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저기 사람들,좀 이상해 보이는 데?"
제시카가 제이크 옆에서 작게 속 삭였다.
그녀의 말에 루이도 고개를 끄덕
이며 동의했다.
"어떻게 보이는데요?"
제이크의 질문에 제시카가 고개 를 갸웃거렸다.
"뭔가를 덮어씌운 느낌?"
그녀의 말에 제이크가 슬쩍 마나 를 흘려 보았다.
거대한 마나가 저들 전체를 감싸 고 있었다.
"전부 마법으로 인간 모습을 하 고 있네요. 두 사람 다 마나 사용 자라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거고요."
변신이 가능한 고양이 족과 환상
술로 자신을 가린 여우족 베른과 달리,이들은 한 늙은이의 도움으 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게 된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자들 뒤에는 늙은 남자 하나가 온몸에 액세서리를 걸친 채로 주술을 시전하는 중이 었다.
-호족 주술사네요.
'오크족 주술사이군.'
파티마의 말을 알아서 걸러 들은 제이크였다.
그런데 주술사의 주술은 그리 강 하지 못한 듯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효과적인 모양이었지만,마법사나 마나 사 용자에게는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호족 주술사는 다가오는 제이크를 노려 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일행을 멀찌감치 떨어 진 곳에 멈춰 세운 뒤,베른과 함 께 호족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베른은 제이크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사람들을 소개 하느라 그 생각을 잊어 버렸다.
"저희 용병대 분들이고요,이쪽 은 저희를 도와주러 온 분들입니다."
베른이 큰 소리로 양쪽을 소개하 자,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덩치 봐."
"이건,웬만한 용병들은 한 손가 락에 날려 버릴 것 같은데요?"
맥 용병대의 용병들이 호족들을 보고 기가 질려 수군거렸고, 두 수습 사제들은 보자마자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제이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십여명 의 호족들 은 모두 제이크보다 머리 하나, 둘 이상 큰 키였다.
거기다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 있 어,보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느낌 이었다.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있는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는 놀라는 중이었다.
'실제 모습을 보면 다들 도망칠 지도 모르겠네.'
여우족이나 고양이족과 다르게, 이들은 사람보다는 인간형 몬스터 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호족이라고 부르고 있지만,아무 리 봐도 멧돼지 머리에 사람 몸을 붙인 듯해 보였다.
-마법 실험용이 아니라,전투용 개조였으니까요. 마나가 없이도 마나 사용자급의 위력을 발휘하는 게 목표였으니,생김새는 거의 인 간을 벗어나 버렸죠.
파티마의 말을 들은 제이크는 앞 으로 만나게 될 다른 아인족이 걱 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아인족 중에도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의 종족 이 있을지 몰랐다.
계획 중 하나가 인간과 아인족이 힘을 합쳐 멸망을 막아 내는 것이 었는데,이렇게 생김새가 달라서 야 힘을 합치긴커녕 서로 싸우기 바쁠 것 같았다.
그렇게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호족들 뒤쪽에 서 있던 주술사가 호족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다른 호족들과 다른 화려한 의상 에 안 그래도 눈길이 쏠렸는데, 덩치도 다른 호족들보다 작아,모 두의 시선이 주술사에게로 향했다.
"네가 그 마법사라고?"
주술사가 제이크에게 말을 건네 는 순간,주변의 기온이 한 단계 내려가 버렸다.
"갑자기 왜 이러지?"
"추워졌어."
어린 두 사제들과 경력이 짧은 용병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 을 둘러봤지만,고참 용병들은 긴 장한 얼굴로 검을 움켜쥐었다.
루이와 제시카는 이미 단검과 방 패에 마나를 두르고 싸울 준비를 마친 뒤였다.
갑작스러운 추위는 바로 호족들
이 내뿜는 살기였다.
마나가 포함되지 않은 무형의 기 세였는데도 얼마나 강렬한지,멀 찌감치 떨어진 일행에게도 추위를 느끼게 만들었다.
"함정인 겁니까?"
그런 기세를 직접 받으면서도 제이크는 차분히 베른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베른은 굳은 얼굴로 제이크에게 고개를 숙였다.
질문의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 왔다.
"그 녀석이 벌인 일은 아니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싸움은 있을 수도 있다."
제이크 앞에 선 주술사였다.
나름 오랜 산 덕분인지 딱딱한 말에도 연륜이 묻어 나오긴 했지 만,어쨌거나 함정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제이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싸우게 되면 당신들 모두가 죽 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상대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사실 베른이 그를 꼭 집어서 부
른 순간부터,제이크는 함정일 가 능성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이미 모든 마법은 발동될 준비를 하고 있었고,최악의 경우 폭파시 키는 아이템들마저 준비하고 있었다.
그 아이템을 쓴다 해도 망토가 있는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챙긴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모두 죽더라도 충분히 값어치는 있다. 일족들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 면."
주술사의 말에 제이크는 피식 웃
고 말았다.
-널 믿는 모양인데?
냐아아아옹.
제이크의 메시지 마법어L 멀리서 고양이 울음이 들려왔다.
-왜 나한테 이런 일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들킬 게 뻔했는데.
한숨 섞인 페이샤의 말이 제이크 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여기까지 몰래 따라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우,난 몰 라!
마지막 메시지 마법을 끝으로 고 양이의 기척이 멀어졌다.
하지만 이미 목에 걸린 브러치에 추적 마법을 걸어 놓은 이상,아 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는 제이크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이크는 마법을 발동시킬 준비 를 하며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뭘 하고 싶은 거죠?"
"넌 한 가지만 해 주면 돼. 내 주술을 막지 말고 한 번만 받아들 이면 된다."
주술사의 말에 제이크는 눈썹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잘
알겠군요."
주술사의 주술이나 마법사의 마 법을 방비하지 말라니.
이건 검을 든 기사 앞에서 무장 해제를 하고 목을 내밀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제이크가 주술사의 말에 화를 내 려 하는 순간,다시금 주술사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고대 마법사라는 것은 중 요한 문제다. 네 성향과 말의 진 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과 달리 작게 속삭이듯 한 말 이었다.
그에 제이크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주술사의 말에 따르면,주술로 제이크의 진심을 알아본다는 이야 기였다.
말이 되는 이야기였고,이해도 가는 상황이었지만,꽤나 위험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만,상대도 제이크를 많이 배 려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확인할 필요 없 이 제이크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제이크는 결국 주술사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주술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이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도 무작정 주술사의 말을 받아 들인 것은 아니었다.
-가방 속에 있는 아이템들 충전 은 이미 끝나 있으니까,내가 문 제가 생긴 것 같으면 바로 폭파시 켜 버려.
만약을 대비해서 일행을 뒤쪽에 남겨 놓고 온 제이크였다.
이미 마나로 마법 아이템들을 과 부하로 걸어 놓았으니,자신이 없
더라도 파티마가 충분히 폭파시킬 수 있었다.
마법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에고 아이템과 함께 있는 제이크만이 할 수 있는 비기였다.
준비가 된 듯 보이자,주술사는 제이크에게 주술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춤을 추듯이 훙얼거리는 노 래와 함께 주술사의 액세서리들이 흔들렸고, 제이크의 머릿속으로 묘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제이크는 그 기운들을 막지 않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기운들이 제이크의 머릿속을 차지해 버렸다.
"그럼 질문에 대답해. 너는 고대 마법사의 후예인가?"
"네."
"너는 아인족과 적대할 생각이 없나?"
"네."
"그리고……
주술사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제이크는 마치 거짓말 탐지기 앞 에서 취조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질문은 마지막까지 무사
히 끝이 났다.
제이크의 머리에 있던 기운은 슬 그머니 빠져나갔고,추운 공기도 어느 사이에 원래로 돌아가 있었다.
"신기한 마법사다. 요즘 마도 기 술자들보다도 선민사상이 없다니. 용병 출신이라서 그런가?"
다행히 질문은 고대 마법사에 대 한 질문이 대부분이어서,제이크 의 출신이나 전생,미래 지식 등 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실제로 궁금한 것은 그것 뿐이었기에 일부러 다른 질문은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됐든 제이크에게는 여러모 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의문은 풀린 건가요?"
"사람은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 만,지금은 너를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감시는 계속 둬야 할 것 같군."
주술사는 멀리 숲을 힐끗 바라봤다.
곧이어 제이크의 머릿속에 함성 이 들려왔다.
-야호! 좀 더 놀아도 된다!
페이샤의 메시지 마법이었다.
주술사의 말에 베른은 한숨을 내 쉬었지만,그는 반대 의견을 내지 는 않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양이족 소녀 는 그냥 이대로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마법 아이템에 쏟아부 었던 마나를 회수하고서 멀찌감치 물려 뒀던 일행을 불러들였다.
"끙,튀어 나가려는 걸 참으려고 엄청 고생했어. 일은 잘 된 거 야?"
일행을 멈춰 세웠을 때 제이크는 따로 제시카와 루이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내 놓았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움직이지 말라 는 지시였다.
다행히 살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도 두 사람은 제이크의 말을 지켜 줬다.
제이크는 걱정 가득한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네,다행히 진심이 통한 모양입 니다."
그러자 제시카가 한숨 돌렸다는 듯 투덜거렸다.
"어렵다,어려워. 갈수록 일이 복 잡해지는 것 같아."
평범한 용병이던 시절에는 던전 을 뒤져 보물만 찾으면 됐는데, 지금은 온갖 변수를 다 생각해서 처신을 해야 했다.
제시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자,루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제이크 님이 다 고민하시 는 것 아닌가요? 제시카 누님이 전과 다른 게 있나요?"
"어라,너 많이 컸다?"
제시카가 실눈을 뜨고 루이를 바 라보았고,루이는 하하 웃으며 슬 그머니 용병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둘의 만담 덕분에 경직되었던 분 위기가 조금은 풀릴 수 있었다.
제이크가 오크로 봤던 호족은 그 생김새만큼이나 호탕했다.
온도를 낮출 만큼 살기를 뿌렸던 그들은,언제 그랬냐는 듯이 먼저 나서서 제이크 일행의 숙영지를 만들어 줬다.
거대한 나무들을 힘으로 밀어서 넘어뜨리고, 호쾌하게 주먹으로 나무 뭉치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보며,용병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호족들의 행동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에 가도 도움이 안 될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이크와 베른,그리고 호족의 주술사이자 장로인 투스카도 던전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 었다.
"다들 말없이 일만 하고 계시는 군요."
"머리들이 나빠서 말을 꺼내면 기껏 건 주술이 다 들통난다. 그 래서 내가 입 닥치라고 말해 놨다."
"하하……
투스카의 대답에 제이크는 멋쩍 은 웃음만 흘렸다.
"그런데,주변에 몬스터들이 보 이지 않던데……
"우리가 전부 먹었다. 원래 몬스 터 먹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먹을 게 없었다."
아무래도 정말 보급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던 제이크 는 이제 제일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럼,그 던전에 들어갔다는 디 스트로이어라는 괴물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베른에게 듣기는 했 지만,괴물의 생김새나 어디서 나 타났는지 등은 전혀 들을 수 없었 습니다."
제이크의 질문에 주술사는 얼굴 을 일그러뜨리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그놈은 하늘에서 날아왔다. 날 개를 펄럭이며. 그리고 우리가 지 키던 던전을 뚫고 들어갔다가 한 참 뒤에 다시 나왔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모르겠지만,나올 때는 다른 괴물로 변해 있었다. 날개가 사라
지고,벽을 타고 돌아다니는 지네 처럼 변해 있었다."
제이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어떤 괴물인지 알 수 없어 눈가를 찌푸렸다.
사실 그 괴물은 레타니아 왕국의 고대 숲에서 나온 괴물이었다.
괴물은 바닥없는 협곡의 마법진 을 없애기 위해,날개를 버리고 벽을 타는 수많은 다리를 얻은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