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급 서기관의 회귀-110화 (110/222)

110화

제이크는 멀리서 제국군들이 항 복한 병사들을 한쪽에 묶어 놓고, 용병들과 함께 시체를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린 사제들은 방금 전 싸움으로

늘어난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바 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콘라드 기사는 홀로 왕 국의 전리품들이 실려 있는 마차 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젠장,없어진 게 한두 개가 아 니야. 그사이에 다 빼돌린 건가?"

한눈에 봐도 마차에 비는 자리가 많이 보였다.

부피가 큰 물건들을 어떻게 빼돌 렸는지,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짐을 바리바리 등에 매고 도망

칠 리도 없었을 텐데,"

아니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조금 씩 빼돌렸을지도 몰랐다.

짐 확인은 죽은 수송대 기사가 담당했으니,어떻게 된 일인지 이 제는 알 방도가 없었다.

'혹시 용병들이?'

콘라드는 뒷정리를 도와주는 용 병들마저 의심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해 준 그들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거기다 지금은 소꿈친구였던 제시카에게 면목도 서지 않았다.

기껏 구해 주었는데 조금 전까지

의심하고 있었으니,기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잠시 쉬고 있던 용병이 협 곡에서 내려오는 제이크를 보았다.

"여! 마법사님이 오셨어!"

그의 외침에 용병들이 모두 제이크를 반갑게 맞이했다.

"덕분에 살았어,마법사!"

"엄청난 마법이었어요!"

"우리 용병단에 오지 않을래요? 지금 단장은 잘라 버리고 새로 단 장이 되시면 됩니다!"

제이크는 용병들의 환호성에 어

리둥절했다.

용병으로 생활한 지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이 정도로 환영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름 공적을 많이 세웠음 에도 제이크를 소가 닭 보듯이 하 던 용병들이었다.

제이크도 별로 상관없었기에 신 경을 쓰지 않았지만,뜨거운 환영 은 기분이 꽤 좋았다.

실제로 용병들은 제이크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했다.

외부인은 경계하고 마법사에게는 조심했지만,생명을 구해 준 동료

는 형제처럼 반겨 주는 게 용병들 이었다.

물론,나중에 돈 문제로 시비가 붙으면 언제 그랬냐며 돌아서 버 릴 테지만.

어쨌거나 이곳의 용병들은 제이크가 마법사가 아니었으면 달라붙 어서 행가래라도 칠 기세였다.

"수고했어."

환대를 받는 제이크에게 제시카 가 다가왔다.

"볼일은 다 봤어?"

뭔가 눈치를 팬 모양인지 목소리 를 낮춰서 묻는 말에 제이크는 메

시지 마법으로 대답했다.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별문제 는 없었어요.

제시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제이크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용병들은 슬금슬금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소굽친구 기사분과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회포 좀 푸셨나요?"

제이크의 물음에 제시카는 쓴 미 소를 지었다.

"아니,전혀. 헤어진 지 1년도 안 됐는데 수십 년은 떨어져 있었

던 것 같은 느낌이더라."

뭔가 놓아 버린 것 같은 제시카 의 말에 제이크는 위로할 말을 찾 지 못했다.

기사가 된 뒤에 그녀의 소꿀친구 는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지금도 콘라드는 제시카를 놔둔 채 짐만 뒤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럼,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뭐,소꿈친구와의 대화는 나중 을 기약해야지. 상황이 안 좋으니 같이 있어 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제이크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럼,부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 은 제 포션으로 치료하고 바로 출 발하죠."

"뭐? 싫어. 절대 안 써! 그리고 신전에서 마차도 하나 보내 줘서, 부상자들은 거기 태우면 돼."

성능이 개선된 두 번째 버전이 등장했지만,제시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제이크표 포션의 정식 데 뷔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제이크는 기사 시체를 마차에 싣 고 있는 루이에게도 인사를 한 뒤 에 어린 사제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몇몇 사제들은 아직 돌아다니면 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제들은 한쪽에 앉아 제이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제이크가 가까이 다가가자,한참 부상자를 치료하던 소녀가 일어나 제이크를 맞이했다.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여쁜 단발머리 소녀였는데,어린 나이

에도 벌써부터 치유술을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소녀와 같은 사제들은 신의 이름 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기적을 일 으키고 있었다.

그것이 전생의 종교와 달리,이 곳의 사제들이 사람들에게 존경받 는 가장 큰 이유였다.

파티마가 볼 때는 변형된 마법에 불과했지만, 성력이라 지칭되는 그 힘은 겉보기에 기적 그 자체였다.

물론 사제 중에도 악당이나 사기 꾼들이 있었지만,그들은 제대로

된 성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신실한 믿 음이 꼭 필요한 법.

제대로 된 성력을 사용하는 사제 는 드물지만,기본적으로 사제들 은 모두에게 감사와 존경을 받고 있었다.

"마법사님이시죠? 도와주셔서 감 사합니다."

다른 사제들처럼 회색의 로브를 걸친 그녀는 제이크에게 먼저 감 사 인사를 했다.

"사제님이 이 사제 일행의 대표 인가요?"

어린 나이에 성력을 지니고,먼 저 나선 것으로 보아하니 그녀가 이 사제 일행을 이끌고 있는 듯했다.

"예,같은 형제자매들이지만,여 행이 끝날 때까지 과분하게도 저 에게 직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현재 사제들을 이끌고 있는 수습 사제 이네트입니다."

제이크의 질문에 신을 섬기는 자 답게 예스러운 대답을 했다.

"결국 대표란 이야기군요."

"……네."

이네트 수습 사제의 말에 제이크

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인가요?" 환자를 돌보고,사람들을 돕는 등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열심 히 움직이는 사제들이었지만,그 들은 모두 1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었다.

"설마,전부 수련 사제만 오고 정식 사제들은 한 명도 안 온 건 가요?"

눈썹을 찡그리며 꺼낸 질문에 이 네트는 그만 의연한 태도를 잃고 말았다.

"……그게,다들 사람들을 구하

는데 바쁘셔서……

울상이 된 소녀의 모습에 제이크 는 아차 했다.

'이런,아직 어린 애라는 걸 깜 빡했네.'

겔드의 사제 이네트는 제이크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눈앞의 어린 소녀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미래의 경 험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었고 그녀를 보기도 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멸망의 시대에 절망에 빠 진 대륙인들에게 환한 빛을 내려 줬던 사제 중 한 명이었다.

혼란한 시절에 나타난 괴물들은 평범한 공격과 마나에 무척이나 강했었다.

하지만 마나와 달리 성력은 괴물 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되자,당연히 사람들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모여 괴물들에 게 저항했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무너지 기는 했지만,제이크는 그들을 잊 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제들 중에는 겔드의 사제,이네트도 있었다.

'그 당시는 중년의 여성이었는 데……'

제이크도 먼발치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의 그녀는 거친 피부를 가진 강한 중년 여성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이미지가 강하 게 남아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아직 어린 이네트를 모질게 대한 모양 이었다.

그때 였다.

"일행 중에 레이 사제님의 동생 이신 루이 용병님이 있어서 사제 장님이 믿고 맡기셨습니다. 그리 고 루이 용병님도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딱 부러지는 대답이 그녀의 뒤에 서 들려왔다.

이네트 수련 사제와 비슷한 나이 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의 말에 이네트의 얼굴이 밝 아졌고,제이크는 묘한 표정이 되 었다.

"아! 사제님께서도 성력을 지니 고 계시는군요."

단호한 대답도 대답이었지만,제이크는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성력에 내심 놀랐다.

이네트나 눈앞의 소년 사제가 이

처럼 강한 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네트 사제와 다른 특이 한 느낌의 성력이 그의 몸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알리바 수습 사제입니다."

"아! 성바퀴? 맞아. 당신이 있었 지?"

"네? 그게 무슨 뜻이죠? 혹시 저 를 아십니까?"

물론 그도 이 시간대에서는 모르 는 사람이었지만,알리바는 미래

에 엄청 유명해져 있었다.

이네트 사제보다 더.

'불멸의 성바퀴……

절대 죽지 않는 성스러운 바퀴벌 레.

알리바 성기사라는 이름보다 '성 바퀴'로 유명했던 그였다.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아직 제 대로 된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엥? 성력 맞는데?"

"어떻게 제 몸속의 성력을 알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성력은 다른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는 성

력입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알리바는 담담하게 말했지만,옆 에 있는 이네트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성력을 다른 사람에 게 전달할 수 있어야 축복이 가능 했고,치유술도 할 수 있었다.

성력이 몸 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로서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그에게 있는 성력은 사용할 수 없는 반쪽짜리란 소리였다.

"하지만 치유술은 가능하지 않습 니까?"

제이크의 말에 그는 고개를 흔들 었다.

"제 상처만 치료할 수 있는 치유 술입니다. 남을 돕는 데는 별 쓸 모가 없습니다."

말을 하는 그는 조금 우울해 보 였다.

하지만 제이크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 치료할 수 있는 그의 성 력은 그를 최강의 성기사로 만들 어 주었다.

상처를 입어도,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다시 회복하는 그의 모습 은 사람들은 물론 괴물들마저 질 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불멸의 성바퀴'라는 불명 예스러운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그 시절 그는 그런 별명마저 담담 하게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제이크는 더할 나위 없 이 좋은 상황이었다.

"좋군요. 환영합니다. 이제 마법 사 제이를 믿으십시오. 제가 성까 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두 수련 사제는 갑자기 뒤바뀐 제이크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방금 전까지 정식 사제가 없다고 성질을 부리던 제이크였다.

그런 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 누더니 순식간에 입장을 바꿔 버 린 것이다.

"그럼,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 세요. 마무리되는 대로 출발하겠 습니다."

그 말을 하고서 제이크는 등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멀어져 가는 제이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네트가 알리바 에게 물어봤다.

"혹시 아는 사람이야?"

"저런 마법사를 내가 알 리가 없 잖아."

"그렇지? 근데 정말 이상한 사람 이다."

"마법사라잖아. 전부 괴짜들이라 는데,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사에 대한 오해를 더욱 키워 버린 제이크였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는 즐거 운 마음으로 부상자들이 실려 있 는 마차로 향했다.

"대박이다,대박! 수습 사제들만 와서 아쉬웠는데, 이런 월척이 걸 리다니."

단지 영지 안정을 위해 추진한 일이었는데,호박들이 알아서 굴 러들어 온 격이었다.

방금 얻은 마나향이 가득 나는 주머니 속의 물건과 병사들 사이 를 돌아다니면서 마법 배낭에 챙 겨 넣은 왕국의 보물들까지.

이번 일은 간만에 대박이 터진 것 같다.

"그럼 저 사제들을 어떻게 꾀어 야 하나?"

앞으로 사제들을 구슬릴 생각에 히죽거리던 제이크는 부상자 마차 앞에 도착하자 다시 표정을 굳혔다.

계속 뒤로 미뤘지만,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이제 미래의 아내였던 여성을 만 날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