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화 (3/44)



〈 3화 〉3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머리가 안돌아가는 편은 아니라 자신한다.
멍청했으면 5년간 용병 일을 하면서 살아남지도 못했다.

‘자연스러워야해.’

서류 두 장을 테이블에 놓고 의뢰를 고민하는 척 한다. 머릿속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한 상태. 내 눈을 뚫어져라 관찰하면 아마 초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을 거다.

툭.

어깨를 감싸는 손아귀, 나는 흠칫 놀랜 몸을 겨우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자연스레 옆에 앉은 김준석이 말했다.

“뭐 보냐?”
“그냥.... 일거리 고민 중이었지.”

그는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였는데, 귀에는 마치 저승사자가 말하는 듯 싸늘하게 들렸다. 아까 어깨를 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걸 겨우 참았다.

“오. 이거는 수도로 가는 의뢰네?”
“아 그거. 바일런 상단이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대. 부럽잖아 보수도 센 편이고. 궁금해서 보고 있었지.”

괜히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게 된다.
주의하자, 내가 당첨됐다는 사실은 알 수가 없어.

나도 어안이 벙벙한데 지레짐작 내가 당첨자라는 걸 절대로 짐작할 수 없다.
꿈에서도 모를 거다.

“그래? 존나  빠는 새끼네. 확 망해버리라지.”
“뭐 보수도 10골드고. 숲을 가로지르기는 해도 용병 모집도 많이 하는 거 보면 의뢰 자체는 괜찮은데?”
“흠... 그런가? 근데 굳이 수도까지 갈 이유는 전혀 없긴 하지.”

김준석은 그렇게 말하고 서류를 뺏어들어 살펴보고 있었다. 나도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았었는데, 이젠 수도로 가야할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나는 담담한 척 평소와 다르지 않은 톤을 겨우 꾸며내고 말했다.

“나는 지원할까 생각중이긴 해.”
“이걸 하겠다고? 너 수도에서 일할 생각이 있었냐?”
“뭔 소리야. 돌아와야지. 난 신용도를 다시 쌓아야 하는 입장이잖아.  의뢰랑 수도에서 루트란으로 돌아오는 건의 의뢰까지 찾아서 잘 마무리 지으면 감점당한  만회하고도 남지.”
“쉽지 않을 텐데.”
“C급 용병도  지원했다 하니깐 큰 문제는 아마 없을걸.”
“그럼 간만에 나도 수도 구경이나 해볼까.”

뭐?
내가 원한 전개는 결코 이딴 게 아니었다. 이놈이랑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나름 썩 나쁜 인연은 아니었는데 당첨 사실을 알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하하 호호 축하해주는 평화로운 짓거리는 없다.
한국에서도 1등 당첨자한테 기부하란 전화가 끊임없이 온다는데. 이곳은 그딴 평화로운 전화가 아니라 진짜 칼 든 강도가 온다.

‘옆에 누워있던 D급 용병의 품에 1등 당첨용지가 있다? 바로 칼부림이 일어날 거다.’

단 한명만 살아남고  살아남아야 하는 지독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질 거라는 건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버릴 순 없다.

“너도 간다니깐 좀 안심되네, 나는 수도는 처음이니까. 내일까지니까 생각 있으면 얼른 신청해.”
“넌 거의 한다는 마인드네?”
“해야지. 겸사겸사 상단이랑 인맥도 좀 쌓아보고. 같은 한민족 아니겠냐.”
“한민족은 시발. 막상 상단주가 양놈 새끼면 어쩌려고 그러냐. 존나 웃기겠네.”

김준석은 같이 쇼핑이나 하자는 제안을 했다. 전혀 쇼핑할 상태가 아니었기에, 대충 핑계를 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

그간 모아둔 돈은 100골드.

대부분 낮은 등급 용병들은 돈을 모을 형편도, 그럴 생각도 없는 놈들이 태반이다.
하루 벌어서 놀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하는. 약한 용병은 언제 죽어도 모를 환경이라 어찌 보면 바람직한 생활이라 할만하다.

그들이 보면 오히려 내가 특이한 종자로 생각될 거다. 애초에 난 돈을 모아 여차하면 가게라도 차릴 생각이어서 착실하게 돈을 모았던 거지만.

‘진짜 존나 다행이지. 돈을 모아두지 않았으면 좆망할 뻔 했어.’

이번 의뢰에 모아둔 전부를 투자했다.

날이 잘 벼려진 검과 혹시 모를 호신용 단검. 왼손에 찬 팔찌는 마탑에서 산 아티팩트다.
실드 마법을 3번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이지만, 기존의 실드보다 조금 더 단단하다.
검지에 낀 반지는 마찬가지로 일회성 아티팩트. 잠깐 동안 몸의 민첩함을 늘려준다.

가죽갑옷은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걸로 골랐다. 여타 다른 D급 용병들도 쓸 만한, 딱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갑옷.

로또용지는 곱게 말아서 싸구려 수통 안에 넣어두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실험도 해봤는데 실제로 물에 젖지도 않았으니 괜찮을 거다.

‘일단 로또에 관한  잊자.’

소매를 내려 팔찌를 숨기고 여관을 나섰다.

살짝 으스스한 날씨 때문이 맞는 걸까,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 조금은 어둑한 거리를 걸어서 명시된 장소로 향했다.

루트란의 성문 근처 광장. 모인 용병의 숫자가 어림짐작 100여명은 돼보였다.

“왔냐?”
“엉.”

김준석이 아는 체를 해왔다. 김준석의 옆으로 가면서 안면이 있는 자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오빠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고?”
“네. 오빠는요?”
“나야 뭐. 그럭저럭  지내지.”

인사를 하는 이지혜에게 간단한 안부를 전했다.

그녀는 김준석의 파티원이라 몇 번 의뢰를 같이 해본 적이 있는데, 전에  앞길을 방해했던 트롤 새끼들보단 이지혜가 강하다는  확실하다.

‘얘도 용병 일을 하는 애니까 어디 가서 독하단 소리도 듣겠지.’

장비를 점검하는 모양새가 꽤 노련한 용병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늦었냐.”
“어떤 거 입을까 고민 좀 하다가.”

김준석에게 배낭 속 헤져있는 갑옷을 보여주었다.

“쫌생이 새끼가  좋은 갑옷을 샀네.”
“너도 알잖아. 용병이 많이 모인 일에선 어느 정도 허세가 필요한 법이라고.”
“그 아가리로 말투나 좀 고쳐. 목소리 깔고 루이스요, 이런 개소리도 좀 그만하고. 그러면 지금보단 존나 세보일걸?”
“말투 그거 시발 효과 있다니까.”
“오빠... 솔직히 말하면 병신 같아요. 이름도 존나 촌스럽고요. 그냥 본명 쓰고 다녀요. 처음 봤을 때 중2병 걸린 줄 알았었다니까요?”

쌍놈의 새끼들.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바일런 상단의 인물이 무리로 걸어왔다. 대략 50여명. 선두에 있는 남자가 무리를 한번 슥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도움을 주러 오신 여러분께 상단주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꾸벅.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말고도 상단에서 따로 고용한 B급 용병 두 분이 함께 하기도 하고. 물자도 넉넉하니 노숙이 크게 힘들 일도 없을 겁니다. 모처럼 같이 하게 된 인연이니 서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용병들의 질문은 없었다. 남자는 30분 뒤에 출발하겠다고 공지하고 상단 측 인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B급 용병이 둘이나 있다고? 특이하네.’

겨우 수도로 가는, 특이한 점이라곤 시간을 단축시키려 숲을 가로지른다는 것 외엔 없는데. 굳이 B급 용병을 데리고 갈 이유가 있나.

“개꿀 알바였네. 이야, 10골드 꿀꺽했다.”

김준석의 말대로 이건  개꿀 알바라 해도 될 정도다.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나보다. 생각보다 일이  풀려서 마음이 좀 놓였다.


*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것에 특화돼 있다고 봐도 될 종족이다. 서로 모여서 지도자를 추대하고 제국이니 왕국이니 나라를 세워서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생활한다.


유감스럽게도 몬스터는 그렇게까지 지능이 발달하진 못해서인지 대개 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이런 숲 안에서.

지금 걷는 이 숲을 제하고서도 제국  수많은 숲. 그리고 대륙 곳곳의 어딘가에 수많은 몬스터가 있지만. 이놈들은 협동심이 없다.
인간처럼 거대한 무리를, 국가를 이룰 줄 모른다. 그래서 군대를 이끌어서까지 씨를 말려버릴 이유도 없는 것이고.

이정도 인원이 숲을 지나다닌다 해도 몬스터가 서로 협동하여 인간무리를 토벌하자, 이런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너  소문 들었냐?”
“뭔데.”

나처럼 심심했는지 김준석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으로 로또 1등 당첨자가 나타난 거.”
“뭐?”
“뭘 그렇게 놀래. 지가 당첨된 것도 아니면서.”
“아니 시발. 존나 빡치잖아. 어떤 새끼인진 몰라도 인생  꿀 빠네.”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버려서 실수했다.
아니 시발 대체 왜 그딴 소문이 생긴 거지? 그 개 꿀 빠는 새끼인 내가 입 닥치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그니까. 난 6개월간 4등도 된 적이 없었는데.”
“그만 포기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거나 먹자. 수도에 가면 유명한 디저트 가게도 많잖아.”

이지혜는 평소 로또 중독자인 김준석에게 불만이 있었는지 그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쏘아붙였다.

“아니 지혜야 오빠가 평소에 뭐, 못해줘?”
“이 시발 놈아. 뭘 해준 적이 있어야 그딴 소리도 하는 거지.”

역시 업계 종사자인 이지혜는 아가리 파이터의 자질이 있었다.
나는 둘이 아옹다옹하는 사이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스럽게 물었다.

“근데 너도 어지간히 로또에 관심이 많나보다. 그런 소문은 대체 어디서 알아오는 거냐.”
“아 그거 황실에선 2등 당첨자부터 알수있나봐. 황제가 직접 축하한다고. 부디 조만간 면상한번 봤으면 좋겠다 직접 말했는데. TV 안 봤구나?”
“나 평소에도 잘 안보잖아.”

황제가 실제로 저 따위로 말하진 않았겠지.
어쨌든 김준석도 어지간히 1등 당첨자한테 원한이 있나보다. 미안 사실 그거 나야.

“세상일에 관심 좀 갖고 살아라. 하... 그 새끼 만만한 놈이면 썰어버리고 내가 먹을 텐데.”
“그 전에 내가 먼저 썰어버리고 먹음.”
“응, 내가 먼저.”

자연스레 얘기하면서도 식은땀이 흐르는 착각이 든다. 이 새끼 진지하게 날 배신하고 훔칠 놈인가?

금은보화도 아니고 무려 황제가 소원을 이뤄준다.
제국의 황제는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있으니, 신한테 원하는 걸 받아낼 기회나 마찬가지.


김준석과 이지혜가 서로 당첨되면 자기는 황제에게 무슨 소원을 빌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귀족 작위를 달라해 영주가 된다거나  그런, 상상만 해도 개 쩌는 미래에 둘의 입 꼬리는 찢어질듯 올라가 있다.

‘그러고 보니 시발... 난 뭘 해야 하지?’

저 둘은 그저 망상이지만 나한테는 전혀 망상이 아니다. 절대로 오를 수 없는 귀족이란 지위도.

‘가능. 시발 쌉가능.’

남작이라도 나 같은 평민들한텐 전설로 전해지는 드래곤 이상 가는 지위.
남작님 행차하면 루트란 용병협회 지부장은 발이 땀나도록 뛰어와서 굽실거릴 거다.


귀족이란 신분은 그런 의미다. 중앙 정계와 거리가 먼 시골 뜨내기 귀족도 평민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권력자.

‘돈 있고 든든한 귀족 빽이 있어도 감히 시골 뜨내기 귀족을 노골적으로 무시는 못 하지. 잘못 건드리면 진짜 좆 되는 수가 있으니까.’

귀족이 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일까. 아직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는데 무척 땅긴다.

‘좀 더 생각해보자.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기회는 단 한번.
신중하고 또 신중해도 모자랐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정지!”

바일런 상단 대행자가  목소리로 외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