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아쉽게도 황도를 점령하는 동안 근위 기사와 마법사들은 모두 자 결해 버렸다.
다행히 제이크가 마탑에 있던 마 법사를 구속했기에,겨우 마법사
들이 왜 황제를 따랐는지 심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법사는 심문에 걸려들 지 않았다.
그는 황제를 향한 무한한 충성심 을 토해 낼 뿐이었다.
고문도,회유도 소용이 없었다.
단서는 마법사와 같이 있었던 수 습 마법사에게서 나왔다.
다행히 소년은 멀쩡했다.
"마법사님들이 황궁으로 황제를 만나러 가신 뒤부터 바뀌셨어요."
처음 소년이 꺼낸 말은 제이크도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그 뒤에 이어진 말은 처 음 듣는 이야기였다.
"마법사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는데,황제 폐하가 가진 에 고 아이템 때문에 충성심이 생겼 다고 하셨습니다."
수습 마법사의 이야기를 듣고, 제이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황 제의 일정을 수소문했다.
마법사들이 방문하기 전에 귀족 들을 죽인 일.
그리고 그 전에 근위 기사단과 함께 황도를 떠났던 일.
사람들 말로는,황제는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쪽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그에 제이크는 복제 세상에서 있 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황제가 대수림으로 떠나기 전에 떠났던 여행.
황성에서 비밀 방이 발견되었다 는 소문과 함께 황제가 떠났던 여 행.
그때도 황제는 북쪽으로 향했었다.
그렇다면 황제가 어디로 갔는지, 왜 갔는지 알아야 했다.
그걸 알아야 황제가 지금 몬스터
들 속으로 달려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황제와 기사들이 간 방향을 따라 수소문한다면 황제가 어디로 갔었 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오래 걸 릴 게 분명했다.
'비밀의 방.'
황제가 북쪽으로 가기 전에 발견 했다는 곳.
만약 복제 세상에서 들었던 소문 이 사실이었다면 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그런 소문만으로 황궁의 숨
겨진 방을 찾는 것은 어려웠지만, 제이크는 고대 마법사이자 서기관 이었다.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그는 알 수 있었다.
황궁은 고대 유적 위에 만들어진 왕궁이 었다.
오랜 시간 찾지 못했던 장소라면 뒤에 만들어진 황궁이 아니라 황 궁의 기반이 되는 고대 유적 쪽이 었다.
제이크가 아는 황궁의 유적은 두 개였다.
복제 세상을 경험한 황궁 지하의
마법 진.
그리고,탈출할 때 사용한 탑의 비밀 통로.
거기에 하나 정도 더 있다고 해 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제이크는 황궁을 뒤지기 시작했다.
유적과 황궁이 맞닿은 곳.
황궁의 제일 아래에 있는 지하 창고를 뒤지던 제이크는 결국 비 밀 방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했다.
제이크가 마법을 사용하자,무기 창고 안쪽 바닥에 반투명한 문양 이 떠올랐다.
그동안 여러 번 봐 온 문양이었다.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 진 반투명한 문양.
제대로 된 암호를 입력하면 비밀 의 문이 열리는,마도 제국 때의 도어록이 었다.
암호는 모르지만,이제는 이런 암호 정도는 쉽게 풀 수 있었다.
"나타나라,너의 흔적을. 보여 주 어라,시간의 흐름을."
반투명한 문양 아래 돌바닥에 흐 릿한 흔적들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 지만,얼마 전에 생긴 흔적들은
전부 드러났다.
어떤 흔적은 진하고 어떤 흔적들 은 흐린. 여러 개의 흔적.
제이크는 흐린 흔적부터 차례로 눌렀다.
웅,웅,웅-
얇은 판이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곧이어 문양 아래쪽 땅 이 아래로 꺼졌다.
제이크는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마법도 알지 못한 채 로 폭발을 피해 급하게 문양을 눌 렸었다.
겨우 몇 년이 지났지만,이제는
도망자가 아니라 점령자가 되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묘한 감흥을 느끼며 제이크는 지 하로 향하는 통로로 발을 옮겼다.
통로는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오래된 돌 계단을 밟으며 한참을 내려간 제이크는 한 석실에 도착 했다.
-연구자 숙소네요.
침대 하나에 책상. 뒤에는 낡은 책장.
지금과 전혀 다른 형태의 가구들 이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제이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까지 멀쩡한 이유는 얼마 전 까지 유지되던 보존 마법 덕분이 었다.
"파티마,널 발견했던 숙소하고 비슷한데?"
-이 숙소는 상당히 높은 사람용 숙소인데요. 가구도 그렇고,책장 도 있는 걸 보면요.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도 수긍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 방은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이 유적 전체를 담당하던 마법
사의 방일까?"
-그야 알 수 없죠. 그보다 찾아 봐야 하지 않아요?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우선 책 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책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단지 노트가 놓여 있었던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다.
-역시 가져갔네요.
"뭐, 남아 있을 것 같진 않았어." 제이크는 빈 서랍을 확인하고는 뒤쪽의 책장을 보았다.
아쉽게도 보존 마법은 완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많은 책이 삭아 버려,책장에는 단지 몇 권의 책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오래전 사라진 마도 제국 의 문자로 쓰인 책들이었다.
[연구소 관리 규칙]
[아인족 현황]
[마법의 기초]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 는 책들이었다.
-아,하나 있는데요? '각 연구소 의 연구 목적과 진행 사항'. 이거
어때요?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책을 집 어 들었다.
금새라도 삭아 버릴 것 같은 책 이었다.
제이크는 마법으로 책을 강화한 뒤에 책장을 넘겼다.
책장을 넘기자 떡하니 목차에 붉 은 글자로 보안이라는 문자가 적 혀 있었다.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을 터. 제이크는 목차를 읽어내렸다.
[디스트로이어 제어. 제1연구소]
좌표: XXXXX-XXX
[마나 복제 연구. 제2연구소]
좌표: XXXXX-XXX
[디스트로이어 결계. 제3연구소]
좌표: XXXXX-XXX
[마나 복제 테스트. 제4 연구소]
좌표: XXXXX-XXX
[실험…….]
"이런,너무 낡았다."
목차의 아래쪽부터 글을 읽을 수 가 없었다.
제이크는 급하게 목차 뒤를 확인 했지만,뒤쪽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낡아 있었다.
무척이나 아쉬웠지만,그래도 이 것만으로도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좌표들,공간 좌표네."
-마도 제국 때 먼 거리는 포탈 로 이동했으니까요.
제이크는 자신의 앞에 반투명한 지도를 펼쳤다.
대륙 지도였다.
"그럼 좌표를 대입해 보자고." 제이크가 좌표대로 지도를 가리 키자,지도 곳곳에 깃발이 세워졌다.
황도에 하나,그리고 대수림과 아인족의 땅에도.
또,멀리 북쪽 땅에도 깃발이 세 워졌다.
바로 북쪽에 있는 얼음의 탑과 겹쳐지는 곳이었다.
[디스트로이어 제어. 제 1 연구 소]
깃발이 가리키는 연구소 이름이 었다.
같은 시각.
황제는 지상에 만들어진 거대한 균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 곁에는 마법사 몇 사람이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 려왔다.
몬스터들을 유인 중인 기사들의 전투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져서 작아지는 것도 있지만,싸움 자체가 끝나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황제의 군 대는 모두 쓰러졌다.
몬스터에 죽고,먹히고,상처와 고통으로 쓰러졌다.
결국 레타니아 왕국을 가로질러, 고대의 숲 안에 있는 균열에 도착 한 이는 기사 몇 명과 마법사,그 리고 황제뿐이었다.
게다가 균열을 지키고 있는 몬스 터들을 유인하기 위해 마지막 남 은 기사들을 보낸 상황이었다.
황제는 균열을 바라보다가 품속 에서 낡은 노트를 꺼내 들었다.
마나로 만든 세상에서 처음 발견
했던 노트였다.
복제 세상에서 그는 수많은 학살 을 자행했었다.
내전도 해 보고,반란군을 모조 리 죽여도 보았고,다른 나라를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아쉬 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에 대한 갈망은 줄어들었지만, 너무 모자랐다.
죽여도 죽여도 자신 같은 인간들 이 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결국 그는 모두 포기하고 황도에
불을 질러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이 노트는 그때 발견한 것이었다.
[디스트로이어 제어의 최신 개발 진척 상황.]
노트에는 전 황제에게 들었던 고 대 마도 제국의 괴물들에 관한 이 야기가 적혀 있었다.
마나,마법이 통하지 않는 무적 의 괴물들.
찬란했던 마도 제국을 멸망시켰 던 파괴자들.
황제는 노트를 읽고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제국 안에 있는 유적 지들을 뒤져 에고 아이템을 찾아 냈다.
바로 지금 황제 가슴에 박혀 있 는 아이템이었다.
그 뒤에 그는 바로 괴물들과 연 결되어 있다는 대수림 너머로 군 대를 몰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꿈은 이 루어지지 않았다.
아인족의 나라는 발견할 수 있었 지만,아인족의 저항과 제국의 혼
란 때문에 결국 회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죽음.
하지만 그 죽음은 가짜였다.
그리고 그 가짜 생으로 인해 그 는 결국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펄럭!
황제와 멀리 떨어진 균열에서 디 스트로이어 한 마리가 밖으로 빠 져나왔다.
"정말,마법진이 망가진 모양이 네. 도대체 언제 파괴된 거지?"
마법진이 없었다면 복제 세상에 서 아인족의 땅까지 갈 이유도 없었다.
아예 포기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 던 곳이었는데,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 인생에서는 문이 활짝 열려 버렸다.
"뭐,신의 도우심이지."
황제는 옆의 마법사들에게 지시 를 내렸다.
마법사들은 황제를 양팔에 끼우 고 균열 안으로 뛰어내렸다.
다른 마법사들도 같이 균열을 향 해 몸을 날렸다.
마법사들은 바로 비행 마법을 펼 쳤고,황제와 마법사들은 천천히 균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내려간 황제 는 지하 세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제 주위에는 이제 황제를 등 뒤에서 안고 있는 마법사 한 명만 남아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번갈아 가며 황 제를 안고 비행 마법을 쓰다가 마 나가 떨어져 먼저 추락하거나,몬 스터를 유인해 스스로 먹이가 되
었다.
황제는 신기한 표정으로 지하 세 계를 구경했다.
끝없는 넓은 세상.
물이 있고,구름도 있고,산과 숲도 있는 또 다른 세상.
하지만 황제는 곧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몇 마리의 비행형 몬스터들이 배 회하고 있었고,그 아래 검은 건 물이 보였다.
"역시 있었어. 내려가자."
"넵."
황제의 명령에 마법사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구름을 뚫고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자,몬스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더 뻘괴!"
황제는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보 고 소리를 질렀고,마법사는 비행 마법을 반전시켰다.
두 사람은 날아오는 몬스터들을 지나쳐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슈웅,쾅!
폭음과 함께 검은 건물 위로 먼 지가 치솟았다.
놀란 암컷 몬스터 몇 마리가 하
늘로 날아올랐다.
이어 새끼 몬스터들이 먼지가 치 솟는 곳으로 다가갔다.
곧 먼지가 걷혔다.
검은 건물 지붕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뭉개진 마법사 시체가 남 아 있었다.
황제는 그곳에 없었다.
새끼 몬스터들은 고개를 갸웃거 리며 작게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다.
구멍 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황제 가 서 있었다.
-위험합니다. 최대한 보호를 했
지만,생명이 위험합니다.
"괜찮아. 1분만 더 살 수 있으면 돼.
황제는 다시 한번 신이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붕을 뚫고 추락한 곳이 바로 자신이 가고자 했던 목적지였다.
실험실처럼 보이는 방. 그곳에는 중앙에는 검은 물이 가득 찬 투명 한 관이 있었다.
-확인되었습니다. 연구소를 재가 동합니다.
동시에 방이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캬캭!
구멍을 보던 새끼 몬스터들이 후 다닥 도망갔다.
황제는 열리기 시작하는 검은 물 을 담긴 투명한 관을 바라보았다.
"이제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가?"
황제는 관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