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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6화 (106/222)

106화

사랑 없이 가문끼리의 결합뿐인 결혼이었지만,그래도 함께 살았 던 사이였다.

물론 제이크 홀로 기억하는,존 재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벌어

졌던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아내를 만나 게 되니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있는 거 지?"

문득 든 의문에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는,그녀는 지금 다 른 소녀들과 함께 황도에서 무도 회나 쫓아다닐 시기였다.

이런 오지에 부상자들과 함께 마 차에 실려 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억지로 그녀에 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미래를 경험하고 돌아온 뒤에, 그녀를 보지 않고 황도를 떠난 순 간 그는 미래의 아내와의 인연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도망치기 바빴던 점도 있 었지만,그 뒤로도 찾지 않은 것 은 제이크가 애써 과거를 외면했 기 때문이었다.

'그리 좋았던 결혼 생활은 아니 었지.'

그랬다.

환상 마법 속에서 대혼란 시기에 가족을 잃고 비통한 슬픔을 토했 던 제이크였지만,사실 같이 사는

동안에 그리 평탄한 결혼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에 파묻힌 하급 서기관과 황도 의 화려함을 잘 아는 귀족의 딸은 처음부터 그다지 잘 맞지 않았다.

아이들을 낳고 같이 사는 동안 정이 들기는 했어도,다른 귀족들 처럼 둘 사이는 형식적인 부부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 을 것 같네. 일을 해결한 뒤에 어 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잠든 미래의 아내,데이지를 바 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머

릿속으로 다시 메시지 마법이 들 려왔다.

-아는 여자야?

그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제시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아,미래에 인연이 있었습니다.

제이크는 대충 얼버무렸다. 지금 은 다른 일에 신경을 쓸 때가 아 니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제시카와 다 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다행히 마법 아이템은 들키지 않았군요.

-제국군을 발견한 순간 바로 가

방에 넣었거든. 다행히 가방 안을 뒤져 보더니,가져가지는 않더라 고.

제시카의 잘난 척하는 음성에 제이크는 가라앉은 마음이 좀 풀리 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돼?

하지만,이어지는 그녀의 질문은 제이크를 다시 한숨짓게 했다.

-이런. 좀 전에 말했듯이 날 도 깨비방망이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도 지금부터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해요.

-도깨비방망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기다리지 뭐. 제이크 가 금방 좋은 방법을 생각할 낼 테니 그때까지는 그냥 맘 편히 쉬 고 있으면 되겠네.

-말도 안 돼요. 제시카도 루이도 방법을 생각해 봐요!

-우리야 몸만 쓰는 바보라 무리 야. 마법사님만 믿는다고!

물론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 마 법사의 마법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제시카나 루이는 제이크가 어떤 마법이 가능한지 다 알지를 못하 니,제이크 스스로 방법을 찾는

게 맞기는 했다.

다만,기껏 달려왔더니 또다시 일을 떠맡기는 제시카의 모습에 제이크는 조금 서운해졌다.

-아,그리고 제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용병들에게 하지 말아 주세요.

-어,도와줄 사람이 근처에 와있 다는 이야기를 해 버렸는데.

-그럼 그냥 주변에서 기회를 보 고 있다고 해 주세요. 괜히 사람 들이 알아서 위화감을 만들 필요 는 없을 같아요.

- 알았어.

제시카의 대답과 동시에 같이 메 시지 마법을 들은 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좀 쉬어 볼까? 오늘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것 같으니 이참에 미리 마나를 좀 채워 놓아 야겠네.'

-저는 먼저 좀 쉴게요.

-그래,내일 봐.

제국군에 잡혀 있는 제시카와 몰 래 숨어든 제이크의 대화치고는 여유 있는 대화.

누가 알면 깜짝 놀랄지도 몰랐지 만,1년 동안 그들이 벌인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끝낸 뒤,고양이 페이샤가 다시 완드를 제이크에게 가져왔다.

제이크는 남은 마나를 끌어모아 몇 가지 마법을 주변에 걸고 나서 눈을 감았다.

아직 초저녁이었지만,그동안 거 의 잠을 못 잔 제이크였기에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다행히 걸어 놓은 인식 저하 마 법 덕분에 자는 동안 제이크를 건 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 식사가 끝난 뒤,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잠자 리에 들었다.

이윽고 불침번들만이 깨어 있는 밤 깊은 시간.

기사 하나가 천막에서 일어나 야 영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지춤을 잡고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이,화장실이 급해 보였다.

하지만, 잠시 뒤 또 다른 기사가 천막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사 라졌다.

두 사람은 마나까지 사용했는지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물론 불침번들은 기사들이 야영 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봤지만, 그들은 기사들을 못 본 척했다.

두 기사는 야영지에서 좀 떨어져 있는 큰 바위 뒤에서 만났다.

강한 인상의 중년 기사는 이 수 송 부대를 끄는 선임 기사였고, 젊고 잘생긴 청년 기사는 중년 기 사와 같은 영지 출신의 기사였다.

이 두 사람은 콘라드와 달리,귀 족 출신의 정통 기사들이었다.

"밤고양이도 아니고,이게 뭡니까?"

젊은 기사가 나지막이 투덜거렸

다.

"별수 없잖은가. 콘라드 기사를 포섭한 것도 아니고 병사 중에도 우리 쪽이 아닌 자들이 있으 니……

묵직한 중년 기사의 말이 작게 주변을 울렸다.

"이번 일은 영 꼬이네요. 포기하 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어떨까요? 괜히 급하게 일 벌이다가 빠 져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큰일이잖 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미리 영지 에 알렸으니 곧 영지에서 용병을

보내 줄걸세. 용병들이 도착할 때 맞춰서 진행하면 될 거야."

어쩐지 나이도 많고 선임인 기사 가 젊은 기사에게 변명하는 것처 럼 보였다.

"그렇게까지 준비했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근데 정말 다 죽이실 겁 니까?"

"별수 없지. 도적들이 털어갔다 고 말을 맞춰야 하니까. 우리 쪽 사람들 말고 살아 있는 인간이 있 는 것은 곤란해."

"껍,용병들이야 별 상관없는데 사제들이 있는 게 걸리네요. 일이

왜 이렇게 꼬여서 사람을 심란하 게 만드는지 원……

젊은 기사는 야영지 쪽을 바라보 며 혀를 찼다.

"그런데 일이 끝나면 우리 두 사 람도 잠적하는 겁니까? 말을 맞추 는 게 가능하다면 복귀해도 될 것 같은데……

"안 돼. 황제 성격상 보물들을 잃어버린 책임을 살아남은 자에게 지게 할 거다. 이런 일로 기사, 특히 백작님의 후계자를 잃을 수 는 없어."

그의 말에서 그가 왜 젊은 기사

를 배려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젊은 기사는 그가 중성을 맹세한 백작가의 첫째 아들이었다.

하지만,중년 기사의 말은 이곳 에 남은 병사들이 희생해야 한다 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젊은 기사가 생각하기에 도 누군가는 남아야 했다.

운송 부대가 말도 없이 중간에 증발해 버리면 찾기 위해 병사들 이 동원될 게 분명했다.

괜히 꼬리를 밟힐 위험을 남길 수 없었다.

남길 자들은 모두 포섭을 마친 자들이니,만에 하나 사형을 당하 더라도 가족을 위해 비밀을 지킬 것이다.

레타니아 왕국의 보물을 빼돌릴 절호의 기회가 온 지금,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럼 콘라드는 버리는 겁니까?"

"용병 출신의 마나 사용자일 뿐 이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거절하 기라도 한다면 곤란해."

대관식 때 기사가 된 콘라드였다. 아직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한 그에게 씨알도 안 먹힐 게

분명했다.

그 뒤로 두 기사는 한참 동안 보 물을 빼돌릴 계획을 이야기한 뒤 에 야영지로 돌아갔다.

젊은 기사는 돌아가기 전에 마지 막으로 바위 위를 보며 고개를 갸 웃거렸다.

"이곳에도 고양이가 있네요."

그들이 숨었던 바위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 었다.

두 기사가 사라지고 잠시 후,바 위 위에 있던 고양이가 제이크가 누워 있는 마차 위로 폴짝 올라섰다.

냐옹-

-다 들었죠?

-그래. 일찍 잤더니 눈이 빨리 떠졌는데……. 그 덕에 놓치지 않 고 다 들었어.

누워 있던 제이크가 실눈을 뜨고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쪽 인간들은 정말 재미있어요. 어떻게 맨날 서로의 뒤를 치 려고만 할까요? 정말 선조들의 말

씀이 맞는 것 같아요.

제이크는 차마 그녀에게 선조들 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을 수 없었다.

좀 전에 기사들이 야영지를 빠져 나가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불침 번만이 아니었다.

제이크도 자기 전에 깔아놓은 알 람

마법 덕에 곧바로 눈치를 챘었다.

그는 바로 고양이 페이샤를 깨워 그들 뒤를 따르게 했고,패밀리어 마법을 개조한 마법으로 페이샤와

함께 그들의 말을 엿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혼자서는 방법 을 찾기 어려웠는데 알아서 구멍 을 뚫어 주는군.'

최악의 경우 제시카와 루이만 데 리고 도주할 생각을 했던 제이크 였다.

막장다운 제국군의 모습에 기가 차기도 했지만,지금은 차라리 다 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하던 제이크는 자신을 보는 시선 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그 를 보고 있던 여성은 오래간만에 따뜻한 온기에 일찍 잠들어 버린 미래의 아내였다.

'마법을 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 나?'

하지만 그가 아는 바로는,데이 지에게는 마법적 소양이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지가 보고 있는 것은 제이크가 아니라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 폐이샤였다.

아무래도 마법이 들킨 것이 아니

라,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 같았다.

제이크도 그녀처럼 고양이 폐이 샤를 바라보자,바로 머릿속으로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싫어요.

-무슨 소리?

-무슨 소리는요! 방금 앞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날 보낼 생각 했었 죠? 내가 아무리 이런 모습을 하 고 있다 해도,진짜 고양이 취급 은 하지 말아 줄래요? 절대 싫어요. 잠자다 깨서 엄청 피곤하단 말이에요. 그냥 잘 거예요.

한바탕 쏟아 낸 페이샤는 바로 후다닥 마차에서 내려 제시카 옆 으로 갔다.

페이샤가 자리를 떠나자,제이크 는 입맛을 다셨다.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의 생각 을 정확히 맞춘 것이었다.

'메시지 마법이 생각도 다 보여 주는 건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메시지 마법을 쓰는 도중에 자신의 생각까지 귀 신같이 알아차리는 파티마와 페이 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제이크는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 에 데이지를 흘긋 봤다.

그런데 데이지는 제이크만 남게 되자,고양이를 좋아하던 것 이상 으로 제이크의 모습을 겁내는 것 같았다.

하기야 온몸에 붕대를 감고 한밤 중에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보면 겁에 질리지 않을 리 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아내가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제이크는 그를 흠쳐보는 데이지 를 향해 수면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제이크도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레타니아 왕국의 보물을 가득 실 은 제국 수송대는 아침 일찍 다시 황도를 향해 움직였다.

협곡을 통과하는 수송대는 전날 까지와 달리 긴장한 분위기가 가 득했다.

어젯밤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기 사는 물론 수송대 병사들도 긴장

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침에 제이크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제시카와 용병들도 말없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린 사제들과 부상자들은 분위 기가 변한 것을 알지 못했지만, 콘라드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색 에 눈살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점심이 되기 얼마 전.

제이크의 감각에 마나 사용자들 이 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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