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화
"아는 사람이야?"
"아뇨,저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보는데요?"
제시카의 물음에 루이가 고개를 저었다.
여사제의 얼굴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저런 차갑고 예쁜 얼굴은 아무래도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흠,그럼 루이한테 관심이 있 나?"
제시카는 루이를 위아래로 훑어 봤다.
"내 취향하곤 다르네, 나라 면……"
하지만, 뒤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과 상관없이,앞으로 나선 여사 제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거룩한 느낌이 그녀 주위로 흘렀다.
마나와는 다른 신비로운 기운이 그녀 주변에서 점점 퍼져 나갔다.
마나와 다른 고결한 기운,바로 신력이 었다.
-아직 남아 있는 신이 있는 모 양이네요. 흠,새로 태어난 신인 가?
주위에 흐르는 기운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제이크의 귀로 파티마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뭔가 대단히 불경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그도 궁금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게 무슨 이야기야? 새로 태 어난 신이라니?
제이크의 물음에 파티마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아,신에 대한 정보도 모두 사 라졌군요.
-신에 대한 정보?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알 고 보면 신이 아니에요. 모두 사 람들의 기도와 간구로 만들어진 마나 생명체들이에요. 오랜 시간 살아남아서 격이 꽤 높아진 모양 이긴 한데 그래봤자 필멸자들일
뿐이라니까요.
파티마의 말은 그냥 불경한 정도 가 아니었다.
신도들이나 사제들이 들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듯한 이 야기 였다.
-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치 명적인 이야기라 마도 제국 때도 마법사들만 알고 있던 이야기에요. 초반에는 이런 일로 신도와 마법사 간에 전쟁까지 벌어졌다니 까요.
말을 하는 뉘앙스를 보니,마법 사가 이긴 모양이었다.
-뭐,신도들 태반이 죽어 나간 탓에 그 신도 소멸해 버렸지만, 일반인들은 연약해서 계속 신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그 뒤로는 마 법사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된 거죠.
파티마의 말에 따르면,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사람들의 기도와 간구로 모인 마나가 마법적인 효 과로 창조해낸 마나 생명체인 듯 했다.
신앙이 커질수록 마나 생명체인 신의 능력이 강대해지고,그로 인 해 신이 내려 보내는 신력이 강해
져 더 강한 기적을 보여 주는 것.
그 기적은 더욱 강한 신앙을 만 들어 내는 구조인 듯했다.
-그래도 마도 제국에서는 신전 들이 그리 힘을 발휘할 수 없었는 데요.
이곳 제국도 그다지 신전의 힘이 강하지는 않았지만,남부 왕국들 은 신성 왕국마저 있을 정도로 신 의 힘이 막강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그렇다 고 여사제의 신력이 사라지는 것 은 아니었다.
푸악!
한참 동안의 기도가 끝나는 순 간.
그녀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 어져 나왔고,일대에 신의 영역이 선포되었다.
성역 구축.
일정 지역에 신의 영역을 선포하 는 것으로, 그 안에 있는 부정한 존재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고 위 성직자들의 능력 중 하나였다.
케에에엑!
성역이 선포되자,사방에서 비명 이 터져 나왔다.
일행 앞쪽의 땅속에서 사람 크기
의 도롱 뱀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 어 나왔다.
좌리를 한 채로 눈을 감고 있던 거대한 도롱 뱀도 잠에서 깨어 그 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튀어 나온 도롱 뱀들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언데드에게 성력은 치명적인 독 이었다. 재로 변하지 않으려면 성 역 밖으로 도망쳐야 했다.
다만,거대한 도롱뱀은 오히려 좌리를 풀고 용병대를 향해 음직 이기 시작했다.
성력 덕분에 곳곳에 썩은 살이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있었지만, 놈은 도망치기보다는 일행을 해치 우려고 했다.
다만,그런 언데드의 공격을 그 냥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용병인 체하던 기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에 빛이 흐르더니 그들은 성력 을 유지하는 사제를 지나쳐,거대 도롱 뱀에게 달려들었다.
"요새 용병 업계가 엉망이 된 것 같아. 개나 소나 마나 사용자냐."
용병 대장의 푸념은 뒤에 남겨진 용병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
다.
황제 기사들과 영주의 레인저들, 상인의 호위 용병이라는 마나 사 용자들까지.
사방에서 마나 사용자들이 꾸역 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더구나 뜻밖의 마나 사용자들까 지 생겼으니.
용병들은 힐끔 뒤쪽에 서 있는 제시카와 루이를 훔쳐보았다.
용병들의 시선에,루이는 난감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나서지 않아도 될까요?"
"놔둬,알아서 잘하는데 뭐."
제시카의 말처럼,호위 용병들은 앞다리가 달린 거대한 뱀과 잘 싸 우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롱뱀의 공격은 무척이나 위협적 이었지만,일반적인 용병들과 달 리 그들은 그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앞다리를 내려치는 공격과 꼬리 를 휘두르는 공격 등.
뱀이 할 수 있었던 공격은 모두 무효로 돌아갔고,오히려 그들의 공격에 뱀의 몸이 착실히 부셔져 나갔다.
도롱 뱀은 성역 탓에 죽은 몸을 유지하기도 벅찼고,마나가 실린 검 때문에 생긴 상처를 회복하기 조차 무리인 상태였다.
도롱 뱀은 피 대신 검은 고름들 을 사방으로 뿌리며 점차 무너져 내렸다.
잠시 뒤,결국 도롱 뱀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여사제도 지친 얼굴 로 성역을 거두었다.
용병들은 신이 나서 도롱 뱀의 둥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언데드 몬스터 몸속에 있는 마석은 용병들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검게 물들은 마석은 주위에 저주 를 뿌릴 뿐이었다.
성직자의 힘으로 정화를 할 수 있기는 했지만,정화한 마석은 단 지 쓸모없는 보석이 될 뿐이었다.
-암흑이나 저주 계열 마법을 쓸 때는 도움이 되긴 하는데…….
-그런 마법을 썼다가는 온 세상 과 싸워야 될 거야.
제이크의 말에 파티마는 따로 반 박하지를 못했다.
마도 시대에서도 암흑 계열의 마 법사는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찾았다!"
잠시 뒤,둥지 안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입구를 찾은 것이다.
그와 함께 용병들이 안으로 뛰어 들었다.
용병 대장도 슬쩍 상인들의 눈치 를 보더니 안으로 달려갔다.
유물은 발견한 사람이 갖게 되는
방식이었기에,그들은 던전을 찾 자마자 달려간 것이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열이 받을 일 이었지만,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 는 듯했다.
"역시,총알받이인가?"
확실히 저들은 이 던전에 대해서 도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들 말고 이 던전에 대해 알고 있던 제이크도 먼저 뛰어든 용병 들을 보고 혀를 찼다.
남은 상인과 호위 용병들,그리 고 제이크 파티는 천천히 던전 입 구로 다가갔다.
흙과 각종 잔해로 만들어진 커다 란 둥지 중앙에 돌로 만들어진 제 단과 그 아래 지하로 내려가는 계 단이 있었다.
그동안 거대한 몬스터가 깔고 앉 았을 제단은 그 오랜 시간에도 부 서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 었다.
제단의 모습은 무척이나 불길했다.
악마의 형상같이 피로 얼룩져 있 는 제단의 모습은 그 위로 수많은 제물을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또한,제단 아래로 보이는 계단
은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통로 처럼 보였다.
-네크로맨서 계열의 마법사가 있었던 곳이었나 보네요.
제이크의 시야를 공유하는 파티 마가 제단을 보고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저주 마법사의 일종이에요. 꽤 나 특이한 계열의 마법사라서 다 들 외면했었죠. 죽은 자를 살리고, 소환술로 다른 세상의 생명체를 불러들이고,상상력 대신에 악의 로 세상에 저주를 뿌리는 마법사 에요.
-I 음.
-혹시 배우고 싶으시더라도 별 로 권하고 싶지는 않네요. 저도 그리 아는 바가 없구요.
제이크도 별로 배울 생각은 없었다. 다만,알아 둘 필요는 있었다.
-상대할 방법은?
-웬만하면 무시하는 법이 좋긴 하지만,뭐,그쪽 계열은 정신머리 가 제대로 된 마법사들이 없긴 하 니까요. 그럼, 어떻게 상대를 하냐 면요…
제이크는 파티마가 하는 말에 귀 를 기울이며,다른 사람들을 따라
제단 아래쪽으로 뚫려 있는 계단 에 발을 올렸다.
그렇게 제이크를 끝으로,모든 사람들이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 * *
"제발 다가오지 마!"
"그냥 공격해!"
"하지만!"
"이미 죽었어! 저건 언데드일 뿐 이야!"
먼저 들어갔던 용병들은 지금 던 전 통로에서 동료들과 대치를 하
는 중이었다.
아니,언데드가 된 동료들과 칼 을 맞대고 있었다.
이 던전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과 길게 쭉 이어진 통로로 이루어 져 있었다.
함정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신이 나서 달려갔던 용병들이지만,이 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과 만 나게 되었다.
그들이 만난 적은 뼈만 남아 있 는 칼과 무기를 든 인간들,바로 스켈레톤들 이었다.
이야기 속에서의 스켈레톤은 영
웅들에게 썰려 나가는 잡몹들이었 지만,그것은 마나 사용자들에게 나 적용되는 이야기.
저주의 힘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공격을,평범한 용병들이 막기는 쉽지가 않았다.
넓은 공간이었으면 여러 명이 달 려들어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통로에서 만나게 되 었으니 일대일로 싸울 수밖에 없 었고,처음 스켈레톤과 만난 용병 들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죽은 용병들은 곧 언데
드가 되어 동료들을 향해 검을 겨 누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언데드가 되어 자신들에게 검을 겨누자,용병들 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밖에서 쉽게 언데드들을 쓰러뜨 리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말았지만,이곳은 죽음의 대지,언데드들 의 땅이었다.
죽음 뒤에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 용병들은 겁에 질려 주춤 거리며 물러섰다.
뒤에서 용병대장이 소리를 쳤지만,한번 떨어진 사기는 다시 올
라갈 줄 몰랐다.
차례로 동료에 의해 죽게 되자, 용병대 전체가 공포에 질리기 시 작했다.
그때 였다.
"턴 언데드!"
용병대 뒤쪽에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앞장서서 동료를 공격하 던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물 어졌다.
뒤늦게 던전에 들어온 여사제가 도착한 것이다.
"이때예요! 공격해요!"
그와 함께 던전의 벽을 달려서 제시카가 용병들 앞으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아직 버텨 내는 언데드 용병들을 쓰러뜨렸다.
뒤이어 달려온 루이가 용병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서서 방패로 겁 먹은 용병들의 앞을 틀어막았다.
상인들과 호위 용병들은 도울 생 각이 없어 보였지만,같은 용병들 이 떼로 몰살당하는 모습을,제시카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나선 덕분에 더 이상 의 위험은 없어졌지만,두 사람도
앞으로 치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고대 마도 제국 시대의 무기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들은 앞에 있 던 언데드들과 달리 제대로 된 공 격을 했던 것이다.
인간이었을 때의 전투 방법을 그 대로 사용하는 스켈레톤들의 공격
에 루이와 제시카는 난감했다.
급하게 성력을 사용해서 지친 여 사제가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쉴 때,그녀 옆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뼈들이여,매끄러워져라,윤기가 나라!'
제이크가 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대신에 수인 형식으로 튕긴 것이 었다.
그와 동시에 스켈레톤의 뼈들이 반들거리기 시작했다. 기름을 바 른 것처럼 윤기가 흐르고,광택마 저 비쳐 보인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스켈레톤들 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검을 놓치고,방패를 쥔 뼈가 빠 지고, 바닥에 미끄러졌다. 미끄러 운 뼈로 인해 관절들이 마구 어긋
난 것이다.
바로 눈치를 챈 제시카와 루이가 스켈레톤들을 부수며 이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