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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36화 (136/222)

136화

앰버와 제이크는 제노라는 이름 을 가진 중년 마법사를 따라 층계 를 올라갔다.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답게 수 많은 계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

었다.

그 탓에 층을 올라가는 동안 두 사람은 꽤 지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제노는 허허 웃으 며 두 사람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과거 탑으로 만든 이유가 마법 사의 체력을 위해서라는 이론도 상당히 호응을 얻은 적이 있었지요."

물론 농담이었다.

실제로 마법사들이 탑을 세운 이 유는 과연 마법사다웠다.

몸속에 서클을 만드는 현대의 마

법사들이었지만,마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모이는 곳이 필 요했다.

하지만 마나가 모이는 곳은 핫 스팟처럼 위험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마나가 모이는 유적 위에 높은 탑을 세워 버린 것이다.

유적에 모이는 마나는 탑 속을 순환하면서 위로 향했고,탑 상공 에 압축적으로 모였다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마법사들은 마나를 쫓아 몬스터들이 몰려올 걱정 없이 마 나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로 직위가 높은 마법사들 이 마나가 더 많이 모이는 탑의 높은 층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연히 탑주는 탑의 제일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런데 나이 많으신 마법사님들 은 오르내리기가 힘들지 않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탑 주나 장로분들은 탑 중앙 회랑을 비행 마법으로 오르내리시니까요. 다만..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중앙 회랑은 공간이 넓지 않아, 그분들 이외에 마법사는 이렇게 층계를 걸어다닐 수밖에는 없지요."

담담히 말을 하는 제노 마법사였 지만,제이크는 그의 말에서 조금 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 어쩌면 야망가라는 별명보다 혁명가라는 별명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그 당시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그가 백색의 마탑을 뒤집은 거라

고 생각했었다.

제이크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옆에서 보니 야망이 있다기 보다는 기존 체계에 불만이 많은 마법사에 가까웠다.

탑을 올라가는 길은 힘든 것을 제외하고도 상당히 지루했다.

밖으로 창이 나 있는 것도 아니 었기에,층마다 안쪽으로 나 있는 복도를 걷는 일은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

내심 폭발하는 실험실이나 멱살 을 잡고 토의하는 마법사들을 볼 수 있을까 했던 제이크로서는 이

렇듯 조용히 바로 탑주를 만나러 가는 게 아쉬웠다.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단조로웠던 등산도 끝이 보였다.

'20층 정도인가? 층마다 높이가 상당하니 전생의 40, 50층 건물 정도 크기겠네.'

전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평범한 고층 건물 중 하나겠지만,5층 이 상의 건물이 드문 이곳에서는 사 람들에게 경의로움을 주는 놀라운 건축물이었다.

일행의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층

에는 층계 앞에 복도가 아니라 하 나의 문만 자리 잡고 있었다.

제노가 먼저 문으로 다가가자, 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자동문이 네.'

전생에 많이 보던 모습이라,제이크는 그 모습을 보고도 시큰둥 했다.

그렇게 제이크와 앰버는 제노 마 법사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은 예상대로,층 하나가 모 두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바닥과 천장까지의 높이도 무척 이나 높았고,그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노 마법사가 말한 지상에서 맨 위층까지 뚫려 있다는 중앙 회랑 이 바로 저 커다란 구멍인 모양이 었다.

거기다 구멍이 뚫려 있는 천장 주변에는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 었다.

거기다 충만한 마나 덕분에 신비 로운 기분까지 느껴졌다.

제이크는 마치 오래된 성당에 들 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서들 오게나."

커다란 구멍 앞에 흰 수염을 길

게 늘어뜨린 멋지게 늙은 마법사 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바로 이 탑의 탑주이자 빛의 마 도사,클라우스였다.

노인의 반가운 인사에 제이크가 잠시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앰버가 앞으 로 나섰다.

앰버는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깊게 인사를 했다.

"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색 마탑의 탑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아스굴론이라는 작은 영지의 마법

사인 앰버라고 합니다."

거의 일국의 왕에게 하는 듯한 정중한 인사였다.

인사를 하면서도 슬쩍 제이크에 게 눈치를 준 앰버 덕분에 그도 그녀를 따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마법사 제이입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마도사는 만족 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네. 백색의 마탑 에 온 걸 환영한다네."

인자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 만,제이크는 마도사의 모습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은 데……

꾸민 듯한 미소에,배려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대를 낮게 보는 말투.

제대로 된 답례가 오자 겨우 만 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이 되는 등 마도사의 행동은 전생에 많이 보 던 모습이었다.

'아,생각났다. 정치가를 닮았어.' 이곳의 귀족들이나 영주들은 자

신의 힘과 권력을 모두 겉으로 드 러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친절의 가면을 쓴 마도 사의 모습은 무척이나 새로웠다.

"앰버라고 했나? 젊은 여자 마법 사치고는 나름 잘 성장하고 있어 보이는구먼. 만나서 반가웠네."

마도사는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 는 말로 우선 앰버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덕분에 앰버는 처음 인사 말고는 더 이상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졌다.

"자네가 고대 마법을 이었다는

마법사구먼."

마도사의 말에 제이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작은 성과가 있었을 뿐입니다."

"흠,혹시 문제가 안 된다면 어 떤 내용들인지 알려 줄 수 있겠 나?"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

마법사가 자신의 비밀을 다른 마 법사에게 토해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그렇게 요구하 는 것 또한 무례하기 그지없는 일 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마도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예,루테리아 영지에서 던전 탐 사대의 마법사를 하다가 던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던전 한 곳에 마법진이 가득 그려진 방이 있었는데……

제이크는 멍한 얼굴로 계속 이야 기를 늘어놓았다.

이윽고 설명이 포션을 만들게 된 계기에까지 이어지자,가만히 듣 고 있던 마도사가 한숨을 쉬며 손 을 내저었다.

"되었네. 그만 이야기해도 되네." 마도사가 그만하라는 말을 하자

제이크의 표정이 원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쏟아 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는 아까 전과 달리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마도사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쓸모가 없군."

다른 사람들은 마도사의 말을 듣 지 못했지만,제이크는 그 입술 모양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머지는 제노하고 이야기하게 나. 필요한 게 있어도 그에게 이 야기하고. 난 연구할 게 있어서

오래 시간을 낼 수가 없겠구먼." 마도사의 퇴장 명령에 세 사람은 당황하며 마지막 층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된 거예요?

문을 나서자 바로 앰버가 메시지 마법으로 물어 왔다.

앰버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제이크는 나지막이 한숨 을 쉬며 다른 말을 했다.

-아무래도 백색 마탑의 탑주는 빛의 마도사가 아니라 두 얼굴의

마도사라고 불러 야겠는데요.

미소를 띤 얼굴과 다르게,마도 사는 제이크를 향해 정신 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마도사 정도가 되면 다들 숨겨 진 한 수가 있는 모양이네요. 자 칫하다가는 큰일 날 뻔했어요.

마도사는 자신의 서클에 정신 마 법도 새겨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지금도, 복제 세상의 미래에서도 백탑의 탑주가 정신 마법을 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 했다.

정의로운 것으로 유명한 빛의 마

도사가 정신 마법이라니…….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간다면 꽤 커다란 풍파가 밀어닥칠 게 분명 했다.

다행히 제이크는 그동안 여러 정 신 마법을 상대한 경험 덕분에 마 법에 걸린 척하며 준비해 놓은 이 야기를 풀어 놨다.

고대 마법을 이은 것은 맞지만, 수준 높은 마법사가 침을 눈독 들 이기에는 조금 부족한 반쪽 고대 마법사.

그게 바로 제이크가 준비한 이야

기이자 제이크가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그의 수준이었다.

파티마는 고대 마법사의 명예를 위해 전부 이야기하라고 지금도 난리였지만,제이크는 명예 따위 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백탑의 탑주가 귀족 이상으로 예절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하네요.

제이크의 말을 들은 앰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행은 짧은 탑주와의 면담을 끝 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

했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느낌에 한 숨이 절로 나왔지만,어쩔 수 없 는 일이었다.

그리고,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마법진이 준비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고 혹시 가지고 있는 고대 마법을 거래하고 싶으 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먼저 층계를 내려가던 중년 마법 사가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제이크가 원하던 내 용이었다.

제이크는 포션에 대한 지식을 전 해 주고 유물 하나를 받을 생각으 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제이크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탑주와 앞에 가는 마법사를 만나 기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있 었다.

탑주는 정의로운 빛의 마도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정치가에 불과 했고,그의 제자는 야심가가 아니 라 그동안 쌓였던 불만으로 인해 반란을 벌였던 사실을 알게 된 지 금.

원래 야심가인 제노 마법사와 거 래를 하고 끝낼 생각이었던 제이크는 이 순간,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이크는 입을 여는 대신에 메시 지 마법을 그에게 보냈다.

-탑주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 신 마법으로 사람을 현혹하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탑주와 거래 를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 혹시 할 수 있다면 다른 이 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그러자 층계를 내려가던 마법사 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제이크는 긴장된 표정으로 마법 사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대응에 따라서 잘못하면 이 탑 안에서 활극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다.

-또 무슨 일이에요?

답답했던 앰버가 옆에서 메시지 마법을 보냈지만,제이크는 그녀 의 물음에 답을 보낼 수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마법을 준비해 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멈춰 섰던 마법사가 다 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이크와 앰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제 사무실로 가시죠. 아무 래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제이크는 긴장했던 마음 을 조금 풀었다.

다행히 준비했던 마법은 쓸 필요 가 없어 보였다.

"차는 뭐로 준비할까요? 제국 쪽 분들이면 홍차가 좋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에 제이크가 고개 를 끄덕이려고 했지만,앰버가 먼 저 입을 열었다.

"아뇨,홍자는 지겨워요. 다른 걸 로 마시고 싶어요."

레이첼 앞에서는 한 번도 홍차에 대해 뭐라 한 적이 없는 앰버였다.

놀란 눈으로 제이크가 바라보자, 앰버는 어깨를 으쏙였다.

"그 밀크티라는 것은 먹을 만했 지만,전 기본적으로 와인파예요. 레이첼 영주님도 안 계신데 홍차 를 먹을 수는 없죠."

앰버의 말이 텅 빈 계단을 울렸다.

그렇게 세 사람은 탑 가운데 층

에 있는 제노 마법사의 실험실 안 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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