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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6화 (6/222)

6 화

어둡고 조용했던 밤의 황성에 비 상이 울렸다.

불들이 켜지고,내성의 성벽에는 횃불과 함께 병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황도의 내성 안,황성의 바로 뒤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오래전 지어진 유적이었지만,탑 하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릴 정도 의 폭발.

물론 사람들은 어느 건물이 무너 진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강 렬한 폭음과 불빛 때문에 황성이 공격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무너져 내 린 탑을 지켜보던 쥬더스는 무표 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도움을 주던 일반인이 폭발에 휘

말려 버렸지만,그런 일은 이미 미래의 기억 속에서 여러 번 경험 했었다.

물론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쥬더스에게는 그 리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이 제국에 들어오기 위해 교육받을 때부터 각오하던 일이었다.

탑의 붕괴 때문에 탈출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다른 소년들이 가지고 있 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제국에 고 이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이곳에 잠입 한 목적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는 여한이 없었다.

제이크의 예상처럼,그는 남부 왕국 연합 중 한 곳에서 제국 황 제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파견 된 첩자였다.

아니,원래는 그의 부모가 첩자 였다.

제국 마법사 탑에 첩자로 잠입한 쥬더스의 부모는 황태자가 태어나 는 해에 그를 낳았고,그는 태어 나서부터 첩자로서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아 왔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마법에 소질 을 보여 준 그는 어린 나이에 수 습 마법사로 황실의 마탑에 들어 올 수 있었고,며칠 전 황성의 지 하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제국 황제의 비밀 을 캐내기 위한 남부 왕국들의 수 십 년에 걸친 첩보 작전이었다.

쥬더스는 황성 후원을 조심스럽 게 빠져나갔다.

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더 욱 붉게 보이는 장미의 화원은 그 의 모습을 충분히 가려 주었다.

더구나 마법사가 아니라 암살자 처럼 보이는 그의 움직임과 기척 을 줄여 주는 마법은 그의 모습을 일반인은 물론,병사나 기사들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는 황성 뒤뜰을 가로지 르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피해 내 성 벽 안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성과 도시를 경계 짓는 내성의 성벽 위는 마치 낮처럼 환했다.

수많은 횃불과 마법 덕분에 성벽 위로 쥐새끼 하나 도망가기 힘들 어 보였다.

다만,그런 성벽 위를 바라보는

쥬더스의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그때 였다.

쥬더스 뒤쪽에서 발소리들이 들 려왔다.

"라이트!"

쥬더스가 발소리에 몸을 돌리자, 선두에 서서 주문을 외우는 마법 사가 있었다.

환한 빛덩어리가 마법사의 손을 떠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작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은 모습에,쥬더스는 손으로 눈 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여기 있었군."

여러 기사와 함께 쥬더스 앞에 등장한 사람은 얼마 전 지하 유적 에서 본 마법사,대마도사 아이힌 테일이 었다.

그때처럼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 리며 등장한 그는 탑이 무너져 내 린 지금도 무척이나 침착해 보였다.

쥬더스는 대마도사를 보고 실소 를 터뜨렸다.

겨우 수습 마법사를 잡으러 기사 단과 대마도사가 등장한 것이다.

"호,그냥 수습 마법사 정도가

아니군. 유적 마법 속에서 경지에 이른 것인가? 아니면 원래 천재였 던 것?"

대마도사는 쥬더스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역시 마법사란 호기심의 존재.

바로 쥬더스의 능력을 알아본 대 마도사는 분노보다는 흥미를 표시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는 다르게 일 대는 이미 대마도사의 영역 안으 로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쥬더스가 아무리 천재 중의 천재 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통할 마

법이 없었다.

"뭐,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그 것보다 거하게 사고를 쳤구먼. 탑 을 무너뜨리다니. 하지만 그런다 고 달아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 나? 긴 제국 역사 동안에 너 같 은 녀석이 한 명도 없을 리가 없 잖은가. 그나마 이곳까지 온 것을 가상히 여겨 줘야겠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소년들 이 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탑 주 변에는 대마도사의 탐지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타깃이 된 소년들만 탐지하는 마

법으로,쥬더스가 밖으로 나온 순 간 대마도사는 바로 그의 탈출을 알아차린 것이다.

대마도사가 손짓을 하자 기사들 이 쥬더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쥬더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의 자신이라면 달아나지는 못해도 한바탕은 할 수 있을 텐 데. 어린 그로서는 더는 할 수 있 는 게 없었다.

더구나 이미 며칠 동안 모은 마 나는 탑을 빠져나오기 위해 거의

다 써 버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잡혀 줄 생각은 없었다.

고통에 굴해서 비밀을 털어 놓을 성격은 아니었지만,탈출할 수 없 는 상황에서 첩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쥬더스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작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내가 있는 곳에서 마법을 써!"

쥬더스를 향해 호감마저 표시하

던 대마도사는 쥬더스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분노의 일성을 내 뱉었다.

그와 동시에 마법을 해제하는 디 스펠 마법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역시 대마도사다웠다. 주문도 없 이 무영창으로 마법을 시전해 버 린 것이다.

하지만 마법을 쓴 대마도사의 표 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의 디스펠 마법은 쥬더스의 마 법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지만,쥬 더스의 가슴에서 피어나는 붉은 빛은 꺼지지 않고 점점 밝아져 갔

기 때문이었다.

쥬더스는 일그러진 대마도사의 얼굴을 보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시전한 마법은 단지 그가 통제하던 마나를 폭주시키는 역할 을 했을 뿐,폭주하는 마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예상외로 폭주하는 마나의 고통 이 컸지만,그동안 벌인 일의 대 가로 생각하면 이 정도 고통은 달 게 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자신의 죽음과 함께 기사 몇 명만 같이 데려가면 더할 나위

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마도사는 과연 이름값 을 했다.

"마나 폭주인가! 고의로 마나 폭 주를 만들어 내다니!"

그는 바로 쥬더스의 상태를 알아 차렸다.

대마도사는 급하게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떠올라라! 그라비테이션!"

그 순간 바람이 쥬더스를 향해 몰아쳤고,쥬더스는 하늘로 치솟 아 올랐다.

급한 마음에 고위 마법인 반중력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드높은 하늘로 치솟은 덕분에 쥬 더스는 내성 밖 황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불빛과 술꾼들의 모습,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내성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미래를 살면서도 저들처럼 살지 못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쥬더스는 별로 아쉬운 생 각은 들지 않았다.

마법 덕분에 이미 한 번 오랜 인 생을 살았던 그였다.

쿠앙!

그 순간,성벽 위로 거대한 폭발 이 일어났다.

하늘을 수놓은 폭발은 마치 거대 한 폭죽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쥬더스는 몸이 터져 나가는 마지막 순간,황성의 후원을 보며 만 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살하다니. 그냥 탈주자가 아 닌 건가?"

갑작스러운 자폭 마법에 놀란 마 도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더구나 마나 폭주로 저 정도 폭

발을 만들어 내다니,아마 탑도 저런 식으로 무너뜨렸겠군. 흠,마 나 폭주 마법이라……. 조금 연구 해 볼까?"

상황을 분석하던 마도사의 생각 이 조금씩 산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혹시 탈출한 다른 사람은 없습 니까?"

옆에 있던 근위기사가 그에게 질 문했다.

생각에 잠긴 마법사, 그것도 대 마도사에게 말을 거는 것은 지극 히 무례한 일이었지만,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없다네. 탑 밖으로 나온 건 위에서 터져 버린 소년밖에 없어. 아마 나머지는 탑에 깔려 버렸겠 지."

대마도사의 대답을 들은 근위 기 사의 얼굴에는 안도와 낙담의 표 정이 교차했다.

도망친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 했지만,지켜야 했던 소년들을 모 두 잃어버렸으니 소년들을 지키던 기사들로서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보고할 때 내가 좀 돕도록 하겠

네. 아무래도 죽은 애는 평범한 수습 마법사는 아닌 듯해. 마법사 라는 족속이 저렇게 쉽게 자결할 리는 없거든."

대마도사의 말에 기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럼 저희는 주변을 정리하겠습 니다."

잠시 뒤,기사들은 사방으로 흩 어져 병사들을 수습하고 탑을 조 사하기 시작했다.

대마도사도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황성을 향해 걸었다.

"이걸 황태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군."

뜬금없이 말을 타다 낙마해 죽은 전임 황제와는 달리,황태자는 성 정이 꽤 괴팍했다.

더구나 미래를 경험하고 온 뒤에 는 노련미까지 추가되어 도무지 성정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다.

다시 마나를 모으기까지 수십 년 동안 지하 유적은 정지되어 있을 터이고,미래를 본 사람 중에 남 아 있는 사람은 이제 황태자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제 지하 유적 일은

이대로 일단락이 되었다. 내일부 터는 대관식을 위해 정신없이 움 직여야 했다.

"역시 황실 마법사라는 게 너무 쓸데없는 일이 많아."

황실 마법사로 받은 이익은 모두 무시하고는 대마도사는 홀로 투덜 거리며 떠나갔다.

기사들과 마도사가 떠난 황성의 후원에는 병사 몇 사람만 남아 주 변을 경계했다.

"어라,신발 끈이 풀어졌네." 주변을 경계하던 병사 중의 한 명이 밑을 내려 보고는 무릎을 꿇

고 앉아 신발 끈을 정리했다.

다른 병사들은 그가 주저앉자 혀 를 찾지만,곧 관심을 끊고 주변 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신발 끈을 다시 묶은 병 사는 이상하게도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몰래 주변을 살피며 화단 한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있다!'

그는 빠르게 잡힌 물건을 빼내어 갑옷 안쪽에 밀어 넣었다.

갑옷 안쪽으로 사라지기 전에 언 뜻 보인 물건은 글이 적힌 종이었

다.

바로,쥬더스가 이곳에 남겨 놓 은 제국의 비밀과 미래의 일을 적 은 보고서였다.

쥬더스와 제국에 잠입한 첩자들 도 쥬더스가 탈출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이 아니라 정 보 그 자체였다.

보고서를 품 안에 넣은 병사는 무료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가슴에는 수십 년간 이어온 계획의 결과가 담겨 있지만,지금

은 밤중에 불려 나와 피곤한 병사 의 연기를 할 때였다.

"으윽!"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에 눈을 뜬 제이크가 제일 먼저 본 것은 무너져 막혀 버린 계단이었다.

멍하니 계단을 보던 그는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마나 폭발이 일어나려고 했 어……. 난 계단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에 폭발이 일어나 후폭풍에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었지.' 그리고 기절.

제이크는 바로 앞까지 무너져 버 린 계단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만일 후폭풍에 휘말리지 않았더 라면 저 안에 묻혔을 게 분명했다.

"비밀 통로로 들어온 건가?" 다행히 들고 들어온 횃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제이크는 찰과상과 근육통에 끙 끙거리면서도 횃불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잠시 무너진 계단을 보던 그는 뒤로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수천 년 전 만들어 진 고대 터널이 그를 향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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