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일대에 작렬한 번개는 아직 무기 와 금속 물체를 들고 있던 용병들 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콘라드의 말을 듣지 않은 몇몇 병사들도 같이 번개에 감전이 되
고 말았지만,적들의 피해와는 비 교가 되지 않았다.
"뭐,죽을 정도로 피해를 주지도 못했네."
하얗게 질린 제이크가 마법 지팡 이를 가방에 넣으며 한숨을 내쉬 었다.
모자란 마나는 마법 지팡이에서 끌어다 쓰기까지 했지만,아직 강 력한 대규모 마법은 어려웠다.
-그래도 예상치 못하게 모두 행 동 불능이 되어 버렸으니,충분한 것 같은데요?
파티마의 말처럼 번개에 직격당
한 용병들은 통구이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일부는 흰 연기마 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마나 사용자가 없었 으니까 성공한 거지. 저 봐,아직 도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잖아."
과연,제이크의 말처럼 콘라드와 싸우던 용병 셋은 번개에 직격을 당하고서도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제시카와 콘라드가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날아든 콘라드의 검 에 목숨을 잃었고,다른 용병들
역시 병사들의 손에 죽고 말았다.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을 쉽게 죽이는 그 모습에 제이크가 씁쓸 한 표정을 지었지만,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전투가 끝나고,제이크는 병사들 을 살폈다.
용병들이 부상자는 남기지 않은 때문인지,거동을 못하는 병사들 은 없는 듯했다.
-저는 잠깐 주변을 살펴보고 올 게요. 혼자 괜찮겠어요?
제시카는 제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변하긴 했지만,남 아 있는 기사는 소꿉친구뿐이기에 괜찮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잠시 뒤,제시카는 제이크를 보낸 걸 조금 후회했다.
"왕국군의 사주를 받은 용병들인 가? 제국 땅에서 공격을 받다니."
심각한 표정으로 용병들을 살펴 보던 콘라드는 번뜩 제시카를 돌 아보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어떻 게 이리로 올 수 있지?"
"이제야 잘도 알아차렸네."
제시카가 대놓고 혀를 찼지만, 콘라드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떻게 된 거지? 빨리 말해!" 콘라드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슬 쩍 고쳐 잡았다.
제시카는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 을 지었다.
이제 보니 조금 변한 정도가 아 닌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제시카가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 줬지만,콘라드는 쉽게 그녀의 말 을 믿지 못했다.
"아일프 기사는 훌륭한 제국의
기사다. 그가 제국을 배신할 리가 없어! 거기다 용병 따위가 몰래 숨어들어서 일을 뒤집어 놓다 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격렬하게 부정하는 콘라드의 모 습에 제시카는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내 소굽친구는 이제 정말 제국 에 충성하는 기사가 되었구나."
하지만 제시카가 작게 중얼거리 는 소리는 콘라드의 큰 소리에 묻 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마법사라는 자는 숨어서 우릴 지켜보고 있겠지? 좋아,같
이 돌아가자. 돌아가 보면 알겠지. 무기를 돌려 달라고 해 봤자 주지 도 않을 테니,네가 먼저 앞장서." 남은 병사들을 모은 콘라드는 제시카를 앞장세운 뒤 본진으로 향 했다.
검을 다시 허리춤에 넣은 제시카 는 묵묵히 제국군 앞을 걷기 시작 했다.
제시카가 소굽친구와의 인연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제이크는 탐
지 아이템의 신호를 따라 움직이 고 있었다.
바로 도망간 젊은 기사를 쫓는 것이었다.
사실 제이크는 제시카와 루이에 게 줬던 것과 같은 아이템을 병사 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동안 기사 의 품에 넣어 뒀었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군."
-다시 기습하려는 걸까요?
"그럴 리는 없겠지. 잠깐 쉬는 걸까?"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제이크가 달리는 속도를 더욱 올렸다.
각종 보조 마법을 자신에게 건 덕에 지금은 속도만큼은 제시카에 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반응도 빠른 건 아니어서 싸울 때는 전혀 소용없다는 게 단 점이었다.
지금도 제이크는 발을 헛디뎌 몇 번이나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냥 비행 마법으로 움직이는 게 좋지 않아요?
-마나가 부족해. 거기다 공중에 서 접근하다가 바로 들킬 거라고.
-하지만 지금 꽤 위험해 보이는 거 아시잖아요.
-괜찮아! 이래 봬도 산악자전거 도 많이 타 본 사람이라고!
산악자전거가 뭔지 모르겠지만, 파티마는 이번 주인의 기행과 고 집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협곡을 달리자,드 디어 도망친 젊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사는 협곡 한쪽에 서서 도망쳐 왔던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마법으로 몸을 가린 채 로 들키지 않을 거리까지 최대한 가까이 가서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데요?
"콘라드 기사와 함께 정찰을 보 낸 용병들을 기다리는 건가?"
하지만,그가 보낸 용병들은 모 두 죽은 뒤였다.
"응?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는 데?"
제이크일행과 싸우던 싸움이 끝 날 때 도망쳤던 병사 세 명이 헐 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마 법으로 자신의 청각을 강화했다.
"공자님,무사하셨군요!"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이제 보니 저 병사들은 기사의 심복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기사에게 다가오자마자 그의 몸을 걱정했다.
"포션으로 급한 불은 꼈어. 그보 다,아일프는 어떻게 되었지?"
"기사님은……
"저희가 도망칠 때는 이미 돌아 가신 것 같았습니다."
으득!
젊은 기사이자 프랑코 백작가의 후계자,루이반이 이를 악물었다.
"참으십시오. 마나 사용자들이 두 명이나 있습니다. 더구나 그 말도 안 되는 마법을 쓰는 마법사
"대규모 실드에,개개인에 보조 마법까지 걸어 주는 마법사는 본 적도 없습니다."
"설마 대마도사라도 나타난 걸까요?"
병사들의 말에 루이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병들을 그냥 보내거나 미리 죽였을 텐데.
콘라드 기사 때문에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정도 마법사라면 영주가 나 선 거겠지. 사제들을 데리고 가기 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 유가 있었던 거야."
뒤늦은 후회를 해 봤지만,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그보다…… 물건들은 챙겨 왔 지?"
"네,몸에서 떼어놓지 않았습니다."
루이반의 말에 병사 하나가 품에 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빙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따라왔는데 다행히 예상이 맞았다.
저런 보물들을 털려는 자들이 따 로 좋은 물건을 챙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루이반은 이 물건이라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것만 있어도 이번 실패가 최악 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추척자는 없었지?"
"네,계속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 루이반은 가죽 주머니를 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그의 품에서 강렬한 마 나의 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마나 사용자를 만난 유물이 자신 의 존재를 뽐내는 것 같았다.
제이크 역시 마나의 향을 느끼고 는,그제야 왜 저런 귀중한 물건 을 루이반이 직접 챙기지 않았는 지 알 수 있었다.
마나 사용자와 같이 있으면 스스 로 존재를 드러내는 물건이었기
에,마나가 없는 일반 병사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럼,시작해 볼까?"
숨어 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킨 제이크가 주문을 외웠다.
"마나의 이름으로 모두 잠들어 라."
강력한 수면 마법이 시전되자, 루이반의 옆에 있던 병사들이 바 닥에 픽픽 쓰러졌다.
"큭! 누구냐!"
하지만,마나 사용자인 루이반은 가까스로 수면 마법을 버텨 냈다.
그는 검을 치켜들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러다 한쪽에 서 있는,제국군 복장을 한 남자를 발견했다.
"설마,그 마법사?"
바로 얼마 전에 처음 본 마법사 였다!
"마무리를 할려고 온 건가?"
루이반의 말에 제이크는 조금 고 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뭐,상황을 봐서."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는 것을 잘 아는 루이반이었다.
제이크가 대답하는 사이에,그는 마나를 몸 전체에 두르고 제이크
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조금 전에 제이크의 실 력을 본 그였다.
그는 선공이 아니라면 달아나기 도 쉽지 않다 판단했다.
하지만,그가 달리는 순간 다시 제이크의 마법이 시전됐다.
"살아 움직여라,나의 화살들아. 이지스 모드 가동."
그의 말에 따라 등에 멘 가방에 서 수많은 화살이 솟구쳐 루이반 을 향해 쏘아졌다.
"흥,화살 따위에 당할까 보냐!"
루이반은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 로 되받아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그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 고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뭐,평범한 화살로 제대로 된 기사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믿은 건 아니니까."
전에도 화살에 마나를 실어서 기 습을 벌이고도 겨우 다치게 했었 던 제이크였다.
물론 그때보다 훨씬 강해지기는 했지만,여전히 정면 대결로 똑같 은 방법을 사용하기는 무리였다.
그는 화살에 마나를 실어 보내는
대신에 병 하나를 공중에 띄워 화 살들과 함께 날려 보냈다.
날아오는 화살을 필사적으로 잘 라 내던 루이반은 어느 순간, 자 신이 화살이 아닌 다른 것을 잘라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악!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 뿌려지는 액체.
청량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고, 동시에 화살 비도 멈췄다.
"이게 뭐지? 독인가?"
중독된 느낌은 없었음에도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정신이 까마득히 멀어지자,루이반은 독이라 확신 했다.
"마법사라는 자가 독을 쓰다 니……
그 말과 함께 루이반은 기절했다.
제이크는 쓰러진 루이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가 독을 쓰면 뭐 어때서? 그리고 독도 아닌데 말이야."
-효과는 충분히 독 이상입니다.
"그래도 깨어나면 아픈 데도 다 낫고,몸도 건강해지잖아."
-하지만,이렇게 흡수만 되도 기 절해 버리니 위급 시에는 쓰기 힘 들죠.
"끙,아직도 부족한 건가."
루이반이 맞고 쓰러진 병에 든 액체는 바로 제이크표 포션 두 번 째 버전이었다.
지독한 고통과 온몸으로 노폐물 을 뿜는 첫 번째 버전을 개선한 버전으로, 이번에는 고통도 덜하 고 노폐물도 배출시키지 않았다.
단지 사용한 사람의 몸에 열기가 일고,한참을 자게 만드는 부작용 이 있었다.
그래도 제이크는 전작보다 훨씬 개선됐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자부한다는 사람이 잘도 포션 을 무기로 써먹었군요.
"하하,개똥도 약으로 쓸 때가 있는 법이야."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제이크는 파티마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 넘기고는 기절한 사 람들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루이반의 몸에서 주머 니를 꺼내 배낭에 넣은 제이크는 병사들의 몸도 샅샅이 뒤져 보았다.
"역시,뒤로 슬쩍 빼놓은 게 있 을 줄 알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 몸에서 마나가 풍기는 액세서리를 찾아낸 제이크는 기쁜 얼굴로 찾은 물건 들을 모두 배낭에 집어넣었다.
남은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완드를 기사에게 향했다.
기절한 기사를 끝내기에는 작은 화염 마법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한참 완드를 들고 고민 하던 제이크는 결국 완드를 내리
고 말았다.
-어,살려 두실 건가요?
"그래."
-저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갑자기 불쌍하게 생각하셔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 반대야."
제이크는 기절한 사람들을 놔두 고 몸을 돌렸다.
"오히려 내가 착한 사람이라면 저들을 죽였겠지."
-네?
점점 기절한 사람들과 멀어지면 서 제이크의 표정도 굳어졌다.
"저들이 죽으면 그냥 이 일은 없 었던 일로 묻힐 거다. 그냥 길에 서 적을 만나 죽은 것으로 끝나 고,저 기사의 아버지인 백작에게 도 그렇게 보고되겠지."
제이크의 다리가 점점 빨리 음직 이면서 그의 음성은 더욱 어두워 졌다.
"하지만,저들이 살아서 돌아가 면 백작가는 당장 반란을 일으키 지 않을 수 없겠지. 황제가 없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일 테니까. 그럼 백작과 연결된 영지들도 다 들고일어나게 되겠지."
기절해 있는 젊은 기사가 있는 프랑코 백작가.
황제가 죽은 뒤,제국 내란 때 가장 강력했던 세력 중 하나가 바 로 프랑코 백작가였다.
죽은 황제는 알 수 없었지만,제이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 들 때문에 미래가 바뀌었으니, 나 도 미래를 바꿔야지. 난 내전이 일어나는 시기를 당길 거야. 그사 이에 영지를 키워 황제에 맞설 힘 을 키워야겠지."
말을 하는 제이크의 표정은 자신
감 대신에 괴로움이 가득했다.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그리고 많이들 힘들 거야. 모두 내가 벌 이는 일 때문에……
그동안 제이크가 고민했고,최대 한 뒤로 밀어 두려고 했던 일이었다.
황제를 막으려면 전쟁을 일으켜 야 한다는 모순.
멸망하는 세계를 알지 못했다면 절대 벌이지 못할 일이었다.
"어차피 각오했던 일. ……돌아 가자."
-네.
제이크의 굳은 목소리에 파티마 는 작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