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80화 >
* * *
시범경기는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번째 경기다.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이 전력을 다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시범경기이기 때문이다.
[오버하는 거 아님?]
[초반부터 100마일 던지누.]
[시범경기라는 거 잊지 마라.]
그렇기에 레전드들 역시 신우에게 조언을 건넸다.
‘오버하는 거 아니라요. 정말 가볍게 던졌거든요? 그런데 100마일이 찍히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임?]
‘전력이 아닙니다.’
[헐...]
[이게 바로 그 힘숨찐이냐?]
[찐따는 아니니까, 힘을 숨긴 투수 아니겠음?]
레전드들이 놀라는 것만큼 신우도 놀랐다.
몸이 가볍다는 생각은 했다.
캠프가 시작된 이후 놀랍도록 컨디션이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자체 구속을 체크할 때도 생각했던 것보다 2-3마일 높게 구속이 찍혔다.
생각할 수 있는 건 고된 훈련이었다.
이번 비시즌 기간에 그동안 받았던 훈련보다 더한 훈련을 받았다.
몸을 키웠고 체력을 증가시켰으며 거기에 유연성을 더했다.
신체변화에 따른 투구폼의 변화도 있었다.
거기에 따른 구속증가로 보는 게 타당해보였다.
[일단 지금은 크게 생각하지 말고 던져라.]
‘예.’
[평소보다 힘을 조금 적게 쓰는 거다. 어차피 네가 훈련한 것은 투타 모두를 풀시즌으로 치르기 위해서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변하는 건 없었다.
결국 자신이 해야 될 건 몸상태를 체크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공을 던져야 했으니까.
‘바깥쪽 체인지업.’
포수의 사인에 그곳을 향해 공을 뿌렸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 * *
「(속보) 정신우 선수, 첫 시범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 7K! 2타수 2안타(2루타 1개) 기록!」
신우의 등판이 마무리되자 곧장 기사가 속보로 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한 기록이 떴다.
신우가 어떤 공으로 타자를 상대했으며 구속이 어땠는지, RPM이 어땠는지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모두 끝난 뒤에는 경기결과가 떴다.
「새롭게 갤럭시의 유니폼을 입은 정신우 선수는 여전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략)
경기에서 패배한 몬트리올 갤럭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내외야수가 모두 빈약하며 불펜진 역시 약하다.
초반 정신우 선수의 활약에도 역전패를 당하게 된 이유였다.
과연 코치진이 어떻게 갤럭시를 탈바꿈 시킬지 궁금하다.」
언론의 평가는 냉정했다.
갤럭시는 아직 반쪽짜리 팀에 불과하다.
메이저리그 32개 구단체재에 들어섰지만, 선수단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비시즌 기간 영입한 빅네임은 신우 한 명에 불과했다.
한 명의 선수가 팀 전체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이번 시즌 리그 꼴찌로 갤럭시를 꼽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평가를 받네.’
[가장 쉽게 예측하기 쉬우니까.]
[원래 첫 시즌부터 배부를 수가 없음.]
[내가 봐도 지금 너희 로스터면 답이 없다.]
[그렇다고 바로 빅네임들을 영입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걔네들이 올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으니까.]
신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보니 알겠더라고요.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고 오는 게 아니라는 거.’
[정답. 돈은 기본이지.]
[문제는 구단이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야. 선수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커리어에 우승반지를 넣는 게 꽤 중요하거든.]
[돈이 많아지면 그때부터 사람은 명예를 우선시하게 된다. 선수의 커리어에서 월드시리즈 우승만큼 큰 명예를 주는 것도 없기도 하고.]
탑티어의 선수들 중 개인상을 수두룩하게 받은 선수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해본 선수가 있을 정도다.
팬들은 그걸 오명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선수 본인에게는 다르다.
물론 이 역시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갤럭시의 상황으로는 빅네임들을 영입하기 어렵다는 거군요.’
[최소한 이번 시즌 구단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보겠지. 무엇보다 작년 FA 시장이 한파기도 했고.]
이번 FA시장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시장에 나왔어야 될 빅네임들을 기존 구단에서 거액에 사로잡은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구단에서 큰 금액을 제시하기도 했고 대부분 명문구단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일부 시장에 나온 선수들이 있었지만, 갤럭시는 잡지 못했다.
그 사정이야 자세히 모르지만, 다른 구단들로 갔다는 게 결론이다.
[일단 너라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냐?]
‘그렇죠.’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헤이~시누!”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말많은 녀석이 나타났다.
“미구엘, 어디 가는 길이야?”
“노노-! 정확히는 갔다 오는 길이지. 내가 방에서 딱! 쉬고 있었는데 말이야. 투수코치한테 연락이 오더라고. ‘자네, 내 방으로 좀 오지.’ 아, 물론 메시지로 왔어. 그래서 내가 투수코치한테...”
[와...이놈 레알이네.]
[TMI도 이 정도면 병 아니냐?]
[질문 하나에 어디부터 시작하누.]
[그리고 저거 너희 투수코치 흉내낸 거냐? ㅋㅋㅋ]
미구엘의 TMI를 듣고 있다보면 귀에서 피가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결론이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내일 등판할 거라 하더라고.”
“얌마! 그럼 그거만 이야기하면 되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건 뭐냐? 거기다 멕시코에 있던 네 친구랑 코치가 닮은 건 또 왜 이야기하고.”
“으하하하! 내가 원래 좀 말이 많긴 하지!”
“에휴...알면 좀 고쳐라.”
“오케이! 오케이!”
“그나저나 내일 등판이라는데 안 떨리냐?”
“떨리긴! 드디어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전혀 떨리지 않아!”
“자신감이 넘쳐서 좋다. 그 기분으로 내일 마운드에 올라가서 네 능력을 보여줘.”
“물론이지! 내가 처음 마운드에 등판했을 때 어땠는...”
“그럼 난 먼저 간다!”
다시 말이 길어지려는 걸 감지한 신우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그런 신우를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미구엘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신우 역시 자신의 방에 도착한 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어휴...십년감수했네.”
[또 잡혔으면 10분은 그냥 날아갔을 듯.]
[아니야. 이야기의 흐름을 봤을 떄 1시간은 순삭이다.]
신우도 알고 있었기에 자리를 피했다.
“그나저나 녀석은 내일 등판인데도 떨리지 않나 보더라고요. 완전 강심장이네요.”
[응?]
[뭔 소리임?]
“예?”
[뭐야? 정말 몰랐던 거냐?]
[푸하하하! 이놈 이제 보니까, 주위는 전혀 볼줄 모르네.]
“아니, 솔직히 저렇게 옆에서 쏘아대는데, 어떻게 주위를 봅니까?”
[으음...고거슨 ㅇㅈ.]
[확실히 좀 정신이 없긴 했지.]
“그런데 무슨 말씀이세요? 주위를 전혀 볼줄 모르다니?”
[미구엘이란 놈. 내일 고생 좀 할 거다.]
[떨지 않은 게 아니라, 떨리니까 말이 더 많아진 거야.]
“아...”
[거기다 그 녀석 손이 떨리고 있었어. 내가 봤을 때 내일 경기 엉망될 가능성도 있다.]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다.
[그럼 두고보든가.]
* * *
다음 날.
두 번째 시범경기에 신우는 글러브를 챙겼다.
평소 착용하던 투수 글러브가 아닌 외야수 글러브였다.
각 포지션마다 글러브의 형태는 조금 달랐다.
투수의 경우 웹이라 불리는 글러브의 왼쪽 상단부분이 가려져 있다.
이는 글러브 안에서 그립을 바꿨을 때, 타자나 주루코치 혹은 주자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내야 글러브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웹이 오픈된 십자형태 등, 오픈된 형태의 글러브를 착용했다.
공이 끼는 것과 손가락을 넣어서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오픈된 형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야 글러브는 더 긴 형태를 주로 사용한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멀리 뻗는 타구가 많은 외야 포지션답게 수비에 더 용이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신우는 우익수로 나서기로 결정한 뒤로 외야수 글러브도 따로 길을 들여둔 상태였다.
“오오-!”
“시누다!”
“정말 우익수로 출전하는 건가?”
“멋지다! 시누!!”
그가 외야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모자를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한 그는 마운드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꼈다.
‘확실히 마운드에 있을 때보다 팬들과 더 소통하는 기분이네요.’
[그나마 우익수니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거지. 중견수면 답도 없다.]
[가끔 이적해서 중견수로 나가면 레알 혼자 있는 기분임.]
마운드가 고독하다고들 하지만, 외야도 마운드 못지않게 고독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신우는 딱히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경기를 지켜봤다.
[너어어어어무 여유로운 거 아니냐?]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까지는 딱히 할 게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마운드에 있을 때 너무 시간 끌지 말고 공을 던져주면 좋아.]
‘그러겠네요.’
투수의 투구간격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수비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을 듯 싶었다.
프로라고 해도 사람인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있으면 심심할 테니 말이다.
그때 투구폼에 들어갔다.
신우는 몸에 긴장을 주면서 자세를 잡았다.
딱-!!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타구가 외야쪽으로 날아왔다.
신우는 타구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마이!! 마이!!”
그때 중견수인 루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우는 다시 한 번 타구를 확인하고 이내 경로를 뒤로 이동했다.
그러는 사이, 낙구지점에 도착한 루카가 글러브를 들어 타구를 잡아냈다.
“나이스 캐치!”
“이 정도는 당연하지. 그나저나 용케 내 콜을 들었네. 외야에 자주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면 긴장해서 콜도 듣지 못하는데.”
“이것도 못하면 이걸 끼고 나올 생각도 안했겠지.”
신우가 착용한 외야 글러브를 가리켰다.
“뭐, 그건 그렇지.”
그 말을 끝으로 루카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반응이 영 미지근하네.]
[확실히 넌 야수들한테 미움 받는 포지션인가보다.]
‘어쩔 수 없죠. 갑자기 투수하던 놈이 우익수까지 하겠다고 헀으니 말이죠.’
신우도 각오했던 일이다.
아직 동료들과 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 못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메츠에 있을 때도 레이먼드와 불편했었다.
그러나 꾸준히 실력을 보여주면서 결국 하나의 팀을 만들 수 있었다.
갤럭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연습경기이기에 투수들도 큰 고민없이 공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 사이 신우가 처리한 공은 뜬공 몇 개가 전부였다.
그렇게 경기가 투수전이 되고 있을 때였다.
딱-!!
“와아아아!!”
4회.
노아웃에서 첫 번째 안타가 나왔다.
갤럭시가 아닌 레인저스에서 나온 안타에 조금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퍽!
신우의 앞에 떨어진 타구로 두 명의 주자가 만들어졌다.
[오오~갑자기 재밌어지네.]
[노아웃에 1, 2루의 위기! 과연 갤럭시 감독의 선택은?!]
[교체하겠지.]
[시범경기에 이런 상황이 나왔으면 교체해서 불펜의 상태를 체크하는 게 좋아.]
레전드들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마운드에서 투수가 내려가고 외야의 불펜문이 열리며 한 선수가 나왔다.
그는 다름아닌 미구엘이었다.
불펜이 좌익수와 중견수의 사이에 있었기에 거리가 제법 되었다.
하지만 미구엘의 상태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긴장을 많이 한 거 같네요.’
[그렇지.]
[저런 상태에서 어떤 공을 던질지 뻔하다.]
제대로 된 공을 던지긴 어려울 거다.
제구는 제대로 되지 않고 구속은 엉망이 될 가능성이 컸다.
최악은 이런 상황에서 맞게 되는.
따악-!!!
[아아...]
[레알 최악이네.]
홈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