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275화 (275/281)

훈수로 메이저리거 275화

[몬트리올 갤럭시와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가 결국 7자전까지 이어졌습니다. 9회 말까지 4 대 1의 리드로 앞서가던 갤럭시는 마무리 크리스 베넷을 등판시키며 우승을 확정지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베넷이 애런 저지에게 그랜드슬랩을 허용하며 포스트시즌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불명예와 함께 승리를 내주었습니다.

과연 기사회생한 뉴욕 양키스가 승리할지, 아니면 몬트리올 갤럭시가 역사를 써내려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그랜드슬램은 희귀한 기록이다.

현역 동안 10개를 때려내면 순위에 오를 정도였다. 그런 그랜드슬램을 월드시리즈에서 때려냈다. 그것도 팀이 지고 있는 9회 말에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애런 저지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당연하게도 양키스 팬들은 일광했다.

-저지 최고다~!!

갤럭시에게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

-내가 이래서 저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우리 악의 제국에 무릎을 꿇어라!!

-우승 트로피는 뉴욕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저지는 영어로 판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양키스 팬들은 그가 홈런을 때리거나 결승타를 날리는 날에는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경기는 딱 거기에 맞는 날이었다. 그랜드슬램이라는 최고의 결과물로 승리를 가져왔다. 갤럭시가 유리하다고 평론했던 전문가들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양키스의 승리가 유력합니다.

[애런 저지의 몸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랜드슬램은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대기록입니다.

[갤럭시는 기회를 놓졌어요.]

[흐름이 바뀐 겁니다.]

TV를 보던 제이비어가 신경질적으로 전원을 줬다.

"젠장! 전문가라는 놈들이 하나 같이 입이 가벼워서는!"

TV에 나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그들은 팩트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시청자가 원하는 걸 들려준다.

그리고 이곳은 뉴욕이다.

당연하게도 뉴욕 시민들이 원하는 내용을 이야기해야 출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아주 틀린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정확했다.

"어떻게든 6차전에서 잡았어야 했어."

제이비어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벌떼야구를 펼치면서 양키스의 타선을 꽁꽁 묶었다.

그렇게 연결된 고리는 최고의 클로저인 크리스 베넷에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에서 자물쇠에 균열이 일어날 줄이야.

"그때 시누가 그라운드에 있었더라면……"

야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9회 말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 벤치가 아닌 그라운드에 신우가 있었다면?

'과연 내가 마운드에 신우를 올릴 수 있었을까?"

5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거기에 8회까지 때리고 뛰면서 경기를 치렀다. 그런 신우를 등판시키는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 마무리가 멀쩡한 상태에서?

"인생은 B와 D의 C라고 했던가."

철학자 사르트르의 명언이었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란 말.

특히 야구에서 중요한 건 결과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자연스레 좋게 포장이 된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과정 하나하나가 문제가 되는 게 바로 야구였다.

"내일 경기가 문제로군."

어떤 결과가 나오는 7차전에서 월드시리즈는 끝난다. 즉, 단판 승부가 된다는 소리다.

이런 경기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었다.

'젊은 우리 애들이 견딜 수 있을지 문제야.'

갤럭시는 젊다.

그래서 체력적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부분은 멘탈이었다.

6차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기회가 날아가고 7차전까지 가게 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는 게 당연했다.

'두 팀의 선발을 봤을 때 투수전이 될 가능성은 적다. 양키스와 갤럭시.

두 팀 모두 1, 2선발이 아닌 3선발이 마운드에 오른다. 물론 평소대로 이들이 긴 이닝을 책임지진 않을 거다. 마지막 경기이니만큼 총력전이 된다. 빠른 템포의 두수교제와 과감한 작전들이 나올 거다.

'콜 역시 준비를 하겠지.

양키스의 에이스 게릿 콜 역시 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에이스를 무리 시켜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갤럭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누 역시 준비시킨다.

신우를 준비시키는 건 당연했다.

하루를 쉬고 6차전에서도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체력은 충분할 거다.

'문제는 얼마나 쓸 수 있느냐는 건데……'

체력이 무한정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올리고 얼마나 던지게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젊지만 신우는 팀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다. 아니, 림을 넘어서 메이저리그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무리시키는 건 부담이 됐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소리에 제이비어 감독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신우입니다."

"어? 들어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방문이었다.

신우가 이 시간에 오다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기에 제이비어는 살짝 긴장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응? 아니야.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다름이 아니라 7차전에 대해서 상의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래,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해."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일 경기에서 위기가 온다면 마운드에 오르고 싶습니다."

신우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다.

"몇 구라도 던지겠습니다. 감독님이 판단했을 때 다른 투수가 낫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내려오고 싶지 않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신우는 지금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자신을 등판시키고 강판시키는 판단을 내리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장기전으로 갈 수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내일 경기에서 자네는 선발 외야수로 출전할 예정이야. 그럼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 데, 괜찮겠나?"

"제가 또 한 체력 하잖습니까?"

신우의 세력은 팀내에서 최고다.

아니, 어찌면 리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력일 수도 있다.

그만큼 그의 체력은 남달랐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제이비어는 그 부분을 이야기했다.

"내일 무리하면 그 여파가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어."

제이비어는 좋은 감독이었다.

당장 눈앞의 실적보다 선수의 미래를 생각했다. 어찌면 당연했다.

신우는 팀이 아닌 리그를 이끌어갈 선수다. 한 명의 야구인으로서 제이비어는 이런 선수가 혹사당해 일찍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트로피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능력이 있음에도 미래를 잃는 게 두려워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기력하다는 건 신우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한국에 있을 때, 무기력하게 모든 걸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두 번 다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알겠네. 자네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신우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런 신우를 바라보는 제이비어의 입꼬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걱정을 덜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월드시리즈 마지막 7차전을 앞둔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

양키스타디움은 축제분위기였다.

"오늘 우리 양키스가 우승하겠네!"

"갤럭시를 처부수고 트로피를 가져오자!!"

"저지의 심판이 도래했다!"

6차전을 역전 그랜드슬램으로 승리한 만큼 팬들의 기세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갤럭시 응원단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젠장…… 정말 지는 거 아니야?""

"어떻게 9회 말 역전 만루 홈런을 맞냐?"

"하… 이런 걸 보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갤럭시 팬들 중 많은 숫자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직접 미국까지 와서 직관을 하고 있었다. 충격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딸칵!

갤럭시의 클럽하우스는 적막만이 흘렀다. 간혹 한숨소리와 라커가 닫히는 소리만이들릴 뿐이었다.

[장례식장 같누]

[시작 전부터 졌네.]

[이지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중요했다.

이곳에서의 분위기가 곧 그라운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레전드들의 말대로 이대로라면 이길 수 없다. 이미 질 경기를 앞두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신우는 말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라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선수들을 바라봤다.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면 선수들이 힘을 낼까요?''

[글쎄다.]

[클럽하우스 리더는 타입이여러 가지임.]

[너는 말로 끌고가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

[무엇보다 지금은 말로 끌고가기에는 애들이 너무 주눅이 들어 있다.

그때 매튜슨이 말했다.

[때로는 말보다 중요한 게 있지.]

그게 뭐죠?'

[행동이다.]

말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은 다르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지.

모든 걸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런 매듀슨의 조언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네요.'

결심한 신우가 주먹을 쥐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그라운드에 양키스 선수들이 들어섰다.

수비를 하는 그들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월드시리즈 7차전을 앞둔 선수들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그만큼 승리는 선수들의 몸을 가볍게'

반면, 갤럭시 더그아웃은 조용했다.

이미 패배를 확정지은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카메라를 통해서도 전달이 됐다. 아직 광고가 나가고 있기에 캐스터가 이진철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어제의 패배가 오늘까지 영향을 끼치나 보네요."

"그러게 말이야. 어제 결과는 어제 이미 털어버려야

"젊은 선수들이라 그게 잘 안 되는 걸까요?"

"그렇겠지. 젊을수록 과거에 대한 미련이 짙게 남으니까."

이진철도 그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 없었다. 자신 역시 저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봤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광고입니다."

PD의 말에 두 사람이 중계준비를 했다. 곧 광고가 끝나고 PD의 큐사인이 떨어졌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의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는 자리!]

캐스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톤업이 된 목소리로 중계를 이어갔다.

반면 이진철의 시선은 카메라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에선 신우의 모습이 비처지고 있었다.

[도움 말씀에는 이진철 해설위원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6차전에서 충격전이 9회말 역전 그랜드슬램이 나오면서 결국 7차전까지 오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갤럭시가 궁지에 몰린 듯한 모습인데요. 이런 갤럭시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초반에 몰아지는 게 중요합니다.]

[초반이요?]

[예, 어제 패배의 망령을 최대한 일찍 걷어내지 못하면 결국 분위기 반전을 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분위기전환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군요. 1회 초 갤럭시의 공격부터 시작되는 월드시리즈 7차전! 갤럭시의 타순 보시겠습니다.]

이진철의 시선이 화면에 뜨는 타순을 바라봤다. 갤럭시는 타순에 큰 변화가 없었다.

[갤럭시는 1번에 유격수 앤더슨, 2번에 포수 토마스, 3번에는 지명타자 정신우 선수를 배치했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2번이 아닌 3번에 배치가 됐네요.]

[주자를 더 많이 쌓아서 한 번에 점수를 내겠다. 이렇게 풀이를 해야겠죠.]

때마침 카메라가 신우를 포커싱했다. 현지에서도 자주 신우를 카메라에 담는다는 건 오늘 경기에서 그가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이진철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결국 네가 해줘야 한다. 신우야!"

신우가 해줘야 갤럭시가 살아난다.

문제는 그걸 얼마나 잘해줄 것인지였다.

[갤럭시의 선공으로 시작하는 월드시리즈 7차전! 돌격대장 앤더슨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합께 7차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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