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33화
보라스와 헤어진 후,
신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장계약이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조건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13년이라면 몬트리올에서 쭉 지내야겠죠?"
[그래야겠지.]
[보라스 성격상 트레이드 거부권이랑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넣을 테니까.]
현재 신우는 메이저리그 3년차다.
슈퍼 2조항을 통해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지만, 서비스타임에 따라 생기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
본래라면 3년이 끝나고 연봉조정협상이 생긴다. 5년을 채우면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얻게 된다. 대망의 FA선인은 6년을 채워야 가능한다.
신우가 올 시즌을 끝내도 3년이란 시즌을 더 보내야 FA를 선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10년을 채우면 프렌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게 된다.
전 구단 트레이드 거부권 역시 이때 생기는 권리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 플레이어들은 FA단계에서 이와 같은 권리를 집어넣는다.
그래서 많은 야구 팬들은 이게 자연적으로 생기는 권리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왜? 몬트리올이 싫으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3년이 지났다. 가장 오래 있었던 팀은 메츠다. 마이너리그 기간까지 합치면 3년을 지냈으니까. 그런데 한 팀에 13년간 있는다는 사실이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있겠냐?]
[어디서 야구를 하건 같은 거다.]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니고.]
'그렇겠죠.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스도 이야기했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에이전트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계약규모가 크니 당장 계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었다.
[일단 보라스에게 맡기고 너는 본래의 일을 집중하자.]
41.
8월 첫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시즌종료까지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집중해서 경기에 임할 때였다.
계약은 그 이후였다.
신우가 활약함에 따라 그와 광고계약을 맺었던 회사들의 브랜드이미지가 대폭 상승했다.
특히 국내 브랜드들은 미국에서도 유행하며 글로벌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었다.
[정신우 효과! DS전자 미국에서 판매량 1, 300% 급증!!]
[SI은행, 정신우와 계약 이후 글로벌이미지 상승! ]
외국에서 큰 인지도가 없던 DS전자의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워낙 판매되던 총량이 적었기에 1, 300%가 상승하더라도 미비한 수치였다.
하지만 글로벌이미지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그들의 주가는 급상승할 정도로 영향을 주었다.
신우가 모델로 출연한 회사들의 매출이 모두 뛰어오르면서 국내의 모든 광고사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신우 선수의 스케줄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계약진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자연스레 바빠진 D.E 에이전시.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들어오는 제안은 모두 거절하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영업부서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누구는 계약 하나 따내기 어려운데, 누구는 들어오는 계약도 모조리 쳐내느라 담당 부서가 따로 생기네."
"그렇게 계약 쳐낼거면 차라리 우리쪽 애들이랑 붙여서 덤핑으로 넘기죠?"
"맞아. 그렇게 하면 우리 애들 얼굴도 알리고 좋잖습니까?"
회의를 진행하던 김태성 실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부터 우리 회사에 이렇게 감이 떨어진 애들이 많았어?"
김 실장이 눈꼬리를 치켜떴다.
지금이야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한장 현장에서 필 때 별명이 투견이었다.
한번 물면 놔주지 않을 정도로 사나웠다. 현재 회사의 팀장급 인사들은 대부분 김 실장은 직속후배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최 팀장."
예, 실장님."
"요즘 일 편해졌지? 회사가 커지니까. 이제 밥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현장에서 뛰어다녀볼까?"
"죄송합니다."
현장에서 뛴다는 건 직접 계약을 따러 다닌다는 걸 말한다.
팀장이 되면 사실상 VIP급이 아닌 이상 계약을 따내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았다.
이미 달콤한 꿀을 알아버린 이상 그곳에 가는 건 지옥에 가는 것과 같았다.
"분명히 말하는데, 착각들 하지 마세요. 우리는 고객들 덕분에 먹고 사는 겁니다. 특히 정신우 선수는 우리 회사의 최우선 고객입니다. 그리고 그는 연예인이 아니라 운동선수예요. 컨디션 관리가 그 누구보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지!!
김 실장의 전화가 울렸다.
중요한 전화였기에 회의실을 벗어나 전화를 받았다.
"예, 최 지부장님."
-통화 가능하세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혹시 한국에서 인력 좀 보충해 줄 수 있을까요? 길지는 않고 보름 정도 파견근무를 할 인력이 필요해요.
"일단 결제받아야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지 알 수 있을까요?"
-보고서는 오늘 중으로 보낼게요. 다름이 아니라 레스키측에서 상품제작과 광고촬영 일정을 잡아서 조율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
신우와 레스키의 콜라보레이션.
D.E 에이전시에서도 최우선순위에 있는 프로젝트였다.
"알겠습니다. 명단부터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이런 촉박한 일은 후보고가 우선이었다. 김태성은 전화를 끊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 1위에 등극한 이후.
갤럭시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휘리릭~!!
[배트를 던졌습니다!!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포가 작렬합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정신우 선수에게 빠던과외를 받고 있다고 발언한 루가스 선수답게 한층 안정적인 빠던을 선보였습니다.]
패대기 배트플립이 나온 이후.
루카스는 매번 진화된 배트플립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레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고 거기에서 루가스는 신우에게 코리아 배트플립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언론에서 한국의 빠던문화를 소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로써 갤럭시가 6 대 2로 4점을 리드하게 됩니다. 최근 갤럭시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신생팀이고 선수들의 나이가 어리다보니 분위기를 한 번 타기 시작하니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네요.]
파이리츠를 꺾고 1위에 오른 뒤.
갤럭시는 연승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페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게임 셋!!"
[삼진입니다! 미구엘 선수가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경기를 끝냅니다! 최종 스코어 7 대 2!! 정신우 선수는 오늘 경기에서 1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38번째 홈런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오늘 경기의 승리로 7연승을 달리게 된 갤럭시였다.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당연히 하늘을 찔렀다.
"7연승이다아아아~!!"
"우리가 최고다!"
"헤이! 제임슨, 오늘 경기에서 내 활약 좀 잘 다뤄줘요!"
선수들은 환호를 지르고 기뻐했다.
클럽하우스를 출입하는 기자들과 뒤엉켜 기쁨을 표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신우 역시 동료들과 지금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대로 우승을 향해 달려가면 되겠네."
"창단 첫 포스트시즌이다~!!"
"그래! 가즈아~!"
신우의 외침에 선수들이 가즈아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처음 우승을 이야기할 때..
동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1위에 오르고 7연승을 달리자 선수들도믿기 시작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나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믿음의 힘은 중요하지.]
[선수들조차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됨.]
레전드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애들 너무 업된 거 아님?!
[이렇게 분위기 타는 애들이 한 번 무너지면 파르게 무너지는데.]
[조심해라. 이럴 때 꼭 분위기 나가리 되더라.]
[0]
초를 치는 몇몇 레전드들을 보며 신우는 강퇴 기능이 없는 걸 아쉬워했다.
신우가 경기에 나서는 날이면 언제나 많은 인원이 따라붙었다.
팀 신우는 홈경기, 원정경기 모두 따라 다녔고 T.S.W의 촬영팀은 홈경기에 동행했다.
거기에 또 하나의 팀이 함께하게 됐다.
"반갑습니다. 이번 촬영을 책임지게 될 해밀턴입니다."
"정신우입니다."
해밀턴과 촬영팀.
그들은 레스키에서 파견을 나왔다.
"제가 뭐 신경써야 될 부분이 있나요?"
"가장 좋은 건,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겁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경기에 임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레스키의 광고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다. 광고촬영이라고 해서 스튜디오를 방문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스키에서 원하는 건 경기에 나서는 신우의 모습이었다.
즉, 훈련과 경기에 나서는 모습까지의 과정. 그 과정들 중에서 좋은 장면을 잡아내 광고영상에 넣는다는 건셈이었다.
[특이하게 하네.]
[이게 레스키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거라던데?]
[00 세련됐더라.]
레스키는 이러한 광고 촬영 형태를 2000년대부터 유지해왔다.
스포츠스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그들의 치열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촬영이 시작됐지만, 신우는 신경쓸 게 많지 않았다. 그저 뒤에 따라붙는 촬영이 조금 더 늘어난 셈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평소와 크게 다를바 없는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촬영팀은 신우를 따라붙어 촬영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신우가 훈련하는 레어한 영상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훈련량이 대단하네."
해밀턴의 말에 최이나가 옆에서 말했다.
"최근에는 훈련을 조금 줄인 거예요."
"이게 줄인 거라고요?"
"네. 아무래도 시즌 후반이다보니 체력적인 부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훈련량을 줄이면서 체력을 보존하는 쪽으로 스케줄을 조절하신 거예요."
"대단하군요. 이 정도의 훈련량이 줄어든 거라니, 평소에는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하는지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스포츠스타들을 만났지만, 신우의 훈련량은 특빌한 수준이었다.
촬영은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이어졌다. 그라운드에는 들어갈 수 없기에 더그아웃, 관중석 등. 여러 장소에 카메라를 배치해 신우를 찍었다.
"와아아아!!"
세 번째 타석에서 신우의 장타가 폭발했다. 청량한 타격음과 함께 배트를 던진 신우가 타구를 바라봤다.
그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자 해밀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은 장민이 잡혔군요."
"다행이네요."
최이나도 화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타구를 바라보는 신우의 옆모습은 마치 영화배우와 같았다.
타자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인 셈이었다.
신우의 39번째 홈런과 함께 경기는 갤럭시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갤럭시가 8연승을 올리며 1위를 확고하게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악!!"
한 선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 데미안이 쓰러졌습니다.]
[2루 베이스 커버가 먼저 들어갔는데요. 1루 주자인 호세 선수가 무리한 베이스러닝을 하면서 결국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호세의 무리한 플레이가 문제였다. 하지만 호세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은 곧 선수들간의 충돌로 이어졌다.
"이 새끼야! 사람을 쓰러뜨려놓고, 사과도 없어?!"
"쓰러진 새끼가 잘못이지!"
"뭐라고?! 이 개새끼가!!"
[아~!! 호세 선수와 루카스 선수가 충돌합니다!! 그리고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뛰쳐나옵니다!!]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벤치에서 뛰쳐나갔다. 그중에는 신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성난 얼굴로 뛰쳐나가는 그의 모습을 레스키의 카메라가 잡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해밀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돌았다.
"잘 잡도록 해,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으니까."
최이나는 그런 해밀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보면 프로페셔널하다고 봐야겠지."
고개를 돌린 최이나의 시선이 그라운드를 향했다. 데미안의 부상이 걱정됐다.
그리고 데미안과 신우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기에 신우 역시 걱정되는 그녀였다.
'큰 영향이 없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