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75화 >
* * *
간략한 인터뷰를 끝내고 호텔에 들어섰다.
그러자 곧 구단직원이 다가왔다.
“신우 정, 짐은 저희 직원들이 옮길 거예요. 그리고 팀원분들은 미리 연락했던대로 같은 호텔에 머물 수 있게 조치했어요. 하지만 층은 달라요. 신우 정이 머무르는 곳이 스위트룸이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팀의 에이스를 위한 일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팀의 에이스.
구단의 말단직원조차 신우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즉, 구단은 물론이거니와 갤럭시를 응원하는 팬들 역시 모두 신우를 에이스로 본다는 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갤럭시의 투수진 중 신우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에이스의 중책을 맡는 게 당연했다.
짐을 푼 신우는 그날부터 본인의 루틴에 맞게끔 훈련을 진행했다.
호텔에도 간단한 피트니스 센터가 있었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캠프는 내일부터니까, 오늘 훈련량은 줄이는 게 좋아.]
‘예.’
매튜슨의 조언에 따라 신우는 평소보다 일찍 훈련을 끝냈다.
그런 신우에게 루스가 말했다.
“오, 그렇지 않아도 일찍 끝내라고 말하려 했는데. 하여간 너를 보고 있으면 굳이 내가 필요할까 싶다니까.”
“무슨 소리야. 네가 있으니까 내가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거지.”
“흐흐, 그럼 내일부터는 원래 스케줄대로 가는 거야?”
“캠프 때는 오전 훈련을 팀으로 진행하니까, 이후에는 원래대로 해도 될 거야. 경기가 있는 날이나 피칭훈련이 있을 때는 조금 조정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은 팀에서 일정을 알려주더라.”
“그래?”
“어. 앤드류가 전에 NBA 선수와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구단측과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고생했다 하더라고. 그래서 여기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먼저 자료를 주네.”
메츠와 갤럭시의 큰 차이점은 이런 작은 부분들에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갤럭시에서 자신을 대우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쪽에서도 구단측과 잘 협력해서 스케줄 조정을 해줘.”
“오케이! 그 부분은 걱정하지마.”
루스는 신우와 가장 오래 일을 해왔다.
그렇기에 신우의 스타일을 잘 알고 어떻게 스케줄을 짜야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부분을 높이 평가한 신우는 루스를 치프의 자리에 앉혔다.
어떤 조직이건간에 그 팀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조직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모아뒀지만, 그들의 의견을 취합해 하나로 합칠 리더가 필요했다.
그 중심이 되는 게 루스였다.
‘별 다른 이야기는 없으니.’
팀이 모두 모이고 보름.
아직 별 다른 불만이 없는 상황이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피트니스센터를 나오자 구단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누, 벤자민이 찾아요.”
“알겠습니다.”
구단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감독의 사무실.
제이비어 벤자민을 비롯해 코치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어, 들어오게.”
제이비어가 신우를 발견하고 손짓을 했다.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가자 제이비어가 코치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이 함께 할 코치진들이야.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투수코치인 벤자민.”
“자네와 함께 일하게 돼서 기쁘군.”
“잘 부탁드립니다.”
그 뒤로도 코치들과 통성명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네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싶어서 말이야. 비시즌 기간 자네만의 루틴을 따라서 훈련을 했을 텐데, 현재까지 얼마나 몸상태가 올라왔는지 궁금하군.”
“80퍼센트 수준까진 올라왔습니다. 최고구속을 측정했을 때는 92마일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시범경기가 끝날 때쯤에 맞춰서 본래 구속을 찾을 계획입니다.”
“그렇군. 자네의 이전 스프링캠프 기록들을 보니 그럴 거 같았어.”
서류에 체크를 하는 제이비어의 말에서 신우는 이들이 자신의 이전 캠프 기록을 모두 찾아본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한 거임. 에이스 투수가 어떤 스케줄로 뛰는지 모른다면 일정을 잡기 힘들거든.]
[메츠에서는 네가 선발투수로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에 에이스 대우를 하기 어려웠던 거지.]
[클로저-선발로 사이영 2회를 탔는데, 코치진이 준비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
레전드들의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제이비어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네 팀 말인데.”
“예.”
이 부분이 가장 걸렸다.
훈련 팀이 생겼다는 건 개인에게 좋다.
하지만 단체로 보았을 때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
아무래도 특정선수에게만 특별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정식훈련에만 조금 출입을 자제해주면 좋겠어. 물론 자네의 훈련에 차질이 없다는 가정하에 하는 이야기야.”
오히려 제이비어는 조심스럽게 의사를 물어왔다.
그런 말 한 마디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정식훈련 시간을 제외한 개인훈련 시간에만 훈련장에 출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몇몇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투-웨이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군.”
“예. 물론 팀의 사정에 따르겠지만, 이번 시즌에는 투-웨이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팀의 라인업이 확정되지 않았어. 자네가 1선발인 걸 제외하면 말이지. 그 외에는 이번 캠프가 진행되면서 결정을 할 거야.”
[한 마디로 무한경쟁이네.]
[첫 시즌에 들어오는 팀들이 흔히 하는 거지.]
[갤럭시 FA로 선수 제대로 못 잡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듯?]
[디-백스를 완벽하게 벤치마킹했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역시 이런 방식을 취했다.
첫 시즌에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
디-백스의 첫 시즌 성적이 지구 5위로 마무리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디-백스 역시 다른 신생구단과 비슷한 역사를 걷게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2년차에 반전이 생겼다.
랜디 존슨을 비롯한 빅네임들의 영입으로 선수단의 레벨을 단숨에 상승시켰다.
거기에 1년차를 성공적으로 치른 루키들의 포텐이 터지며 디-백스는 지구우승에 이어 디비전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4년차에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목표를 이루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후폭풍이 찾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자네가 투-웨이를 한다면 타자쪽에서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거네. 투수에서 자네는 대체불가능한 에이스지만, 타자쪽에서는 아직 검증이 안 되었다는 게 이유라네.”
[이런쪽으로는 또 칼같누.]
[그런데 저게 맞긴 하지.]
[무엇보다 데이터가 적으니 확실하게 하는 게 오히려 팀에도 더 도움이 되지.]
사실 이건 신우 역시 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이영 투수기 때문에 타자의 자리를 달라?
그것만큼이나 무책임한 이야긴 없었다.
새로운 보직에 가는만큼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범경기까지 확실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대답을 기대했지.”
제이비어 감독이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더 회의를 진행하며 신우의 투구루틴이나 휴식기에 가지는 루틴, 그리고 투-웨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정보를 맞춰갔다.
* * *
캠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갤럭시 역시 메츠와 같이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로 캠프가 분주했다.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부터 초청선수들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주전급 선수들까지.
모두 모여 한 번에 훈련을 진행하니 정신이 없긴 했다.
신우가 라커에 짐을 풀고 있을 때였다.
“와!! 정말 시누잖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앳된 얼굴의 한 선수가 다가왔다.
중남미쪽 출신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제 갓 20대에 들어보였다.
“나 당신의 엄청난 팬이야! 이렇게 만나다니, 진짜 반가워!”
“잘 부탁해.”
그의 손을 잡기 무섭게 남자가 호들갑을 떨며 라커를 가리켰다.
“오-마이 갓!! 내가 시누의 옆자리라니! 시누! 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지? 여기 적힌 미구엘이란 이름, 너도 보이지?”
신우가 슬쩍 옆자리의 라커 이름표를 확인했다.
확실히 미구엘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맞네.”
“내 눈이 맛이 간 게 아니었어! 여기까지 버스타고 오는데 죽을 거 같더라고. 거기다가내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다니! 이 엄청난 일에 잠을 잘 수 있겠어? 전혀! 설레는 마음에 단 1분도 못 잤단 말이야.”
미구엘은 입을 쉬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면서도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정말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쉑 투머치토커누.]
‘한국에 코리안특급이 있다면 멕시코에는 얘가 있나 보네요.’
[엌ㅋㅋ 코리안특급 간만에 듣누.]
[크-! 걔 잘 던졌지.]
[부상으로 다쳐서 아쉽.]
신우는 멕시코에서 투 머치 토커를 뒤에 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이야-! 메이저리그 캠프라서 그런지 기자들이 어마어마하네. 그러고보니 시누 너는 코리아 출신이었지? 저기에 코리아 기자들 많은 거 같다.”
그러면서 미구엘이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기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동료기자들의 말에 장태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갤럭시의 트리플A 기사를 다 뒤져봐도 저런 선수는 찾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 영입했던가 아니면 더블A에서 올라왔을 수도 있겠네.’
한 가지 확실한 건 유망주 랭킹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유망주 랭킹에 든 선수는 모두 체크했기 때문이다.
‘어쨌건 나쁘지 않은 투샷이야.’
장태호는 신우와 미구엘을 잡아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옮겼다.
* * *
오전 훈련은 간단하게 끝났다.
단체훈련이라고는 해도 투포수가 합류한 간이캠프이기에 몸상태를 체크하는 수준에서 넘어갔다.
중요한 건 점심을 먹은 이후였다.
“다들 각자의 루틴대로 공을 던지면 돼.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 각자 컨디션대로 던져.”
투수 코치인 벤자민의 말과 함께 투수들의 피칭이 시작됐다.
불펜에서 시작된 피칭에서 투수진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파앙-!
파앙-!
여유롭게 공을 던지며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쪽.
이쪽에는 신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메이저리그 로스터 합류가 확정이거나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반대쪽 진영은.
“흡!!”
뻐억-!
“흡!!!”
빠악!!
초반부터 힘을 쓰면서 전력피칭을 보여주었다.
이쪽은 메이저리그 합류가 불확실한 선수들이었다.
즉, 마이너리거 대부분이 이쪽에 포진되었다.
그리고 멕시코 투 머치 토커인 미구엘은 이쪽에 속해 있었다.
[쟤 오버핸드네.]
[팔 엄청 긴데?]
퍼엉-!!
미구엘은 좌완으로 공을 뿌렸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공은 위력적으로 보였다.
문제는 제구였다.
촤앗-!!
“어! 쏘리!”
“여기로 던져! 여기로!”
“오케이! 오케이! 거기로 던질게!”
열 개를 던지면 그중에 8개가 포인트에서 어긋났다.
확실히 제구에 문제가 있어보였다.
[그만 신경끄자.]
[ㅇㅇ 일단 컨디션부터 체크하자.]
‘예.’
가볍게 어깨를 푼 신우가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코치진들이 일제히 신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 관중석에 앉아 있는 기자들 역시 사진찍을 준비를 했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쉰 신우는 글러브에 잡힌 공을 쥐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힘이 손 끝에 전달됐다.
‘몸이 커지면서 확실히 파워가 증가했어.’
신우의 몸은 이전보다 확실히 커졌다.
그리고 이렇게 커진 몸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우려스런 의견을 밝혔다.
「야구는 보디빌딩이 아니다. 과도하게 몸을 키우면 몸의 밸런스가 망가질 수 있다.」
「정신우 선수의 과도한 벌크업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의견들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지만, 그것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신우 역시 그것을 염려했다.
그렇기에 몸을 키우면서 동시에 피나는 노력을 통해 커진 신체의 밸런스와 늘어난 파워를 잡으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제 세상에 보여줄 시간이었다.
촤앗-!!
발을 차올린 신우가 가볍게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애액-!
뻐어억!!
굉음과 함께 공이 미트에 박히는 순간.
“오우-!”
“굿!”
“퍼펙트...!”
코치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선수들과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벤자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스피드건을 확인했다.
‘95마일.’
신우가 말했던 것보다 3마일이나 더 높게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