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68화
8회, 신우의 타석이 돌아왔다.
원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신우가 평소처럼 타격 루턴을 밟아가려는 찰나.
"시누, 고의사구야."
구심의 말에 신우의 시선이 양키스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리처드 감독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신우와 눈을 마주쳤다.
'이 짓을 계속할 생각인가 보군.'
[그렇겠지.]
[한 두 번 하고 끝낼 생각이었으면 진즉 멈췄겠지.]
[아놔,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런 야구를 하는 날이 다 있다니.]
[살아 있는 건 아니지 ㅋㅋ 이미 죽었으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신우는 보호장비를 벗고 1루로 걸어나갔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우리는 야구를 보러 왔다!!"
"양키스 너희들이 야구팀이냐?!"
"제대로 된 야구를 해라!!"
올림픽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쏟아냈다.
[팬들이 분노해서 야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의사구 역시 전략 중 하나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매 타석 나온다면 그건 전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팬들은 프로선수들의 승부를 보러 오는 것이지, 이런 모습을 보러 오는 게 아닐 테니까요.]
양키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양키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 작전은 프런트만이 아니라 선수단 역시 동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정면승부를 할 이유는 없지.'
'어차피 시누를 제외하고는 우리 수준의 레벨이 아니야.'
'녀석만 막으면 된다.
양키스의 모든 선수들이 신우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우는 그것을 느꼈다.
'이 방법을 끝까지 갈 생각인가 보네.'
처음에는 3차전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차전이 끝나가는 지금도 그들은 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다.
말인즉슨 월드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현재의 작전을 이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건 답이 없네.]
[그러게.
[상대가 저렇게 치사하게 나오누.]
[우리 시누 이대로 월드시리즈에서 떨어지겠.]
레전드들의 반응 역시 부정적이었다. 그들 역시 신우가 팀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대로 경기가 이어지면 패배는 기정사실과 같았다.
하지만 신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뭐, 상대가 계속 이대로 나온다면 저도 생각을 바꿔야겠네요.'
18?)
[뭔가 생각이 있는 거임?]
'선배님들이 가르쳐주셨잖아요.'
탁탁 !!
스파이크로 가볍게 땅을 때리며 흙을 골랐다. 그리고 2루를 힐끔 바라봤다.
2루수와 유격수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두수를 확인했다.
이쪽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크게 견제를 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우는 올 시즌 도루가 5개도 되지 않았다. 거기다 투웨이 플레이어로서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이미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무리해서 도루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 견제할 ……!'
그때였다.
!!
투수가 축발을 뒤로 빼더니 그대로 공을 던졌다. 무게중심이 미세하게 2루로 쏠렸던 신우지만, 재빨리 베이스로 귀루할 수 있었다.
퍽!!
"세이프!!"
[견제구가 나왔지만, 정신우 선수가 여유롭게 귀루합니다.]
신우가 급했던 건 속마음이다.
귀루하는 모습에선 평소와 같이 여유로웠다. 그 모습은 팬들은 물론 중계진 그리고 양키스 선수들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뛰려고 했던 거 같은데,'
'평소보다 리드가 길지 않았나?"
견제구를 던진 이유는 신우의 리드가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우가 여유롭게 귀루하는 모습을 보고는 확신은 다시 물음표가 됐다.
그리고 그것은 양키스 배터리 그리고 내야수들에게 미세한 빈틈을 만들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이번 귀루로 녀석들에게 빈틈을 만들었어."
[정확히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만든거지.]
[그것만으로도 베스트임, 도루는 찰나의 순간을맺는 거니까.]
타이콥과 맥스 캐리의 조언이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대도들이었다. 신우는 그들의 경험도 손에 넣었었기에 주루플레이에서도 한층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네가 귀루할 때 헤드 퍼스트로 들어왔다면 의심이 확신이 됐을 테지.]
'그래서 일부러 발로 들어왔죠.
발로 들어오느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오느냐.
일반인들에게는 별거 아닌 듯한 플레이 하나. 하지만 프로선수들에게는 많은 정보를 주는 플레이였다.
하물며 여기는 메이저리그, 그것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월드시리즈다.
만약 신우가 헤드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왔다민 양키스는 더 경계했을 거다.
그러나 여유롭게 들어오면서 경계심은 사그라들었다.
'나에게는 베스트지.'
타자는 타격으로 팀에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타자의 역할이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었다. 출루에 성공하면 주자가 되어 그만의 역할을 해야 그리고 신우는 그 방면으로도 스페셜리스트였다. 정확히는 레전드 대도들의 경험과 스킬을 직접 경험했었다.
그렇기에 세간에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 주루플레이에 능숙했다.
'그동안에는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제대로뛰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료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자신이 계속 묶여 있다면 팀은 이대로 시리즈 탈락이란 결과를 안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주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상대가 계속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에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고의사구 역시 출루를 하는 것이니까. 무의미하게 서있다가 아웃이 되는 것보단 일을 해야 했다.
'일단 투수의 정신을 빼놓을까?'
신우의 본직은 투수다.
그렇기에 투수들이 어떤 상황을 가장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짜증이 나는 건 3루 주자가 공을 던지는 순간에 뛰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거지."
우투수인 신우는 언제나 3루를 바라본다. 삼루수가 홈으로 뛰는 동작을 하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홈스틸을 노리는 게 아닌 이상 될 가능성은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동작을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투수는 공을 던지는 동작인 딜리버리를 하면서 시선은 고정된다.
하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었다.
집중력이 높은 상태에서는 주위의 소음이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인이상 항상 높은 집중력을 유지할 순 없었다.
특히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주자가 스타트를 끊는 소리가 들리면 순간적이나마 신경이 분산된다.
자신이 당할 때 가장 싫은 것.
그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부터 지어졌다.
그런 신우의 모습을 보고 타이콥의 채팅이 올라갔다.
[이러니 요즘 악마 애들이 실직을 하지. 쯧쯧!]
[요즘 지옥에 일자리 없어서 악마들이 저승 와서 알바 뛰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레전드들의 성토를 한 귀로 흘리며 신우가 리드폭을 늘렸다.
퍼어억~!!
다시 한 번 볼이 들어갑니다. 쓰리볼 원스트라이크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 토마스 에드윈!! 양키스에서 토마스 선수와의 승부를 어립게 가져가네요.]
[승부를 어렵게 가져간다기보다는 주자를 꽤 신경 쓰는 눈치입니다.]
[정신우 선수를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정신우 선수가 투수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잘 보시면 투수의 딜리버리가 시작되는 순간, 스타트를 끊고 있어요.]
보통 메이저리그 중계는 현지방송국의 중계화면을 받아와서 해설을 한다.
그렇기에 해설진들은 디테일한 설명이 어렵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월드시리즈인 만큼 해설진들이 직접 올림픽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덕분에 상황을 직접 보고 해설할 수 있었다.
[아, 지금 정신우 선수의 주루플레이가 나오네요.]
때마침 현지방송국에서도 관련 영상을 내놓았다. 화면이 분할되어 투수가 딜리버리를 하는 동작과 신우가 주루플레이를 하는 화면이 동시에 나왔다.
[투수가 슬라이드 스텝을 밟으며 스트라이드를 하는 순간까지는 정신우 선수도 큰 움직임이 없네요.]
[스트라이드가 되는 순간을 잘 보시면 됩니다.]
투수가 스트라이드를 하고 상체를 회전하는 순간이었다.
신우가 2루 방향으로 몸을 돌리더니 스타트를 끊었다. 단순히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닌 정말 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장면입니다. 투수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귀는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타트를 끊으니 미세하게나마 투수의 조준이 빗나가는 기 같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그런 작은 행동에 반응을 할까요?]
[아주 작은 자이입니다. 하지만 그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상대하는 선수 역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죠. 그 미세한 차이가 지금의 승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겁니다.]
아주 작은 차이.
하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컸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아낸 토마스는 자신감이 붙었다.
'녀석의 공이 이전보다는 덜 날카롭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신경이 분산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신우에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년 고의사구로 나가도 여전하네."
자동 고의사구 작전,
그 작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신우가 얼마나 짜증이 날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작전으로 인해 팀이 지고 있으니 팀을 이끄는 신우 입장에서는 답답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우는 그것에 화만 내고 있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해야 될 역할을 찾아냈다.
'나 역시 지금의 내가 해야 될 것으로 해야 한다.'
토마스는 그렇게 판단을 하고 타석에 섰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은 토마스 선수, 과연 어떤 타격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토마스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투수는 좀처럼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세이프!!"
[1루로 날아드는 견제구! 하지만 정신우 선수는 여유롭게 귀루합니다.]
[투수가 주자에게 신경을 더 쓰는 거 같네요.]
신우는 여유로웠다.
정말 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안전하게 귀루했다. 하지만 두수는 좀처럼 신우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떡!!
"세이프!!"
[또 견제구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발부터 들어오는 정신우 선수!]
"우우우우우~!!"
"이제는 견제구냐?!!"
겁쟁이 새끼들!! 제대로 된 야구도 못 하냐?!"
[엄청난 야유가 쏟아집니다!!
[갤럭시 팬들은 정신우 선수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견제구까지 던지니 화가 폭발한 거죠.]
팬들의 야유를 받자 투수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정신상태로 던지는 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쐐애애애액-!
[드디어 공 던졌습니다!!]
두 번의 견제구 끝에 던진 5구.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신우가 스타트를 끊었다. 완벽한 타이밍.
그리고 이번에는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정말 도루를 하겠다는 듯 2루로 내달렸다. 동시에 토마스의 배트도 돌아갔다. 후웅!!
마치 런 앤드 히트와 같은 모습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작전을 낸 적이 없는 제이비어는 주먹을 불끈 쥐고 토마스의 배트를 바라봤다.
맞아라!
제이비어의 염원이 통한 걸까?
따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빠르게 내야를 벗어났다.
[때렸습니다! 내야를 벗어난 타구!! 1루 라인 안쪽에 떨어지고 밖으로 흘러나갑니다!!]
완벽한 코스로 향하는 타구였다.
타구의 방향을 확인한 신우는 속도를 더욱 올렸다. 스타트가 워낙 빨랐기에 순식간에 2루를 지나 3루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3루까지 내달리는 정신우 선수! 그 사이 우익수가 공을 잡습니다.]
우익수 애런 저지가 공을 잡는 순간, 신우는 3루에 들어가고 있었다.
[1, 3루의 찬스를…!!
누가 보더라도 신우가 멈춰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캐스터도 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멘트를 날리려는 순간.
타닥~!!
신우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홈으로 내달렸다.
[아~!! 정신우 선수 홈으로 쇄도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하지만 애런 저지는 베테랑이었다.
침착하게 원 스텝을 밟으며 그대로 홈으로 송구했다. 그 순간, 좌아앗!!
[급하게 멈추는 정신우 선수!! 다시 3루로 돌아갑니다!! 그 사이 공은 홈으로……! 1루 주자 토마스 선수는 2루까지 들어갑니다!!]
3루 베이스로 돌아간 신우가 여유롭게 보호장구를 벗었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비추자 기다렸다는 듯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우와아아~!!"
"시누 멋지다!!"
"완전히 양키스 수비들을 가지고 놀았네!!"
"크으~!! 순식간에 2, 3루의 찬스를 만들다니! 시누 멋지다!!"
"우! 우~! 우~! 우…!!"
올림픽 스타디움에 신우 콜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