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74화
한국은 떠들썩했다.
[대한민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역대 두 번째밖에 없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월드시리즈 퍼펙트 게임이라니! 정말 상상 속에서나 했을 법한 기록을 달성했어요!]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자랑스런 일입니다!!! 언론에서는 연신 신우의 기록달성을 보도했다. 인터넷신문은 물론이거니와 공중파 뉴스에서도 신우의 기록달성을 다루었다.
매우 이례적인 일.
하지만 신우의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은 그보다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두 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조금 과장된 멘트가 나와도 팬들은 열광했다.
-진짜 할 줄은 몰랐다.
-만화 보는 줄.
-레알 혼자 야구하,
-결승타에 퍼펙트게임 하는 에이스가 있다?
-게임도 이렇게 만들면 밸런스 X망이라는 소리 듣는데 ㅋㅋ 현실에서 이런 걸 하네.
-고작 메이저리그 4년차에 이런 기록이라니. 앞으로 또 어떤 기록을 세울까?
메이저리그 4년차.
데뷔시즌에 평균자책점 제로로 시즌을 마감하고 두 번째 시즌에서는 단일시즌 최다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세 번째 시즌은 선발투수로서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과 함께 각종 기록을 세웠고 네 번째 시즌에는 투웨이 플레이어로서 엄정난 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다.
이런 신우가 앞으로 또 어떤 기록을 세울지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받는 건 역시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몬트리올 갤럭시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의 기록이 됩니다.]
[MVP는 당연히 정신우 선수가 될 겁니다. 그만큼 활약을 한 선수가 없으니까요.]
[한국인 선수가 월드시리즈 MVP가 되는 건 최초의 일입니다.]
[6차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6자전과 7차전은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다. 갤럭시 입장에선 기세를 살려야 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적진의 분위기에 잡아먹힐 수 있었으니까.
어느덧 월드시리즈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갤럭시 선수단이 전용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선수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신우도 원래는 휴식을 해야 될 상황. 하지만 그는 로비로 나왔다.
*o..!!"
로비에 도착하자 거구의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박광수였다.
그리고 옆에는 최연우도 보였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이야?"
"흐흐! 형이 월드시리즈 우승할 수도 있는데, 당연히 와야죠."
"애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습니다!"
"솔직히 내가 가자고 했지만, 너도 바로 오케이 오랜만에 봐도 티격태격하는 건 여전했다.
"어쨌든 뉴욕에서 보니 반갑다. 그런데 티켓은 구했어?"
"제가 누굽니까? 당연히 구했죠!"
박광수가 재벌 3세라는 걸 알기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희는 시즌 끝났어?"
한국 역시 아직 포스트시즌 기간이었다. 그런네 박광수가 여기 있다는 건 시즌이 끝났다는 소리였다.
최연우가 박광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준플에서 떨어졌어요. 3 대 1로 일찌감치 떨어졌죠."
"너희는 포스트시즌에 오지도 못했잖아!"
또다시 투닥이는 둘을 보며 신우는 피식 웃었다. 포스트시즌은 선수 한두 명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어쨌건 잘 왔다."
먼타지에서 아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운 신우였다. 다음 날, 신우는 제이비어 감독과 독대했다.
"원래 로테이션대로라면 6차전에서 자네는 쉬는 게 맞아. 하지만 6차전이니만큼 자네가 지명타자로 나가줬으면 하네."
신우의 로테이션은 독특했다.
선발등판 이후 하루의 휴식을 거치고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이 로테이션을 바꾸자는 이야기였다.
로테이션은 선수의 루틴과 관련이 있었다. 그걸 건드는 이야기였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
너무 시원스러운 대답에제이비어가 당황했다.
"저도 감독님에게 부탁 한 가지 있습니다."
"부탁? 편히 이야기하게."
"6차전이든 7차전이든 위기가 찾아온다면 언제든지 등판하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예. 기회가 왔을 때 죄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아요."
월드시리즈 우승.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조차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이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중요했다. 그랬기에 베테랑들조차 자신을 시리즈 막바지에는 무리해 가면서까지 등판했다.
신우의 말에 제이비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우는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제이비어 입 찢어지겠누.]
[에이스가 이렇게 말해주면 감독은 땡큐지.]
[우리 시누 우승에 목말랐누.]
'마지막 기회니까요.'
[응?]
[뭐가 마지막임?]
'선배님들과 함께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신우가 걸음을 옮겼다.
'만약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하게 될 게 뻔하니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은인들이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 나누..
[새끼 철들었네.]
[크으! 이런 게 제자 키우는 맛이지.
감격한 레전드들의 채팅이 올라가고 있을 때,
[오글거리누.]
[내 손발~~!!
산통을 깨는 이들도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반응이 재밌는 채팅을 보며 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걸음을 옮겼다.
월드시리즈 6차전.
어쩌면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었다.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6차전도 마지막에 이르렀다.
[양키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월드시리즈 6차전도 이제 마지막 순간까지 왔습니다! 9회말!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현재까지 스코어는 4 대 1!! 갤럭시가 앞서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정신우 선수를 선발로 출전시킨 제이비어 감독의 한 수가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3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으로 오늘 경기 MVP 활약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5차전에서는 퍼펙트게임, 6차전에서는 멀티히트를 펼치면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어요!]
오늘 경기 선발로 출전한 신우는 8회 초 대주자로 교체됐다.
그렇기에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은 건 3개의 아웃카운트'
길었던 월드시리즈도 이제 끝을 보이고 있었다. 3점의 리드, 3개의 아웃카운트, 그리고 마운드에는 포스트시즌 7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86을 기록중인 마무리 크리스 베넷이었다.
유망주와 현금을 주고 영입한 크리스 베넷. 갤럭시의 기대대로 그는 훌륭하게 뒷문을 잠그고 있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단 2실점만 할 정도로 특급 마무리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피홈런은 제로로 완벽 그 자체였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신우는 두 손을 모으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긴장되누]
아씨…… 그런데 꼭 이럴 때 죽쑤던데.]
[지
[흔한 클리셰지]
[거기다 양키스 타순도 좋.]
결정적인 순간,
양키스의 타순은 9번부터 시작됐다.
양키스는 당연하게도 대타카드를 사용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해야 했다.
양키스는 결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이 어째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팀인지 알려주듯 저력을 발휘했다.
딱!!
[3구를 강타!!]
타자가 때린 타구가 3루 방향으로 날아갔다. 삼루수가 빠르게 자세를 잡는 순간. 공이 떨어져서 원바운드가 됐다. 거기까지 예상을 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변수는 예상하지 못했다. 떡!!
[아~!! 베이스를 맞고 공이 됩니다!
바운드가 된 공이 하필이면 베이스를 때렸다. 거기다 튕겨 나간 곳이 파울라인 밖이었다. 설상가상 삼루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공을 쫓는 것도 늦었다.
결국 그가 공을 잡았을 때는 주자가 2루까지 들어간 상태였다.
[운이 따르는 양키스, 반면에 갤럭시 입장에선 운이 나빴습니다.]
[이런 순간에 하필이면 베이스를 맞고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네요. 하지만 이건 수비의 실수도 아니고 예상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투수가 흔들릴 상황이 아니에요.]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은 투수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크리스 베넷은 좋은 클로저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쟤 월시 경험 없지 않냐?']
[흔들릴 수도 있겠네.]
[20]
[이런 경기에선 한 번 흔들리면 답 없는데.. 레전드들이 우려를 쏟아냈다.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보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위험하고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딱-!!
[2구를 강타!! 유격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
연속안타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카스의 수비가 빨랐다는 점이다.
대시해서 공을 잡아 곧장 홈으로 던지는 바람에 2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3루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베넷이 흔들리네요.]
가장 중요한 순간,
흔들리면 안 되는 선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제이비어 감독이 타임을 걸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제이비어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교체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현재 갤럭시 불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크리스 베넷이니까요. 진정을 시켜주고 내려갈 듯합니다.]
이진철의 해설은 정확했다.
제이비어가 크리스와 및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플레이볼!!"
[경기 재개됩니다. 과연 감독의 마운드 방문이 효과가 있었을지. 사인을 교환한 크리스 베넷 투수, 세트포지션에서 공 던집니다!]
빼애애액~!!
뼈어억!!
"스트라이크!!"
[96마일의 빠른 공이 존을 통과합니다!]
[제이비어 감독의 방문이 효과가 있는 거 같네요.]
크리스는 안정을 찾았다.
자신의 공을 뿌리며 카운트를 잡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신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안심하긴 이름.]
[양키스 애들도 마지막이니 집중력을 발휘할 거임.]
[결국 진검승부란 이야기지.
[누구 집중력이 더 강할 것인가?]
레전드들의 말에 신우는 다시 긴장했다. 그리고 말없이 경기를 지켜봤다. 젠장…… 내가 뛰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ㅋㅋㅋ 우리 마음 알겠음?]
[레알 보고만 있으면 답답함.]
[너 뛸 때 우리 심정이 딱 지금 그 심정임.]
정말 이렇게 마음을 졸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신우는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자신들의 우승으로 말이다. 하지만 신은 냉정했다.
"볼! 베이스 온 볼!!"
아~! 공이 빠집니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볼넷으로 타자를 내보내는 크리스 베넷! 무사 만루의 위기를 자조합니다!!]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결국 만루가 되고 마네요.]
[이제 홈런 한 방이면 역전 끝내기가 가능한 상황!!]
최악이었다.
신우는 양키스의 대기타석에서 서서히 걸어오는 한 선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타석에는 애런 저지가 들어섭니다!]
갤럭시에게는 최악의 상황.
양키스 최고의 선수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우와아아아아~!!"
"저지-!!"
"날려 버려!!"
양키스타디움이 들썩였다.
그제야 갤럭시 선수들은 이곳이 양키스의 홈이란 걸 깨달았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그리고 최악의 결과가 곧 눈앞에 펼쳐졌다. 빼애애액~!!
[공 던졌습니다!!]
크리스 베넷이 뿌린 공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애런 저지는 그 공을 보고 초구부터 배트를 돌렸다.
후웅-!!
호쾌한 스윙은 단숨에 공을 낚아챘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타구와 함께 애런 저지는 배트를 던지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아아~!! 이건……!! 큽니다!!]]
애지로운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화면에 담장 밖으로 사라지는 타구가 보였다.
[념어갔습니다!! 9회 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작렬하는 애런 저지!!!
월드시리즈 승부가 자전으로 넘어가는 그랜드슬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