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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215화 (215/281)

훈수로 메이저리거 215화

공이 덜 떨어지기 위해서는 회전수가 중요했다. 일명 마그누스 포스라 불리는 효과로 공이 다른 투수보다 덜 떨어지면서 마치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신우 역시 이러한 공을 던지기에 약점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회전수가 죽으면 평범한 패스트볼이 된다. 하지만 타자는 이미 앞에서 덜 떨어지는 공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의 타격에 수정을 준 상태다.

[정답이다.]

[오올~ 눈썰미 쩔고요.]

정답임을 확신한 신우는 가볍게 배트를 쥐었다.

[그런데 상대 역시 자신의 회전수가 떨어졌다는 건 잘 알 텐데? 너한테 패스트볼 안 던지면 어찌려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 역시 체력이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패스트볼보다는 변화구의 비중을 높여왔다.

그리고 그건 피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슬라이더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 높게 떠오르며 우익수 거의 제 자리에서 공을 잡습니다! 투 아웃!!]

루카스 역시 슬라이더에 배트가 끌려나갔다. 고개를 숙이며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그를 지나치며, 신우는 생각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죠.

신우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녀석은 패스트볼로 승부가 들어올 겁니다."

[왜?]

'저도 그럴 테니까요."

피어슨라 자신은 비슷한 유령의투수였다. 파이어볼러, 에이스, 그러한 공통점을 제외하더라도 닮은 부분은 꽤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상대하면서 느낀 건 마운드에서의 성격 역시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피하지 않을 겁니다. 저와의 승부를.'

[오홍]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피어슨의 입장이라면 피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단순하네.]

[하지만 정답이지]

[에이스가 상대팀 에이스와의 승부를 피하는 법은 없지. 그게 마운드건 타석에서건 말이야.]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두수가 가진 프라이드였다. 신우 역시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였기에 그러한 프라이드를 이해했다.

[틀리면 어쩔 생각임?]

상관없죠.

신우는 타석에 들어서며 대답했다.

'어차피 피어슨 정도의 광속구를 상대로 여러 가지 공을 노렸다가는 당하는 건 제가 될 테니까요."

[크 ! 역시 야구 아이큐 하나는 높다니까.]

신우의 말은 백 점짜리 정담이었다. 피어슨의 성향을 파악한 것만이 아니라 그를 공략하는 방법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이런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앞에 타석에서 실패했던 건 피어슨의 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실수.

신우는 그것을 기다리며 배트를 쥐었다.

[에이스 대 에이스! 피어슨과 정신우가 맞붙습니다!!

[상황이 재밌게 됐어요. 아마 정신우 선수는 이번 이닝을 마지막으로 강판이 될 겁니다. 굳이 무리시킬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확실히 이미 불펜의 준비를 끝낸 제이비어 감독이죠.']

[그리고 피어슨 역시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즉, 두 선수 모두 오늘 경기의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타석에 섰다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 상대가 서로이니만큼 이번 대결을 깔끔하게 이기고 싶을 겁니다.]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편했다.

갤럭시의 대표 타자인 신우.

토론토의 에이스인 피어슨.

오늘 경기 마지막 대결에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신우가 강판이 되면 오늘 경기에서 더 이상 뛰지 않는다.

우익수로 출전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신우가 빠지면 당연하게도 갤럭시의 타선은 약해진다.

토론토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었다.

[피어슨, 사인을 교환하고 초구 던집니다.]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은 피어슨, 그가 초구를 뿌렸다.

왜애애액 !!

파르게 날아오는 공에 신우가 발을 내디냈다. 그리고 배트를 돌리는 순간.

휘릭!!

공이 급격하게 휘어지면서 바깥쪽으로 도망쳤다. 신우는 손목을 들어 배트의 스윙을 강제로 멈췄다. 페억~!!

공은 그대로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미트에 꽂혔다. 그리고 구심은 별 다른 제스처 없이 담백하게 말했다.

[피어슨의 초구는 슬라이더였습니다. 하지만 정신우 선수가 배트를 멈추면서 스윙을 참아냅니다.]

[예상 밖으로 초구부터 변화구 승부를 걸어오네요.]

[정신우 선수의 타격을 견제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겠죠?]

[그렇습니다.]

작년,

많은 투수가 신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충분한 타격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정면승부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달라졌다.

투수들은 신우를 인정하고 메이저리그 톱클래스의 타자로 생각하며 공을 던졌다.

뻐억~!!

[2구 역시 떨어지는 커브입니다! 하지만 배트가 움직이지 않는 정신우 선수!]

[정신우 선수는 타격 스킬 역시 좋지만, 선구안 역시 매우 뛰어난 선수입니다.]

당연히 변화구의 비중은 높아지고 정면승부를 피했다.

피어슨 역시 오늘 경기에서 신우와의 승부에선 변화구의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승부처에 던지는 그의 공은 언제나 하나였다. 왜애애애액 !!

포심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90마일 후반인 그 공이 신우를향해 날아들었다.

일찌감치 시작된 스윙이 공을 낚아채려는 순간. 뻐억~!!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 헛스윙이 나왔습니다.]

[반응으로 봐서는 포심을 노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궤적이 약간 어긋나면서 헛스윙이 됐어요.]

[아직 피어슨의 공에 힘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할까요?]

[그릴 거 같습니다. 구속 역시 98마일이 찍히면서 정말 괴물 같은 내구성을 보여주네요.]

100구가 넘은 상태에서 던진 98마일의 포심. 이것만큼 무서운 건 없었다.

하지만 신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역시 힘이 빠졌네요.'

방금 공으로 확신을 가졌다.

피어슨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말이다.

[00 동감.]

[만약 정상적이 컨디션이었다면, 정타가 나왔겠지.]

[예상보다 더 떨어지긴 하더라.]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의 회전이 죽었다. 그러면서 마그누스 효과가 적게 나타나면서 공은 다른 투수들의 낙폭만큼 떨어졌다.

'조금 더 조절을 해야겠어요."

[네가 뭘 노리는지 알려준 거나 마찬가지인데, 또 그걸 던질지 의문이네.]

'큰 상관은 없을 거예요. 건들지조차 못했으니까요."

만약 정타를 만들어냈다면 이야기를 달랐을 거다. 피어슨은 조금 더 신중하게 던질 거다. 하지만 스윙은 완벽하게 궤적을 어긋났다. 신중보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게 분명했다. 자신이라고 그러했을 테니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야구는 결국 결과론이다.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IF가 될 뿐이다. 그리고 야구에서 IF는 가장 쓸데없는 말이지.]

[네 판단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스윙에 망설임이 있으면 대릴 수 없을 테니까.]

'예

야구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만약에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이런 말을 하는 게 가장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과정을 이어가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 중요한 건 거기까지였다.

이후의 후회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심호흡을 뱉으며 자세를 잡자, 피어슨이 사인을 교환했다.

'시누, 너는 분명 대단해. 하지만 내 공은 때리지 못한다."

피어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타격.

그리고 지금까지 던진 자신의 공들에 대한 자신감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한 번 더 승부를 들어간다.

피어슨이 직접 사인을 냈다.

이번 공으로 카운트를 잡아내고 다음 공으로 비장의 무기인 체인지업으로 상대를 요리한다.

피어슨의 포심

-체인지업 조합은 수많은 타자를 요리했던 구종이었다.

무려 25마일이나 자이 나는 두 개의 구종을 섞어버리니 타자들 입장에선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번 카운트만 잡으면 내 승리다.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 피어슨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사인을 교환한 피어슨! 4구째 던집니다!!]

왜애애애액!!

피어슨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이번에 선택한 공은 포심.

그것을 확인한 순간, 신우의 배트가 돌아갔다.

후웅-!!

이전보다 조금 더 아래쪽을 공략한 스윙이 공을 정확히 낚아챘다.

딱~!!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그 순간.

피어슨은 알 수 있었다.

"Fuck!!"

이번 타구가 담장을 넘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마운드에 주저앉은 피어슨과 배트를 던지는 신우의 모습이 크로스되며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경기결과를 나타내주고 있었다.

[4구를 강타!! 그리고 정신우 선수는 배트를 던지고 피어슨은 마운드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타구는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0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솔로홈런이 정신우 선수의 배트에서 터집니다!!]

결승 홈런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몬트리올 갤럭시의 정신우 선수가 전반기 마지막 선발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2피안타 11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11승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날 양 팀의 유일한 타점은 갤럭시의 7회 말 공격에서 나왔는데요.

정신우 선수가 마지막 타석에서 토론토의 에이스 피어슨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본인의 장기인 일인 야구를 선보였습니다.

이날 경기로 정신우 선수는 올 시즌 4번째 승리투수 결승 타점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기록입니다.

이후 경기에서 정신우 선수는 더 이상 등판하지 않지만, 야수로 경기에 출장하며 홈런 사냥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올스타전 최다득표로 참가가 확정된 정신우 선수는 홈런 더비 참가확정에 올스타전 선발투수로도 나설 가능성이 높아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신우의 활약은 이제 당연한 것과 같았다. 오히려 그가 부진하다면 그게 뉴스가 될 정도였다. 물론 아직 부진한 적이 없기에 그게 뉴스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정규시즌이아닌 올스타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짜 선발로도 나가는 거냐??

조나단 감독이 그런 뉘앙스로 인터뷰하긴 했지.

-지금 같은 페이스면 홈런레이스에서 우승도 쌉가능 아님?

ㄴ가능성이 높긴 함.

아님, 홈런레이스에서는 변수가 많으니까.

ㄴㄴ ㄴㅇ ㅈ, 지금까지 레이스 우승하고 최다홈런 기록한 선수 및 명 없을걸?

-크……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즐겁네. ㄴㄹㅇ, 설마 이런 선수가 한국에서 나올 줄 누가 알았겠음? ㅋㅋㄴㄴ아~ 국뽕이 차오른다.

-그런데 내년 프리미어12에 신우도 나가는 기임?

가능성은 높겠지.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LL L그래도 나가서 우승하면 좋지 않음? ㅋㅋ

-그나저나 홈런레이스에서 누가 던져주려나?

이게 궁금하긴 하네.

LL이건 아직 소식 없나?

해외야구 관련 뉴스에선 언제나 신우와 관련된 이야기로 댓글이 폭발하고 있었다.

올스타 홈런레이스에서 타자가 때리는 공은 배팅볼이었다.

그렇기에 배팅볼을 던져주는 사람이 중요했다. 일각에서는 이 배팅볼을 던져주는 사람이 홈런레이스의 우승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 배팅볼이 제대로 날아오지 않으면 제대로 된 타격은 힘들어진다.

여기서 선수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우승을 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배팅볼 투수를 섭외하는 경우가 첫 번째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소 고마운 사람에게 배팅볼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벤트니까. 이벤트로 즐기겠다는 마인드였다. 그리고 신우는 후자였다.

'이벤트니까, 이벤트답게 즐겨야겠죠."

[지

[아~ 내가 던져주고 싶다.]

[ㅋㅋㅋ 그러려민 쟤가 여기 와야 함.]

'극구 사절입니다."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레전드들을 뒤로 하고 신우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눌렀다.

짧은 통화음이 지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신우야, 웬일이냐?)

"코치님, 잘 지내시죠?"

전화를 받은 상대는 이진철 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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