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42화
[정신우 선수가 20승 사냥을 위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오늘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갤럭시의 지구우승 카운트를 줄이는 것, 다른 하나는 바로 정신우 선수의 20승이죠.]
[2년 연속 20승에 도전하는 정신우 선수! 일정상 한 번 혹은 두 번의 선발등판이 더 가능하지만, 여기에서 결정을 지었으면 좋겠네요.]
신우의 팬들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갤럭시의 포스트시즌 진출.
그리고 신우의 20승이었다.
'오늘 하나의 관문을 넘는다.
[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함.]
[어떤 기록이건 기회 놓치면 꼬이기 마련이지.]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필요가 있었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쉰 신우가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토마스를 바라봤다.
[정신우 선수와 토마스 배터리가 사인을 교환합니다.]
사인교환은 길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경기에 나서면서 초구에 무엇을 던질지 의논했다.
구종은 이미 정했고 남은 건 코스였다.
'홈플레이트에 붙은 데다가 전진해서 타격을 준비하는 걸 보니, 공격적으로 나올 확률이 높겠군."
타자가 배터박스에 서는 것만으로도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홈플레이트 가까이에 섰다는 건 몸쪽의 존을 줄이겠다는 소리다.
거기에 배터박스의 앞에 섰다는 건 변화구를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우의 변화구는 변화가 늦게 일어난다.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말인즉슨, 배터박스의 앞에 서면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공략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지.'
토마스가 미트를 내밀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캐처박스에서 보고 있노라면 신우의 등 번호가 보일 정도로 그가 몸을 비틀었다.
그 비틀림이 풀리면서 신우가 공을 뿌렸다. 왜애애애액~!!
배터박스의 앞에 선 것은 정답 중 하나다. 변화구만을 공략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저것의 가장 큰 단점은 명확했다.
후웅-!!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존에 들어옵니다! 타자의 배트가 채 돌기도 전에 미트에 먼저 공이 꽂힙니다!!]
바로 패스트볼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운드와 홈플레이트의 거리는 18.44m. 100마일의 공이 이 거리를 지나 미트에 도착하는 시간은 0.35초에 불과하다.
거리가 줄어들면 당연히 도달하는 시간은 더 빨라진다.
타자가 배터박스의 앞에 서면 이 거리는 당연히 줄어든다.
말인즉슨,
뻐어억!!
"스트라이크!!"
'시누의 광속구에 반응할 시간이 더 없어진다는 소리지.'
토마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렇기에 신우의 공을 공략하기 어렵다.
'녀석을 상대할 때는 죽을 맛이었지.'
과거의 일을 떠올리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뭐, 당분간은 붙을 일은 없으니까.'
녀석과 같은 팀이 되었다는 게 기쁜 토마스였다.
[경이롭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는 고조되어 있었다.
평소 오버스러운 중계를 펼쳐 호불호가 갈리는 캐스터였다.
그리고 오늘 역시 그는 특유의 오버스러운 말투로 중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정신우 선수의 한계는 어디일까요?!]
하지만 오늘은 시청자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악플이 줄을 이었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댓글창에는 그의 중계에 동의하는 내용밖에 없었다.
-레알 시누 미쳤다.
-내가 이 인간 중계에 동의하는 날이 올 줄이야.
-5이닝 무실점 13탈삼진 실화냐??
-이러다가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 가는 거 아님?
-퍼펙트 깨진 게 아깝네.
이미 올 시즌 2번이나 해서 아깝지 않음.
5이닝 무실점 1피안타 13K.
오늘 신우의 기록이었다.
1이닝을 끝내는데 필요한 아웃카운트는 단 3개. 5이닝이면 15개의 아웃카운트.
[지금까지 잡은 15개의 아웃카운트!! 그중에서 13개를 삼진으로 처리한 정신우 선수의 괴력!! 이건 한 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메이저리그 역대 한 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은 신우가 보유하고 있었다.
[정신우 선수는 25시즌 18번째 선발등판에서 9이닝 21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같은 페이스라면 이 기록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투구수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오늘 공이 정말 좋습니다. 타자들이 건드리질 못하고 있어요.]
9이닝을 끝내는데 필요한 아웃카운트는 모두 27개. 그중에서 21개를 탈삼진만으로 잡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우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더그아웃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젠장. 퍼펙트게임도 아닌데 이래야 되나?"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지.
괜히 떠들다가 집중력이 깨지면 안 되지."
동료들은 제각각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약간의 불만, 누군가는 지금 이 상황에 초연함을 보였다. 운동선수이다 보니 다들 혈기왕성하다. 거기에 갤럭시는 선수들의 나이가 어리다.
당연하게도 다른 팀보다 더욱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조용히 있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동료를 위해서니 그들은 죽을 듯이 조용히 있었다. 신우의 집중력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앞으로 4이닝.'
신우는 전광판을 보며 생각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이제 12개.
이 중에서 7개 이상의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처리한다면 역사를 새로 쓰인다.
'나쁘지 않을 거 같죠?'
[0]
[2년 연속 20승에 이울리는 기록이지.]
[이왕 노릴 거면 그 이상을 노리자.]
마지막 채팅은 매튜슨의 것이었다. 7개가 아닌 그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하자는 말. 신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6회 조.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사인을 교환하고 와인드업을 했다.
쐐애애액!!
[초구 던졌습니다!]
몸쪽을 파고드는 공에 타자가 오픈 스탠스를 취하면서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공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원바운드 되는 커브에 타자의 배트가 맥없이 돌아갑니다!]
[원바운드가 될 정도로 떨어지는 공이었지만, 타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정말이었다.
분명 홈플레이트 앞에까지 올 때만 하더라도 공은 패스트볼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미치겠군.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아.
두 번째 타석이다.
거기다 신우와 상대하는 건 어느덧 6번째다. 즉, 신우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쓰리핑거 커브를 자주 봤다는 소리다.
하나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커브와 비슷하면 익숙해지기라도 하지. 이건……'
신우의 쓰리핑거 커브는 애초에 커브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보통 커브와 패스트볼을 판별하는 방법은 공의 회전과 변화다.
큰 폭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패스트볼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커브가 익숙하지 않은 투수라면 놓는 순간 위로 솟구치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런데 신우의 커브는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 뚝 떨어진다.
마치 스플리터나 포크볼처럼 말이다.
그러니 타자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거기다 신우의 커브가 위력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정신우 선수, 2구 던집니다!]
빼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몸쪽 높은 코스를 찔러왔다.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였다.
이번에도 오픈 스탠스를 취하면서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가른 것은 허공이었다. 부앙~!!
뻐억!!
"스트라이크! !!"
타자의 얼굴에 황당함이 나타났다.
분명 때렸다고 생각했는데, 스윙의 궤적과 완전히 어긋난 공이 그대로 배트의 위를 지나갔다.
결국, 그는 궁금함을 이겨내기 위해 구심에게 물었다.
"존에 들어왔어요?"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 그냥 네가 못 친 거지."
신경을 거슬리는 말은 토마스에게서 나왔다. 자신을 도발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무시하고, 구심의 대답을 기다렸다.
"볼이었어."
"볼이라고요?"
황당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토마스는 속으로 웃었다.
'시누의 패스트볼은 다른 투수들보다 덜 떨어지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저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역시 커브-패스트볼 로케이션이 잘 통하네.'
사람의 눈은 횡적인 변화는 잘 감지해 낸다. 하지만 종적인 변화에는 둔감하다. 떨어지는 변화구를 본 뒤에 덜 떨어지는 패스트볼을 던진다면?
이미 떨어지는 것을 한 번 봤기에 타자의 눈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즉, 덜 떨어지는 패스트볼을 감지해내는 게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뭐, 이것도 어디까지나 시누니까 가능한 조합이지. 토마스는 다른 투수들과 호흡을 자주 맞춰왔다. 하지만 이런 로케이션이 가능한 투수는 없었다. 오직 시누만이 가능한 볼 로케이션이었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해볼까."
토마스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을 본 신우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윽시 토마스 쟤는 조합을 잘한다니까.]
[정석적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베스트 조합이지.]
[삼구삼진 가즈아~!]
채팅창이 삼구삼진 콜로 시끄러워졌다. 신우는거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피처 플레이트를 발았다.
[투스트라이크의 유리한 볼카운트! 여기에서 어떤 공을 던질까요?]
[이쯤에서 유인구를 하나쯤 던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정석이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두수들의 경우입니다.]
유인구를 던지는 건 투수에게 당연한 선택지였다. 존 밖으로 던지면서 헛스윙을 유도한다. 이 얼마나 심플한 선택지인가?
하지만 타자의 머리는 복잡했다.
'다른 투수라면 여기에서 유인구를 던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상대는 시누야.'
신우는 공격적인 피칭의 대명사다.
투스트라이크를 잡아서 유인구를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트라이크를 던져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올린다.
그건 메이저리그의 상식과도 같았다.
'이번에도 승부를 걸어올 거냐?"
승부를 걸어올 것인가?
아니면 유인구를 던져 자신의 헛스윙을 유도할 것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
보고 판단한다는 선택지는 머리에 없었다. 신우의 공을 보고 판단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엉거주춤한 스윙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승부를 건다.
타자가 택한 것은 데이터였다.
지금까지 신우가 보여주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결론을 내렸다.
그사이 준비를 끝낸 신우가 와인드업을 했다.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전신을 비틀어 힘을 모았다가 비틀림을 풀면서 다리를 내디뎠다.
콰직!!
스트라이트와 함께 스파이크의 정이 마운드에 박혔다.
단단하게 고정된 하체를 돌리면서 동시에 허리를 회전시켰다.
신우는 힘의 이동을 느끼면서 그것을 오른손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그 힘을 한순간에 폭발시켰다.
쐐애애애액-!
[던졌습니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다시 한번 몸쪽.
걸렸어!!"
타자는 그것을 놓지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몸쪽에 세 번이나 들어오는 공을 놓칠 정도로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오픈 스탠스를 취하면서 사정없이 배트를 돌리는 순간,
휘릭!!
공의 궤적이 변했다.
마치 프리스비처럼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타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급히 상체를 내밀었다.
하지만 공이 달아나는 각이 더 컸다. 어떻게든 그것을 쫓아가기 위해 엉덩이를 쭉 빼고 배트를 내밀었다.
덕분에 추한 스윙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파울을 만들어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휘릭!
공이 더욱 도망치면서 결국 배트가 쫓아갈 수없는 위치까지 날아갔다.
부웅~!!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공은 그대로 미트로 들어갔다.
타자의 시선이 토마스의 미트로 향했다. 존을 완벽하게 벗어난 곳에 위치한 미트의 위치를 본 타자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웃!!"
[삼구삼진입니다!! 타자가 어떻게든 공을 커트해 내려고 했지만, 배트는 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각도를 보여준 슬라이더였습니다! 타자의
그들다가 바깥쪽 존 밖으로 휘어 나가는 말도
안 되는 궤적을 선보였어요!]
[한 마디로 어메이징 슬라이더였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슬라이더에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우~! 우~! 우~! 우~!!"
한동안 그의 챈트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