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고대 숲.
넓게 펼쳐진 균열 근방은 얼마 전부터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균열 곳곳이 무너져 내리는가 하 면,새로운 균열도 만들어졌다.
고대 숲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었지만,그 지진에 대해 아 는 사람은 없었다.
고대 숲에 더 이상 남아 있는 사 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숲에 자리를 깔고 앉은 검 은 몬스터들이 있긴 했지만, 하늘 을 나는 몬스터들인 만큼 지진에 별로 민감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던 지진 끝 에,균열에서 하늘을 향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균열 벽을 깎아 버린 빛은 하늘 로 치솟아,구름마저 뚫어 버렸다.
균열 주변에 자리를 잡았던 검은 몬스터들이 빛에 휘말려 죽어 버 렸다.
그럼에도 균열에서 빛이 계속 솟 구쳤고,수직의 벽 형태의 균열 일부분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궁……!
거대한 협곡이 무너지는 소리에 고대 숲에 있던 몬스터들이 하늘 로 치솟았다.
균열 일부가 무너지자,솟구치던 빛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지진 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얼마 뒤,무너진 균열 쪽
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 작했다.
지네처럼 보이는 몬스터에서 벌 레,곤충,늑대와 공룡처럼 보이는 몬스터까지.
검은색 일색의 몬스터들이 무너 졌기는 했지만,아직도 험난한 경 사를 빠르게 기어올랐다.
먼저 지상을 장악했던 하늘을 나 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몬 스터들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지상으로 올라온 몬스터 들은 그놈들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검은 몬스터들은 지상으로 나오 자마자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 작했다.
하늘에서 다른 몬스터들을 향해 괴성을 지르던 몬스터들이 어느 순간 소리를 멈추었다.
몬스터들은 멍청히 균열 쪽을 바 라보며 하늘을 배회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곧 놈들 도 북쪽으로 날개를 펄럭이기 시 작했다.
그런 뒤였다.
작은 몬스터 하나가 무너진 균열 사이로 모습을 보였다.
색을 제외하고는 인간과 그리 다 르지 않은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는 가슴에 이상한 쇳덩 어리를 찬 채로,다른 몬스터의 위에 올라 경사로를 기어올랐다.
특이하게도 그가 움직이자 앞을 가로막던 몬스터들이 썰물처럼 길 을 비켜 주었다.
그는 바로 디스트로이어가 된 황 제였다.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나 이놈들 을 이끄는 거나 별 차이가 없군.]
시큰둥한 표정의 황제는 의외로 꽤 지쳐 보였다.
몬스터를 타고 움직이는 생각보 다 꽤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째서 이렇게 쉽게 지친 것일까?
알고 보면 그가 지친 건 당연했다.
지하 세계에서 이곳 지상까지 그 는 계속 광선을 쏘아 댔는데 지치 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는 몬스터들이 오를 수 있게 균열 벽에 대각선으로 길을 만들 었다.
덕분에 벽을 타지 못하는 몬스터 들도 지상에 올라올 수 있게 되었
지만,대신 그는 거의 탈진을 하 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 웠다.
[이 세계의 멸망은 다른 놈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인간들은 전부 내가 쓸어버릴 거야.]
전보다 더욱 미치광이 같은 소리 를 토해 내며 그는 주변을 둘러보 았다.
무너진 균열의 틈에서는 계속해 서 디스트로이어들이 쏟아져 나오 고 있었다.
가끔 지상으로 나오면서 혼란한
움직임을 보이던 디스트로이어들 도 있었지만,제국의 황제…… 아 니,이제는 괴물들의 황제가 시선 을 주자 바로 북쪽으로 향하는 디 스트로이어들에 합류를 했다.
[일일이 세뇌를 하기 귀찮군. 그 냥 지시를 내리면 전체가 움직이 면 편할 텐데.]
-그런 편한 능력은 없습니다. 지 금 능력도 마도 제국의 능력을 퍼 부어서 만든 것입니다.
[뭐,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 지.]
황제는 선두에 나서지 못하는 아
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바보짓은 하지 않 았다.
지하 세계에서 몰려든 검은 몬스 터들은 지상으로 나와 황제에 의 해 그의 군사로 변해 모두 북쪽으 로 향했다.
* * *
제국의 북쪽 끝.
눈 덮인 산맥 아래.
세계 5대 마탑 중의 하나인 얼 음의 탑이 홀로 서 있었다.
얼마 전까지 얼음처럼 반짝이던 탑의 표면은 지금은 눈이 덮여 눈 으로 만든 기둥처럼 보였다.
하늘에 뜬 채로 눈 덮인 마탑을 보던 제이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마탑이 멀쩡하지 않은 것 같네."
-마탑을 방어하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주인님 말대로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파티마 말대로 마나가 느껴지지 않자,제이크는 지상으로 내려갔다.
마탑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제이크는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영하의 날씨 탓에 마탑의 내부는 얼마 전 광경을 간직한 채로 꽁꽁 얼어 있었다.
도망치는 모습으로 쓰러져 얼어 붙은 마법사.
놀란 얼굴로 벽에 기대어 얼음 동상이 된 시체 등.
많은 시체가 얼어붙은 채로 제이크를 맞이했다.
제이크의 감각에도 살아 있는 사 람은 없었다.
지상에도,지하에도 말이다.
"마나 스캔."
제이크는 주변의 마나를 확인하 는 마법을 펼쳤다.
원래 다른 마법사나 기사의 마나 를 찾는 데 쓰는 마법이었지만, 제이크는 좀 더 작은 흔적도 찾을 수 있게 마법을 개조했다.
바로 죽은 자에게 조금이나마 남 아 있는 마나의 흔적을 찾는 마법 이었다.
"지하인가. 많은 숫자가 지하에 서 죽었어."
마나의 흔적은 탑의 곳곳에서 느
껴졌지만,특히나 지하에는 한곳 에 많은 숫자가 몰려 있는 게 느 껴졌다.
더구나 마법사가 아닌 기사의 흔 적까지 있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제이크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 려갔다.
얼마 동안 계단을 내려가자,활 짝 열린 문을 통해 넓은 지하 홀 이 보였다.
마치 얼음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기사 다섯이 선 채로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고,바닥에는 어린
마법사들의 시체가 얼음 속에 파 묻혀 있었다.
그리고…….
홀 중앙에는 늙은 여 마법사가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탑주가 자폭을 한 건가."
제이크는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황제도 공격을 받았지만 죽이질 못했군."
제이크는 홀 한쪽 구석에서 검게 변한 반지를 주워 들었다.
마나를 모두 소진해서 쓸모없어 진 마법 아이템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제이크가 서 있는 주변은 얼음에 덮여 있지 않았다.
제이크는 마찬가지로 옆에 있던 얼음이 덮여 있지 않은 벽을 이리 저리 조사했고,곧 숨겨진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는 수고를 덜어 주었어."
제이크는 마법을 사용해서 바로 문양의 패턴을 알아내었다.
치익.
또다시 열리는 문.
제이크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로 길게 이어진 통로.
통로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옛날에 왔으면 정말 위험했겠 는데요.
통로에는 수많은 방어 마법과 함 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법에 자신 있는 제이크도 감당 하기 어려운 함정과 마법들.
하지만,지금은 모든 함정과 마 법이 멈춰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멈춘 것도 있지 만,이 중 태반은 얼마 전에 정지 되었네요.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함정과 마법을 황제가 어
떻게 해제한 거지? 문서 하나만 있으면 다 해제되는 건가?"
-그럴 리가요. 마도 제국이 보안 에 얼마나 까다로운데요. 그 목차 에서 봤을 때는 전부 일급비밀처 럼 보였는데. 문서 하나에 모두 풀릴 리가요.
하지만 눈앞에 본 광경은 전혀 달랐다.
어깨를 으쏙인 제이크가 방 안으 로 들어섰다.
크지 않은 방이었다.
바닥과 벽에는 여러 가지 마법진 이 그려져 있었고,중앙에 놓인
탁자도 여려 겹의 마법진이 펼쳐 져 있었다.
그런데 마법진이 그려진 탁자는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다.
"실드,독,마나 역류,자폭. 무 시무시한 마법진은 다 그려져 있 네."
-마법진은 모두 중앙의 탁자와 연동되게 되어 있어요.
"제대로 된 적합자가 아니면 끝 장을 내겠다는 건가?"
다행히 탁자 위에 있던 마법 아 이템이 없는 지금은 모든 마법진 이 멈춰 있었다.
-탁자에 문자가 새겨져 있네요.
"나도 봤어."
다행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 었다.
제이크는 탁자 앞으로 다가가 글 을 읽었다.
다행히 이 글은 읽을 수가 있는 문자로 적혀 있었다.
[경고합니다. 지정된 자 이외에 는 이 아이템에 접근을 금합니다.]
시작은 전생에 보았던 평범한 경
고 문구였다.
[지정된 자: 마도 제국 황실의 유전자를 일정 이상 지닌 자로 동 일 유전자 비율은 기간에 따라 줄 어듭니다.]
이어진 문구는 제이크를 놀라게 했다.
"이건 뭔 소리야. 제국 황제가 마도 제국 황실의 후예란 말이 야?"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말이었지 만,생각해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
이기도 했다.
황도에 있는 마법진을 가동시킨 것 하며,거대한 제국을 만든 것, 거기다 마탑을 소유하기까지.
고대 마도 제국과 관련이 없다면 하기가 어려운 것들이었다.
제이크는 뻗어 나가려는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은 마도 제국과 황실의 연관 성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제이크는 계속 글을 읽어 나갔다.
[본 에고 아이템은 디스트로이어
의 제어를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디스트로이어의 제어 는 아인족 세뇌와 달리 본래의 육 체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 습니다.
그렇기에 지하 세계 두 곳에 디 스트로이어의 형태로 전환 시켜주 는 시설을 구축했고,이 에고 아 이템으로 시설을 가동할 수 있습 니다.
본 에고 아이템은 마도 제국이 만든 가장 강력한 정신 마법형 에 고 아이템입니다.
에고 아이템은 디스트로이어로
변한 뒤에도 정신 마법을 펼쳐 착 용자가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도록 지원합니다.
그리고 아인족 제어로 습득한 모 든 마법을 이용,착용자가 디스트 로이어의 세뇌를 가능하게 합니다.]
글 중간에 사람 가슴에 붙어 있 는 쇠뭉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글에서 말한 에고 아이템이었다.
[한번 디스트로이어가 되면 인간 으로 돌아올 방법이 없습니다. 대
상자는 다시 한번 주의를 바랍니다.
끝으로 본 아이템은 제국 환난 의 위기 이외에는 사용을 금합니다. ]
[추신. 디스트로이어로 변하기 전에도 특정 마법 기술자용 서클 과 기사용 심법을 사용하는 사람 은 세뇌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과 사용 설명이 함께 적혀 있는 글이었다.
제이크는 이것으로 어떻게 황제
가 마법사와 기사들을 세뇌했는 지,황제가 왜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는지 알 수 있었다.
-늦지 않았을까요?
같이 내용을 읽은 파티마가 걱정 스러운 목소리를 입을 열었다.
"아니,늦지 않았을 거야."
제이크는 강하게 부인을 하고 몸 을 돌렸다.
하지만,그도 절로 발이 빨라지 는 것을 막지 못했다.
거의 뛰듯이 탑을 벗어난 그는 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남쪽으로. 가속!"
그는 가지고 있는 마나를 뒤로 뿜어내며 남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밤을 새며 계속 남쪽으 로 날아갔고,며칠 뒤 방어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방어선 하늘에 도착해서 처 음 본 것은 하늘을 나는 수십마리 의 검은 몬스터들이었다.
땅으로 내리꽂는 비행 몬스터들. 그리고 죽어 가면서도 몬스터들을
막아 가는 병사와 기사들.
다행히 황도에서 출발한 병사들 이 늦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직 방어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제이크의 가방에서 검은 창살들 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