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197화
[타격은 타이밍이다.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갑자기 그 소리는 왜 하누?]
[저 말이 명언이긴 하지.)
[스판 저 저거 하나로 역사에 남았지.]
[ㅋㅋㅋ 부러움?]
[ㅈㄴ 부럽지. 오늘 경기 끝나고 분명 그 이야기가 또 나올 건데..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타구 높게 떴습니다!! 우익수 파울라인 밖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잡았습니다! 완벽한 피칭으로 5회까지 무실점 피칭을 이어갑니다!]
5이닝 무실점.
이제는 대수로울 거 없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는 이들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5이닝이 끝났는데 투구수가 46구인거 실화냐?
-한 이닝당 10구도 안 던졌네.
-와… 오늘 피칭 지렸다.
-파이어볼러 아니었어?
맞는데 오늘은 평소랑 다르다.
평소 신우는 힘으로 몰아붙이는 피칭을 했다. 100마일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을 자유자재로 뿌릴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간간이 변화구를 섞어 던졌지만, 피칭의 중심이 되는 건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오늘 던진 44구 중 34구가 변화구였다. 평소 패스트볼의 비중이 70%에 달했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더 놀라운 건 변화구들을 존에 넣고 있다는 거다."
평소 신우는 변화구를 유인구로 던졌다. 즉, 존을 벗어나게 던지면서 맞춰 잡는 피칭보다는 삼진을 올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단숨에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맞춰 잡는 피칭은 효율적이다.
공 1개에 아웃 카운트 하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일단 공이 맞아 나가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다. 온전히 야수들를 믿고 맡겨야 했다.
만약 에러가 나오면 투수는 멘탈과 제구력이 흔들린다.
그렇게 되면 난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시누는 에러가 나오더라도 스스로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파이어볼러이면서 컨트롤끼지 되는 투수는많지 않다.
신우는 그러한 유형의 투수였다.
거기에 오늘 경기에서는 환상적인 변화구까지 선보이면서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 꺼풀 껍질을 벗어던지고 있다."
이미 신우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두수 기용을 걱정했는데."
오늘 경기를 앞두고 제이비어는 불펜 운용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불펜을 쓸 이유가 없겠어.'
아직 5회이기에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다른 투수였다면 슬슬 불펜을 준비시켰을 거다. 하지만 마운드에 있는 건 신우였다.
'에이스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데, 불펜을 준비시킬 이유는 없지."
메이저리그에 그렉 매덕스라는 선수가 있었다. 교수님 혹은 마스터라 불리던 그는 수싸움과 컨트롤로 타자들을 압도하는 선수였다.
그런 매덕스의 커리어는 라이브시대 최고의 투수라 이야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건 100구 미만 14회 완봉이었다.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팬들은 100구 미만 완봉을 거두는 투수에게 매덕스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가장 최근 신우가 매덕스를 했던 건 WBC에서 일본을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을 때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직 매덕스 게임을 한 적이 없었다.
[때렸습니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 이루수 잡아 1루에! 아웃입니다!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6회까지 단 60구를 던지는 완벽한 피칭을 보여줍니다!!]
[이대로만 가면 정신우 선수 커리어 첫 매덕스게임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네요.]
[아직 정신우 선수는 매덕스게임이 없죠?]
[예. 메이저리그 커리어에 완봉이 총 4번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번이 퍼펙트게임이었고 다른 세 번의 게임에서는 모두 100구 이상의 피칭을 했었습니다.]
[그럼 오늘 매덕스게임을 달성하면 본인 거리어 첫 번째 매덕스게임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매덕스게임을 제외하고 하나의 기록이 더 있었다.
하지만 중계진은 일부러 그 표현을 피했다. 화면이 광고로 넘어가자 캐스터가 헤드셋을 벗고 말했다.
"후우……… 아직 이야기하면 안 되겠죠?"
"당연하죠."
뒤에 있던 PD가 기겁했다.
"저번에 우리가 먼저 이야기했다가 게시판 난리났던 거 기억 안나세요?"
"하…… 그때 장난 아니었지."
평생 먹을 욕을 그때 다 먹었던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 정신우 피칭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류진현 보는 거 같네."
"오히려 한 단계 위야. 컨트롤은 비슷하겠지만, 정신우는 포심이 있잖아. 여자하면 100마일짜리 꽂아버리니까, 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해."
"그런데 오늘은 왜 저런 피칭을 하는 걸까요?"
평소와 다른 피칭을 하는 신우를 보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해설위원은 나름대로의 답을 내렸다.
"불펜을 생각하는 거겠지. 어제 경기에서 갤럭시의 불펜은 엉망이 됐잖아? 그러니까, 그걸 생각하고 자신이 최대한 길게 끌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와…… 그걸 이제 3년차 투수가 한다고요?"
"일반적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정신우잖아?"
"아… 그건 그렇네요."
"광고 끝나갑니다."
"오케이!"
"혹시나해서 말씀드리지만, 아직 이야기할 때는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신우의 시선이 타구를 쫓았다. 이번에는 타석이 아닌 베이스에서였다. 휘리리릭~!!
[오우~! 쟤 빠던 예술이네.]
[크으~! 이제 나름 신우 흉내 좀 내자너.]
[너한테 제대로 배웠다야 ㅋㅋ]
루카스가 던진 배트가 화려하게 돌아가며 허공을 갈랐다.
레전드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확실히 좋은 빠던이었다.
'이게 바로 선배님들의 마음이군요.'
[응?']
[뭔?]
'잘 배운 제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요.'
[엌ㅋㅋㅋ 벌써 제자였는?]
[파던으로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
[내 너에게 황금빠따를 내리노니 이제 하산해도 좋다. 이런거임?]
[스비 레알 뿜었네.]
레전드들의 횡당하단 반응을 뒤로 하고 신우는 홈을 밟았다.
"나이스 빠던!!"
"배트 플립을 한국에선 빠던이라고 해."
"아!! 빠던! 마음에 드는데? 어때? 이제 좀 제대로 하는 거 같아?"
"이제 나에게 더 배울 게 없다."
"푸하하! 나 그거 동양영화에서 본 거 같은데."
동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두 사람이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신우는 보호장구를 벗고 마운드에 나갈 준비를 했다. 어느덧 7회, 스코어는 2 대 0에서 4 대 0으로 바뀌었다. 승기가 기운 상황.
하지만 아직 신우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노히트'1회 타자가 1루 베이스를 밟았다.
하지만 3루수의 실책으로 표기가 되면서 에러가 되었다.
그로 인해 퍼펙트게임은 깨졌다.
하지만 노히트는 아직 유지가 되고 있는 상태였다. 욕심이 좀 생기는데.
작년,
이미 퍼펙트게임을 이루었던 신우다.
그럼에도 노히터의 욕심을 내는 이유는 오늘 경기내용이었다.
'이대로만 던지면 100구 안쪽으로 9회까지 끝낼 수 있다.' 변화구 위주로 던지면서 맞춰 잡는 경기를 펼쳤다. 이런 경기는 오랜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공을 던지고 타자를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기에 이런 피칭을 하면서 기록까지 세우고 싶었다.
"아웃!!"
[아~! 좋은 타구였지만, 라이드라이브로 잡힙니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많은 투수들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노히터나 퍼펙트게임을 의식했냐고 물어보면 안했다고 답한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두수는 없다.
사람으로서 그럴 수 없었다.
퍼펙트게임과 노히터는 평생 한 번도 이루지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할 정도였다.
그런 대기록을 의식하지 않는다?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아니면 아예 익숙해지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의식하면 좋을 건 없었다.
[기록이 신경 쓰이냐?]
매튜슨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신경 쓰이죠.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너무 신경쓰다보면 제구가 흔들린다.]
그렇………겠죠?'
[그래. 그러니 명상을 해라. 네가 명상을 배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니까.]
명상은 단순히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니다. 평정심을 찾는 게 목적이다. 신우는 레전드들의 조언을 얻어 팀을 꾸릴 때 노아를 고용했다.
노아의 몸값은 무척이나 비싸다.
유명인들 사이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우는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레전드들이 이야기하면 반드시 필요한 거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노아의 진가가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신우는 명상을 통해 흥분됐던 마음을 다스렸다.
점점 흥분됐던 마음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고 점점 명상에빠져들고 있을 때,
"헤이, 시누."
매버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옆을 보자 매버릭이 장비를 차고 있었다.
"자는 거 아니지?"
"물론이지."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야."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글러브를 챙겼다. 더 이상 마음의 동요는 없었다.
7회 초.
[때렸습니다!! 높게 떠오른 타구! 우익수 거의 제 자리에서 글러브를 뻗습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7회 첫 타자를 5구 만에 돌려세웁니다!]
첫 번째 타자를 상대로는 변화구 위주로 공을 뿌렸다. 하지만 두 번째 타자에게는 로케이션을 바꾸었다. 페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 삼진!! 90마일 후반대의 공을 연달아 꽂으며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타자 입장에선 머리가 아프겠군요. 앞선 타자에게는 변화구 일변도로 승부하다가 자신에게는 광속구만 뿌려대니 말이죠.]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파울!!!"
패억!!
"스트라이크!! 투!"
[3구 다시 파울을 만들어냅니다!]
1구 슬라이더, 2구 패스트볼 그리고 3구에다시 패스트볼을 던지며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맺어버렸다.
그리고 신우는 4구를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왜애애애액 !!
[던졌습니다!]
존을 파고드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부!!
휘릭!!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4구 삼진!! 떨어지는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정신우 선수! 7회 역시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감합니다!]
쓰리핑거 커브,
포크볼치럼 떨어지는 변화구에 타자의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7이닝을 지우는데 필요한 공은 단 71구에 불과했습니다!]
신우의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앞뒤 없는 안티팬들이 있긴 했지만, 신우가 뛰어난 투수라는 걸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신우의 앞에 반드시 붙는 명사가 있었다.
[파이어볼러]
100마일의 광속구로 타자들을 요리하는 투수.
그것이 신우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오늘 경기를 우려했다.
-오늘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냐? L어제 4연타석 쳤으니 체력이 좀 떨어질 만도 한데.. ㄴ 아니, 체력은 둘째치고 지금 이거 실화냐?
-100구도 안 던지게 생겼네.
-얘 원래 이렇게 변화구 잘 던졌음?
비율이 낮긴 했지만, 잘 던지긴 했지, 와……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짜 미쳤네.
신우의 실력에 의문을 표할 순 없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피칭에 사람들은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