳으로 가보니 좁긴 해도 세 명이 부대낄만한 공간은 있었다.

“휴.. 여기로 하자. 더 찾기도 힘들고.”
“그래, 좀 쉬자. 죽겠다 진짜.”
“수도로 돌아가면 숲을 가로지르는 일은 절대로! 안할 거예요.”
“오우거가 있을  누가 알았겠어.”
“바일런 개 쌍놈 새끼들. 튀었잖아. 느끼한 퍽킹 코리아 대행자 새끼랑 B급 두 마리.”
“야 그러고 보니 우리 수도가면 보수는 받을 수 있냐?”

김준석의 의문은 존나 당연하게도 불가능해 보였다.

“줄 리가 있겠어? 난 이거 협회에 말할 거다. 바일런 쌍놈들은 의뢰 받으면 고기방패로 쓰고 도망간다고.”
“D급 용병 말을 누가 믿어준다고.”
“안되면 소문이라도 내야지 시발.”

바일런 상단은 양아치 중에서도 심한편이다.
습격당할 정도로 내가모를 사정이 있는데 그런  죄다 숨기고.
오우거가 근처에서 접근하는  알고 있었음에도 죄다 희생양으로 내몰아 버리는.

상도덕이 전혀 없는 거지같은 상단. 기억해뒀다가 두 배로  갚아준다.

“눈이나 좀 붙여둬.”

서로 불침번 순서를 빠르게 합의하고 눈을 감았다. 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지.

“야, 이지훈! 일어나. 교대해야지.”

이지혜 김준석 나.
마지막 순번이어서 김준석이 나를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고생했다.”
“너도 고생해.”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해 몸을 풀고, 두 명이 잠들었는지 살펴봤다.
이지혜는 첫 순서라 진작 자고 있었고 김준석도 숨소리가 고른걸 보니 자고 있는  확실했다.

품안을 뒤져서 수통이 있는지 확인하고, 꺼내서 용지가  있는지 체크했다.

“하아....”

다행히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오늘만 버티면··· 그러면 된다. 혹시 모를 전투에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품안에 소중히 갈무리했다.

시간이 지나고 움직일 시간이 다가왔다.
둘을 깨우고 나서 말했다.

“지금 출발하자.”

해가 곧 뜨려는 지금이 움직일 적기라 생각됐다.

“뛰어서 6시간 정도면 빠른 걸음으로는 9시간이면 되겠지. 휴식은 중간쯤에 한번으로 하자. 오늘 내로는 무조건 수도로 가야돼.”

지금 파티로는 답이 없었다. 길어야 이틀은 노숙을 더 할  있겠으나 우리 실력으론 위기에 한계가 있다.

무리를 해서라도 무조건 오늘 수도에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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