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73화 >
* * *
야구란 스포츠에서 반복훈련은 필수불가결이다.
[피칭에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손 끝에 감각을 키우는 것처럼 타격 역시 마찬가지다. 반복적이 훈련을 통해 스윙을 완벽하게 네 것으로 가져가야 해.]
타이콥의 설명을 들으며 신우는 배트를 돌렸다.
뒤이어 테드 윌리엄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너의 신체능력은 사실상 신이 내린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남들보다 빠르게 체득할 수 있고 남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부족한 건 자신감과 확신이었다.]
부웅-!!
[우리를 만난 뒤로 너는 그것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끝이 아니다. 네가 새로운 영역으로 끊임없이 나가려고 하는 이상, 새로운 훈련을 반복해야 해.]
부웅-!!
[피칭과 배팅은 결국 얼마나 많이 던지고 얼마나 많이 때려보냐에 따라 갈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바닥이 찢어지고 물집이 터질 때까지 반복적인 훈련을 취하는 것밖에 길은 없다.]
부앙-!!
100년이 넘는 세월.
그동안 야구는 끊임없이 발전했고 다양한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체계를 잡아갔다.
하지만 근본에 있는 건 바뀌지 않았다.
선수의 노력.
피를 흘리고 땀을 쏟아내야 겨우 실전에서 그것을 펼쳐보일 수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노력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거다. 이전에는 가이드끼리 손을 잡고 나아간 길을 이끌어주었다면, 이제는 과학기술이 맵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거지.]
부웅!!!
“헉...헉...!”
스윙을 끝낸 신우는 거친 호흡을 뱉어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광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윙연습을 도대체 몇천번을 하는 거야?’
일이백번이 아니다.
제대로 세어보지 않았지만, 족히 천 번은 넘었다.
더 놀라운 건 저런 훈련을 통해 신우는 빠르게 스윙의 궤적을 잡아간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왼손으로 공을 던졌기 때문에 쉬운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연습을 지켜보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한 번씩 제대로 된 스윙이 나왔지만, 그걸 빠르게 수정해갔다. 마치 옆에서 누가 가르쳐주듯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아니, 누가 옆에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가르칠 순 없다.
박광수는 다양한 코치들을 만나왔다.
학창시절부터 전 프로를 비롯해 현역 프로에게까지 레슨을 받았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돈의 힘으로 불가능한 건 없었다.
‘하지만 타격폼을 수정해달라는 건 모두 난처해했어.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었다.’
타격폼을 수정하기 위해선 선수를 오래 자주 봐야 했다.
선수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기술적인 부분도 그렇고 육체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성장한 부분들을 아주 세밀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타격밸런스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한 부분까지 변화를 주려면 코치가 옆에서 매일매일 지켜봐야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생활하는 프로의 코치들도 힘들다고 했어. 워낙 많은 선수들을 봐야 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을 보면서 조언 할 수 없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랬었다.’
프로가 된 이후에 자신을 가르쳤던 코치들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깨달았다.
프로코치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선수를 모두 체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시간에 선수가 변화를 일으키는 건 오로지 선수 본인의 노력 혹은 재능에 달렸다.
‘조금이라도 따라가야지.’
재능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노력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박광수는 다시 배트를 쥐고 돌렸다.
‘노력이 부족해서 뒤처지는 건 싫다!’
부웅!!
연습장에는 배트를 돌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 * *
1월 중순.
하와이 스프링캠프의 선수들은 더욱 피치를 올렸다.
“흡!!”
“좋아! 당길 때 근육의 힘을 제대로 느껴야 해!”
“후!”
철컹-!!
신우는 왼팔의 힘을 기르는데 집중했다.
[신우 너는 전신의 힘과 순발력 그리고 유연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 힘을 하나로 터트리는 역할을 해야 할 왼팔이 약하다는 거야.]
[스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은 손목이다. 손목이 강해야지만,공과 배트가 임팩트 하는 순간에 생기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어.]
레전드들의 조언에 따라 신우는 다른 훈련도 추가해서 병행했다.
“후우...!”
“시누, 괜찮겠어?”
루스의 걱정어린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가자고!”
그러면서 내민 로프를 받아든 신우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높이 5m에 걸린 로프.
장갑을 끼고 그것을 양손으로 잡은 신우는 거침없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오우...굿!”
그 모습을 보며 루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로프 클라이밍을 훈련스케줄에 넣은지 이제 고작 2주다.
처음에는 한 번 왕복조차 힘들어하던 신우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이제 완벽하게 클라이밍을 해낼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해낸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상하체를 모두 이용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상체의 힘만으로 오르고 있어.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원래 피지컬이 좋기는 했지만, 로프 클라이밍을 단시간에 해내는 모습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납득이 됐다.
‘재밌네.’
루스는 신우와의 훈련이 즐거웠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선수를 옆에서 서포트하는 거에 흥미를 느꼈다.
또한 신우의 훈련에서 배울 게 많았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본인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선수와 계속 함께 한다면 재밌겠어.’
얼마 전.
신우는 세 사람을 모아두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팀을 꾸릴 생각이야. 페이는 맞춰줄 수 있어. 다만, 나와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야 해.)
그 제안에 세 사람은 일단 보류를 했다.
셋 모두 미국인이다.
캐나다가 가깝기는 해도 타국이기에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고민을 하고 있는 루스였지만, 조금씩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 * *
1월 중순.
또 하나의 빅뉴스가 터졌다.
「뉴욕 메츠가 매각됐습니다. 뉴욕 포스트는 기사를 통해 윌폰가가 소유한 메츠의 주식이 모두 매각됐음을 알렸습니다.
메츠의 새로운 주인은 다수의 투자자가 모인 펀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메츠가 과연 새로운 시즌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메츠의 매각.
메이저리그에 들어와서 첫 구단이 팔렸다는 소식은 신우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신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훈련을 하는데만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수야!”
“예!”
광수가 마스크를 쓰고 앉자 신우가 간이불펜에 섰다.
“흡!!”
쐐액-!!
파앙!!
“아주 좋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피칭훈련을 프로그램에 넣은 신우의 일과는 정말 빠듯했다.
분단위로 움직일 정도로 훈련에 매진하는 그에게 한눈을 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투-웨이를 한다고 선언했다고 타격에만 신경쓰면 안 돼.]
[사람들이 너에게 기대하는 첫 번째는 바로 피칭이다. 커리어하이인 작년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성적을 올려야 타격 때문에 성적이 투구능력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거야.]
신우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가시간을 줄였다.
신우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훈련에 임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파앙-!!
“굿!!”
* * *
1월 말.
KBO에 소속된 박광수와 최연우 그리고 이영훈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됐다.
그들은 훈련에 들어오기 이전보다 한층 커진 몸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 선배들이 훈련에 그렇게 돈을 썼나 싶어요.”
“얌마! 이것도 다 여기 있는 세 사람 덕분이지. 은퇴한 전 프로 코치님들한테 들었는데, 전지훈련가서 그냥 먹고 마시고 노느라 훈련비가 많이 나오는 선배들도 있다더라.”
“헐...진짜냐?”
이영훈의 질문에 박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코치들을 만나왔기에 더욱 KBO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자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다들 돌아가서도 열심히 해. 나도 미국에서 너희들의 기사 찾아볼 테니까.”
“옙!”
“형, 오늘 파티 영상 좀 찍어도 돼요?”
“동영상?”
“예압-! 저번에 말씀드렸던 유튜브채널 있잖아요.”
“아아...네가 운영하고 있다는 그거? 나도 들어가봤는데, 구독자수 많더라.”
“흐흐, 그게 다 제가 플렉스 해서 올린 거 아니겠습니까?”
“야, 네가 플렉스 한 것보다 여기서 훈련한 동영상 조회수가 더 높던데?”
“신우형한테 빨대 꽂았네.”
“얌마! 그래도 신우형 훈련영상은 허락받은 거밖에 안 올렸거든!!”
욱하는 박광수의 모습에 신우가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아...다른 게 아니라. 이것도 영상 좀 찍어도 될까 싶어서요. 이거 올리면 조회수 백만 각 아니겠습니까?”
“그거 재밌겠네.”
“야, 근데 우리한테는 왜 안 물어보냐?”
“빠지던가! 어차피 신우형만 있으면 조회수 백만 각이거든!”
“아놔! 이런 쉑이 친구라고. 하지만 빠질 순 없지. 그런데 그거 다 기부하는 거 확실하지?”
“너 내 영상 안 봤지? 3개월에 한 번씩 기부한 거 올리는 거 안 봤냐? 나 수익 많아지면 나중에 골치아파져.”
“크으-! 금수저자너.”
재벌들의 삶을 잘 모르기에 신우도 그런가보다 했다.
무엇보다 광수도 좋은 일에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얘도 대단하네. 수익금 전액을 전부 유소년 야구에 쓴다는 거잖아?]
‘예. 채널 만들고 처음부터 그랬다네요.’
[평범한 재벌이랑 다르자너.]
[너희 나라 드라마 보면 재벌은 쓰레기로 나오는데. 얘는 다르네.]
도대체 저승에서 한국의 드라마는 왜 보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넘기면서 신우는 박광수에게 말했다.
“편한대로 해.”
“옙!”
박광수는 빠르게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근데 너는 편집자나 촬영감독이 따로 있다면서 카메라 설치 의외로 잘한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사람 구할 때도 힘들거든. 그래서 직접 해봐야 해.”
“오올-!”
“프로페셔널~”
“그러니 너희들도 이 몸의 채널에 자주 출연 좀 해라.”
“저번에도 해줬잖아!”
“맞아! 출연료도 안 주면서!”
“아놔! 밥 사주잖아!”
투닥거리는 후배들을 보며 신우가 피식 웃었다.
그 사이 카메라 세팅을 끝낸 박광수가 자리에 앉았다.
“영상 찍어서 나중에 편집 다 할 거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응. 자, 그럼 다들 새로운 시즌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후배들과의 훈련 마지막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며칠 뒤.
신우는 다소 조용해진 센터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후우...”
작년에도 느꼈지만, 시끌시끌하게 훈련을 하다 혼자 진행을 하면 아무래도 공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헤이-! 또 나사 빠졌네.]
[빨리빨리 안 움직이냐?]
[쉴 시간이 어디에 있음?]
레전드들의 닦달에 신우는 공허함을 날려버리고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훈련을 끝내고 탈의실에 들어와 스마트폰을 확인할 때였다.
「형! 영상 올라갔어요!」
박광수에게 온 문자에는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팸 아님?]
[너 이거 누르면 정보 털린다?]
레전드들의 실없는 농담을 뒤로 하고 신우는 링크를 눌렀다.
곧 박광수의 채널에 연결이 되고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올-!]
[그럴 듯하게 편집이 됐네.]
[확실히 돈을 쓰니까, 영상 퀄리티가 확연히 다르다.]
영상속에서 새로운 시즌을 다짐하는 네 사람의 모습을 보며 신우는 미소를 지었다.
내년에도 또 같이 훈련을 하려면 일단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했다.
영상을 모두 본 신우는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봤다.
-정신우 선수 몸 보소...
-작년보다 더 커진 거 같은데?
-어떻게 매년 몸이 커지냐?
-정신우 선수도 채널 하나 만들면 좋을 듯.
-메이저리그 일상도 궁금합니다!!
-부업으로 유튜버 안하쉴?
댓글들 중 다수가 신우의 몸과 메이저리그 생활이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인스타와 비슷하네.’
[너 요즘 또 인스타 자주 안 하지?]
‘그래도 가끔 올리는데요.’
[가끔이면 팬들이 궁금해하긴 하겠네.]
[아예 유튜브 하는 거 어떰?]
‘선배님들하고 대화나누는 것만 해도 정신없습니다.’
[ㅋㅋㅋㅋ 고거슨 ㅇㅈ]
[근데 얘도 사람 써서 영상만 올리네.]
[스트리머는 아닌 듯?]
‘생각 좀...어?’
그때 스크롤을 내리던 신우의 눈에 하나의 댓글이 보였다.
-갤럭시가즈아 : 정신우 선수 파이팅!!
ㄴ 아재 닉 빨리 바꿨네.
ㄴㄴ갤럭시가즈아 : 유튜브는 바로 바뀜. 안 바뀌는 곳도 있어서 뺏긴 곳도 많다 ㅠㅠ
ㄴㄴㄴ 엌ㅋㅋ 슬퍼서 우야누.
ㄴㄴㄴㄴ 우리 아재 아이디 스틸 당했네 ㅋㅋㅋ
웃픈사연에 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전에 데블스가즈아랑 같은 사람 아니누?]
[그런 듯.]
[ㅋㅋㅋㅋ 팀 이제 그만 바꿔야 될 각이다.]
‘그러게요.’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며 신우가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 * *
2월 초.
신우는 캠프를 마무리했다.
“나도 미국에 돌아갔다가 곧 그쪽으로 넘어갈게.”
“알았어.”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갑작스럽게 부탁했던 것도 있으니까. 대신 올 연말에 또 함께 해줘.”
“언제든지 연락해!”
“나도 마찬가지야!”
신우는 세 사람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세 사람 중에 합류를 결정한 것은 루스 한 사람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캐나다로 직장을 옮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다.
‘남은 팀원을 구하는 게 걱정이네요.’
[페이만 충분하면 사람은 곧 구해질 거임.]
[걱정 ㄴㄴ임.]
[팀원 구하는 것보단 캐나다에 가서 살 집부터 걱정해야지.]
‘그건 김 실장님이 잘 준비했을 거예요.’
“미스터 정.”
그때 승무원이 다가왔다.
“출국시간입니다. 짐을 옮겨드릴까요?”
“예. 부탁할게요.”
곧 항공사 직원들이 와서 짐을 가져갔다.
“절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곧 승무원과 함께 비행기로 향했다.
새로운 팀.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동료들.
모든 게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