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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235화 (235/281)

훈수로 메이저리거 235화

팀의 연패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일시적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이루수가 안정되면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란 분석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부분은 갤럭시의 질주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원맨팀의 숙명.]

[팀을 이끌 리더가 없다.]

[신생팀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창단 첫 해 월드시리즈 우승은 허황된 꿈에 불가능하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한결 같았다.

신생팀.

편견이란 이름의 벽이 갤럭시의 눈앞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슈퍼스타를 수혈했지만, 그들은 엄연히 이방인이다. 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날 선수들이다. 선두에 서서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순 없다.]

정곡을 찌르는 기사였다.

그 밑에는 이러한 문구도 있었다.

[갤럭시의 실질적인 리더는 정신우다. 하지만 그는 나서지 않는 조용한 리더다. 그런 정신우가 팀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본인이 어떤 선수인지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기사의 스크롤이 조금 더 내려갔다.

[만약 그가 실패한다면 창단 첫 해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갤럭시는 실패할 것이다. 정신우에게 갤럭시의 운명이 달렸다.]

스크롤이 멈췄다.

[장태호 기자]

이름을 확인한 신우는 화면을 껐다.

장태호는 자신을 꾸준히 취재해 온 기자다. 그리고 이번에도 팩트를 정확히 집었다.

[잘 봤네.]

[결국 네가 해야 함.)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팀의 운명이 결정된다.]

레전드들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신우는 고개를 숙인 채 호흡을 골랐다. 요가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명상이다. 명상에서 신우가 배운 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신집중이었다. 경기 전.

흥분을 가라앉히고 호흡에 집중해서 오로지 정신을 집중하는 것.

명상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클로절 시절에는 짧은 순간에 정신을 집중해서 던질 수 있었겠지만, 선발에서는 그게 어렵지.]]

[지. 그런 점에서 노아를 영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지금 채팅 처봐야 얘 눈에는 안 보임.]

스판의 말대로였다.

신우는 이미 채팅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투태세를 만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경기장으로의 입장시간이 되었을 때다.

그런 신우에게 토마스가 다가와 물었다.

"파트너, 오늘 컨디션은 어때?""

통상적인 질문.

하지만 신우의 대답은 평소와 달랐다.

"아주 좋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섬뜩함마제 느껴지는 신우의 모습에 토마스가 주춤 물러섰다.

그런 토마스를 뒤로 한 채, 신우는 클럽하우스를 나섰다.

'오늘따라 더 무서운데?'

고개를 저으며 토마스가 그의 뒤를 따랐다. 경기가 시작됐다.

갤럭시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뻥긋하지 못했다.

불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입이 근질근질하네."

심지어 투머치 토커인 미구엘이 오늘 불펜에서 한 말이라곤 인사밖에는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는 묵직했다.

원래 이럴 때야말로 자신의 페이스대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 미구엘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그는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어쨌건 팀 전체의 분위기가 다운된 상황. 화면으로 경기를 보는 해설위원들조차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었다.

[평소 파이팅이 넘쳤던 갤럭시지만, 오늘 경기는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연패의 영향이지 않나 싶네요. 젊은 팀이니 분위기를 타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다운되는 것 역시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전선수 한 명이 빠진 게 생각보다 영향이 크네요.]

[빈자리를 빠르게 메울 수 있었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데미안 선수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분위기도 반전이 된 거죠.]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비슷했다. 카메라가 바뀌면서 마운드 위를 비추었다.

[1회 초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감한 카디널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갤럭시의 마운드에는 에이스 정신우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올 시즌 이미 16승을 올린 정신우 선수, 하지만 그 뒤로 2경기 연속 승패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고군분투를 하더라도 동료들의 도움이 없으면 이길 수 없기 마련이죠.]

팬들은 일인 야구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이 매번 등장할 수는 없다. 팀의 위기 이후, 신우는 두 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홈런도 나오지 못했다.

마치 신우조차 팀의 다운된 분위기에 휩쓸린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운드 위에서 신우는 숨을 내쉬었다.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오늘 경기에서 자신이 보여줄 것은 단 하나였다.

'에이스답게 해라.'

에이스답게 던지는 것.

그것이 스스로에게 내린 임무였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게 당연했다.

몬트리올 갤럭시.

이 팀의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가 27명. 코치진 7명, 직원 백여 명, 마이너리거 수백 명. 그리고 응원하는 팬들의 숫자는 수만, 수십만에 달했다.

이들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간절히 원했다. 승리

하지만 팀은 패배를 거듭했다.

모든 이들이 실망하고 절벽의 끝에 서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수의 진.

이들의 희망을 구원해야 했다.

그것이 에이스의 숙명이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이 귀를 때렸다.

고개를 들어 마스크를 쓴 파트너를 바라봤다. 토마스 에드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트를 내밀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언제나 함께 했던 파트너.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던질 초구를.

신우는 손을 들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글러브에 손을 넣었다.

[정신우 선수! 초구에 직접 사인을 냅니다!]

[초구가 중요합니다. 스타트를 어떻게 끊냐에 따라 오늘 경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와인드업을 한 신우가 몸을 비틀었다. 하체부터 시작된 비틀림은 힘을 축적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모인 힘을 일순간 방출했다.

거구의 신우가 빠르게 회전했다.

콰직!!

왼발이 마운드를 밟는 순간, 하체가 돌아갔다. 뿌드득~!!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하체에서 올라오는 힘을 집중시켰다.

그 힘이 골반에 도달하는 순간,

휘릭!!

골반을 돌렸다.

회전력이 더해지며 힘은 더욱 강대해졌다. 그리고 그 힘은 상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모인 힘은 어깨를 지나 손끝으로 이동했다.

"흐아아아앗~!!"

신우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끌려 나온 손을 마지막으로 비틀었다.

[완벽하다.]

동시에 누군가의 채팅이 올라갔다.

집중한 신우는 볼 수 없는 극찬이었다. 왜애애애액!!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공간을 꿰뚫었다.

동시에 타자가 발을 내디였다.

콰직!!

스파이크의 징이 타석에 박히며 골반이 돌아갔다. 동시에 간결한 스윙이 이어졌다.

'네 녀석의 공이 빠른 건!'

신우의 평균구속은 90마일 후반.

웬만한 마무리보다 빠르다.

그런데 지금 날아오는 공은 그것보다 더 빨라 보였다. 무엇보다.

'미친!!

쐐애애애액~!!

자신의 머리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타자는 다급히 스윙을 멈추고 상체를 뒤로 젖혔다. 뼈이억~!!

공이 타자의 머리 위치를 지나 미트에 꽂혔다. 관중석이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적막은 전광판에 뜬 숫자에 의해 깨졌다.

[103mph)

[미, 믿을 수 없는 구속이 찍했습니다!! 103마일!! 무려 165km가 찍힙니다!!]

"우와아아아~!!"

"이게 말이 돼?!"

"초구부터 103마일이라니?!"

"미친!!"

"우~! 우~! 우~! 우~!!"

관중석이 들썩였다.

[정신우 선수의 이전 최고구속은 102마일!! 이 역시 믿을 수 없는 구속임에도 정신우 선수는 그 벽을 또 넘어섰습니다!!]

[와… 이건 정말 믿을 수 없네요. 한국인 선수가 103마일의 공을던지는 걸 제 눈으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구속.

하지만 신우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다.

'힘이 너무 들어갔어.

[정답]

[구속은 빨라졌지만, 제구가 안됐음.]

[길게 갈 생각이면 힘을 좀 빼라.]

[그런데 얘 이거 보임?]

예,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공을 받아 마운드에 올랐다. 너무 힘이 들어간 피칭.

하지만 이것으로 얻은 게 있었다.

'일단 타자 녀석이 겁을 먹은 거 같네요."

[ㅋㅋ 그건 당연하지.]

[103마일 차가 눈앞에 지나가도 겁 먹고 뒤로 물러나겠다.]

[하물며 그게 자신의 머리로 날아왔는데, 쫄지 않고 배기겠냐?

'이용해 먹을 수 있겠군요.'

[헐 ~ 사람임?]

[LL 악마인 듯]

[이러니 요즘 사탄들이 실직하는 거지.]

'선배님들도 똑같이 하실 거잖아요."

[LL 나는 안 그럼.]

[암! 나는 젠틀한 투수였음.]

'뭐, 그림스 선배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반만 믿겠습니다.

벌레이 그림스,

마지막 스핏볼러로 이름을 남긴 선수다.

스핏볼이란 공에 침을 발라 던지는 걸 말한다. 이런 형태를 취하는 건 공에 더 강한 변화를주기 위함이었다.

1920년대에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이후에도 투수들이 종종 부정투구를 사용하기도 했었다.

[크허험!]

[오늘따라 말빨에서 안 지누.]]

[기합이 빡세게 들어가 있네.]

다시 마운드에 선 신우가 상체를 숙였다.

'이겨야 하니까요."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이 에이스가 가진 책임이었다.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와인드업을 했다.

'몸쪽은 아닐 거다.'

타자는 그런 신우를 보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초구에 몸쪽으로 제구가 실패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바깥쪽의 공을 택한다. 자칫 몸으로 붙였다가 제구가 실패해서 몸에 맞는다면 답이 없는 경우가 나올 테니 말이다.

'바깥쪽을 노린다.

그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석과도 같은 판단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투수라면 그러한 판단은 정답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신우는 일반적인 투수가 아니었다.

애애애액!!

[2구 던졌습니다!!]

신우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타자는 알 수 있었다.

'미친?! 다시 몸쪽이라고?"

거기다 이번 공 역시 머리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제구에 실패한 듯,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타자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그때였다.

휘릭!!

공의 궤적이 변하더니 급격하게 안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마치 프리스비처럼 말이다.

뼈억~!!

"스트라이크!!"

[2구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습니다! 타자의 상체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강력한 브레이킹볼이 미트에 꽂힙니다!!]

[타자의 반응을 보아 완전히 따지는 공으로 판단한 거 같습니다.]

[현지 해설자는 지금 슬라이더를 보고 BK의 프리스비 슬라이더가 연상된다고 극찬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구종이네요. BK의 전성기 시절 프리스비 슬라이더는 파워히터들의 방망이를 허무하게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구종이었죠.]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구를 소개할 때 꼭 들어가는 구종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대체 정신우 선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공들을 던지네요.]

마운드에서 신우는 가볍게 공을 쥐었다.

'이긴다."

그 어느 때보다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큰 경기. 그 중압감은 곧 신우에게 극도의 집중력을 선물해주었다.

집중력은 그의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마치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날카로워진 감각은 변화구를 한층 더 날카롭게 바꿔주었다.

애애애액!!

[3구 던졌습니다!!]

후웅!!

이번에는 타자의 배트가 돌아갔다.

'이번만큼은 …!!

앞서 당한 창피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의 배트는 간결하게 돌아가며 공을 낚아재려 했다. 하지만,

휘릭!!

이번에는 공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마치 스플리터와 같은 움직임.

하지만 타자도 이번만큼은 반응했다.

'네 커브가 스플리터처럼 떨어지는 건 알고 있다고!!"

뿌득!!

그는 왼쪽 무릎을 굽히며 자세를 낮췄다. 스윙의 궤적이 밑으로 향하며 공을 때리려는 순간,

휘릭!!

'뭐?!'

공의 낙폭이 커졌다.

그 모습을 눈으로 본 타자가 무게중심을 더 낮추려는 순간, 아예 균형이 무너지면서 타석에 주저앉았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3구, 쓰리핑거 커브에 타자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타석에 주저앉아 버리네요.]

[위력적인 변화구에 타자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타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게 뭐야?'

머리에 그리는 궤적을 월등히 벗어나는 구종들. 타자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타자를 요리하는 건 신우에게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4구 던졌습니다!!]

쐐애애애액-!

떠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00마일의 공이 미트에 꽃합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등판한 에이스 정신우 투수!!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장식합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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