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
도적들은 채 마차 행렬이 있는 곳까지 달아나지 못하고 레인저들 에게 잡히고 말았다.
멀리 달아나던 도적들은 등과 팔 다리에 화살을 맞아 쓰러졌고,다
른 도적들은 레인저들에게 항복했다.
"멋지지 않나? 우리 루테리아의 레인저들이 라네."
레인저들이 도적들을 포박하는 옆을 지나가며 나이 든 용병이 자 랑스럽게 소개했다.
그의 말에 제시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또,영지 자랑이시네요. 다른 동 네보다는 잘하고 있지만,우리 용 병들하고는 한참 옥신각신하는 레 인저들인데."
나이 든 용병은 이곳 루테리아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외지에서 온 제이크에게 신나게 영지 자랑 을 했다.
"그거야 치안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지. 크,내가 젊었을 때 무 를을 다치지만 않았다면 레인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까웠어."
"무슨 그런 거짓말을. 실력이 부 족해서 못 들어간 걸 뻔히 아는 데."
허풍이 가득한 말에 제시카가 바 로 딴지를 놓았고,둘은 한참을 티격태격했다.
루테리아 레인저.
나이 든 용병의 말대로,루테리아 영지가 자랑하는 산악 전투 부 대의 이름이었다.
기사단과 병사 위주로 병력을 운 영하는 황실과 다른 영지와는 다 르게,루테리아는 산악 병사들인 레인저를 운영했다.
판금 갑옷과 검을 찬 기사들과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 대신, 레인저들은 중검이나 쇠뇌 등을 손에 들고 가죽 갑옷을 입은 채로 산을 넘나들었다.
루테리아가 기사 대신 레인저를
둔 이유는 몬스터들이 가득한 거 대한 중앙 산맥,속칭 '대수림'을 옆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대수림에 들어가 몬스터들을 토 벌하고,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지 켜 내면서 병사와 기사들은 모두 산악 병사,레인저들이 되었다.
그 때문에 영지의 치안도 기사와 병사들이 아니라 레인저들이 책임 지게 된 것이다.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들도 이곳 루테리아에서는 레인저 부대의 부 대장을 담당했다.
"근데 분위기가 정말 안 좋은가
보네요. 레인저들이 영지 밖으로 순찰하는 것 보면."
"뭐,영지와 영지 사이에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그냥 놔두었다 가는 도적 떼들이 영지 안까지 들 어올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지."
시간이 지나자,레인저들은 보이 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상인 일행은 얼마 뒤 루테리아 영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른 영지와 구별되는 점은 없었 지만,용병과 상인들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루테리아 영지는 제국
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영지였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강 해진 영지의 군사력은 수준 높은 치안을 가능하게 했다.
며칠 뒤,제이크와 제시카는 근 처 마을로 향하는 상인 일행과 헤 어져 도시 루테리아로 향했다.
루테리아 시는 영지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로 영주가 사는 성이 있 는 도시였다.
그리고 루테리아 시는 대수림의 관문 도시로 더욱 유명했다.
제국의 동쪽 끝인 루테리아 영지 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도시 로,거대한 성벽이 도시의 동편을 감싸고 있었다.
제이크와 제시카,두 사람은 상 인 일행과 헤어진 얼마 뒤 루테리아 시에 도착했다.
"크,드디어 돌아왔어!"
제시카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도시의 서쪽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 유명한 루테리아의 동쪽 장벽 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이쪽
에서 보는 도시의 외성도 무척이 나 단단해 보였다.
관문에는 레인저들이 출입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제시카는 당연히 통과했고, 제이크의 통행증도 문제가 없었다.
도시에 들어간 제이크는 놀란 표 정이 되었다.
성안은 역시 모험가의 도시답게 지나가는 용병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성의 북쪽에는 일반인들도 많다 는 이야기를 들었지만,남쪽의 용 병 거리에는 일반인들보다 용병들
이 더 많아 보였다.
두 사람은 먼저 길드로 향했다. 도시에 돌아왔으니 제시카는 복 귀 신고를 해야 했다.
도시 동쪽,용병 거리 중앙에 있 는 길드에 도착한 제시카는 짐마 차와 제이크를 밖에 세워 둔 채로 길드에 들어갔다.
이곳 용병 길드는 황도에 있는 용병 길드 본부보다 커 보였다.
길드를 들락거리는 용병도 훨씬 우락부락해서, 한 달 이상 단련한 제이크가 애송이로 보일 정도였다.
얼마 뒤,제시카는 우울한 표정 으로 길드를 나섰다.
복귀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길드 에 파티가 깨진 이야기를 할 수밖 에 없었다.
길드원은 불쌍한 표정으로 그녀 의 이야기를 들었고,그녀는 그 표정에 다시금 현실을 느낄 수밖 에 없었다.
덕분에 기분이 가라앉았지만,그 대로 주저앉을 그녀가 아니었다.
"아자! 힘내자!"
나지막이 기합을 외친 그녀는 밝 은 표정으로 제이크를 향해 걸어
오기 시작했다.
"어,돌아왔네?"
"방금 왔어요. 별일 없으셨죠?"
"단장은 뭐 하고 혼자 있어? 술 마시나?"
"아,일이 있어서요."
"오,왔네. 마침 일거리가 있었는 데. 나중에 찾아갈게."
"네,언제든지요. 그럼 나중에 봐요."
제이크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며 그녀는 용병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태반이 단장과 파티원들 이야기
였지만,그녀는 표정도 변하지 않 고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그럼 갈까? 내가 있던 여관이 음식을 정말 맛있게 해."
어느새 제이크에게로 돌아와 짐 마차에 올라탄 그녀는 활기찬 얼 굴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억지로 힘내는 제시카의 모습에 제이크는 그녀의 눈을 가리켰다.
"눈물 흘렸어요."
"엑!"
놀라 눈을 흠친 그녀였지만, 눈 물은커녕 먼지만 가득했다.
"없잖아!"
"없네요. 잘못 봤군요."
"우씨! 여관에 가서 봐!"
"네,네."
시뻘게진 얼굴로 버럭 화를 낸 제시카였지만,그 때문인지 어색 했던 표정이 그 뒤로는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애늙은이."
제시카는 마차를 몰려 작게 구시 렁거렸지만, 제이크는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제시카는 짐마차를 용병 거리 너 머 주택가와 가까운 곳에 멈춰 세 웠다.
"여기야,내가 그동안 지낸 여관, 제2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곳이 야."
"그럼 하숙집이네요."
"또 모를 말을 하네."
이 세상은 하숙집 개념은 없기 에,제시카는 제이크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훌쩍 마차 에서 뛰어내렸다.
"저기,말은 마구간에 넣으면 돼. 짐마차는 대충 앞에 세워 놓고."
손으로 마구간을 가리킨 그녀는 후다닥 여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저 왔어요!"
그녀 모습에 제이크는 황당한 표 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누가 고용주이고,누가 용병인 지 모르겠네."
그동안의 여행으로 고용주와 용 병 관계는 꽤 벗어나 있었지만, 가끔 보이는 과한 격의 없는 행동 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소굽친구의 대타 노릇이 분명했 으니,금방 시들해질 게 분명했지만,당장은 조금 억울했다.
"근데,문제는 그런 행동들이 꼭
이런 때 벌어진단 말이야." 투덜거리면서도 제이크는 착실하 게 늙은 말을 마구간에 집어넣었다.
마차도 대충 옆으로 치워 놓고, 몸의 먼지를 턴 제이크는 여관 안 으로 들어갔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여관 1층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먼저 들어간 제시카는 여급으로 보이는 10대 여성과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덩치 큰 남자가 주 방을 나서고 있었다.
"먼 길 왔으면 배고플 텐데. 수 다는 나중에 떨어."
"패트릭 아저씨! 아저씨 음식이 그리웠어요!"
"거기 앉아서 기다려. 다른 파티 원들은?"
패트릭의 질문에 제시카가 움찔 말을 멈췄다.
"쯧쯧,차차 이야기하고,다른 손 님도 있는데 제니,넌 손님 받지 않고 뭐 해."
오랫동안 용병들을 보았던 덕분 인지 그는 제시카의 부자연스러움 을 바로 눈치챘다.
패트릭은 부드럽게 말을 돌렸다. 그의 말에 빤히 제이크를 보던 여급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서. 오세요. 다즐링 여관입 니다."
딱딱한 인사에 제이크는 어색한 표정이 되었고, 여관 주인인 패트 릭은 황당한 얼굴로 여급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제시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얼굴이 새빨개."
"깍!"
제시카의 말에 그녀는 얼굴에 손 을 올리고 후다닥 여관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아니,제가 왜 저래?"
"킥킥,이제부터는 딸 관리를 잘 해야겠는데요? 제니가 지금껏 멀 쩡하게 생긴 자기 또래 남자애를 본 적이 없잖아요."
"엥?"
도망친 여급은 여급이 아니라 여 관 주인의 딸이었다.
제시카의 말에 패트릭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훑어보았다.
시작부터 엉망이 된 만남에 제이
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주세요!"
홀로 신이 난 제시카는 패트릭을 향해 이른 저녁을 부탁했다.
제시카의 말대로,여관 주인인 패트릭의 솜씨는 훌륭했다.
이 여관은 주인인 패트릭과 그의 딸이 같이하는 여관이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동네 아이 들을 급사로 쓰기도 하는 모양이 었지만,평상시에는 두 사람이 운 영했다.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한 여관 주인 덕분에 나름 유명한 집이었
다.
대신 가격이 꽤 비쌌고,딸 제니 를 위해 거친 용병들은 잘 받지를 않아 유명한 만큼 번잡하지는 않 았다.
"덕분에 나 같은 용병이 편히 지 낼 수 있어."
아무리 치안이 좋다고 하지만, 거친 용병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 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사람을 가려 받는 이런 여관은 제시카에 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배를 두드리며
제시카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식당 주인 부녀가 제시카 옆으로 와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 를 했다.
딸 쪽은 제이크를 훔쳐보며 쭈뻣 거렸지만,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었다.
"그래,말해 봐. 무슨 일이야." 다행히 제시카는 편한 마음으로 파티가 깨진 것과 소꿉친구 이야 기를 털어 놓을 수 있었다.
부녀는 파티장인 콘라드가 유명 한 '대관식 초청장'의 주인공이 된 것에 놀랐고,또,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소꿉친구와 헤어지고,파 티가 깨진 제시카를 보며 같이 안 타까워했다.
제니는 제시카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씽거렸고,패트릭은 진 지한 표정으로 제시카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다른 파티나 용병대에 들어갈 생 각인 거냐?"
제이크의 예상보다 여관 주인 부 녀와 제시카가 가까운 듯했다.
마치 딸을 걱정하는 듯한 모습에
제시카가 미소를 지었다.
"우선 여기 고용주의 의뢰를 수 행할 거예요. 황도에서 이곳까지 호위도 한걸요?"
"네? 용병 아니었어요?"
제시카의 말에 제니는 놀란 표정 이 되었지만,패트릭은 얼추 눈치 를 첸 모양이었다.
"제시카 언니가 새로 키우는 파 티원인 줄 알았는데…"
작게 중얼거린 제니였지만, 모두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제시카 표정이 좋은 게 자네 덕 분이군. 고맙네."
"어차피 의뢰일 뿐이었습니다."
"엥? 제대로 일했어요. 돈 받은 만큼 일했다니까요."
"맞습니다. 지금도 제가 말을 마 구간에 넣었지요."
마지막에 터진 제이크의 뒤끝에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하하,내가 한턱내지. 먹고 싶 은 것 있으면 말하게."
허둥거리는 제시카를 보고 패트 릭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홍차 한 잔 부탁하겠습니다."
"홍차?"
"네,얼마 전에 홍차가 다 떨어 져서요."
"호,홍차 손님이라니. 얼마 만이 지?"
패트릭의 대답에 제시카가 놀란 눈이 되었다.
"여기,홍차도 있었어요?"
"이래 돼도 영주님 전속 요리사 에게 배운 솜씨야. 홍차 하나 내 릴 줄 모를까."
"근데 왜 한 번도 파는 모습을 못 봤죠?"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 팔 리가 없잖아. 무식한 용병 놈 중에 홍
차 마시는 놈이 어디 있다고. 기 다리게. 제대로 솜씨를 발휘해 보 겠네."
패트릭은 기쁜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남은 두 여성은 신기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홍차 내릴 줄 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여관 이름을 듣고 알았죠. 다즐 링이잖습니까?"
"엥? 그게 홍차 이름이야?"
"고급 홍차 이름입니다."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제니를
돌아보았다.
"제니는 알고 있었어?"
"아뇨,어렸을 때 저한테 붙여 준 아명이어서요. 여관 이름을 제 아명으로 붙였다고 생각했는 데…"
갑작스러운 진실에 애매한 분위 기가 된 식당이었지만,주방에 들 어간 패트릭은 오랜만의 홍차 손 님에 즐거울 뿐이었다.
다행히 홍차는 맛있었다.
그렇게 제이크는 다즐링 여관의 새로운 투숙객이 되었다.
* * *
다음 날 여관을 나서며 제시카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던전 위치가 위치인 만큼 사람 모으는 게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아무래도 위험한 장소라 많 은 인원이 필요하거든. 좀 참고 기다려 줘."
"괜찮습니다. 충분히 기다릴 생 각입니다."
그의 말 덕분에 조금 편한 얼굴 이 된 제시카가 여관을 나섰다.
방금 한 말대로 제이크는 꽤 오
래 기다릴 생각이었다.
제시카가 사람을 모으든,모으는 데 실패하든,던전을 가기 위해서 는 시간이 필요했다.
"성공했으면 좋겠지만,그래도 준비는 해 놓아야겠지?"
제이크도 준비를 위해 여관을 나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