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60화
메이저리그는 두 개의 리그로 나뉘어 치러진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두 리그에서 지러지는 페넌트레이스.
리그의 챔피언이 되기 위해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이 맞붙는 대결.
그것이 바로 챔피언십 시리즈였다.
[장단 첫해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낸 몬트리올 갤럭시의 공격으로 시작합니다!]
어웨이인 갤럭시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돌격대장은 앤더슨이 자리했다.
[오늘 타순은 앤더슨 정신우 토마스-루카스로 이어지는 타선이군요.]
[갤럭시의 1~4번 타자들은 타순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죠.]
[정신우 선수를 2번에 기용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거라고 해석해야겠죠?]
[그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해설의판단은 정확했다.
'우리 타선의 핵심은 신우다. 녀석에게 많은 기회를 몰아줘야 해.'
두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는 두 웨이 플레이어. 그런데도 신우는 완벽 그 자체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벤치에서도 많은 기대를 했다.
이런 기대들이 부담감이 될 수도 있지만, 대기타석의 신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말 없어졌네."
레전드들의 훈수가 없다.
그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채팅은 사라졌다. 간혹 버릇처럼 허공을 응시할 때면 그들이 사라진 것이 실감 나기도 했다.
'타자는 타석에서 멍하니 있어선 안 돼. 언제든지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1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사이에 레전드들은 쉼 없이 신우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 조언들은 때가 되고 살이 되어 신우에게 각인이 되었다.
빼애애액~!!
투수가 초구를 던졌다.
신우는 다리를 내디디며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부웅~!!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
"타자가 몸짝도 하지 못한다!!"
단숨에 돌려세워 버려!!"
구심의 손이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카디널스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앤더슨은 타석에서 한 발을 빼고 장갑을 고쳐 착용했다.
'주위의 풍경이 더 눈에 들어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레전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경기 외적인 것에는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채팅이 없으므로 인해 팬들의 반응, 주위의 이야기, 그리고 투수나 동료들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전함도 있지만….'
레전드들이 없다는 건 신우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새로운 환경을 느끼면서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
"때렸다!!"
"빠졌다! 달려! 달려!"
원바운드로 내야를 빠져나간 타구.
봄을 날린 유격수를 피할 정도로 빨랐다. 안타를 기록한 앤더슨이 1루에서 주먹을 들어 더그아웃을 가리켰다.
[앤더슨이 1회부터 안타를 기록합니다.]
[앤더슨이 좋은 타자라는 건 바로 이런 겁니다. 타순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스윙에 변화를 줍니다. 이번에도 간결하고 짧은 스윙으로 투수의 공을 결대로 밀어 때렸어요.]
[컨택트 위주의 타격이었다. 이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욕심을 부릴 상황과 아닌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선수죠.]
[앤더슨의 안타로 1회부터 정신우 선수가 기회를 잡습니다.]
신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시누, 끈 풀렸다."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포수의 견제.
이전에는 이러한 견제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전드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위의 소리에 무감각해지게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귀에 들리는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스타트가 너무 유치한 거 아니냐?"
"뭐라고?"
"애들도 아니고, 그런 거로 견제하다니 말이야."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경고야."
구심의 제지에 포수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신우는 문득 자신의 말투가 스판을 담은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 양반한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흔히 타격을 하면서 투수와 타자가 신경전을 벌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 아니라 투수와 포수가 편을 먹고 타자와 싸우는 구도였다.
포수는 끊임없이 타자에게 말을 걸어 타자의 신경을 분산시키려고 한다.
거기에 미트로 그라운드를 두드리거나 공이 오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여 신경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면 포수가 있는 곳을 보지 못한다.
시각적으로 봉쇄가 되면 자연스레 청각이 예민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청각에 의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런 작은 포수들의 움직임에도 타자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었다.
물론 신우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수십 개의 채팅이 한 번에 올라가는데, 이런 자잘한 견제 따위야 우습지.
레전드들의 채팅창이 항시 겨져 있었다. 말인즉슨 투구를 할 때도 타격을 할 때도 항상 그들의 재팅을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오는데 어떻게 투구에 집중할 수 있을까?
적응되지 않을 것만 같던 일에 적용하는데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에 익숙해졌고 결국 신우는 웬만한 견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가질 수 있게 그러한 정신력은 마치 철로 만들어진 성벽과 같았다. 뼈억~!!
[초구 볼입니다. 유인하는 브레이킹볼이었지만, 정신우 선수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포수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좀처럼 도발이 동하지 않는군. 하지만 네 신경을 분산하는 방법이 도발만 있는 건 아니지.''
카디널스의 포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가지 방법이 실패하면 다음 방법을 쓰면 그만이었다.
사인교환을 하고 바깥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안쪽의 흙을 만졌다. 좌앗!
작은 소리지만, 타자와 포수의 거리는 그 소리를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2구 역시 볼입니다.]
이번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자식이…!"
포수는 화가 났다.
하지만 더 이상 써먹을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미 볼카운트가 몰린 상황이다. 여기에서 다시 유인구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정면승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우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정면승부밖에 답은 없다. 그리고 포수는 다시 한번 내 주의를 끌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하겠지."
샤샥~!!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를 통해 포수가 발을 끄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리만 들으면 몸쪽으로 붙는 거 같지만……"
신우는 요기 베라의 경험을 떠올렸다.
'소리가 다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요기 베라.
그는 타자와의 심리 싸움에대해서도 해박했다. 그리고 여러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지금 포수가 들려주는 소리는 무게이동이 아닌 그저 발만 그라운드를 훔는 소리였다.
'굳이 이런 소리를 들려준 것은……!'
결정을 내린 순간.
투수가 세트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으며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동시에 신우의 스윙이 시작됐다.
발을 오픈 스탠스로 열면서 몸쪽의 각도를 더 벌렸다. 그리고 팔을 배에 붙이며 그대로 허리를 돌렸다.
'몸쪽이겠지!'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결과는,
[때렸습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신우는 그 타구를 바라보면서 배트를 그대로 놓았다. 휘리릭 !!
화려한 회전과 함께 날아가는 배트에 관중들이 일제히 탄성을 자아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배트 플립과 함께 타구가 담장 밖에 떨어집니다!! 투런 홈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정신우 선수!! 팀의 선취점을 기록합니다!]
레전드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여전히 남아 있어."
신우는 그라운드를 돌며 생각했다.
신우의 선취 투런 홈런으로 갤럭시의 기세는 더욱 올랐다.
물론 카디널스 역시 반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마운드에는 신우가 있었다.
뼈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 삼진!! 오늘 경기 4번째 삼구 삼진으로 6회를 마무리하는 정신우 선수! 탈삼진 11개째를 기록합니다!]
[오늘도 정신우 선수의 피칭은 환상적입니다!]
6이닝 무실점 11탈삼진.
안타 1개를 허용하긴 했지만, 점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타석에서는 1개의 홈런을 포함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타선까지 이끌고 있었다.
[평소의 정신우 선수도 괴물이지만, 오늘은 더욱 괴물 같은 모습을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그가 더욱 무서운 건 빈틈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찾아오는 압박감은 스크린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더더욱 선명하게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젠장, 만만치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공 하나하나가 전력이야. 그런데도 힘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
카디널스 타자들 역시 신우가 어떤 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상대해 보기도 했고 그를 분석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 그를 공략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 녀석의 공을 때릴 수 있을까?"
신우란 거대한 벽 앞에서 말이다.
어웨이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갤럭시는 승리를 올렸다.
하지만 언론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갤럭시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1승을 먼저 거두었다. 갤럭시의 선발투수 정신우는 7이닝 무실점 피칭과 함께 3타수 2안타 1홈런이란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챔피언십 시리즈라는 큰 무대, 하지만 정신우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에이스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며 팀에게 승리를 안겼다.]
이 세상에 가장 확실한 건 죽음, 세금 그리고 신우의
승리일 것이다.]
찬사가 쏟아지는 경기내용,
그리고 이런 승리는 갤럭시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딱 !!
[2구를 강타!! 그리고 앤더슨이 배트를 던졌습니다!!]
2차전의 히어로는 앤더슨이었다.
신우가 엔트리에서 빠진 상황에서도 앤더슨이 타선을 이끌었다.
2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그가 세 번째 타석에서 대형사고를 터트렸다.
[그리고 타구는……!!]
호쾌한 배트 플립과 함께 1루로 걸어가는 앤더슨의 시선이 담장밖에 떨어지는 타구를 바라봤다.
[담장 밖에 떨어집니다! 그랜드슬램!! 만루에서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는 앤더슨!!!]
3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
앤더슨은 그랜드슬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어웨이에서 2승을 올린 갤럭시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홈인 몬트리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갤럭시의 2연승이었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하나둘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갤럭시가 4연승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챔피언십 시리즈는 7전 4선승제로 이루어져 있다. 1차전과 2차전이 카디널스의 홈구장에서 열렸다면 3~4차전은 갤럭시의 홈구장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필쳐진다.
만약 여기에서 갤럭시가 2연승을 거둔다면 어웨이인 세인트루이스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바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 짓는 것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이러한 가능성이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도 몬트리올 시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세인트루이스까지 갈 이유가 없잖아! 여기에서 끝내버려!"
"당연하지! 몬트리올에서 월드시리즈 진출을확정 짓자고!"
"우리의 응원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주자!"
"카디널스 녀석들이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없게 만들자고!"
단결한 팬들이 일제히 경기장으로 몰려갔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경기장 밖 주자장에서 단체응원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선수단의 기세를 한층 끌어올려 주었다.
"여기서 끝내자!"
"월드시리즈 티켓은 우리 거야!"
"카디널스 녀석들을 집으로 보내주자고!"
이러한 분위기는 신우의 기세 역시 올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우의 기세를 올려주는 게 또 있었다.
[ㅗㅜㅑ. 며칠 안 본 사이에 분위기 좋아졌네.]
[이러다가 스윕으로 월드시리즈 가는 거 아님?]
[ㅋㅋㅋ 담당자 만나서 한바탕 하고 온 보람이 있네.]
그건 바로 다시 채팅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