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76화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아아!!"
관중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신우는 더그아웃의 계단에 서서 타구를 바라봤다. 타구는 유격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 외야로 날아갔다.
뚫렸다.
유격수가 점프했지만, 잡을 수 없는 위치였다. 좌익수가 쫓아와 잡기에도 멀었다. 타구가 그대로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앤더슨이 1루 베이스를 밟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갤럭시의 선두타자 앤더슨 안타를 기록하며 1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역시 베테랑 앤더슨입니다.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어요.]
6자전의 후유증은 앤더슨에게 보이지 않았다. 베테랑인 만큼 그는 자신의 타격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토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뼈억~!!
[3구 따집니다! 원스트라이크 투볼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내는 토마스 에드윈!]
[토마스 선수는 여유가 있습니다. 1회부터 자신의 존을 형성해 침착하게 공을 보고 있어요.]
토마스가 공을 많이 보면서 대기타석의 신우 역시 도움을 받았다.
'타이밍을 잡을 기회가 많아.
[토마스 잘하누]
[쟤는 원래 잘했음.]
[오늘 투수 별로네.]
[00 구위가 영 안나오네.]
[양키스 불펜 일찍 풀어야 할 듯.]
레전드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양키스의 선발투수 스나이더의 구위는 평소와 달랐다.
구속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볼 끝이 살아서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공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앤더슨과 토마스가 빠르게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그건 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에 익어가고 있다.
점점 공이 들어오는 궤적이 보였다.
원래 남들보다 동체 시력이 좋았던 신우다. 당연하게도 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딱-!!
[4구를 강타! 3루수 옆을 지나는 타구! 페어입니다! 좌익수의 백업이 빨랐고 앤더슨은 2루에서 멈춥니다. 무사에 주자는 1, 2루!]
[갤럭시가 1회부터 기회를 잡네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 그리고 타석에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타자! 정신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신우가 천천히 타석으로 걸어갔다.
양키스 응원단은 일제히 야유를 쏟아냈다. 일종의 견제였다.
"와아아아아!!"
반대로 갤럭시 응원단은 환호했다.
하지만 여기는 적지다.
흐름이 좋다고는 해도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전일 그랜드슬램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팬들의 기세 싸움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점점 경기장에는 야유소리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 번 기세에 밀리면서 갤럭시 응원단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어 종내에는 아예 사라졌다.
깃발을 나부끼던 사람들도 사라졌고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던 이들도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그만큼 양키스의 기세는 무서웠다.
'좋지 않군.
제이비어 감독은 입술을 깨물었다.
홈어드벤티지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홈에서 경기를 지르면 팬들의 일방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경기에 나선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갤럭시 선수들도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젠장, 하나같이 야유네……"
"양키스 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담합이 잘 됐어?"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라는 거겠지."
선수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것은 야유에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기 위한 토로였다.
"이렇게 야유 쏟아내면 시누도 힘들지 않을까?"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구엘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야유가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젠장! 어제 경기에서 내가 끝냈으면 되는 건데……!"
크리스는 양키스의 응원을 들으며 자책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힘들지 누구보다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제 경기가 더욱 아쉬웠다. 이러한 생각은 점점 그를 잠식해 갔다. 갤럭시 선수와 팬.
모든 이들이 양키스 팬들의 응원에 잠식되고 있었다. 이미 기세에서 꺾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평소라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전일 역전패의 그림자가 짙었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경기가 진행되면 갤럭시에게 남은 건 결국 패배 하나밖에 없었다.
[흐름이 양키스에게 갔군.]
[홈이란 이점을 완벽하게 가져가네.]
[어제 그랜드슬램 맞은 게 치명적이었음.]
[9회 말에 클로저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으니까.]
[오늘 경기 초반에 잡지 못하면 어려울 듯.]
[일방적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
레전드들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많은 경기를 치러온 그들이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건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초반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우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레전드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공유했다. 모른다면 바보일 것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해.'
기회를 뒤로 넘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 갤럭시 타자들 중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는 타자는 없었다.
'나밖에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만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프로라면 이런 모습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갤럭시 타선 중 신우만큼 믿음이 가는 타자는 없었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쉰 신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천천히 루틴을 밟았다.
배트로 허공을 가리켰다.
시선이 닿는 허공에 그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이 만들어졌다.
다시 호흡을 뱉으면서 배트를 거두었다.
천천히 돌아오는 배트의 움직임에 맞추어 주위의 풍경도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관중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이내 모습마저 사라졌다. 외야수들과 내야수들마저 어둠에 잠식되자 영역에는 신우와 두수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평소 신우는 타격을 하면서도 동료를 믿었다. 그것이 팀 스포츠를 하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기회를 뒤로 미루지 않겠어.'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미루지 않는다. 자신이 해결한다.
이는 중심타자로서의 욕심이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투수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눈으로 주자들의 위치를 확인한 그가 슬라이드 스텝을 받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신우가 하체를 고정시켰다. 박자는 이미 익혔다.
토마스의 도움으로 공을 지켜봤고 타석에 들어선 뒤로는 3구를 직접 봤다.
타이밍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구종은……'
투수의 손이 어께를 넘어 앞으로 이동했다. 머리 옆에서 손이 드러나는 순간. 공을 잡은 그립이 보였다.
'패스트볼'
볼카운트를 잡기 위한 패스트볼이였다. 기합 소리와 함께 투수가 공을 뿌렸다. 동시에 신우의 하체가 돌아갔다. 투수의 타이밍과 구속을 생각한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날아오는 공의 궤적에 맞추어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홈플레이트 앞에서 배트가 공을 낚아챘다.
[때렸습니다!!]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퍼졌다. 동시에 유리가 깨지듯 검은 풍경이 허물어졌다. 뒤이어 관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갤럭시 팬들은 환호를 지르고 양키스 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영역에 들어가기 이전과는 전혀 반대의 상황.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긴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듯 신우가 던진 배트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배트를 던졌습니다!!]
화려한 배트플립과 함께 방송을 통해 캐스터의 찢어지는 듯한 샤우팅이 들려왔다.
방송화면은 둘로 나뉘며 외야를 바라보는 신우와 담장밖에 떨어지는 타구를 동시에 비춰주었다.
[넘어갔습니다!! 1회 초!! 첫 타석에서 쓰리런을 기록하는 정신우!! 떠들썩했던 양키스의 팬들을 단숨에 침묵하게 만드는 한 방이 터집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
터져 나온 홈런에 갤럭시 팬들은 목놓아 외쳤다.
"우~! 우~! 우~! 우~! 우~!!"
신우에게 보내는 챈트를 말이다.
1회 3점의 리드,
보통의 갤럭시였다면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때렸습니다! 하지만 높게 떠오른 타구, 중견수 거의 제 자리에서 콜을 외칩니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냅니다. 정신우 선수의 쓰리런이 터졌지만, 추가득점을 올리지 못하는 갤럭시의 아쉬운 공격이 끝났습니다.
홈런이 터지면 공격의 흐름이 넘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 갤럭시 선수들은 그러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몸이 무거웠다.
그 이유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마지막이란 생각에 몸이 무겁네.]
[거기다 지칠 때가 됐지.
[벌써 7차전이니까.]
갤럭시 선수들은 경험이 적다.
메이저리그가 첫 경험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풀시즌을 치러본 이들은 매우 적었다. 당연히 체력안배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 선수들이 월드시리즈 6차전까지 박빙의 대결을 펼처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하면 된다.
신우는 모자를 쓰고 더그아웃을 나섰다. 외야에 자리를 잡은 그는 가볍게 공을 던지며 어깨를 풀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 손으로 결정짓겠어.'
레전드들과의 마지막 추억.
그것을 망칠 수 없었다.
신우의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월드시리즈 7차전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많은 예상을 내놓았다.
그중 가장 많은 의견은 양키스의 압승이었다. 6차전에 역전승을 거둔 것으로 그들의 기세가 살아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변수를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그건 바로 정신우의 존재였다.
[갤럭시가 7차전에서 이기기 위해선 정신우의 활약이 중요하다.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그에게 희망을 걸어야 되는 것이 갤럭시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다.)
베이스볼은 스포츠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전력을 다해야 1승을 거둘 수 있다.
하물며 그게 월드시리즈라면 더더욱 팀원 전체가 힘을 내야 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단 한 명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이 말했던 이론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역시 한 가지 변명은 있었다.
[정신우는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선수다. 기존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선수가 등장한 이상 이전의 이론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인터뷰에서 정신우를 "게임 체인제"라고 표현했다.
게임체인저란 기존의 이론을 모두 파괴하는 선수를 의미한다.
정신우는 그런 선수다.
그렇기에 월드시리즈 7차전은 그의 활약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때는 스캇 보라스 홀로 외치던 게임체인저란 말. 하지만 이제는 모든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신우가 게임체인저라는 사실을 말이다. 1회 .
선취점을 내준 양키스의 반격이 시작됐다.
딱-!!
[때렸습니다!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양키스! 갤럭시가 무사 1, 3루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타석에는 6차전의 히어로! 애런 저지가 들어섭니다!!]
양키스타디움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우와아아아~!!"
"애런!!!"
"한방 날려버려!!"
양키스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6차전의 활약이 아직도 그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갤럭시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주자를 쌓아놓고 저지를 상대하게 되다니.'
갤럭시의 선발투수 로버트는 올 시즌 11승을 거두었다.
그의 선수 인생 처음으로 두 자릿수 선발승을 거둔 것이다.
말인즉슨 이전에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월드시리즈 무대도 지음이었다.
하물며 7차전이라니?
상상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는 막중한 임무였다. 부담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감독님은 3이닝만 책임지라고 했었다. 제이비어 감독은 로버트가 부담을 느낄 걸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임무를 정해주었다.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그것만 보고 달릴 수 있을 데니까 말이다.
'내 임무는 3이닝이다.'
제이비어 감독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힘을 안배할 필요는 없어!'
로버트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전력투구.
메이저리그에서 10승을 거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해냈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흐아앗~!!"
[1구 던집니다!!]
애런 저지를 상대로 완벽한 공을 던졌다.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이대로 공을 던지면 아마 50구 전후로 체력이 떨어질 것이다.
알지만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3이닝을 책임지기 위해서 말이다.
제이비어가 원했던 모습도 바로 저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후웅-!!
6차전의 역전 그랜드슬램이 괴물을 깨웠다는 걸 말이다.
따악~!!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괴물을 잡기엔 로버트의 힘은 부족했다.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 빼앗긴 3점을 되찾아오는 애런 지지!!]
7차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게 될 타격전의 신호탄이 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