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원래 마탑은 정치권력과 분리되 어 있어야 하지만,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다른 마탑들은 그래도 중립을 지 키려고 노력했지만,제일 강대한
마탑인 제국 황도의 마탑은 바로 정치권력 그 자체였다.
대륙에서 제일 강한 마법사인 대 마도사 아이힌테일도 황실 마법사 였고,제국 황도에 있는 마탑도 제국 마법사단 소속이었다.
다른 마탑들은 그런 제국 황실 마탑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리고,여기 레이첼 성의 복도 를 걷는 두 마법사도 제국 황실 마탑을 상당히 싫어했다.
"그래도 이곳에는 제국 마탑 놈 들이 보이지 않네요. 제국 땅인데 도 불구하고."
"내전이다 뭐다 해서 바쁠 테니 까 신경을 쓸 여지가 없겠지. 쯧 쯧,마법사가 정치에 신경을 쓰면 그 꼴이 되는 거란다."
정론에 가까운 대답을 한 스승의 말에 긍정하며 입을 다물 법도 한 데,아무래도 제자는 말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꽤 지원이 잘 나온다고 하던데요. 실험도 편하게 할 수 있고,이렇게 발품 팔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제자의 말에 늙은 스승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탑에서 나가고 싶은 게냐? 귀족 하나 물어서,영지 마법사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마술쇼나 보 이고 싶은 게야?"
질책하는 듯한 말에도 제자는 말 을 멈추지 않았다.
"여태 스승님이 계속 그렇게 말 씀하셔서 다 그런 줄 알고 있었는 데,이곳 영지 마법사는 그런 마 법사가 아니잖습니까. 정말 제대 로 된 마법사던데요?"
"그거야,원래 귀족이었던 마법 사니까 귀족들에게 휘말리지 않은 거지. 거기다 여기는 대수림 옆이
야.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니면 버틸 수도 없는 곳이니까 그런 거다."
"그럼,결국 영지 마법사 중에도 괜찮은 마법사가 있다는 말이잖습 니까."
"일부야,일부. 거기다 네놈 정도 면 귀족들이 혓바닥 하나로 신나 게 가지고 놀 테니 정신이나 차 려."
"네에,네에."
결국,제자의 반항은 스승의 꾸 짖음으로 끝이 났다.
남들이 보면 꽤나 불경스럽다 여
길 수 있었지만,벌써 10여 년을 함께한 두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과하지만 않으면 스승 도 이 정도로 넘어가곤 했다.
백색 마탑 소속의 두 마법사.
스승인 미뉴얼과 제자인 반센은 탑주의 명으로 연금술에서 쓰일 재료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재료를 찾아 대륙을 돌아다니느 일은 탑에 소속된 하위 마법사들 의 의무 중 하나였다.
또,지금 제자인 반센이 투덜거 리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제국을 관통해서 동부 까지 왔다가,포션 이야기를 듣고 이 영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영지 마법사인 앰버를 귀찮게 만든 끝에 겨우 포 션을 만든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근데,전 포션 때문에 이렇게 발품을 파는 게 이해가 안 됨니다. 성능이 더 좋다고 하지만,기 존 포션보다는 쓰기가 불편하잖습 니까. 마시기만 하면 잠들어 버리 다니. 이래서야 전투에 쓰기는커 녕 상비약로도 무리일 것 같은데
요."
제자의 말에 스승이 나지막이 혀 를 찼다.
"항상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고 내가 누누이 말했거늘,쯧쯧. 왜 포션을 전투용으로 쓸 생각만 하는 게야? 평범한 부상에 쓰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거야 일반인이 사기에는 포션 이 너무 비싸서 그렇죠. 일반인들 이 다치면 사제들에게 사례비를 주고 치유술을 받는 게 더 나을걸요?"
제자 쪽 이야기가 오히려 정론에
가까웠다.
게다가 포션은 원래 여벌 목숨용 으로 용병이나 기사들이 들고 다 니는 것이지,전쟁에 임하는 병사 들도 사용하기 힘들었다.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이곳에 서 봤던 포션은 가격도 꽤 싸고, 더군다나 기존 연금술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확인해 봐야 해. 새로운 레시피가 나온 것인지 도 모르니까."
그렇게 제국의 성에서 거리낌 없 이 떠들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 아 제이크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
다.
영주의 집무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이었지만,마법사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꽤 중하게 여기는 모양이군요. 성의 내실 쪽인 것 같은데요?"
"아마 실제로 실험실은 따로 있 겠지. 어차피 영지에 소속된 마법 사는 영주가 지시하는 대로 음직 여야 할 테니까. 여기는 영주가 정한 장소일 게다."
스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제 자,반센이었다.
그때, 둘을 안내하던 병사가 문
을 두드리며 말했다.
"서기관님,마법사님들이 오셨습 니다."
병사의 말을 들은 미뉴얼과 반센 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서기관이라니?
거기다 방 안에 들어선 두 사람 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눈앞의 그들이 본 자는 젊디젊은 청년이었던 것이다.
로브를 입고 있어 마법사는 맞는 것 같았지만,풍기는 분위기나 나 이가,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마법사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
였다.
두 사람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두 마법사는 상대의 말에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스굴론 영지 의 서기관이자 포션을 만든 마법 사,제이 발렌시아입니다."
이미 제이크의 얼굴에서 수습 서 기관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 려웠다.
그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얼굴형과 체격도 변했고,마법과 앰버의 도움으로 머리색도 헤어스 타일도 전혀 달라져 있었다.
거기다 용병 일과 미래를 경험한 덕분에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때까지는 원래의 이름을 말해 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사람 이 없었기에,정체를 아는 동료들 은 제이크로 부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그렇다고 아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외부에 말할 때는 아직도 제이라
는 가명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제이크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은 제이크의 이름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보다 마법사답지 않은 제이크의 모습에 더 관심이 있었다.
"마법사가 맞습니까?"
"마법사는 맞는 것 같은데,나이 가 너무 어린데."
"혹시,마법으로 어리게 보이게 만든 것 아닐까요?"
"환상 마법으로 얼굴을 바꾸었다 고?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마법사
가 어디 있어. 거기다 같은 마법 사라면 십중팔구는 들켜."
"흠, 그럼 엄청 동안이라든 가……
당사자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은 그에 대해 심도 있게 토의를 했다.
"저를 보고 싶다고 하신 것 아니 었습니까?"
그냥 놔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결국 제이크가 다시 한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미뉴얼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제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
다.
"흠, 흠. 미안하게 되었네. 늙으 면 주책이야. 자네가 이해하게나."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백색 마탑에서 온 마법 사들이네. 나는 미뉴얼이고,이쪽 은 내가 데리고 다니는 반센이라 고 하네."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법사인가요? 너무 어린…… 희!"
미뉴얼은 궁금증을 쏟아 내는 반 센을 째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저것 할 말은 많지만,본론
은 하나지. 우리는 자네가 만들었 다는 포션 때문에 찾아온 것일 세."
"네,그러셨습니까. 소개드렸다시 피 저는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이 영지의 서기관도 겸하고 있습니다. 해서,혹시나 제가 만든 포션 이 영지에 보탬이 될까 해서 팔려 고 내놓았습니다."
제이크의 말에,미뉴얼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끙,이거 원.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아무래도 까놓고 말해
야겠네."
그는 품에서 포션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제이크가 만든 제이크표 포션, 마크2 였다.
"이 포션에 담긴 마나나 성능을 보면 이건 보통 실력이 아닌 마법 사가 만든 것이라 추측이 되네. 아니,완전히 새로운 발견이야. 아 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걸 세."
"근데 자네는 아무리 봐도 수습 마법사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나 이일세. 자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이건 말이 안 돼."
미뉴얼은 제이크를 지긋이 노려 보았다.
"자네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마법사인 겐가?"
제이크는 담담한 어조로 그의 말 에 대답했다.
노인을 상대하는 것은 이미 이골 이 나 있었다.
"저희 영지의 마법사이신 앰버 마법사님과 같은 학파입니다. 거 의 일인 전승에 가까운 학파라 잘 모르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크는 품에
서 메달을 꺼내 들었다. 전에 앰 버에게서 받아 놓은 인증 메달이 었다.
제이크가 메달에 마나를 흘리자, 메달이 작게 울음을 토해 냈다.
제대로 된 인증자라는 것을 알려 주는 울음이었다.
이럴 때 쓰기 위해 준비된 메달 을 본 두 마법사는 의심의 눈초리 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영지 마법사를 만나 보았는데, 분명 공격 마법 쪽에 특화되어 있 는 마법사 같았는데? 그것도 화염 계열인 것 같고……
거기다,제이크도 그의 말을 부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뉴얼이 여전히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중얼 거렸다.
예상보다 관찰력이 뛰어난 마법 사인 듯했다.
제이크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 았다.
"맞습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런 학파에서 이런 포션을 만 들었다고?"
"포션은 학파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마법
사를 보면서도 제이크는 계속 말 을 이었다.
"이 영지에 오기 전 루테리아 영 지에 있을 때,저는 대수림으로 던전 탐사를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대 마법의 흔적을 발 견했습니다."
"뭐?"
"고대 마법이요?"
"벽에 새겨져 있는 일종의 마법 진이었습니다. 다 읽으니 사라지 더라고요. 덕분에 고대 마법 일부 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대 마법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부터 두 마법사의 눈이 번쩍 떠져 있었다.
거기다 제이크가 고대 마법의 일 부를 얻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 간,둘의 표정은 놀람 그 자체였다.
"그 말이 정말인가?"
"네,이 포션도 그곳에서 배운 것입니다."
제이크는 탁자위로 손을 올리고, 작게 주문을 외웠다.
"아이스."
그가 주문을 외우자,포션병과 함께 탁자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지금 쓴 마법은 얼마 전에 준비 해 놓았던, 마법 기술자들이 쓰는 주문과 같은 주문이었다.
하지만,두 사제는 제이크의 마 법이 기존 마법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제이크의 마법은 서클에 새겨진 마법이 아니라,주변의 마나를 끌 어모아 만들어 낸 마법이었던 것 이다.
"스승님,어떻게 하죠? 이렇게 되면 포션이 문제가 아닌데요?"
"잠깐 기다려 봐. 우리끼리 해결 할 문제가……. 아니,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데..
두 마법사가 혼란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제이크가 빤히 지켜보았다.
그때,여유로운 표정으로 두 사 람을 지켜보던 제이크의 머릿속에 파티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다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고대 마법을 풀어놓는다는 말에 환호성을 쳤던 파티마였기에,제이크의 말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는 없어. 너무 과한 재
물은 시샘만 받을 뿐이야. 거래가 가능한 물건 정도가 딱 좋아.
제이크에게는 이미 마나 세상의 미래에서 고대 마법사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바람에 다른 마법사 들과 드잡이질을 했던 아론이라는 반면교사가 있었다.
괜히 고대 마법의 후계자라는 것 을 알려 아론처럼 마법사들의 적 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겠나? 아무래 도 위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 네."
잠깐이라는 말에 제이크가 의아 한 표정을 지었다.
"백색 마탑 소속 아니셨나요? 그 곳이라면 거리가 엄청날 텐데,금 방 연락이 되겠습니까?"
백색 마탑이 있는 곳은 대륙의 남서부에 위치한 브리티 왕국이었다.
이곳 아스굴론 영지와는 대륙의 끝에서 끝이었다.
하늘을 나는 패밀리어를 이용한 다고 해도 잠깐 사이에 다녀올 거 리가 아니었다.
"아,저희 마탑은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 있습 니다."
반센의 말에 미뉴얼도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신기하 네요."
제이크는 무척이나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백색 마탑이 가지고 있다는 마법 은 소식을 빠르게 전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 물건을 빠르게 전 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제이크가 루테리아 영지에서 공 녀와 탈출할 때 썼던 마법으로, 짧은 거리만 가능했던 제이크와는 달리 백색 마탑이 사용하는 것은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가능한 공 간 이동 마법이었다.
제국 황실이 마나 복제 세상을 만드는 마법진 위에 황궁을 세운 것처럼,마탑들도 각기 다른 마법 진이 있는 유적 위에 마탑을 세웠 었다.
그중 백색 마탑은 공간 이동 마 법진이 그려진 유적 위에 탑을 세 웠던 것이다.
워낙 오래된 마법진이었기에 정 확한 분석을 할 수가 없어,백색 마탑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긴급한 연락과 이동을 위해서만 사용했다.
제이크가 빠른 시간 안에 백색 마탑으로 가려던 방법이 바로 그 마법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