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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81화 (18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81화 >

* * *

미구엘은 등판하자마자 쓰리런 홈런을 허용했다.

하지만 제이비어 감독은 그를 내리지 않았다.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실책이 되었다.

미구엘은 이후에도 1홈런을 포함해 4안타를 허용하며 3점을 더 허용했다.

총 6실점을 한 미구엘은 그렇게 최악의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가 끝난 뒤.

신우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외야에 그냥 서있으면 아무래도 몸이 굳게 돼. 이걸 경기가 끝난 뒤에 풀어주지 않으면 내일 경기에 영향이 가게 된다.]

‘예.’

[그나저나 실전에서 우익수로 뛰어보는 건 처음인데, 기분이 어떰?]

‘아직 잘 모르겠네요. 쉬운 타구들만 와서 그런지 와닿는 게 크지 않아요.’

[타구의 질도 모두 쉬운 것들이었어. 좀 하다보면 빠르고 회전이 걸린 타구들이 오면서 어려울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말이었기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시누, 이 정도면 됐어.”

“땡큐, 노아.”

“이게 일인데 뭐. 그나저나 신우 너의 몸은 언제 봐도 정말 감탄스러워. 어떻게 그 정도의 체구에 몸이 그렇게 유연할 수 있지?”

“너한테 요가를 배워서 그런가보지.”

“노! 나한테 배우기 시작한지 이제 고작 두 달밖에 되지 않았어. 그 사이에 그 정도의 몸이 될 수는 없단 말이야.”

“흐흐, 타고났나 보지.”

“음...그건 그럴 수 있지만...”

“일단 난 씻으러 간다. 끝나고 제이슨한테 마사지 받기로 했어.”

“아, 오케이!”

팀 신우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있었다.

웨이트 담당에는 루스와 앤드류.

영양학쪽으로는 에이드리언이 있었다.

그리고 마사지 파트인 제이슨과 요가를 맡고있는 노아, 마지막으로 신우의 신체를 전반적으로 체크해줄 닥터 그레이엄까지.

이렇게 6명으로 구성된 T.S.W는 오직 신우를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신우는 매일매일 피로를 풀고 몸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다소 피곤할 수도 있지만, 최고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샤워룸에 다른 선수들은 없었다.

경기가 끝났으니 일찌감치 호텔에 가서 쉬고 있을 거다.

신우도 스트레칭이 아니었으면 돌아갔을 테니 말이다.

쏴아아악-!!

하지만 한 사람도 없는 건 아닌 듯 했다.

탈의실이 아닌 샤워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신우는 개의치 않고 옷을 벗으려는 찰나.

“흑...흐흑...!”

갑자기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의아한 얼굴로 샤워실로 걸음을 옮겼다.

“젠장...! 멍청한 새끼! 병신새끼!!”

그때 들려오는 욕설에 의아함과 동시에 샤워실 안에 있는 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왜! 어렵게 찾아온 그 기회를 왜! 잡지 못하는 건데?!”

바로 미구엘이었다.

그는 오늘 있었던 경기에 대해 자학하고 있었다.

그만큼 엉망인 경기였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라는 말이 맞을 거다.

미구엘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다.

올해 21살인 그는 기존의 팀에서 싱글A에서 머물고 있었다.

마이너리그의 트리플A보다 두 단계 밑에 있으니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유망주들의 경우 대부분 루키에서 더블A로 승급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마이너리그의 이 많은 단계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오히려 빠른 시간에 승급시켜 고도의 스킬과 훈련을 받게 하는 걸 우선시했다.

그런데 싱글A로 보냈다는 건 구단에서 큰 유망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선수풀이 좁은 갤럭시로 이적했으니 트리플A에서 뛸 수 있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나와서 시범경기까지.

[엄청난 기회를 잡은 거지.]

‘그 기회를 날린 거고요.’

[미구엘은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선수였다. 간혹 그런 녀석들이 있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현실을 아는 애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는 애들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지.]

신우도 잘 알고 있다.

육성선수였지만 2군에 있었다.

미국으로 따지면 마이너리그라고 할 수 있었다.

1군이란 메인무대에 오르지 못한 연습생들.

수백명이 되는 선수들은 각자의 개인사정이 있었고 실패의 이유가 있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네가 딱히 해줄 건 없으니까.]

그것도 알고 있다.

구단에서 신우에게 거는 기댄 무척 크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의 인사권과 같은 월권행위를 눈 감아줄리 없다.

무엇보다 신우 스스로도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구엘은 착하다.

녀석이 만드는 나초 역시 맛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미구엘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도 아니었고 10년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며칠을 어울려 지냈을 뿐이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도 없고.’

한차례 조언을 해주었다.

그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막는 방법이다.

[방법 있지 않나?]

그때 올라온 채팅.

[쟤 자기 장점을 활용 못하던데? 그거만 고쳐주면 메이저급으로 올라올 수 있을 걸?]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고요?’

[어. 쟤의 장점이 뭐겠냐?]

‘어...큰 키...?’

[그리고?]

딱히 떠오른 게 없었다.

[어휴...팔 아니냐. 팔! 쟤 리치가 2m는 넘어. 그 팔로 위에서 내리꽂고 있는데, 그런 투구폼을 유지하려면 몸이 유연해야해. 그런데 쟤 몸이 유연하냐?]

‘훈련에서 봤을 때, 그냥 평타정도였죠.’

[그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저 정도 키에서 팔 높이려면 진짜 죽어난다. 저승에서 해봤는데, 몇 번 던지고 다시 죽을 뻔 했어.]

‘...재밌는 농담이네요.’

[농담이라니! 레알 염라대왕이랑 면담 다시하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결론은 쟤가 팔을 내리면 메이저 레벨로 성장한다고요? 사이드암 교체 하나로?’

[못 믿는 눈치네?]

‘아니, 그렇잖아요. 팔 하나 내렸다고...’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꿨다고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가 된 놈이 할 소리냐?]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사라진다.

[이쉑은 치트잖아.]

[게임으로 치면 6일 밤낮을 새면서 세상 창조하던 신이 너무 피곤해서 얘 만들 때, 잠깐 졸아서 에디터에 999 박은 수준이라니까?]

‘뭔 비유를 그렇게 신박하게 하십니까. 어쨌건 다른 분들 의견은 저렇다는데요.’

[어차피 메이저리그는 치트 박힌 놈들 아니면 못와. 이놈이 밸런스를 좆망으로 만들고 있다지만, 결국 다른 놈들도 치트를 박은 놈들이야.]

[아, 그건 ㅇㅈ.]

[하긴 애초에 재능이 없으면 여기에 발을 들이지 못하지.]

뭔 의견이 이랬다저랬다 하는지 원.

[결국 선택은 네가 해야 된다는 거지.]

매튜슨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저들의 채팅을 볼 수 있는 건 자신이 유일하다.

결국 어떤 의견을 내더라도 자신이 전달하지 않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거다.

문제는 이번 훈수가 투구폼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이는 신우에게 있어 약간의 트라우마와 같았다.

사실 그렇게 큰 트라우마는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생긴 후유증을 걱정했다.

자신이 투구폼을 건드렸다가 실패했던 일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돌아가죠.’

신우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샤워룸을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신우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경기장에 가기 위해 객실을 나섰다.

“시누.”

“미구엘.”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소파에 미구엘이 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자신을 기다린 듯 했다.

이곳은 스위트룸들이 모여 있는 곳.

미구엘의 객실과는 층수가 달랐다.

“날 기다린 거야?”

“응. 마이너 캠프로 가게 돼서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갈려고.”

결국 코치들은 미구엘을 여기까지로 봤다.

한 번의 기회와 실수.

그것으로 미구엘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

잔인하다고 할 수 있다.

2군에 있을 때, 코치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의 기회는 찾아온다고.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잡았다.’

레전드들과의 만남.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은 인생을 바꾸는 기회였다.

신우는 그것을 잡았다.

하지만 미구엘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네가 기회를 주면 되지.]

사이드암을 이야기했던 레전드의 채팅이 올라갔다.

그때 미구엘이 도시락통 하나를 꺼내 건넸다.

“내가 만든 타코를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아서. 작별인사다. 그동안 내가 말이 많아서 힘들었을 텐데, 들어줘서 고마워. 마이너 가더라도 네가 활약하는 거 잘 보고 있을게!”

미구엘은 그 말을 남기고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신우는 말없이 손에 들린 타코를 바라봤다.

[성격 좋누.]

[말 많은 거 빼고는 좋은 애였지.]

[타코도 맛있어 보이고.]

레전드들의 말에 신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쯧...이러면 내가 나쁜놈이 되는 거 같잖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신우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유튜브에 접속해 하나의 동영상을 찾았다.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고 페이스북을 연 신우는 미구엘에게 동영상을 공유했다.

【Walter Johnson Pitching Mechanics Slow Motion】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우완투수.

빅 트레인 월터 존슨의 투구를 슬로우모션으로 담은 영상이었다.

[뭐야? 내 영상이 아직 남아 있어?]

‘흑백이고 화질도 별로긴 하지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함? 그냥 알려주면 편할 텐데.]

‘선배님들의 조언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도 적용되는지 모르잖아요.’

[와~우릴 이렇게 못믿누.]

[섭섭하네~]

‘못 믿는 게 아니라 신중한 겁니다. 제가 만약 못 믿었으면 선배님들이 이거 배워라, 저거 배워라 할 때 배웠겠습니까?’

[고건 그렇지.]

‘그저 조언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우는 조언을 통해 한 번 망가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월터 존슨의 이야기를 무시하기엔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조언의 신뢰도가 너무 높았다.

[그나저나 힌트가 너무 적은 거 아님?]

[ㄴㄴ 저놈하고 월터하고 체형이 비슷함. 물론 키는 저 쉑이 훨씬 크지만, 리치가 길다는 공통점이 있잖아? 그러니 도움이 되겠지.]

‘월터 선배님의 매커니즘은 현대야구와 다릅니다. 그걸 그대로 사용하면 실패하겠죠. 하지만 장점들만 흡수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신우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장점들?]

‘선배님들 시대에는 피지컬로 공을 던지는 유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월터 선배님은 빅 트레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광속구를 던졌었죠.’

[그랬지. 실제로 발전된 투구폼으로 여기서 던져보니까, 구속이 더 오르긴 하더라.]

‘...얼마나 나오셨습니까?’

월터 존슨이 현대의 투구 매커니즘으로 던진 구속.

궁금하지 않을리 없었다.

[궁금하면 와서 보든가.]

물론 쉽게 알려줄 양반은 아니었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은 신우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건 월터 선배님의 동영상을 보내준 것은 팔이 길다는 것, 그리고 그 팔을 어떻게 활용해서 사용한 건지 알려준 겁니다.’

[너무 어려운 숙제 아님?]

‘어려우면 도움을 요청하겠죠. 그때는 이것저것 알려줄 겁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기회란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면, 이미 그 길을 가봤던 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그러한 해답을 준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만약 그것도 하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다.

‘그게 끝이겠죠.’

결국 미구엘에게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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