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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2화 (102/222)

102화

봄이 멀지 않은 겨울.

이제는 조금씩 날이 풀릴 시간이 었지만,레타니아 왕국의 수도는 수년 만에 내린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눈 축제라도 벌어졌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눈 축제 대신 검 은 연기만이 수도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

하얀 눈 덮인 지붕들 사이로 검 은 연기가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 었다.

그리고 눈 덮인 길에는 아직 치 우지 못한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 었다.

대부분 왕국과 왕국을 도우러 온 연합군들의 시체였다.

며칠 전,레타니아 왕국은 수도 방어전에 패배했다.

다른 왕국들에서 도움의 손길들 이 도착했지만,제국의 공격을 막 기에는 무리였다.

명령 체계도 통일되지 못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병사들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였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황제가 직접 이끄는 제국군이 강해도 너 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정예화된 수많은 병사와 징집병, 그리고 제국 기사와 마법사들.

이번에 대관식 때 모은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했다.

거기다,황제가 직접 앞에 나서 서 싸움에 가담하니 병사들의 사 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피에 굶주리고 폭력적이라는 황 제의 모습은 전장에서는 용기 있 고 저돌적으로 느껴졌다.

한 달을 겨우 버티던 연합군은 결국 수도와 왕국의 삼분의 이 이 상을 제국에게 넘겨준 채로 남쪽 평야로 물러나고 말았다.

놀란 다른 왕국에서 급하게 추가 로 군을 파견해서 다시 방어선이

만들어졌지만, 레타니아 왕국의 운명은 이제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황제는 점령한 왕궁의 높은 테라 스에 나와 넓은 왕궁 앞 광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광장을 둘러 제국군이 만든 수많 은 천막이 늘어서 있었고,광장 중앙에는 수많은 가구와 유물들이 높이 쌓아 올려지고 있었다.

모두 수도에서 달아난 귀족들의 집에서 뺏어 온 물건들이었다.

상업의 왕국답게 보기에도 아름 다운 물품들이 높이 쌓여 가는 중

이었다.

전리품으로 전부 가져갈 물건들 이었다.

왕국을 제국의 품으로 안기 위해 서는 약탈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 지만,황제는 이번 전쟁의 목표를 제국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 아 니었다.

마법 세상 속의 미래에,황제는 제국 내부의 내전과 주변 왕국의 공격으로 대수림 너머에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목숨을 잃어버렸던 그 로서는 주변 왕국의 점령이 아니

라 왕국들을 뿌리째 박살 내서 감 히 제국에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눈길 도 주지 않은 채 도망친 귀족들의 집을 불태우고,그들의 물건을 약 탈하는 중이었다.

이 왕궁도 지금 병사들과 기사들 이 따로 수색하고 있었다.

왕궁에서 찾은 물건들은 전부 황 실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바람이 차요. 이제 그만 들어오 시는 게 어때요?"

테라스에서 승리의 여운을 느끼

던 중인 황제는 뒤에서 들리는 음 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리타 어쩌구라는 이름이었나?'

심심할 것 같아 하급 귀족의 딸 하나를 데려왔는데,아무래도 실 수한 듯했다.

몇 번 같이 침대로 들였더니 주 제를 모르고 애인 흉내를 내고 있 었다.

아무래도 전쟁터에 데려온 것 때 문에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건방진 것/

황제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

다.

그러자 기사들이 바로 창문을 닫 았고,시녀와 하녀들이 어두운 얼 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전쟁터까지 따라온 시녀 와 하녀들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오래 황제 아래에서 살아남은 눈 치 빠른 이들이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안으로 들어온 황제의 모습에 반색한 젊은 귀족 여성과 달리,그들은 그녀가 황제 의 기분을 건드린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흠,승전 뒤에 죽이는 건 좀 잔인 하려나. 그래도 고생했으니 '죽지 않은' 상태로 집까지 도착하게 해."

황제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여자는 바로 기사들에게 팔 을 붙잡혀 밖으로 끌려 나갔다.

죽지 않게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 그녀는 제국으로 후송되는 부상자 들 사이에 끼어 돌아가게 될 게 분명했다.

추운 겨울에 험한 병사들과 부상 당한 병사들과 함께 제국까지 돌 아가야 했으니,그 고생이 어떨지

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고 도 죽지 않게 해 주었다 생각한 황제는 자신의 넓은 아량이 무척 이나 만족스러웠다.

귀찮은 문제를 처리한 황제는 방 중앙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제국에 있는 그의 방처럼 웅장하 지는 않았지만,화려함만은 이 방 이 더 대단해 보였다.

다만,황제에게는 그런 미적인 감수성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보고해."

황제의 말에 한쪽에 물러나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수도 점령은 어느 정도 마무리 가 되었습니다. 저항 세력은 일소 되었고,숨어 있던 귀족들은 찾아 내 가뒀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여기서 더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었다.

"가둔 놈들 모두 죽여. 그리고 순순히 항복한 놈 중에서도 본보 기로 반 정도 죽이고."

"그럼,반발이 심할 듯합니다만." 뒤쪽에 물러서 있던 대마도사가 황제의 말에 반문했지만,황제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욕심 많은 귀족 놈 하나 찾아내. 그놈을 공왕으로 세워서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거야."

더욱 이해가 안 가는 황제의 말 에 대마도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 었다.

황제는 그런 대마도사를 보며 즐 거워했다.

"욕심이 많은 놈을 앉히면 공왕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왕이 되고 싶어 할 테고,그러면 다른 귀족 놈들이 가만히 안 있겠지. 그럼 신나게 싸워서 나라가 개판이 될

테고."

황제의 머릿속에는 그로 인해 벌 어질 이곳 백성의 고난과 죽음은 눈곱만큼도 들어 있지 않았다.

대마도사는 그런 황제의 말에 다 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황제의 모습은 그가 꿈꾸던 대륙을 통일하는 황제의 모습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황제의 지시가 떨어지자 다른 근 위 기사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에도 기사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적의 증원이 계속 늘어나서 방 어선이 상당히 견고해졌다는 보고 입니다. 증원된 병력은……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잖나. 다 른 이야기는 없어?"

"아,동쪽 전선에 속해 있는 루테리아 영지 병력이 퇴각을 요청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뜻밖의 이야기에 황제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감히 황제의 친정 중에 빠지려고 하다니.

제국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공작

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영지 사정이 좀 안 좋은 듯합니다."

기사는 전령이 보내온 편지를 황 제에게 올렸다.

황제는 두루마리를 펼쳐 내용을 읽고,잠시 뒤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이거 정말 재미있는 데. 왕궁 피에로가 써먹기 딱 좋 은 이야기잖아?"

황제는 오랜만에 즐거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신나게 편지 내용

을 읊었다.

"딸이 적을 물리쳤는데 막내아들 이 밀려 버렸고,대신 아버지가 막았는데 아버지는 칼 맞아서 골 골댄다고? 거기다 그 막내아들이 영주 대리가 되었다니. 그 꼴을 본 첫째 아들이 동생을 치겠다, 이거잖아."

황제는 좀 전에 화는 다 잊어버 렸는지 밝은 얼굴로 기사에게 지 시를 내렸다.

"명령서를 써 주지. 얼른 가서 동생을 없애고 영주 자리를 차지 하라고 해."

그렇게 지시를 내린 황제는 기사 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히죽거 렸다.

"정말 이번 인생은 재미가 있네.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니까 이런 맛도 있군. 그 꼴통 루테리아 공 작이 칼 맞고 퍼져 버리다니. 거 기다 아들들은 신나게 서로 칼부 림까지."

살아 돌아와 그를 놀라게 했던 공녀가 싸움터에 뛰어들어 황제를 다시 놀라게 했지만,공작가의 소 란은 공녀에 대한 생각을 싹 가시 게 할 만큼 즐거운 이야기였다.

"동생이 이기면 형제와 아비를 죽여 영주를 빼앗은 패륜아로 몰 아 영지를 빼앗아도 되고,형이 이기면 전선 탈주로 몰아 토벌을 해도 되고."

명령서에 찍힐 직인만 대충 변형 하면 충분히 무단이탈로 만들 수 있었다.

황제는 마법 세상 속의 미래에 자신을 그토록 속 썩였던 루테리아 공작가를 무너뜨릴 기회가 오 자,홍분으로 머리가 뜨거워졌다.

"아무래도 가만히 못 있겠군. 싸 우러 가자! 거기,너. 병사들 음직

이라고 해. 빨리 이 병신 같은 나 라를 끝장내자고!"

"넴!"

황제의 말에 기사들이 모두 밖으 로 뛰쳐나갔고,황제는 시녀들을 데리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남아 있던 대마도사는 한숨을 내 쉬며 테라스로 나갔다.

도시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이 제 왕국의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루테리아 영지군은 바로 루테리아로 돌 아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금방 루테리아로 전해 졌고,루테리아시에 있는 용병들 은 싸움을 피해 다른 영지와 공녀 가 있는 버려진 남쪽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녀가 데리고 있던 징집 병들의 가족들도 용병들과 함께 레이첼 성으로 왔다.

그렇게 사람이 몰려들자,성과 영지는 점점 제대로 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성 내부는 사람으로 가득 찼고, 영주성 외부의 불타 버린 집터에 도 다시 움막들이 올라가기 시작 했다.

처음에 이곳으로 몰려온 사람들 은 영지에서 벌어진 싸움만 끝나 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다른 생 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매일 아침, 식사 후 레이첼 공녀 와 함께하는 티파티라는 형식의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성벽이나 대장벽이 없어서 영 주성 밖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아

직 불안한 모양입니다."

징집병과 그 가족들을 대신해서, 레인저 부대장이 그들의 걱정을 이야기를 한 찰나였다.

"그래도 영주성 근처로 몬스터들 이 접근하기 꺼리는 것이 확인되 었으니,다음 몬스터 웨이브까지 는 문제없을 겁니다."

용병 대장 중에서 오히려 문제없 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다 오랫동안 탐사가 안 된 지역이라 가히 노다지판에 가깝습 니다. 잡기 쉽고 값나가는 몬스터 들도 많고,그동안 탐사를 못한

던전들도 있고."

이어진 다른 용병대장의 말대로 용병들에게는 이 새로운 개척지를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지 못해 망해 버린 영지였지만,성 주변에 몬스 터가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음 몬 스터 웨이브까지는 이곳은 노다지 를 캘 수 있는 천혜의 보고였다.

공녀가 이 성만 잘 유지해 준다 면,아니, 한쪽에 앉아서 홍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제이크가 성에 걸린 마법만이라도 유지해 준다

이곳에 있는 용병들은 한 해 동 안 한바탕 큰 벌이가 가능할 게 분명했다.

히베루니아군과의 싸움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에 의해 그들은 몬 스터가 이성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제이크 덕분으로 알고 있었다.

하기야 던전의 주인이 제이크였 으니,던전 에고가 벌인 일도 제이크의 마법으로 봐도 무방했다.

에고가 잠든 탓에 몬스터가 접근 하는 것을 막는 정도밖에는 못하 고 있지만,이 정도만으로도 던전

에고는 훌륭히 자신의 몫을 다 하 고 있었다.

제이크는 홍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몬스터 웨이브 문제도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것 말고도 이곳을 영지화하려면 걸리는 문제 가 하나둘이 아니란 말이야..

아직 일반인 숫자가 너무 적고, 성 이외에는 시설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영지가 되려면 제국 귀족 원과 황제의 허가도 받아야 했다.

'아니면 다른 나라에 붙어야겠지.'

거기다 그것 말고도 또 다른 난 관이 있었다.

'신전과 신관이 필요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하나로 합치게 하려면 이곳에도 신관이나 신전,혹은 예배당이 꼭 필요했다.

제이크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에,고민의 대상이 레이첼 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울추의 신 겔드의 사제이자 루 이의 누나인 레이 여사제.

그녀의 전언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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